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축제가 많다. 전통문화의 중심지인 교토는 더욱 그러하다. 그중 교토의 여름철 풍물시로 불리우는 축제가 매년 8월초에 진행되는 도자기축제(陶器祭り, 도우키 마츠리)이다. 올해의 축제정보는,
시간: 8월 7-10일 오전 9시-밤 10시
장소: 고죠자카(기요미즈고죠 역부터 고죠자카에 이르는 큰길 양켠)
출점: 400 점포 이상
교토의 명함중 하나가 도자기 브랜드인 기요미즈야키(清水焼)이다. 그 도자기의 발상지인 고죠자카(五条坂)를 중심으로 옹근 거리 양켠에 수백개의 점포들이 출점하는데, 평소의 절반 가격으로 다양한 도자기들을 구입할 수 있다. 특히나 찜통같은 교토의 무더위가 물러가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부터 가서 구경하면 강바람도 시원하게 넘어오고 피로도 식힐 수 있는 좋은 체험이 된다.
밤에 도는 도자기시장
일본의 도자기는 보통 문외한이라도 그 다채롭고 풍부한 형태와 공예에 쉽게 끌린다. 장인정신 하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가 바로 질흙과 싸움하고 뜨거운 불앞에서 가마를 지켜보는 도자기장인일 것이다. 기요미즈야키도 그러하다. 어느 한 도자기가마나 한가지 기술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교토라는 지역이 키워낸 다양한 도자기 종류들의 총칭이다.
일상품에 접목한 도자기 제품
솔로 그린 돌립기법으로 접시면에 무늬를 낸 제품
짠지(漬物)나 야채를 담게 만든 그릇
오늘날까지도 일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자기 생산국이다. 이는 근세로부터 지속된 현상으로서 그때부터 이른바 "외화벌이"에서 한몫 톡톡히 담당하고 있었다. 네델란드의 거장 반 고흐(梵高)가 유럽에 수입된 일본 도자기를 싼 포장종이 즉 당시의 민속화인 우키요에(浮世絵)를 보고 그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일화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비젠야키(備前焼) 풍의 현대적 디자인
하지만 역사적으로 일본은 처음부터 도자기 선진국이 아니었다. 일본의 도자기 제조기술이 일거에 도약한 제일 중요한 전환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임진왜란이다.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의 다이묘(大名)들을 거느리고 조선에 침입한 이 전쟁에서, 그들의 주요목적 중의 하나가 여러 분야의 기술자들을 붙잡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단연 중요한 것이 도공(陶工)들이었다.
일본의 역사는 천황을 위수로 한 귀족정치에서 권력이 무신들의 수중에로 넘어갈 무렵부터 "중세"로 들어선다. 권력의 중심에 선 무관들은 정치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주도권을 쥐고자 귀족문화를 본받는 단계를 거쳐 자기들만의 문예와 심미관을 형성해 나간다. 이 과정이 문학(렌가[連歌], 하이카이[俳諧]), 사상(선종 및 주자학), 회화(우키요에), 의식(다도[茶の湯])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며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일본 미의식의 근본을 형성한다.
그중에서도 다도(茶道)는 불교의 선종 사상과 결합되어 체계를 이룬 시스템, 심플하면서도 함축성있는 새로운 문예로서 무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식인 승려와 무신들 사이의 정치적 뉴대로도 작용하면서, 차재배와 다기제조와 차에 곁들이는 다과(와가시[和菓子])제조 등 여러 산업들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봉건"이란 말 그대로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는 각 다이묘들이 영주로 되어 직접 각자의 지역을 다스리던 중세의 세계에서, 다도에 사용되는 다기 즉 도자기의 제조 역시 지역적 색채가 짙었다. 경제적으로 이윤이 높고 정치적으로도 중앙정계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도자기는 지방영주들이라면 누구나 세워두고 싶은 그 시대의 "핵심산업"이었다.
