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뭐 사올거야?"

딸아이가 요즘 말이 부쩍 늘었다. 2년 1개월이다. 내가 집문을 나설 때마다 물어오는 질문이다. 그러면 나는 "집에서 잘 놀고있어. 아빠가 좋은거 사올게" 하면서 나온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전세계가 소동이다. 내가 살고있지 않은 나라에서부터 내가 사는 나라로, 내가 사는 도시로, 내가 사는 동네로에까지 옥죄어오고 있다는게 뉴스가 말해주는 거다. 되도록이면 외출을 삼간다. 

나는 남의 나라에 유학온 대학원생 아빠다. 어쩔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혼자 조절할 수 있는 일정이 많은 셈이다. 그래도 피치 못할 경우는 있다. 꼭 읽어야 하는 논문이나, 꼭 사용해야 하는 데이터베이스나, 꼭 나가야 하는 연구실 일이거나. 그리고 한주일에 하루 반 정도 나가야 하는 알바도. 

나는 대학 졸업후 꽤 오랬동안 회사 다니다가 캠퍼스에 돌아온 늦깍이다. 그러다보니 나이는 들어찼지만, 주머니가 홀쭉하여 부모에게 손 내밀어 유학공부를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내도 같이 와서 내조해 준다.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넉넉하다고는 못해도 쪼들리는 이국생활까지는 아니다. 일본유학 경험담을 들어보면 보통은 하루 4시간 이상을 자는 케이스가 많지 않다. 돈벌랴 공부하랴 빡세다. 거기에 비해 나는 여직껏 알바는 거의 안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은 '치열'이라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장렬'했다. 바다를 건너온 건 이삿짐 뿐이 아니었다. 뱃속의 아이도 함께 왔다. 어려운 공부와 바쁜 육아 사이를 맴돌았다. 공부가 생각보다 길어지다 보니 슬슬 불안이 머리를 쳐들기 시작했다. 당장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공부만 한답시고 가장이 살림에 손놓고 있을수만은 없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시작한게 알바다. 

다행히 내가 하는 일은 손님을 접하는 프론트엔드가 아니다. 인원유동이 많은 데도 아니다. 출판을 겸하고 있는 작은 독립서점이라 직원도 많지 않다. 대부분 책상자나 서류와 씨름하는 일이다. 편의점이나 음식점 같은 알바였다면 애 때문에라도 그만둬야 했을 판인데, 그나마 고마운 일자리다. 

출판사 서점이라 원고교정이나 영업 같은 일도 많지만, 한낱 알바생인 나로서는 재주가 있어도 그림 속의 떡일 뿐이고 실제 내가 하는 일은 육체노동에 가깝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새로운 책들이 입고되는데 많을 때면 40 박스 이상 트럭에 가득 실려온다. 박스를 옮기고 분류하고 해체하고 포장 뜯고 서류와 대조하여 납품서를 일일이 끼워놓고 다시 분류하고 현장 청소까지 꼬박 하루내내 걸릴 때도 있다. 회사나 연구실에 앉아있는 세월이 있는지라 알바 다음날이면 몸이 바로 반응하여 이리저리 쑤시기도 했지만, 하루종일 마스크를 끼고 있다보니 목이 세차게 간질거리기도 하지만, 이젠 나름 손에 익었다. 그리고 힘을 쓰긴 해도 책을 만지는 일이라 어깨너머 배우는 것도 있어서 나는 이 일이 좋다. 

특히나 한달에 한번인 월급일은 좀 더 기분이 난다. 월급이라 해봤자 옛날 회사 다닐 때나 지금의 매달 지출에 비하면 별로 많은 돈도 아니다. 그래도 봉투에 현찰을 받다보니 숫자 하나 달랑 변하는 은행계좌보다는 실감이 난다. 무게도 손에 잡힌다. 잔돈 동전때문이긴 하지만. 

딸애가 좋아하는 케익

그리고 그런 날은 퇴근길에 저도 모르게 딴데 들리게 된다. 딸애가 좋아할만한 간식을 사들고 수제맥주 롱캔 하나를 거기에 곁들일 때도 있다. 딸깍 하는 자물쇠 열리는 소리에 아빠- 하며 뛰어오는 딸애를 스톱시키고 손을 씻고 옷에 소독액 스프레이를 뿌린다. 그리고 사온 간식을 열어 딸애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월급봉투를 건넨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와 맥주를 나눠 마신다. 잔잔하지만 행복하다. 

첫 알바비를 받던 날 나는 아내에게 봉투를 건넸다. 아내는 받으면서 결혼해서 처음 월급봉투 받아 본다며 농담을 되건넸고, 우리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힘들 때도 있지만 계속 회사 다녔으면 우리 사이에 아마 이런 대화는 없었을 테지. 소소하지만 고맙다. 

두돌 때 처음으로 생일이 뭔지를 이해하고 생일축하송을 배운 딸애는 요즘 딸기케익 맛을 알아 버렸다. 그래서 내가 알바를 나가든 연구실을 나가든 산책을 나가든 항상 문앞까지 달려와서 묻는다. 

"아빠 뭐 사러 가? 케익 사러 가는거야?" 

옛날 어릴 적에는 아버지가 술 먹고 들어오는게 싫었다. 시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술자리가 잦았고 술주정이 많았다. 그래서 가끔 먼가를 손에 들고 오셔도 그게 전혀 반갑지가 않았다. 그냥 술이나 좀 먹지 말지, 그런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좀 커서 드라마에서나 자주 나오는 아빠의 퇴근 장면은 따뜻한 인간애로 그려졌다. 퇴근길에 동네시장에서 싸오는 치킨이나 출장갔다 들고오는 선물이나, 지어는 일터에서 실컷 터지고 포차에서 소주 한잔 하고 들어오는 맥빠진 어깨까지도, 그때는 '남의 일'로서 다가오는 감동에 그쳤었다. 

맛집의 딸기케익 한 조각이면 지금 내 시급이랑 비슷하다. 어찌보면 한 시간 땀흘려서 손바닥에 반도 안 차는 케익 하나 달랑 맞바꾸는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시간만 일하면 내 새끼가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오물거리며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어찌보면 더없이 사치한 일이기도 했다. 

몸이 노곤해도 힘들지 않다는 말,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 그런 말이 페부로 와닿는 요즘에야, 비로소 술 마시고 밤늦게 들어오던 아버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마음의 풀림이 생긴 것 같다. 이야기는 다 다르겠지만 가정을 지켜가는 가장의 귀갓길, 그 마음과 그 어깨는 아마도 어느 집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딸기케익을 손에 들고 현관문을 여는 나의 손놀림이 날렵하다. 안방에서 놀고있던 딸애는 역시나 통통거리며 뛰어와서는 와- 와- 하면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아빠 대박~ 아빠 케익 사왔다~!"

손이 가벼우면 발걸음이 무겁다.
몸이 무거워도 맘은 가벼울 수 있다. 

그 말을 이제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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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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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육아를 기록하면서 성장하는 엄마아빠와 모습은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위대해 보이네요~ 타국에서 부모도움없이 둘이 알뜰하게 애기 키우고 공부도 하고 쉽지않을텐데 재밋는 이야기 많이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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