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며

깨끗이 관계없이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럴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미래를 꿈꾸며

     “엄마,  검(检)자를 써줘.”

    애가 내민 점수가 찢겨져나간 시험지.  터무니없는 성적임이 뻔하다.

    “몇점인데?”

    간신히 화를 누른다.

   “그냥 해줘.”

    “안돼.”

    내말에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이번 한번 뿐이야.”

    “절대 안돼. 점수가 문제 아니야.  점수를 없애버렸다는 것도 그렇고 점수를 알려주지 않으며 기어이 억지만 부리는 것도 그렇고 게다가 맨날 공손하지 못한 이 태도는 도무지…”

    “써주지 않아두 돼.”

    내말을 자르며 제쪽에 서되려 시험지와 연필을 홱 나꾸어채가지고 휭하니 가방을 메고 일어선다.

    “너 이게 무슨 짓거리야…”

    열이 오른 나는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한채 이 세상 가장 교양없는 엄마가 되여 바락바락 악을써가며 험한 말들을 마구 퍼붓기 시작했다. 

    “왜 이래?  난 원래 이렇잖아”

     애는 나를 흘기며 그렇게 쨍하게 소리 지르고는 언제나처럼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다.  나는 또한번 혼자서 바보가 되여버리고 말았다.  화를 낼 사람도 없이 나는 자신의 내면에서 부글부글 괴여오르는 수많은 짜증과 환멸같은 것을 감당할 수 없어 치를 떨어야 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하는 서러움으로 눈물까지 비죽비죽 흘러나왔다.

      소학교 때까지는 별탈없이 원만하게 지내왔다.  공부도 늘 앞자리였고 생활도 척척 뭐든지 잘했고 부모의 말에 잘 따라주었다.  그래서 나는 참으로 편한 엄마 였는지 모른다.  나는 애의 연필을 깎아준다거나 숙제를 검사한다거나 모르는 문제를  설명한다거나 하면서 학습습관과 학습방법에 대한 자세한 지도를 해주지 못했다.  애와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한다거나 함께 방안을 청소한다거나 하면서 애의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에 대해 따스한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 그만큼으로 애는 스스로 뭐든지 잘해냈고 나는 그런 애를 대견스러워했고 먼 후날까지 쭉잘할거라고만 믿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가면 서부터 애는 내가 리해할 수 없고 또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일들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어제는 숙제를 하지 않고 오늘은 위챗이며 큐큐만 하루종일 놀고 래일은 지각을한다. 매번 시험은 하강선을 그었고 항상 어울리지 말라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또한 나의 말을 무조건 거스른다.  늘 자기밖에 몰랐고 점점 불평 불만이 늘어갔고 언제나 무모한 일들에만 왕성한의욕을 보였다. 

      그런 애 때문에 처음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당황했고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나는 어서 잘못을 고쳐주어 옳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바심치며 마구 닥달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해라,누구랑 만나니,몇시에 오니,방안을 청소해라,시험은 몇점이니,그런 옷은 입지 말라,용돈은 어디에 쓰니,  컴퓨터를 그만 놀아라 하며 매일 같은 잔소리를 반복했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명분을 내세워필기장에 씌여지는 락서나 호주머니나 책가방이며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애는 더더욱 나를경계하기 시작했고 사춘기를 내세워 자신의 모든 실수와 잘못을 변명했고 세대차이라는 말로 대화를 거부하거나 거칠게 반항해오군 했다.  마치 나의 어떤 가치관에 대항하는게 아니고 오로지반란 그 자체가 목적인듯이 말이다.  그 때마다 한숨과 함께 힘이 쭉 빠지군 했다.

      이 시기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이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였다.  나는 사춘기를 위한 교육서적을 사들이며 애에게 읽기를 요구했고 최고의 엄마가 되여가는 심리서적들을 탐독하면서 알맞다는 교육방법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담아만장같은 편지를 쓰며 애의 감정에 호소하기도 했고 학교대문앞에서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하학하는 애를 기다리면서 또래들을 관찰하기도 했고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주고 단계별 목표를 세심하게 짜주기도 했고 애가 맛있어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교류를 시도하기도 했고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여 칭찬해주려고 노력했고 나타나는 문제는 어느 타이밍에 맞추어어떻게 이야기할가를 심각하게 고민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이 어떠한  효과도 보지 못할 때나는 또 리성을 잃고 광적인 분노로 아이의 약점을 헤집고 상처를 주고 비웃고 모진 말을 하고… 아이는 더 강렬하게 반발하고 더 멀리로 빗나가고… 그 때마다 애와의 관계는 무너지고 악화되여만 갔다. 매번의 싸움마다 “너 마음 대로 해. 다시는 관계하지 않을 거야.”라고 큰소리를 치며 끝을내군 했다. 그러나 깨끗이 관계없이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럴 수 없는 관계가 아닌가. 

