2019년 3월 20일, 나는 한글로 된 검색엔진에 “조선족”이라는 키워드를 쳐보았다. 한글을 아는 조선족으로서 이용할수 있는 검색엔진은 주로 구글과 네이버이다. 세계적인 검색엔진 답게 아무런 필터링없이 그동안 만들어지고 쌓여 있는 정보에 근거하여 결과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간간히 "조선족"을 검색해온 나한테는 그리 놀랄만한 결과가 아니였다. 예나 지금이나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것들이기 때문이다. 연관 검색어들 마저도 긍정적인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식인이라는 플랫폼에 가보면 더 가관이다. 아예 조선족을 검색하지 않거나, 이런 현상을 모르면 누군가가 어쩌다 하는 말을 듣고 지나치면 그만이다. 그런데 조선족이 검색엔진을 통하여 세상에 이렇게 보여진다는것을 알고 나면 그냥 지나치기 힘들것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미래가 되지는 않는다. – "0에서 1"이라는 책에서 작가 피터틸이 했던 이 말이 아주 와닿는다. 거의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조선족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2004년이랑 비슷하다. 우리의 정체성은 오히려 더 이상하게 정의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이용되어 가고 있다. 따라서 누구든 핸드폰만 있으면 인터넷과 온라인 공간에 쉽게 접속할수 있는 요즘은 분쟁도 더 심해져 가고 있다. 

시간이 흘렀는데 왜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되어 있지 않았는가?

제3자에 의해 묘사되고 그려지는 우리 조선족

온라인(네이버, 구글, 다음 등 한글로 검색할수 있는 검색엔진)에서 보면 조선족에 관한 데이터는 지금이나, 15년전이나 바뀐게 거의 없다. 이건 제대로 된 우리 조선족만의 온라인 플랫폼이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나 다음은 예전보다 더 크게 되었는데, 우리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품을수 있는 플랫폼은 사라져 버렸거나, 아니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제3자가 만든 세상에서, 그들이 정해놓은 룰을 따르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들의 기록들은 지워지고 사라지기를 여러번 반복했었다. 

'황해' (2010), '신세계' (2013), '차이나타운' (2014), '청년경찰' (2017), '범죄도시' (2017), '우상' (2019)…

지난 10년간 상영된 영화들이다. 공통점이라면 영화에 모두 조선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또다른 공통점이라면 모두 부정적인 캐릭터들이라는 것이다. 한국 감독들의 머리속에는 조선족에 대한 사용법이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아마 2020년에도 또 비슷한 조선족 사용법을 이용한 영화들이 나오지 않을가 싶다. 8090후인 우리 조선족들 조차도 도무지 알아볼수 없고 이해할수 없는 몇십년전의 캐릭터로 그려지는 영화 말이다. 우리도 몰랐던 어떠한 사실들을 열심히 다시 재현해주는 력사적인 영화로 기록될거 같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게 있다. 바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에서의 소수민족 사용법이다. 미국영화를 보면 가끔 흑인이나 스페니쉬, 혹은 아시아인들이 주연은 아니지만 영웅적인 행동으로 심금을 울릴때가 많다. 아니, 아마 이런데서는 꼭 소수민족들을 등장시켜서 사회적으로 신분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백인들이 주인공인 영화에서도 꼭 한두명은 흑인 친구가 있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만의 생각이지만 굳이 모두 백인들을 일색으로 캐스팅하여 찍을수도 있는 영화인데, 굳이 여러 소수민족들을 써가면서까지 영화를 찍는 이유는 뭐겠는가? 나는 이것이 진정 미국이 강대국이고 선진국이라는 증거라고 본다. 문명하거나 발달한거를 떠나서 여러 유색인종과 소수민족들이 어울러져서 함께 생활해 나가는 이런 모습들이 말이다. 물론 여전히 种族歧视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에서는 소수민족들이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웅장한 죽음을 맞이하거나 혹은 사회를 위하여 공헌하는 장면과 이야기로 그들의 위상을 높여 주려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조선족들은 "항상" 깡패, 마약, 살인과 연관있는 무섭고 어두운 쪽으로 그려진다. 언젠가 어느 감독이 조선족을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캐릭터로 그려줄거라 믿는다. 그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던, 어느 주인공의 친구로 그려지는 것이던, 꼭 조선족을 긍정적으로 그려주는 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가서 열번이라도 봐주겠다.

