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와의 담소


S는 다소 냉철하고 현실적인 듯해도 도덕을 어길 수 없어서 모순적이기도 하다. 염세적인 듯해도 한 번뿐인 삶이고 주어진 생명에 미안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잘 살아보려고 한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자의가 아니고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생명 때문에 삶을 영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에 참 많은 것을 겪으면서 부모님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자녀를 둔다는 일이 과연 진실로 행복한 일이 맞는지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 S 스스로가 부모님에게 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만약 본인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두게 된다면 똑같이 자녀는 부담이 되는 존재이고 본인의 부모님이 했던 만큼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고 한다.

“결혼적령기 …… 이제는 이러한 단어를 언급하는 것이 굉장히 뒤떨어지거나 옛사람 혹은 꼰대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닌지 몰라. 그리고 어떠한 나이마다 무엇을 이루어야 한다는 객관의 정의가 굉장히 구속을 받는 느낌이야. 결국엔 예로부터 정해진 프레임인데 과감히 그것을 벗어나는 사람이 아직 우리 주변에 너무 적은 것 같아. 모든 것이 진화하고 발전하는데 어떠한 부분은 여전히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워.”

S는 언제부터인가 자기중심적으로 생활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사실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가족과 주변의 속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챙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최우선으로 본인이 즐겁고 행복한지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그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유연해지고 생활에 대한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한다. 스스로가 이러한 생각을 정립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고 서른이 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 한다. 그러나 이제 서른도 넘은 나이가 되어보니 S 본인은 더 이상 흔들림이 없이 확고해진 가치관이 버팀목이 되어 불안하거나 초조하지 않지만 그의 가치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다는 점이 불편하다고 한다.

“나는 아직 결혼이 하고 싶고 얼른 해야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이고 혼자가 아닌 앞으로 함께 해야 하는 구성원이 늘어나는 과정이라 여기도 인간관계학이 필요하고 따라서 책임이 뒤따른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그 책임을 다 할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아. 요즘 드는 생각이 부모님은 어떻게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책임감으로 견뎌냈는지 몰라. 지금에 비해 조금 더 보수적인 가치관이 수용되는 사회여서 당연시했기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불만을 토로할 겨를이 없이 그때마다 맞닥뜨린 상황에 부딪쳐야 했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인지…… 사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부모님도 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 텐데 내가 1순위여서 모든 시간과 열정을 오롯이 나에게 투자했던 것 같아. 엄마는 항상 실제로도 나한테 많이 얘기해줬어. 아무리 힘들어도 나만 보면 힘이 나고 피곤이 다 풀리고 늘 1순위는 나라고, 그래서 더욱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단 한 번도 부정하지 않고 늘 지지해줬던 것 같아. 엄마는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항상 후회 없이 하고 싶은걸 다 하라고 얘기해줬어. 그 영향 때문이었을까? 비록 지금의 내가 물질적으로 큰 부를 이루어낸 것도 아니지만 마음은 확실히 부자인 것 같아. 지금의 상황이 나쁘지 않고 빨리 무언가를 이루어내고 싶은 것보다 조급함이 없이 그저 편하고 즐기게 되는 것 같아. 외부의 기준에 맞는 속도가 아닌 나만의 리듬에 맞추다보니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진 것 같아.”

S는 엄마의 응원과 현명함 때문에 세상과 맞서 싸우는 법과 더 이상의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아플 때면 곁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잠시뿐이고 다시 혼자의 시간이 더욱 익숙하다는 S,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 한다.

S의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했던 엄마를 보면서 자라온 S는 이성(异性)은 자신의 아이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되어주는 일을 제외하고 함께 했을 때의 존재 가치를 잘 모르겠다고 한다. 

변덕스럽고 자유로운 영혼을 갖고 있는 자신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것인가도 문제지만 자신이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지금까지 혼자이고 결국 자기 스스로를 제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고 한다. 학창시절 한국 현대문학 수업을 가르치셨던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는 것은 그 상대방이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과 유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실은 본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던 말씀이 기억난다. 그러하니 자기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더욱 관건인 것 같다. 아들러가 “인간은 항상 수많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동일한 목적의 적용 방법을 이끌어 낸다. 인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했듯이 사랑하는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들러의 인간이해』, 을유문화사, 2016, p.23, 25) 결국 흔히 변하지 않는 인간은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여 변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세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S가 스스로를 정확히 인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어도 지금의 가치관의 형성이 어릴 적부터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한 본인의 판단을 믿어버린 “경험”이라는 경로로 표출된 것임은 짐작이 간다. 아울러 과거의 가부장적인 모습만을 보여준 부친이라는 참으로 이상적이지 못한 가족 구성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비판의 소리를 부질없는 일로 보는 사회현상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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