      실망스러움에 견딜 수 없이 힘들던 어느날 나는 점을 잘 친다는 사람을 찾아나섰다.  점을 보는 사람을  마주하고 우리 부부의 생년월일이며 애의 생년월일을 말해주고 손금이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눈길도 피하는 내가 그날은 생면부지의 사람과 마주앉아 주절주절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날 그는 내 말을 들어주는 경청자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리고 한참후 내가 지쳐가는 입을 다물었을 때 점을 보는 사람이 나에게 기다리라고  애가  똑똑하니까 좋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때 나는 그 말을 간절히 믿고 싶은 것이였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다. 다만 나 스스로 그 믿음을 믿을 수 없어서 다시 한번 누군가를 통해서 그 믿음을 더 확실히 해보려는 노력을 했을 뿐이였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어오면서 내 아이를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는데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허구프게 웃었다.  그러면서 오늘 일을 애가 알면 얼마나 서운해할 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무척 미안해졌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애의 곁에 다가가 “다만 좋은엄마가 되고 싶었을 뿐이야” 하고 속삭이며 사과까지 했다.

      그리고 또 아무리 머리를 쥐여짜도 그 어떤 현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던 날에는 심리선생님을 찾아가 얌전히 앉아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심리선생님들은 하나같이 기다려라고 한다.  엄마는 그 어느때까지라도 기다려줄 수 있지만 세상은 기다려주는 걸가?  애가 이제 스스로를 바로잡고 다시 뒤처진 공부를 시작하여 시험을 볼 때까지 누가 기다려주는가?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라고 한다. 엄마가 비교해서 애들이 비교의 대상이 되는게 아니라 이 세상이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 1점도 안되는 차이로 울고 웃어야 하는 학생들의 진학시험이 아닌가?  섣불리 교육하려고 하지 말란다. 그럼 스스로 깨달아가기까지 애는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할가?  그 과정이 기어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여 성장시켜준다고 누가 담보하는가?… 

    애와의 전쟁은 늘 일어났고 그 전쟁을 무수히 반복하면서 나는 아이를 향해서가 아니고 나를 향해서 돌아보며 반성하게 되였다.  갑작스럽게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는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기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제때에 바로잡아주고 이끌어주지 못한 이 엄마의 문제인셈이다.  애는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나름의 갈등을 내가 사춘기는 병이 아니라며 무시해버리지 말고 리해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가? 언제나 문제를 정리하고 나의 의견을 제시해주기보다는 자신의이야기를 그냥 따스한 마음으로 공감해주길 바란 것은 아니였을가?  규칙과 규률을 세우고 내 생각대로 강요하기보다는 자신 스스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도록 믿어주길 바란 것은 아니였을가?…나는 어쩌면 여태 애의 가슴깊숙이에서 배여나오는 표정이나 목소리나 눈빛이나 같은 것들을 하나도 보아내지 못한 그래서 결코 아이를 위해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는 무지한 엄마였을 뿐이아닐가?

      그러고보니 아이의 잘못보다는 사랑스러운 면도 하나둘 보여지기 시작한다.  심한 감기로 열이  40도까지 오르던 날 내 곁에서 그렁그렁한 눈으로 지켜보며 병원에 가자고 조르던 아이,  나보다 훨씬 큰 키에도 내 품안으로 기여들어 애교를 부리며 뽀뽀까지 해주던 아이,  어디 다녀오면 우리 부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선물까지도 챙겨오던 아이,  “엄마처럼 살지 마.”하는 나에게“나는 엄마가 괜찮은 녀자 같은데.”하며 가슴 벅차게 해주던 아이,  채소심부름도 잘 다녀오던 아이,  책의 말을 인용하며“공부는 인생의 천장을 높이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나에게“내 천장은하늘이야.”하며 터무니없지만 씩씩하던 아이… 저도모르게 가슴이 달콤한 기쁨으로 물든다.  그래, 아이는 한발작한발작 성장하고 있으며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다만 조금, 아주 조금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아이 때문에 세상사 시름이나 피로가 말끔히 씻기기도 하고 또 아이 때문에 세상사 모든 근심걱정을 껴안기도 하는 자신이 못내 안쓰럽다.  그 모든 감정은 기실 아이로부터 비롯되는것이 아니였다. 다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뀌는 내 마음탓일 뿐이였다. 더는 아이를 향해서 윽박지르고 혼내고 질책하고 의심하고 걱정하고 부정하고…그러지 말아야 겠다.  모두가 엄마로서의권리도 의무도 자유도 아니다. 오로지 나를 다스리고 다스려서 고요한 마음으로 애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한편 나 자신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온전히 나의 몫임을 알겠다.

    서투른 몸짓으로 날기 시작하는 아이를 묵묵히 바라본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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