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탁에 마주 앉는 시간
“오늘 저녁엔 뭘 해 먹을까?” 고민하며 퇴근길에 나서면 하루의 피로가 저녁 바람에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마음속에 쌓였던 무거운 기분이 점차 가벼워지고, 발걸음은 저절로 경쾌해졌다. 저녁 식사를 함께할 아내와 딸을 생각하면, 하루 종일 받았던 스트레스조차 다 퇴색되는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풍경은 마치 작은 축제처럼 느껴졌다. 내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며 항상 미소를 짓는 아내, "아빠 요리 진짜 맛있어요!"라며 두 볼을 가득 채우던 어린 딸의 모습은 내 하루의 보상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재료를 고르는 일조차 즐거움이었고, 새로운 요리법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설렜다. 재료를 손질하고, 냄비와 팬에서 피어오르는 요리의 향기를 맡으며 행복한 상상을 하곤 했다.
이렇게 세 식구가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던 시간은 나에게 정말로 소중했다. 딸이 밥을 잘 먹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나, 그리고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딸을 보며 만족스러워하던 아내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런 풍경이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어, 그 시절의 소중함을 여전히 떠올리곤 한다.

[딸 2돌 사진]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 8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는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사업과 직장 생활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한국에서 새롭게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잠시의 이별이라 생각했지만, 세월은 짧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세 식구의 생활과 취향도 많이 달라졌다. 내가 없는 동안 딸은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고, 아내는 직장에서 은퇴하며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며 내 일상도 크게 흔들렸다. 예상치 못한 공백기가 찾아오면서 다시 가족과 함께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미 이전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딸은 "밥 잘 먹는 아이"에서 이제는 "자신만의 취향이 뚜렷한 어른"으로 변해 있었고, 아내는 나보다 더 익숙한 방식으로 딸과의 시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다시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을 때, 아내는 이런 말을 던졌다.
“당신, 요리하지 마요. 주방이 너무 어지러워져요.”
그 말에 기분상하고 당황했지만, 나름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식탁에 올리며 딸에게 물었다.
“아빠가 만든 음식, 그래도 제일 맛있지 않니?”
하지만 딸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我还是喜欢吃外卖,这几年吃惯了。”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얼마나 배달 음식을 경계하는지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다니. 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 그런 쓰레기 음식을 다 먹어? 배달 음식 만드는 과정 보면 다시는 못 먹을걸!”
하지만 딸은 내 말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我点了螺蛳粉,我好久没吃了。”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그 많은 음식 중에 하필이면 이상한 냄새 나는 螺蛳粉을 먹겠다는 거야?”

[인터넷 사진]
딸과 내 대화는 순식간에 언쟁으로 번졌고, 그 틈에 아내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가 좋아한다는데 당신은 참 유난이에요. 그렇게 못 참겠어요?”
나는 억울했다.
“내가 틀린 말 했어? 이상한 냄새 나는 음식을 먹겠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니까!”
이렇게 사소한 말싸움으로 시작된 식사 시간은 점점 불편한 분위기로 바뀌곤 했다. 나와 아내, 딸이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은 더 이상 예전처럼 웃음과 대화로 가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식탁 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거나, 누군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를 뜨는 일이 늘어갔다.
딸과 아내는 종종 내가 없는 식사 시간에 좋아하는 드라마 “甄嬛传”을 iPad에 틀어놓고 함께 보며 대화를 나눴지만, 나는 그 자리에 끼지 못했다. 결국 난 혼자 멋적게 대충 밥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많아졌다. 점점 나와 가족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과거의 따뜻하고 소중했던 식사 풍경은 어느덧 추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가족의 일상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었다. 8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 보이지 않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고, 그 변화는 지금 우리가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2. 爸爸你还是多看书吧!
딸과의 대화는 점점 뜸해지고 있었다. 문득 돌아보니, 딸과 나의 세계는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주로 컴퓨터 관련 서적이나 기술 서적만 읽으며 내 일에만 몰두해 있었고, 문학이나 역사 같은 딸의 관심사에는 무관심했다. 딸은 문학 작품과 역사책을 즐기며 풍부한 감수성을 키워갔지만, 나는 그런 딸의 세계를 이해하거나 공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딸은 중국의 4대 명작인 水浒传、红楼梦、三国演义、西游记 등 작품들을 여러 번 읽으며 그 안의 깊은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爸爸你也花点时间多看书吧"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그 장편소설 드라마로 봤어. 내용 잘 알지~"라고 건성으로 응대했다. 딸과 나의 대화는 점차 겉핥기식이 되었고,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단 책은 사 놨다. 언제 읽기는 읽어야 겠지만 … 
[인터넷 사진]
공동의 언어가 부족해지면서 딸과의 대화는 피상적이고 형식적으로 변해갔고 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내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딸과 나의 간극을 더 크게 느끼게 했다. 딸과 다시 소통하려면 내가 딸의 세계에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딸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관심을 갖는 주제를 배우는 노력만이 우리 사이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딸이 피어싱 했다.
딸은 한때 순수하고 맑은 모습으로 내 곁에서 웃던 아이였다.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며, 롤러도 함께 타며 놀이공원에서 환하게 웃던 딸의 모습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선명하다. 하지만 지금의 딸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杭州国美에 진학하려고 杭州에 있는 美术专业培训班을 다니면서 딸은 그사이 자기만의 개성과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그것은 외모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어느 날 딸의 얼굴에 덕지덕지 박힌 피어싱을 보았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딸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었겠지만, 아빠로서의 우려와 당혹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딸의 얼굴을 보며 과거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떠올리던 나는, 딸의 변화된 모습을 받아들이는 데 한참이 걸렸다.