애국심? 민족의 자부심?

주위에 한국 친구나 직장 동료가 있다면 조선족으로서 꼭 한번씩 들었을 질문이 있을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 축구를 하면 어느팀을 응원하는가고?" 어떠한 상황에서든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당연히 중국이지"라고 대답했다. 이런 대답이 뭐 어때서 한국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자주 분쟁이 일어나는지 알수 없다. 

미국에서 한번은 순 한국인, ABK(American Born Korean –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한국인)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축구에 관한 말을 한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빠질수 없는 질문이 ABK랑 나한테 던져졌다. 그당시 ABK의 답변은 간결했는데 "I don't care"였다. 아마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진짜 축구에는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고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여지껏 망설임없이 "중국"이라고 답변했었던 나는 한번 시험해보려고 "나도 관심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웃기는게 나한테만 "혹시 중국이라서 그러는게 아니냐고?"라고 물어봤다. 미국에서 동등한 위치에서 만나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이러하니, 한국에서 회사 다니거나 혹은 다른 일을 하면서 사장이나 매니저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을 우리 조선족들이 참  힘들게 혹은 내키지 않는대로 이런 상황을 넘겼을거 같다.

사실 내가 알고있는 지식으로 정리하라면 이렇다. 5060인 우리 부모세대까지는 실제로 한국이나 북한을 응원했었다. 나의 어머니도 중국과 한국사이에 스포츠게임이 있으면 종종 한국을 응원하면서 중국을 응원해야지 하는 나랑 티격태격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이렇듯 5060 분들은(혹은 그전에 태여나신 분들) 아마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더 크게 생각할수도 있다. 그런데 7080후부터는 다르다. 우리는 중국의 12년제 의무교육을 받았고 조선의 력사보다는 중국의 력사와 정치를 주로 배웠다. 세계력사에서 조금이나마 조선의 력사에 대하여 배웠을 뿐이다. 그러니 당연히 애국심이 더 클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렇다고 또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없는게 아니다. 중국 커뮤니티에서 우리민족을 욕하거나 하는걸 보면 똑같이 기분이 좋지 않고 댓글로 싸운다. 이렇게 나라와 민족사이에서 이런저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게 우리 조선족이고 우리의 정체성인거 같다. 

그러니 이 질문은 사실 "중국 사람 + 조선민족(한민족)"인 우리 조선족에게는 애국심이냐 아니면 민족심이냐 둘중에서 선택하라는 질문과 같다. 이건 사람마다 다를것이고, 태어나서 자란 배경과 받은 교육, 그리고 처한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거 같다. 나에게는 애국심이 더 크니 당연히 언제나 중국인것이다. 어느쪽이든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할 일이 아니다. 100년도 못 사는 인생에서, 또 우주에서 보면 지구의 인류는 그냥 먼지의 존재라고 하는데, 이런것마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있겠는가.

조선족 = 중국 사람 + 조선민족(한민족)

우리 조선족은 국적이 중국이니 당연히 중국사람이다. 그리고 선조들의 핏줄을 이어받았으니 당연히 조선민족(한민족)인것이다.

한민족(韓民族) 또는 조선민족(朝鮮民族)은 한반도와 그 주변의 만주, 연해주 등지에 살면서 공동 문화권을 형성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시아계 민족이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일본에서는 조선민족(朝鮮民族), 구 소련 지역에서는 고려인(高麗人) 등으로도 부른다.

