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다. 제일 큰 명절이다. 특히 여기 섬나라에서는. 음력이 오래전 폐지된 여기는 이제 서방과 똑같이 그레고리력 1월 1일에 '해피뉴옐'이 , 일본말로는 '아케오메'가 통용되는 사회다. 정작 6년차 유학생은 아직도 명절 분위기에 덤덤한데 말이다. 

그러나 명절이란 결국 이벤트인 것을. 가족과 함께 즐거우면 그것 또한 명절인 것을. 특히 아이가 있으니 명절을 구실 삼아 뭔가를 해주고 싶은 것. 

일본에서 하는 설날 장식에 보통 두 가지가 있는데 모두 문 앞에 꾸민다. 자그마한 거랑 좀 큰 거. 어떤 것이든 간에 천지만물 산천초목 들날짐승에 모두 영이 있다고 믿는 다원주의 토착신앙 때문에, 새해를 주관하는 신(年神)이 우리 집에도 내려오라는 소원에서 설치하는, 신내림을 위한 받침대 앉음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복 받기 위한 민간행위다. 

먼저 큰걸 얘기하자면 '문앞솔'(門松), '선솔'(立て松), '솔꾸밈'(松飾)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내려 앉을 자리를 위한 가지이다. 12세기의 일본 문헌이 이미 그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 주역은 소나무 가지.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을 안 들인다는데, 일본의 설날 신은 소나무를 좋아하나 보다. 하긴 한 겨울 푸르싱싱한 가지를 찾자면 크리스크마스 트리처럼 상록수를 찾는게 자연스럽긴 하겠지. 거기에 다른 푸르른 이파리들이 더해지고 빨간 열매들로 좀 더 꾸며주면 완성이다. 크고 작은 것은 꽤 차이가 나는데, 전체적으로는 사이즈가 있는 편이어서 백화점이나 마트 같은 시설의 입구에도 적잖게 마주칠 수 있다. 대체로 현관 앞 한켠 바닥 위에 세우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문설주에 참대통을 세우고 걸어두는 경우도 있다. 

상가 앞

민가 앞

다음에 좀 작은 장식품은 '매듭꾸밈'(注連飾り)인데 이것도 같은 맥락의 물건이다. 다만 이 꾸미개는 외관상 일본 진쟈(神社)와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어느 진쟈에 가든지 모두 외부영역과의 구별을 표시하는 '맺바줄'(しめ縄)이 있는데, 매듭꾸밈의 거의 모든 요소는 이 맺바줄과 겹친다. 그 원형은 8세기 초의 문헌인 <고사기>(古事記)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설도 있다. 이 장식은 문상인방 한가운데 걸거나 문설주에 다는 경우가 많다. 

전형적인 매듭꾸밈

・벼짚 매듭(풍작을 기원)
・드리움 장식(紙垂[시데], 흰 종이로 만듬, 번개 상징으로 '수호'의 의미)
・풀고사리(裏白[우라지로], 장수와 정결)
・이파리가 달린 귤 하나(橙[다이다이], 소리와 뜻이 '대대로' 번성함을 의미)
・기타

간소화, 변형화된 버전

문 앞을 꾸미는 행위는 중국에서도 붉은 바탕에 춘련을 쓰거나 福자를 거꾸로 붙이고, 유대인도 출애굽 전에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둘러 묻히는 등 비슷한 것들이 있다. 늘 푸른 상록수의 녹색과, 피의 빛깔 즉 진붉은색이 주는 시각적, 심리적 효과 즉 액을 물리치는 의미는 고금동서에 통하나 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서 살면서 발견한건데, 크리스마스에서 새해까지 이르는 여러 테마랑 잘 어울리는 식물이 있다. 한겨울 푸른 잎과 빨갛게 귀여운 열매가 무성한 남천촉(南天燭)이라는 꽃나무. 집 앞에 심는 경우가 많은데 겨울이 깊어질수록 더 자태를 뽐낸다. 

남천축

각설하고, 일본에 살긴 하지만 그렇다고 잡다하게 따라하고 싶지는 않고, 마침 성탄절 분위기도 가시지 않았겠다, 아이랑 같이 성탄 화환 즉 크리스마스 리스로 분위기를 한 번 만들어 볼까 하고 겁도 없이 달려들게 되었다. 

일단 재료는 머리속에 밑그림을 그리면서 아침에 조깅 삼아 집 근처의 공원이나 강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준비했다. 버드나무 가지, 삼나무 잎가지, 솔방울, 남천촉 열매와 기타 이름모를 흰색과 붉은색 이파리들. 집에 와서 아이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방바닥에 늘어놓은 화환 재료들을 보여주니 흥미를 보인다. 한참 만지작거리더니 어렵다고 포기하고 나한테 던져줌 -.,-;;;; 

그래도 초미니 버전의 화환은 하나 만들었으니 다행. 자기 인형집에 가서 이제는 모노드라마 역할놀이 삼매경.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런가. 

초미니 화환, 나비매듭 센스는 있네 훗.

이제부터 얘네들은 다 내가 접수한다. 버드나무 가지로 일단 얽음새를 만들고, 색상과 모양과 위치의 조화들을 신속하게 뇌에서 처리하면서 작품을 탄생시켜야만 한다. 그래봤자 이리 대보고 저리 대보고 하는 작업들을 되풀이할 뿐이다. 실제로 하나씩 붙여 실로 엮으려니 잘 고정이 되지 않는다. 어떡한다. 그래, 양면 테이프지! 덕지덕지 이제 붙일 수밖에 없구만. 에라잇!! 자꾸 떨어진다. 

괜한 일을 벌린거 같다…

이같은 치열한 몸싸움 사상싸움을 거듭하면서도 조금씩 퍼즐 맞추듯 고독한 원예가의 수련은 계속되었다. 창밖의 따스한 겨울햇살이 흰 종이위에 만든 빛의 그림자들에 그래도 기분이 가벼워진다. 눈도 아파오고 어깨가 쑤셔도 집중력을 가다듬으니 정신은 맑아지는 듯.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가…

어찌어찌하여 한 시간 남짓이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얼추 모양새를 갖춰서 나옴. 그 사이 아이는 밖에 나가 놀고. 집에 들어 온 다음에 보여주니 리액션이 괜찮다. 이 정도 성취감이면 충분하다. 갖고 가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걸 겨우 얼렸다. 

완성품

조금 남은 재료들은 자그만하게 만들어 문 밖에 붙였다. 허브라서 향도 나고 벌레나 쫓을까. 물론 겨울에 쫓을 벌레도 없을 같다만. 기분이지뭐. 

초짜의 완성품이라 상세하게 드릴 말씀은 없는 것 같다. 뒤면은 차마 못 보여주겠다. 실로 맨 흔적과 양면테이프 자욱들로 덕지덕지할 것이 틀림없으니. 아래 타지마할(泰姬陵)의 민낯을 보고 대충 감을 잡으시길. 

오염 속에 우뚝 선 타지마할

마무리는 역시 먹을거로. 새해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나무에서만 말고 오프라인에서도 만남이 있기를 바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교찾로' 시리즈
<교토에서 찾아가는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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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북에서 남으로, 서에서 동으로 돌다가 고전과 씨름하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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