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하류 지역에는 연변 훈춘시 경신진 이라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경신진은 동쪽으로 방천을 넘어 로씨야와 린접해있고 남쪽 방향으로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과 마주하고 있는 특수한 지리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14 행정촌에 1943호의 농가에 인구 4500명이 살고 있는 작은 진이다.

경신 분지는  면적이 327평방킬로메터 로서 1200여헥타르의 초지와 웅기종기 들어서 있는 호수들로 유명한 고장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늪이 150여개나 되며 기러기 떼와 청둥물오리  귀중한 조류들이 서식지이기도 하며 어미지향으로도 이름있는 천헤의 땅이다.

두만강 류역에 삶의 터전을 잡은 마을들중 우리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깊이 숨어있는 경신진이다.

경신진은 중국에서 해가 제일 빠르게 떠오르는 고장중의 하나이다.

가을해가 안개를 헤치며 모습을 내밀고 있다.

예전에는 교통상황이 말이 아니였다.

구비구비 산을 에돌아서 가는 경신으로 향하는 산 길은 위험한 코스였다.

70년대까지는 변경 통행증이 없이는 변경지역이라 출입이 불가능한 경신이다.

개혁개방이후 외계의 출입이 자유로워 졌고 방천은 3국을 관망하는 관광지로 떠올랐다.

지금은 훈춘으로 부터 경신까지 모두 포장 도로가 건설되여 반시간 정도 이면 충분히 경신에 도착할수 있는 거리 이다.

경신에는 늪과 초택지가 많다.

그중에서도 규모가  늪이 9개가 있어 첫째 늪 둘째  이렇게 아홉째 늪까지  늪에 속한다고 한다

사진은 경신진 마을 앞에 있는 얼두포 늪 (둘째 이다

아직까지 개발에 흔적이 적어서 인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경신진 거리의 모습작년 가을에 길도 새로 포장되고 가로등도 두줄로 설치하여 산뜻한 모습을 하고 있다

유감스러운 것은 가로등은 설치되였지만 저녁 8시전에 가로등이 꺼진다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아 전기세를 담당하기 어렵단다.

도시 가로등들이 이튿날 아침까지도 훤히 길을 밝히는 것과는 너무 나도 대조적이다.

 국경연휴일이라 방천으로 3 관광을 다녀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길거리에 음식점마다 승용차들이 빼곡히 서있다.

경신진의 골목 길 모습들

경신진 중학교 .

지금은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높직이 조망이 좋은 언덕에 지여진 소학교 

앞에는 기숙사도  지어져 있었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뒤 언덕에는 학교와 새집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경신진의 중심거리  길로 동쪽으로 가면 방천이 자리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2006년 당시 경신진에 인구당 수입은 평균3245원이 간다고 한다.

길가에 있는 경운기와 오토바이 부속을 파는 집 종합경영이다.

자기들만한 물통을 들고 어디론가 가는 조선족 어린이들 

국경연휴라 부모님들을 도와서 심부름을 하는 모양이다 .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따라 가는 귀여운 여자 애도 보인다.

경신진에는 집들이 듬성듬성하게 넓게 땅을 차지하고 지어져 있었다.

농촌에서 사는 여유와 조용함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멋지게 새로 지어진 집들도 많았다.

촌길은 콩크리트로 포장되였지만 아직도 소수레는 있다

가을 걷이를 가는 촌민들……

소형농기구들이 속속 농촌에 등장하고 있다

한족 촌민이 소형수확기를 몰고  밭으로 향한다.

경신진에는 수전 970헥타르한전 832헥타르가 있다고 한다.

경신진에는 자연호수가 많아 물고기 자원이 풍부하다.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들도 많다.

전통 조선족 집이지만 주인은 바뀌였다

경신에는 예로부터 조선족이 다수를 차지 했지만 점차 조선족 인구는 감소세를 보이고 한족은 늘어 가는 추세라고 한다.

우리들의 추억속에 있는 솜가공 공장의 모습도 남아 있었다.

어디로 가나 심심찮게 보이는 풍경

뚜포 )소리는 새벽에 정적을 깬다.

지금은 청일색으로 한족들이 부르는 ( 뚜포 두부 사시요 하는 소리이다.

개울가 에서 무언가 덩치 큰놈을 잡고 있다.

가까이에 가서 보니 소를 잡고 있다

래일 모레면 우리민족의 명절 추석이라 소를 잡아서 몇집이 나눈다고 한다.

경신진에는 천주교회당도 있었다.

아느적한 공간에 소박하면서도  성스러움이 감도는 분위기다.

천주교회당 정원에는 성모 마리아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회도 따로 있다고 한다.

경신진 서쪽 두만강 방향으로 가면 서가산 촌이 있다.

우리가 서가산을 찾았을 때는 해가 서산에 기우는 저녘이다.

서가산은 조선족 농가 20여호가 사는 작은 마을이다.

두만강을 따라 산길을 달리다 보면 서가산에 이르게 된다.

길옆에 ( 범이 출몰하는 지역이니 안전에 주의 하시요 하는 나무 패말이 세워져 있다.

마을에 있는 촌민에게 ( 여기에 범이 나타 나는가 ) 물었더니 얼마전에 두만강변 옥수수 밭에서 촌민 한분이 소를 끌고 오는데 소가 걷지 않아 돌아 보니 호랑이가 소잔등을 발톱으로 잡고 있어 어망결에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놀란 범은 소리치는 사람에게  덮쳐들어 생명을 잃을번 했단다.

다행히도 밭에서 돌아오던 사람들이 달려와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이 농민의  동쪽집  나그네가 호랑이 에게 봉변을 당했다고 한다.

아담하게 지어진 벽돌 기와집

이집 주인이 전설같이 범에게 물려서  훈춘시 병원에 입원중이 란다.

서가산 촌민들이 경운기로 옥수수를 실어나르고 있다

범이 경운기는 무서워서  해치겠지…..

경신진 서쪽 두만강을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백석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이라 하지만 몇호가 고작이다.

일부는 페가로 되여 버린지 오래다.

경신진 대두천 마을에서  재래식 담배 건조실

지금은 담배농사는 짓는 것 같지 않았다

담배건조실을 보면 어릴적 생각이 난다

두만강변의 농촌에서 자란 경력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추억이 담겨져 있는 담배 건조실이다.

진한 담배 냄새와 구수한 옥수수 굽는 냄새가 안겨오는 기분이다.

경신진 서쪽 두만강 건너는 조선 

산을 깍아 뙈기 밭을 만들고 농사를 짓 모양이다

경신진을 뒤로 하고 두만강변에 흙길을 따라 올라오다 보면 하류 지역이라 강폭이 넓고 흐름이 급하지 않았다.

따듯한 가을 햇빛을 만끽하면서 두만강에서 한가히 낚시질을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여유작작하게 동으로 흘러가는 두만강 

모든 것을 망각하 오늘만을 위하여 흐르는 두만강 같다.

두만강 건너편에 마치도 비둘기와도 같은 모래언덕이 눈에 안겨온다

그렇게도 평화스럽고 조용하며 말없을 수가 있을가 

그러나 오늘도 두만강은 울고 있을것이다.

               2006103-4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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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월이 빠르게도 흘렀습니다. 이 사진들을 찍은지 어제 같은데 1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으니 ….. 2006년 당시에도 농촌 마을에서는 조선족 어린애들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

  1. 방천에 갔다가 경신에 들러 점심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한 10가지 요리가 올랐는데 . 절인 오리알 빼고 몽땅 민물생선 요리였습니다. 육고기를 안 먹는 나에겐 천당이었죠. 다시 한번 가고 싶습니다.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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