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함께 먹고 잠을 자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축소된 한 단면이다. 그렇게 많은 말을 하고 많은 행위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우리는 서로 교활하고 교묘하게 상대를 비켜가고 비방하고 배신한다. 안다는 것은 과연 어떤 관계일가? 가끔 매체를 통해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것같은 잔인한 일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면 사람들은 흔히 분노하며 “인간답지 않다. 짐승같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그를 얼마나 알고 있을가? 더 깊이 들여다보아서 그가 경유해온 시간들을 만난다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가? 우리는 주변환경들이 그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모른다. 그렇게 함부로 한 인간을 판단해도 되는 것일가? 한 가족으로 살면서 우리 역시 서로에게 낯선 모습일 수밖에 없다. 남편이 하나의 개체로 세상에 나섰을 때 이 세상이 그를 인식하는 결과는 나와 현저히 부동할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리해하지 못한다고 나무람할 수도 없다. 나 역시 상대의 마음을 모르고 있으니까. 타인이 나를 안다고 말할 때도 나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쉽게 사람을 친하지 못한다. 오래동안 만나왔으면서도 선뜻 그와 친하다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내가 친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누구이며 몇사람쯤 될가 생각해보기가 좀은 두렵다. 거의 오십년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살아왔지만 친한 사람이 별로 없다. 거리의 미학을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는 가슴으로 언제나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며 슬프지만 그 마음도 잘 알고 있다.
친하다는 관계에 대한 내 인식이 틀린 것일가? 어느 정도의 관계이면 우리는 친하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가? 만나면 스스럼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 아픈 날에 어떤 위로를 받고 싶어지는 사이? 가슴에 늘 그리움이나 기다림으로 품고 있는 사이? 서로의 근황과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이? 아무리 오래 만나지 못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사이?…
어느날은 나의 리해에 의구심이 들어 ‘친하다’는 단어를 검색까지 한적 있다. ‘가까이 사귀여 정이 두텁다’로 해석되여 있었다. 뜻풀이를 다시 한글자씩 새겨 읽으며 ‘뭐 나도 그렇게 리해하지’하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러나 또 가깝다는 것은 어느만한 사이를 말하지? 두텁다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지? 하며 갸우뚱하기도 했다. 나는 자주 사람들이 서로 친하다고 말하고 친하게 어울리는 모습들을 만날 때면 그들의 관계를 부러워한다. 비록 여태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의해 또 본인의 성격에 의해리해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마음은 쓸쓸하고 허전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쉽게 누구랑 친해지지 못했다. 수줍음이 많아서 늘 뒤자리나 구석에 있었고 그런 나를 아무도 먼저 손을 잡아 끌어내준 적은 없다. 자연히 사람들이 서먹했고 거리가 생겨났고 따라서 정이 생겨날리 없었다. 사람들을 알아가고 친하게 어울려가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에 친하다는 관계에 대한 리해가 부족했으며 그런 관계를 이루는데 장애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친한 사람 몇 없는데다가 나는 기억력조차 허술해서 저장된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본 책의 제목과 작가는 물론이고 글 속 인물의 이름이며 내용을 술술 말하거나 지어 글 속의 구절을 외울 때면,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그의 말과 행동, 표정의 미세한 변화와 그때의 시간이며 장소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을 때면 나는 놀란다. 그들의 기억력에 대해 감탄하고 자신의 한심한 기억력에 대해 경악스러워한다. 속으로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까마득하기만 했다. 분명히 그 책을 읽었고 분명히 그 장소에 있었고 분명히 그 사람을 만났으면서도 말이다.
기실 이 세상에 영화나 소설, 시구절에 등장하는 것같은 강렬하고 신비하고 위대한 이야기가 몇 되겠는가. 또 그중 얼마가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겠는가. 사람들 또한 그 숱한 개미떼들 속의 한마리의 개미나 그 많은 풀들속의 한이파리의 풀잎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가. 그것들이 보기에 우리 인간들의 삶이 자기네들의 생명만큼의 힘이나 영향조차 없다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짐짓 그 덧없음을 부정하고 자기만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자신이 경험하는 사건들에 이런저런 보탬을 하며 과장하고 미화시키고 의미나 가치를 부여한다. 자기만이 특별한듯한 고뇌를 하며 이 악물고 참고 견디고 간절히 원하고 기다리며 온 힘을 다해 울고 웃으며 희망하고 절망하며 살고 있다. 그렇다한들 티끌만큼의 차이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 살고난 로인들의 표정이 서로 닮아있는지 모른다. 아무리 독자적인 경험같아도 분별조차 안될 것 같이 비슷비슷하고 평범하니까. 모든 일은 스스로에게 더없이 큰 사건일뿐 타인에게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며 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 똑같은 미생물일 뿐이다.