대한민국에서는 1950년 국무원고시 제7호에 의해 '조선'이란 명칭 사용이 기피되면서 한민족, 한인(韓人) 으로 호칭하고 있다. 특별히 구 소련 거주 한인들, 특히 20세기 초에 연해주에 거주하다가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은 '고려인'(高麗人)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위키백과

우리의 5060 부모세대

지금 조선족의 사회적인 위치가 낮은거는 사실이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조선족으로서 나는 분노하지는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겪은것이 그렇게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모세대를 원망하거나 탓하는게 절대 아니다. 반대로 우리 부모세대 5060은 참 위대하고 우리가 감사해야 할 세대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보다도 자식들이 더 잘되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한 위대한 세대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보지 못한 대학에 우리를 보내려고 궂은 일,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고 타지에서 온갖 고생을 했을 것이다. 언젠가 가족들과 다시 만나게 될 그 날을, 자식이 대학에 가서 출세할 그 날을,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앉아 함께 보낼 행복한 그 날들을 위하여 많은 희생을 했을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지탱하게 해준 힘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들한테는 절대 투자 안하고 절약하며 한푼 두푼 모으면서 악착같이 살았다. 이런 그들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위대한 헌신의 정신으로 그려지고 보여졌다면 참 좋았을텐데 이 빌어먹을 사회는 그러지 않았다. 그들은 돈밖에 모르고 돈이라면 사기도 치고, 시키는 일은 "예, 예…" 하면서 무엇이든 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5060 세대는 이렇듯 치열하게 우리를 위해서, 더 좋은 날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살았다. 그분들 덕에 이렇게 좋은 교육도 받을수 있었고 지식도 많이 쌓을수 있었는데, 과연 우리가 뭘 하면 보답할수 있을까? 첫째는 그분들에게 드려야 하는 직접적인 보답이다. 다음은 그분들 그리고 조선족이라는 없어질수도 있는 민족을 위하여 뭐라도 하는것이다. 5060은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 그분들의 헌신을 제3자가 아닌 우리가 직접 기록하여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여 갈지를 기록해야 한다.

