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1
나와 안해는 개찰구를 넘자마자 부랴부랴 계단을 올라 전차의 홈으로 달렸다. 혹시나 이번 전차를 놓치면 10분정도 기다려야 다음 전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동계단에 올라서 두발짝 달리다가 약속이나 한듯이 달리기를 멈추고 그자리에 서서 천천히 자동계단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우리와 같이 자동계단에 조금정도 더 앞에 서 있는 열차운전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열차운선수가 없으면 열차가 달릴수 없는게 뻔하다. 열차운전수도 급해하지 않는데 우리가 급해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2층 홈에 올라, 열차 운전수는 열차가 도착하면 운전수와 교대하기 위해 느릿느릿 전차홈으로 걸어갔고, 우리도 덕분에 급해하지 않고 열차가 곧 들어온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여유롭게 홈으로 향했다.
안해와 서로 마주보며 소리없이 피식 웃었다. 인생이란게 이런거였다. 너무 급히 서두를 필요도 없고, 자포자기할 필요도 없고, 올 것은 때가 되면 오는거고,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필요한 곳에 서 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순간 2
오늘은 입원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날이었다.
아침에 소학교 2학년 다니는 애와 작별인사도 못한것이 맘에 걸렸다. 아빠가 입원하여 한주일은 못보게 되니깐 학습 잘 하고 엄마말 잘 들어라고 다시한번 귀뜸해주고 싶었지만…
아침에 늦잠자는 바람에 애는 일어나자마자 밥 먹느니 세수하느니 가방 메느니 지각하지 않으려고 급히 문 나서느니… 하면서 결국 조용히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한쪽으로 발버둥치며 우는 둘째를 안고 우유를 먹이다보니 결국 큰애가 집문을 나설 때도 그 모습을 볼 겨를이 없었다.
인생의 이별이란게 이런것인가 부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별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것이 아니었다. 다시 만날 때 이야기해야지… 하고 떠난 이별이 영원한 이별로 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은 영화와 세상살이 이야기속에서 보아왔다.
애와의 며칠간의 작별도 그러한 것이였으리라.
때로는 갑작스런 이별이 좋은 경우도 있다. 마주 앉아 정식으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하다보니 마음의 고통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언젠가 저쪽 세상으로 가게 된다면 이렇게 떠나고 싶다. 작별인사 없이 그냥 홀가분히 다시 돌아올 것 처럼 …
순간 3
이쁜 간호사가 달콤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설명해주었다.
“산소 마스크를 끼고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몇초사이에 그냥 몇번 호흡하는 과정중에 깊은 잠에 빠지게 될겁니다. 아무런 아픔도 없고, 아무런 느낌도 없을겁니다. 수술을 마치면 깨워드립니다. 그리고 관찰실에서 한시간 상태를 확인한후 다시 지금의 병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
말은 달콤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한편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아무런 아픔없이 감각없이 그냥 깊은 잠에 빠진채로 깨어나지 못한다면…
그냥 “죽음”의 상태가 되는 것일가.
나는 아무런 느낌도 기억도 없고, 내가 이 세상에서 체험했던 모든 기억들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이 세상의 존재조차도, 이 세상에서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기억마저도 그냥 사라지는 것일가?
의식이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조차도 없어지고, “나”로서 보고듣고느끼고체험해왔던 것들도 그냥 의미없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일가?
내 인생의 40대에, 나는 생명의 카운트다운(倒计时)를 체험해보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