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처음 한국으로 교환하게 되면서, 나는 '중국 조선족'이라는 테마와 단절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머리가 비워졌고 새로운 환경에서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아까운 시간을 버릴 수가 없었다.  

만약에 특정한 주제(민족, 국가, 여성…)이 없다면 나는 또 무엇을 그려 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첫 개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다.  이름은 Zhen' Project 1&1 이다. 

작업 과정은 대개 아래와 같다 : 

  1.  하루 그림  1장을 완성하여 이를 30일간 진행한다. 
  2. 매일 그린 그림을 위챗 모멘트에 올리고 친구(관객)과 소통한다. 전시를 위챗에서 하는 셈이다. (나는 관객이 예술에 거리감을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해 논의하고 참여하는 것을 원했다. 그 당시 위챗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매체였다.)
  3. 그림의 상업성에 대해 항상 회의와 의문을 가졌던 나는 그림을 상업적인 운영(거품) 없이 직접 대중들에게 팔고자 나선다. 그것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싶었다. 
  4. 나는 나의 회화를 노동으로 취급하고 북경의 최저 시급과 그림 1장을 완성하는데 소요한 시간을 곱하여 판매하고자 했다. 추가로 나의 정성도를 숫자로 가늠하여 가격에 덧붙였다. 
  5.  나는 누군가가 요청하는 그림을 팔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린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팔려고 했다. 

이렇게 나의 의도와 목적은  뚜렸했다. 그리고 먼저 판매 결과에 대해 말하자면 마지막 날까지 단 1장도 팔리지 않았고 프로젝트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왔다. 나도 이 프로젝트의 실행 불가능성(不可行性)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소비자의 소비욕을 충족해야 상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것인데, 나는 소비자의 '수요'를 도외시 했다. 

‘그림’이란 오랫동안 대중들의 인식에서 천가天价의 사치품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실제로는 배고픈 화가들이 너무 많다. 잘 팔리는 화가는 극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 이 천가(天价)는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누구 손에 들어가는 것일까?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 또한 다른 업종 못지 않게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대부분 화가들은 어디에 소속되지 않은 이상 보통은 자신의 노동에 잇따른 최저 시급마저 (팔아서)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모순과 연관된다. 즉 소비자의 구매를 윈한다면 그들의 구매 '수요'를 충족해야 하지만, 실제로 화가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자유'다. 대부분 화가들의 그림은 대중의 보편적인 '수요'와 상관 없기 때문에 그림은 항상 '쓸모 없는 것'으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런 갈등에서 나는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가 바로 '그림 그리기'를 일반 노동으로 간주하고 최저 시급으로 일당을 계산한 다음 내가 정성드린 창의성 만큼 값을 추가하여 책정하는 것이다. (지금 보면 이러한 책정 방식도 너무 일방적이고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대중들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라 내가 그리고 싶은(작가의 자유를 최대화 하고, 타인의 '수요'에 타협하지 않는)그림을 수요하는 사람(대중)이 과연 있을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비록 매출에는 실패 하였지만 대중과 예술작품 사의의 간극을 줄이고자 했던 시도는(아주 작지만) 어느 만큼은 실현된 것 도 같았다. 

위챗 현장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캡처 사진을 몇 장을 올려 놓도록 하겠다.

3월18일

3월 19일

3월20일

3월21일

3월22일

3월23일

3월28일

4월7일

4월9일

4월13일

4월15일

4월18일

캡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림을 매일 올리는 과정에서 '판매'는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더욱 중요했던 것은 관객들과의 소통인 것 같았다. 그리고 동생이 마지막에 뼈때리는 말로 나의 이 프로젝트의 아이러니를 짚어 주었다. "언니는 왜 매일 매일 그렇게 그려? 오히려 언니의 자유가 없어졌어." 

사람들은 내가 그려논 대상이 공포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타인을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타인의 얼굴에서 피투성인 나 자신을 그려냈던 것이다.  

첫 프로젝트를 마치고 네팔(Nepal)에서 지진(2015년)이 일어났는데, 때 마침 학교에서 열흘 뒤 네팔에 기부할 수 있는 벼륙시장이 열린다고 공지했다. 학생들은 자신의 물품을 팔 수 있고 판매 액 전부는 네팔에 기부된다. 

그래서 나는 바로 캔버스를 사서 벼룩시장이 열리기 전 까지 네팔을 위한 그림을 10폭 그렸다. 판매 당일 그림을 시장에 내놓고  1장의 그림당 한화 10000원(60원 인민폐)에 팔았다. 총 5장이 팔렸다. 나한테 떨어진 것은 없어도 쬐끔이라도 많이 기부 할 수 있게 되어서 뿌듯했다. 

"Zhen's Nepa Project" (일부)

교환학기가 끝나고 나는 친구와 같이 티벳(Tibet)으로 여행갔다. 

그리고 위에서 소개한 두 프로젝트를 친구와 함께 티벳에서 전시했다.

전시명은 The Ouside 이고 아래는 전시 포스터다.

(좀…시공간적 비약이 심하긴 하다.)

전시는 친구의 인맥으로 지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행되었다.

친구의 작업들

친구의 작업

나의 작업


나의 작업

어떤 특정한 주제가 없어도 그림은 완성 될 수가 있었다.

휴~ 드디어 다음부터 본격적인 유학생활에 대해 말할 수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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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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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림 잘봤습니다. 그동안 계속 작품을 그렸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牙疼에 댓글 중에 아버지께서 돈걱정 말고 한국의 의학기술이 좋으므로 잘치료하라는 말이 감동이네요. 그림보다 댓글보는 재미가 솔솔~~~~^^

  2. 멋집니다! 작품도 글도 모두. 이런 타임라인에 따른 스토리가 흥미롭습니다. 저도 유학생활에 관한거 이런 식으로 기록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또 자꾸 벌려놓으면 마무리할수 있을지 몰라서…. 계속 생각만 하는중. ㅋㅋㅋㅋ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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