우리 조선족들도 잘하고 있다

5060세대와 다르게 우리 7080후부터(90,00…) 인테넷에 자주 접속하며 직접 한국사람들이랑 온라인으로 교류도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예전에는 없었던 분쟁도 많이 생겨나는 것이다. 댓글로 서로를 비하하면서 무시하고 욕하고 하는건 너무나 흔한 일이다. 내가 제일 어이없었던것은 인스타그램에 있는 "#조선족아님" 이라는 테그이다. 참으로 웃기다. 자신들의 옷 입는 스타일이 이상해서, 혹은 자기가 배고파서 엄청 많은 음식을 시키고 무식하게 먹으면서 왜 이런걸 조선족이랑 연관시키는지. 단언컨대 이런 사람들은 10에 10은 한번도 연변을 가보지 못한, 연변이나 조선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어디서 주어듣고 보기만 한것을 어설프게 써먹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이 있다. 댓글로 100번 받아치고, 싸우고 해봐야 하나도 달라질게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15년만 흐를것이고, 누가 믿어주지도 않는다. 또 사기나치는 그런 거짓말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 세대가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노력하여 세상 사람들의 중국조선족에 대한 관점을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 우리도 이렇게 누구 못지 않게 잘 살고 있다는걸 보여주고 기록해야 한다. 언젠가 력사가 될 우리들의 오늘, 지금을 기록하여야 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크게 성공하여 엘리트로 살고 있는 우리이든, 아니면 자신이 맡은바 일을 열심히 완수하면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는 우리이든 10년, 20년전에 비해 잘 살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우리도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부단히 발전하고 있는데 누구든 기록하지 않고, 어디에든 살아가는 경험들과 생각들이 기록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꼭 老罗英语, 锤子科技를 창업하여 크게 성공한 조선족 罗永浩처럼 큰 성공을 해야 기록할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자신을 위하여, 혹은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의 긍정적인 기록인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정보들이 더 많이 저장되어 언젠가는 부정적인 것들을 덮어 버리는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더 잘 이해하는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우리의 글로 우리의 력사를 기록할수 있는 세대가 아닌가 싶다." 요즘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우리가 기록하지 못하면 조선족은그냥 제3자에 의해 기록되는 사투리를 쓰고, 촌스럽고, 무서우며, 깡패가 많고, 무식한 민족으로 기록될 것이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조금이라도 개변시키려고 나는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글을 쓰려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경험을 적어서 기록하려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았던 조선족이라는걸 남기려고 말이다. 꼭 한국 영화에서만 나오는 그런 캐릭터, 한국에서 기록된 그런 부정적인 조선족들만 있는것이 아니라고, 그런 악세력들은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에서도 존재하는 어쩔수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극단적인 몇명의 사람들로 인하여 우리 전체 조선족들이 "항상" 부정적으로 그려지면 안된다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실이 있다. 세상 어디에서나 그렇듯 한국에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내가 접촉하면서 만났던 분들도 그렇고, 무엇이든 도와주려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봐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였다. 이글은 절대로 한국사람들을 뭐라 하려고 하는게 아니다. 모든게 우리 자신의 문제이고, 우리가 먼저 관점을 바꾸어 우리절로 우리의 력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이 세상은 우리를 조금씩 더 이해하지 않을가 싶다. 지금으로부터 다시 5년이 지난 2024년에 검색엔진에서 조선족을 검색하면 좀 더 긍정적인 결과들이 보여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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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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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글쓴이의 삶과 고민의 흔적이 보여서 더 공감이 가는것 같습니다. 제3자의 화법에 의해 담론되는 “조선족”이 아닌 조선족이 주체로 자발적으로 우리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2. 2. 여태껏 한국사회가 조선족 이미지에 대한 조선족 자신의 담론을 돌이켜보면, a. 무반응, 한국의 조선적에 대한 반응에 주의하디 않고 대응하지 않았던 시기; b. 한국의 왜곡된 이미지 제조에 분노하면서 비판과 함께 조선족의 우수성, 엘리트의 이야기를 발신하던 시기; c. 한국과의 인적교류, 한국 정착인구가 많아지면서 조선족들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발신하려는 움직임, 대략 이렇게 세가지 단계를 거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는 b가 위주이고 c가 부수적인 그런 상황이지 않나 하는게 개인적인 의견이구요.

  3. 3. 위에서 말한 b의 유형, 주로 조선족 5060 세대들이 정계, 학계, 문화계의 유명인물들 사적 위주로 중국이란 대국에서 엘리트로 활약하는 모습을 주장하는데, 사회주의적인 사고의 흔적이라고 평가할수도 있겠습니다. 글쓴이가 말한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도 활약분야는 다르지만 어쩌면 비슷한 맥락의 사고가 될 위험성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살아서 떵떵거리고 힘이 있으니까 깔보지 마라 라는 것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아닐까요. 그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랄까, 한국사회나 조선족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데는 무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족이 잘살아 이상한 이미지 모자를 벗으면 한국은 또다른 외국인 이민, 약소계층을 대체물로 그러한 사회적 행위를 계속해 나갈 것이고 조선족도 못사는 사람들은 실생활에서 계속 무시받아도 된다는 얘기로 이어지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젛은 방식으로 잘 풀어나가면, 어쩌면 이미 생겨버린 이러한 위기모순이 한국이나 조선족 사회의 좋은 변화로 이어지는 계기나 발판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얘기하신 “우리가 잘 살고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그런 떵떵거림이 아닙니다. 제가 전하려는건 엘리트이든(사실 우리 조선족들이 엘리트?의 수는 적고도 적겠죠) 평범한 회사원이든, 가정주부이든, 사회적인 신분의 높낮이를 떠나서, 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생각을 당당하게 기록하여 남기면서 우리도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걸 보여주자라는 뜻이지요. 이런것 소소한것들이 많이 쌓여서 천천히 세상사람들의 인식이나 관점을 바꾸어나가야 된다는것이고. 여기서 “잘”은 돈이 많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엘리트가 되는걸 말하는게 아니고, 소소하더라도 행복하게 또 누구못지 않게 이 세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라는 뜻이구요. 그리고 또 우리가 잘살게 되면 다른 외국인 이민, 등 다른 약소계층이 대체물로 되어 또다른 반복이 될수도 있는걸 걱정하셨는데. “一屋不扫,何以扫天下”라고 그 걱정은 우리가 우선 잘 되고나서 다시 생각해봐도 된다고 봄다. 우리가 겪었던 경험이 있기에 그들을 더 쉽고 빨리 도울수도 있고. 미리걱정은 우리 현 상황에 절대 맞지 않다고 봄다.