나는 아무래도 주변의 사람이나 사건들에 대해 늘 무관심했던 것같다. 예전에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도 알은체하거나 인사도 하지 않고 다녀서 엄마에게 늘 욕을 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진에 이름을 적어 달라고 한적이 있다. 그만큼 나는 타인에 대해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온 마을이 떠들썩한 이야기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거부하거나 차단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관계 없으니까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반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타인인 나의 역할에 충실할만큼의 말과 행동으로 살아갔으며 그 관성은 내 감수성마저도 무디게 했다. 그래서 내가 안다는 것은 지극히 적은 일부분이였으며 그 기억의 흔적도 희미했다.
그런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놀란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거나 잘 알고 있는 세계에 대해 글로 쓰는 경우가 많을 것이니까. 이야기 없이도 살아지는 인생이지만 내게 바짝 다가오고 파고드는 경험이 없었다면 내 경우는 불가능했을 것같다. 나는 지금까지 다만 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그래서 남편과 딸애의 세계와 남편과 딸애와 관련있는 모든 세계가 내게로 왔다. 혼자였던 나에게로 밀물처럼 닥쳐왔다. 안해, 주부, 며느리, 엄마… 등등의 싱글의 녀자에게는 절대로 붙을 수 없는 숱한 새로운 이름들과 함께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의무도 책임도 부여받았다. 그것들이 늘 뒤쪽에 숨어살던 나를 세상 속으로 불러내주었고 이 세상의 흐름과 함께 섞이게 해주었다. 나는 내가 아닌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행동을 주의깊게 살폈고 표정하나도 놓치려 하지 않았으며 그것에 의해 가려진 심장의 떨림을 느끼려고 몰두했다. 내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던 타인들이 내 삶의 경계선 안쪽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차츰 바람도 들어오고 해살도 들어오고 눈꽃도 피였다 가고 강아지도 놀다 갔다. 모든 것은 뚜렷한 질감을 가지고 내 속으로 들어왔고 나는 더 똑똑히 보기 시작했고 내 몸은 반응하기 시작했다.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풍요로운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게 나의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에 의해 나의 세계는 사랑으로 깊어지고 넓어지며 의미심장해졌다.
그 세계 속에서 수시로 여러가지 일들에 습격당하며 그 충격으로 내 감수성은 예민해져갔고 감정도 풍부해졌다. 내 뇌세포는 부정적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긍정적영향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이미지들이 심연에 갖고 있는 그 빛과 온기와 냄새를 향해 감정은 촉수를 뻗어 활발하게 더듬어가고 강렬하게 흡수했다. 모든 것들이 더는 내 살갗 한번 건드리지 않고 무심히 스쳐가지 않았다. 내 피 속에, 살 속에, 뼈 속에 흘러들어 고스란히 간직되였다. 기실 하찮거나 무관한 것은 없었으며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것이 숨겨져 있었다. 내 피와 맥박과 호흡에 대해, 그것들이 지니는 색갈와 무게와 세기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듣고 느끼고 사색하며 우연히 어떤 의미같은 것을 선명하게 깨닫기도 했다. 느릿하게 기다리기도 했고 내가 먼저 다가가 껴안기도 했다.
그 시간에 대해 성실하게 적으며 정직하게 씌여지는 매 하나의 언어를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있는 자리에 내 글도 있었다. 가끔씩 끼여드는 허영이나 거짓 같은 것들을 물리치는 힘을 기르려고 노력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느낌이나 생각조차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글은 씌여지고 세상에 던져진다. 그 한편의 글이 때로 부끄러워지면 내 안의 방에 있는다.
나는 알고 있다. 내 안의 방이 나를 지키고 변화시키며 다시 나를 드러낸다. 그래서 나는 여기 있다고 웨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내 안의 방]에 관한 글들이 우리나무의 “시리즈”로 선정되었습니다. 상세정보는 메뉴에 있는 “시리즈”를 클릭하고 확인하길 바랍니다. 계속하여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두번째 구절은 여러번 반복적으로 읽었습니다..그러네요..
끝까지 읽어주고 공감해주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늘 좋은 날은 아니더라도 아름다움이 배여있는 날들이길 바랍니다.
1-3 단숨에 읽었습니다. “작지만 확대되며 평온하나 지향하고 충만하나 흘러가는” 방을 잘 보고 갑니다.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