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작 내가 그토록 아픈 영혼인 줄 몰랐다.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내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인생길이 묘한게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영영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매듭이 풀리기 시작한다.
과거가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그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다른 시점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것은 케케묵은 기억이 갱신되는 과정이다.
지금의 내가 바라보는 과거의 나와 나의 기억들…
그리고 그 기억을 여태까지 고집해온 나.
왜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 나의 영혼이 아팠던 것이 맞았다.
민감한 사람은 타인의 영혼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아픔에 대해서는 지극히 냉정하다.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진단할 필요를)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을 때
대체로 두가지 반응을 보인다.
매우 거슬리거나(이것은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상대방 한테서 보았을 때)
혹은 유난히 마음이가거나 (이것은 타인으로부터 이해를 바라왔던 자신이 보였을 때)
따라서 타인은 자신을 여러 방향에서 반조해주는 거울이 되곤 한다.
그 타인의 위치에 내가 서 있을 때, 나 또한 나의 타인으로 비추어 지는 것이다.
왜 그랬었지?
이런 의문들이 과거의 자신한테 던져지면서
'용서'가 인간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이 구절은 오은영 박사님이 어느 방송에서 했던 말이다.)
왜냐하면 내가 고집했던 나만의 기억을 넘어서서 바라보니
모든 것이 이해 가능한 것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태까지 아파온 자신의 영혼을 드디어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랬었구나.
그랬었던 것이구나.
커버 이미지: 쭈앙의 <조요경照妖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