      1. 네, 작가님이 그런 생각으로 글을 썼다는건 아니고, “잘 산다”는 표현이 가질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실제로 “잘” 산다라고 따옴표를 쳐서 특별화하여 표현했을 경우, 읽는 이에 따라서 “잘”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는 각자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댓글로 이렇게 풀어서 말해주셨으니 아마 읽는 이들도 더이상 오해가 없을듯 싶습니다.

        1. 네, 저도 뚜렷한 중점이 없이 이것저것 적은 글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설명을 추가할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이젠 더이상 이런 조선족-중국-한국 관련한 해명이나 설명 같은 글을 쓰지 않겠습니다. ㅋㅋ 대신 소소하게 잘 살고 있다는 글을 더 많이 적겠습니다. 이런 글들이 많이 모여져서 셜명도 필요없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4. 4. b의 유형 중에 70세대들이 한국에서 “조선족 3세대들의 서울 이야기”란 책을 펴낸 적도 있습니다. 석박사 유학 혹은 졸업후 취직초기의 경험을 담은 책인데, 지금 이 시대들의 생각도 c 유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위인이나 잘나가는 조선족 이야기도 좋지만 그런 것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잘나가는” 사람도 좋지만 조선족들(한국에 사는 이들 뿐만 아니라)이 살아가는 소소하지만 진실된 이야기들이 더 힘이 있고 사람사는 내음이 더 친근하게 다가갈수 있다는 생각에서입니다. 결론적으로 현시대에서는 b도 필요하지만 c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입니다.

    1. 이 부분은 동의합니다. 조선족 엘리트의 이야기로는 절대 공감을 살수 없고, 관점을 바꿀수 없지요. 조선족 인구에서 엘리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50%이상이라면 또 모를가. 근데 이런 출중한 사람들을 무시할수도 없죠. b와 c를 적절하게 조합하는게 중요하겠지요. 지금과 같은 시대에는 굳이 책을 내야만 자신의 메시지나 관점을 전하는게 아니고,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어딘가에 자신의 메시지를 전할수 있고 또 기록이나 생각을 남길수 있으니 예전보다 더 쉬워지고 편리하게 되었죠. 보니까 “조선족 3세대들의 서울 이야기”란 책이 2011년 나왔는데, 그 뒤 거의 8년이란 시간동안에는 다른 책들이 꾸준히 나왔는가 하는검다. 어느 한순간, 어느 한 사건으로 인하여 홧김에 혹은 그런 사건에 대응하려고 무얼 하기보다는 평소에 꾸준히, 우리들의 기록들을 적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보잘것 없는 소소한 여행기이던, 음식에 관한것이던, 다른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던, 조금씩 자주 해야 한다는 것임다. 한두번의 대응이 아니라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나의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임다.