그러다보니 임진왜란 중에도 조선의 도공들은 각 다이묘들이 앞다투어 빼앗으려 하는 기술인재들이었다. 때문에 임진왜란은 일명 도자기전쟁(焼物の戦争)으로도 불린다. 제일 유명한 것이 바로 일본의 최고기술을 자랑하던 아리타야키(有田焼)와 조선도공 이삼평(李参平)의 이야기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일본 히젠국(肥前国)의 영주가 잡아온 조선의 이삼평은 영주의 전폭적인 지지하에 도자기를 만들 고령토를 찾아내고 조선인들과 함께 도자기촌을 형성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그리고 조선과 중국의 기술을 앞서기도 했던 아름다운 그릇들을 구워낸다. 그 전통과 기술은 오늘에도 규슈 사가현(佐賀県) 아리타쵸(有田町)를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아리타야키
임진왜란이 지나고 에도의 도쿠가와(徳川) 정권과 조선이 다시 관계를 회복하면서, 붙잡혀간 기술자들의 이른바 "포로귀환"도 협상에 올랐으나 실제 돌아온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의 장군과 지방영주들이 "산업인재"들을 놓아주지 않으려 한 측면도 있지만, 실제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에 조선에 돌아가려 하지 않은 조선도공들의 반응에 의아해 한 기록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조선에서는 왕실가마를 포함하여 도공들의 지위가 낮았지만, 일본에서는 기술자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측면도 컸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요즘의 한일 반도체 핵심소재 규제 이슈와 중일한 반도체산업 각축을 생각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항간에 일본의 장인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물론 그런 정신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그 뒤에는 먼저 기술자에 대한 인정과 대우가 있었다. 더 크게는 장인정신을 인정하고 지탱할만한 관련 산업들의 존재가 있었다. 일본의 도자기는 예술품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도라는 문예가 오늘까지도 각 유파로 나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다. 일본요리라는 체계도 수많은 전통도자기들을 그 매체로 소비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의 도자기기술은 고상한 예술이기에 앞서 서민과 함께 살아 숨쉬는 삶이다. 그리고 그 점이 도자기의 장인정신의 맥을 이어주는 저력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식의 구호를 웨친지가 몇십년이다. 한국도 그렇고 조선족들도 그랬다. 하지만 현실적인 토양을 잃은 "민족적인 것"은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운 듯 보인다. 막걸리와 가양주를 자주 마시지 않는데 술빚는 옹기와 술마시는 막사발과 놋그릇이 왜 필요할까. 농사 짓지 않는 세대들에게 농악이 제대로 된 흥으로 느껴질까. 현대인의 생활과 거주환경에 맞게 변하지 않는 한옥과 한복이 얼마나 필요할까. 한문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체제에서 고전연구의 필요성이 과연 호소력이 있을까. 근대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추세라고 할지라도, 모든 면에서 "근대"를 따라잡기 위해 달린 사람들이 너무 "근대인"으로 똑같아져 버린게 요즘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선족 지역에서 내거는 "민족색채", "특색관광"과 같은 표어들, 과연 이러한 것들은 "홍보"만 해서 될 일인지 이쯤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는 않을까. 진정 "우수하다"고 생각되는 "우리의 것"들이 현시대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어떤 면에서 필요한지, 왜서 좋고 왜서 쓸만하지를 파고 느끼게 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구호도 빈말이 될 것이다. 반대로 낡아빠져 보이던 "전통"이 일상에 들어오고 우리 삶의 일부가 되면 그냥 그것으로도 살아있는 문화이고 전통이 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이러한 일을 하는 개인도 적고, 공적인 지원이나 기획도 없으니 우뢰만 크고 빗방울은 뜸한게 자연스러운 결과지 싶다.
내가 살고있는 시대와 사회환경은 획일적인 근대인이 되기를 원하는 흐름에 있을뿐더러 개인들이 가고자 한는 길도 몇 가지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 흐름에서 나라는 개인도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다양하게 살아가는, 좀 더 다르게 살기를 원하는 욕구가 적어도 우리 세대부터는 인식되고 있다고 느낀다. 이런저런 흐름에 역으로 움직이는 미세한 몸짓들은 작게는 새로운 것에 대한 일상적인 호기심과 시도, 좀 더 크게는 창업과 귀향의 조각에서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진정으로 "특색"을 내세울려면, 구체적으로 다양한 삶을 일구어가는 많은 개인들과 공적인 정책지원이 없이는 이를 말하기가 어렵지 싶다. 공적지원은 공무원들의 해당 사항의 필요성에 대한 인지가 없이는 불가능하고, 사회적인 분위기에 따라서는 사회단체의 다리 역할도 기대해야 할 부분이다.
'꽃의 결정'(花結晶) 도자기
가마안의 고온에서 오직 유약(釉薬)에만 의하여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결정의 무늬가 특점
얘기가 곁길로 많이 샜다. 그날 도자기축제에서 나와 아내는 일본식 찻잔과 동부리(덮밥사발, 丼ぶり)를 샀다. "꽃의 결정"이라 불리는 종류의 찻잔은 유약에 아연(锌) 성분이 들어있어 여자들의 몸에 유익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일본찻잔으로 말차도 마시고 물도 마시고 숭늉도 마신다.
이번에 산 '꽃의 결정' 찻잔의 안팎 모습
덮밥사발에는 오뚜기 카레에 연변에서 부쳐온 송이를 넣은 따끈한 밥이 담겼다. 이 작은 한끼와 자그마한 밥상 위에서도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의 작은 조각이 담겨있지 않나 싶다.
카레덮밥으로 빛을 발함
아아… 조선족에 대한 생각을 결합하기전까지의 글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감다. 도자기나 일본의 장인에 관한 력사에 대해서. 이런 글을 쓰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독서와 자료들을 수집해야 하는지… 대단함다.
결합이 잘 되지 못했슴다 ㅎㅎ 쥐꼬리만한 지식임다
하하, 그 말이 아니고… 결합에도 문제 없슴다. 개인적으로 윗 부분에서 진짜 많은 정보를 배웠다는걸 강조하려고 한검다. 🙂
제가 좋아하는 Blue Bottle Coffe (블루보틀 커피)에서 사용되는 머그나 다른 찻잔들도 모두 일본에서 디자인되고 만든것이라고 하덴데. 만질때마다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던데. 나중에 만약 커피점 하면 모든걸 일본에서 들여와야겟슴다.
교토에도 점포를 냈슴다. 관광객이 몰려서 좀 불편해 그렇지.
가서 한잔 하쇼. 메뉴에 있겠는지 모르겠지만, New Orleans를 추천함다. ㅋㅋ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좋은 글 “교토에서 찾아가는 로망스”가 시리즈 형식으로 묶여져서 소개 될 예정입니다.
표지 및 목차 디자인은 우리나무 팀에서 책임지고 해드립니다.
글이 “시리즈” 형식으로 묶이는걸 원치 않으시면 연락주세요.
시리즈 글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s://wulinamu.com/se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