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하게 3일을 보냈고 앞으로 나흘은 더 그럴 예정이다. 무슨 이상한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니고, 먹으면 재워주는 고마운 감기약 덕분이다. 피해가지 못한 여름감기를 약없이 버텨보다가 의학적인 간섭을 받기로 했다. 열과 기침이 골고루 진행중인 덕에 7일치 봉지약을 받고 주사실에서 링거를 맞도록 처방받았다. 아, 올 여름도 링거투혼을 하는건가.
고작 ‘링거’에 무슨 ‘투혼’씩이나. 우리에겐 고작인 이 링거를 한국에서는 맞는 일이 적은건지 종종 링거투혼이라는 단어를 연예뉴스의 제목으로 본 적이 있다. 시험 막바지 링거투혼, 링거투혼하며 촬영 강행 등등 당사자가 수액까지 맞아가며 무언가를 위해 몸을 불살랐다는 뉘앙스에 쓰이기는 하는데, 글쎄 그게 중국에서 자란 우리에겐 “고작 링거”이며 엄살 같다. 쉬운 말로 땐디 아닌가? 우리가 수없이 맞았던 그거.
얕게 건드려 보자면, 링거는 몸에 유익이 되는 이물질이며, 링거 즉 정맥주사를 맞는다는 일은 씹고 삼키고 소화시키는 일을 건너뛰어 내 몸에 유익이 되는 약물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물론 이 수월한 일을 위해서는 바늘로 혈관을 찌르는 고통을 견뎌야 하며, 운이 안좋아 혈관을 못찾으면 수차례 찔리기도 하다가,
어느 재주 좋은 간호사가 내 손등의 푸른 혈관을 제대로 찾아 아프지 않게 바늘을 찔러넣어 약간의 빨간 피가 바늘줄에 나타나는 것에 성공하면 어쨌거나 나도 주사바늘 따위 무서워하지 않는 어른인척 하는 일을 해낸 셈이며, 향후 약 한시간 동안 내 몸으로 흘러드는 그 액체를 큰 수고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다만 몸이 이로워지는 이 시간동안 나는 다른 일을 할 수는 없다. 그 시간에 생산활동을 할 수는 없다. 약물이 큰 흔들림 없이 내 몸에 들어오게 하려면, 그만큼의 시간을 내줘야 한다는 이 사소한 속성이 때론 어떤 이에게 휴식을 줄 것 같아 다행이다.
오늘은 내가 그 한시간짜리 휴식을 손등에 꽂은 채 높게 걸린 저 주사병을 쳐다보다나니, 흔한 투명약물과는 다른 저 노란 액체가 레트로하게 보이면서 순서없는 기억들이 왁자하게 밀려온다. 약물반응으로 인한 두통중에, 그런 기억들은 달콤하면서도 아릿한 것들이다. 기름에 뜨던 채색반짝이, 그리고 동생의 병실과 나의 수치심.
링거주사병에 연결되던 땐디줄, 식용유로 쓰이던 콩기름과 옛날 결혼식에 등장하던 채색반짝이 이 세가지 사물은 전혀 서로 상관이 없을 것 같으나 내가 아직 아이일적에 그것들은 한데 모여 팔찌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졌다.
이 창의적인 장난감 악세사리의 원조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그는 이 세가지 사물을 낯설게 보는데 성공하여 땐디줄에 채색반짝이를 잘게 썰어넣은 뒤 그 안에 조금의 기름을 넣고 땐디줄 양 끝을 이어붙여 팔찌를 완성하였다. 그 유행을 타고 우리 골목에도 1인 1 채색팔찌가 보급되어 아이들의 손목은 햇빛에 그리고 전등불빛에 아침저녁으로 반짝거렸다. 이것이 달콤한 기억이다.
아릿한 기억은 약간의 불편한 감정과 함께 하기에 자주 건드리지 않는 편이다. 그 불편한 감정이 죄책감인지 수치심인지 여러번 생각을 해보았으나 번마다 생각이 다르다.
말하려고 꺼낸 말이니 말하자면, 동생이 네살 내가 일곱살 가량 됐을 때 우리는 둘다 감기로 나란히 병원에서 땐디를 맞았는데 의사의 실수로 동생이 맞은 주사량이 기준을 넘어선건지 동생은 응급치료를 거쳐 입원병동으로 옮겨졌던 일이 있다. 며칠 뒤 아프지 않은 나는 엄마따라 입원실에 아픈 동생을 보러 가게 되었고 그때 병원침대 옆 협탁에 놓인 바나나를 보고 내가 먹겠다고 했나보다.
아무렴 내가 동생을 쳐다보지도 않고 바나나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그말을 했을리는 없겠지만, 엄마는 단박에 너는 동생이 아픈데 바나나 먹겠다는 소리가 나오냐고 면박을 주었으며 나는 그 말을 삼십년 넘게 잊지 못하고 있다. 부끄러웠으니까. 그래서 그것은 수치심이다. 그런데 내가 실로 잘못했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때의 마음은 죄책감이다.
그 감정은 오래동안 나를 괴롭혔고, 날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인간의 죄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기 전까지 그랬다. 크든 작든, 죄성은 죄로 이어지고 죄는 죄책감을 낳은 것이다. 이 결론은 오히려 내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러나 수치심이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의 나는 커다란 아상을 갖고, 부끄럽기를 외면하는 피조물이다. 이렇게 늘 두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한시간도 넘게 시간이 흘렀고, 노란 액체는 주사병 아구리까지 내려와 있다. 오늘의 정처없는 생각은 다른 느닷없는 연상을 낳아, 옆구리가 구겨진 주사병은 언뜻 머리를 거꾸로 드리우고 피를 흘리는 귀한 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이 무거워져 이내 다시 노란 약물을 보지만, 그 약물도 이미 내 몸에 한줄기 흐름이 되어주었다.
2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