      1. 맞습니다. 시간도 흘렀고 미디어와 전파환경도 많이 바뀌어서 그 시점의 도서출판과 현 시점의 도서출판이 같은 의미도 아니고 한번의 이벤트로서의 파급력도 또 훨씬 더 떨어집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나무 같은 플랫폼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5. 5. c 유형은 사실 조선족 전통적 집거지역(연변 등)을 떠나 세계 각지에서 사는 인구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대두하는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글로벌화의 흐름과 함께 고향을 떠난 조산족들도 더이상 공간이나 국적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인”으로서 그 정체성 문제의 해답을 찾아보려는 움직임인데, 넓은 시야와 열린 사고로 이어질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국적도 혈연도 버리는 “해탈”을 추구해서 현재 이 아수라장을 뛰쳐나온 “득도자”로 자처하기 쉽습니다. 근데 이는 b 유형에서 조선족 엘리트가 상층계급인양 훈계자로 군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현실을 살아가는 더 많은 조선족 분들에 대해서는 가볍게 간과하는 병폐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탈도 어느 정도의 여건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그걸 모든 사람들에게 대책인양 적용하라는 식의 얘기 역시 차별과 고민의 현실을 안고있는 분들에게는 무책임한 발언이 될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경계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여 어떤 유형의 이야기를 발신하든 간에 겸손과 진정성과 소통의 자세는 공통적으로 요구된다고 봅니다.

    1. 저의 글이 우리가 해탈을 추구하고, 빨리 엘리트가 되어 떵떵거리면서 살자..라는걸 호소한거는 아니라고 봅니다. 글에 적은것처럼 “…꼭 이렇게 큰 성공을 해야 기록할수 있는 권한이 생기는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자신을 위하여, 혹은 가족을 위하여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의 긍정적인 기록인것이다.”. 우리도 잘 살고 있다는걸 보여줘야 한다라는 뜻은, 아주 사소한 것(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던, 택시기사를 하던.. 우리의 경험과 생각들을)이라도 마땅히 기록하고 기록되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데 있슴다. 글에서 진정성의 소통은 저 나름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함다. 그리고 너무나 오만하면 그건 좀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지금 겸손을 따질대가 아니라고 봄다. 우리가 겸손해서 바뀐게 뭐가 있는지요? 오.. 재네는 이렇게 대해도 되는구나. 이렇게 해도 네,네 하는구나. 너무 겸손한것도 우리사회의 문제가 아닐가요? 칭찬해주면.. “아.. 아니예요”, “뭐, 그런걸 가지고..”, 뭘 더 원하는가고 물어보면… “아.. 괜찮습니다”, 남들이 다 하기 싫어하는 일이 있으면… “아.. 그건 제가 할게요”. 소통의 자세는 언제든 가추어져 있슴다.

      1. 이 글이 진정성과 소통의 자세가 없다는 얘기가 아니고, 글이 다루고 있는 문제가 여직껏 어떤 흐름을 이루어왔는지를 이 글의 장을 빌려 한번 회고하면서 적절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개인고백을 해보았습니다. 읽는 이들에게도 의견을 나누는 소통의 기회를 마련한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6. 많은 대목에서 글쓴이와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애국심에 관련한 부분에서 묻고 싶은것이 생겼습니다.

    애국이란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인데, 글쓴이가 사랑하는 나라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인가요? 그것은 또 무엇인가요? 언어인가요, 문화인가요, 어니면 이 넓은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인가요?

    1. 우선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통할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나라는 중국 맞습니다. 그런데 언어, 문화, 혹은 사람때문에는 아닙니다. 22살에 외국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거의 10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저한테는 나라란 하나의 Identity(신분/정체)인거 같습니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게임이 진행되면 소리치며 응원할수 있는 이름, 그리고 잘 살던 못 살던 내가 모든걸 때려쳐도 돌아갈수 있는 곳, 아무런 조건없이도 나를 받아줄수 있는곳, 거의 모든 나의 지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 돌아가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낄수 있는곳. 이런것들로부터 나오는 느낌과 감정이 xx심(心)인거 같습니다. 사실 지금처럼 빠른 생활패턴으로 살고 있는 우리가 애국, 우리나라가 어느것인지를 자주 생각하면서 살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세상이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국적이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갑자기 누군가 “너는 어느나라 사람이냐?” 라고 물으면, 망설임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중국에서 왔고 중국사람이다” 라고 대답하는 이런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떄, 그러니까 꼭 애국심이 아니더라도 Identity(정체성/신분),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하는 그런 이유에서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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