[딸 피어싱 사진]
더 충격적인 것은 딸이 아빠와 엄마가 준 용돈으로 얼굴과 혀 같은 곳을 아프고 피나게 찔러 피어싱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딸이 그 과정을 겪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졌다. 내가 애지중지 키운 딸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딸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았다. 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걱정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끊임없이 교차했다.
아내는 내게 말했다. "그냥 둬요. 애가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거잖아요." 아내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본인이야 제멋대로 하면 상관없겠지만, 옆에서 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각때문에 그러지… " 나는 딸의 선택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도중 한마디 했다가 딸에게 微信 차단 당하기도 했다.

4. 딸이 대학교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
딸은 대학 졸업 임박에 이력서를 여러 곳에 넣고 면접 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제법 규모 있는 대기업에 취직했다. 딸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감탄했고, 동시에 딸의 독립적인 삶이 자랑스러웠다.
저녁이면 딸은 대기업에서의 바쁜 하루를 마치고, 또 다른 아르바이트로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 일을 시작했다. "爸爸这只不过是在学本领,不是奔钱 …"라는 말에 나는 딸의 열정에 감탄하면서도, 늦은 시간까지 바에서 칵테일을 만들며 고단한 하루를 보내는 딸을 보며 부모로서 걱정이 앞섰다. 아무리 사회 경험이라 해도 바텐더라는 직업은 늦은 밤의 위험 요소가 많아, 나는 딸이 안전하기만을 바랐다.

딸이 성장한 만큼, 살아가는 방식도 나와는 달랐다. 그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더 이상 딸의 세계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5.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시간들
돌이켜보면, 나는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는 딸과 갱년기에 접어든 아내 사이에서 정말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내가 두 여인의 감정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던 것도 크다. 두뇌를 거치지 않고 퉁명스럽게 툭 내뱉는 나의 말투가 문제였다. 언어의 전달 방식이 서툴렀고, 그로 인해 식사 자리에서 딸을 울린 적도 있었다.

또한 내가 드문드문 마시는 술 문제로 아내와 싸운 적도 많았다. 한 번은 아내의 잔소리에 화를 참지 못하고 집에 고이 모시고 있던 담금주와 술잔을 모두 밖으로 내다 버린 적도 있었다. 금주를 다짐하며 견지하는 척했지만, 결국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몇 잔씩 걸치고 돌아온 날이 있었다. 갱년기로 감정이 예민해진 아내는 술 취한 나에게 날카로운 말을 던졌고, 그로 인해 대판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사소한 갈등 속에서 딸과 아내의 감정을 더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하지만 이 모든 시간을 지나며 나는 딸과 아내를 다시 이해하려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6. 딸과 가까워지기 위한 다짐
딸은 이제 나와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딸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관심사를 배우며, 딸이 있는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한다. 그것이 쉽지 않은 길임을 알지만, 나는 끝까지 딸과 다시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딸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딸은 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였다. 종종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나는 늘 왼팔에는 아내가, 오른팔에는 딸이 각각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 순간을 현실에서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내가 부러워하고 그리워했던 풍경이었다. 딸과의 거리감이 깊어질수록 그 소소한 바람은 점점 더 커져갔다. 딸이 어릴 때는 손을 잡고 놀이공원도 가고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불가능 하겠지만 그런 시간을 다시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내와 딸이 나란히 내 양쪽에 서서 웃으며 걷는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된다. 나는 딸의 변화를 이해하고, 딸의 성장 속에서 나의 자리도 찾고 싶다. 딸이 나를 피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의 세계로 초대해줄 수 있는 그런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고 옆에서 딸을 계속 묵묵히 지지 할 것이다.

딸과 함께했던 추억은 여전히 내게 가장 소중한 기억이고, 나는 앞으로도 딸과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싶다. 딸의 모습이 변했어도 내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딸과 다시 소통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
나는 오늘도 딸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시작하시는거네요. 화이팅
밤늦게 바텐더 끝나 돌아오는 딸, 제가 자고 있는 방에 문 와서 살포시 닫고 가는거 꿈처럼 느꼇고, 아침에 늦잠 자야 하는 딸 깨우는게 미안해서 … 저도 살포시 짐 싸고 집을 나선게 몇일전 출장길에 집에 들렸던 전부임다.
아빠의 노력이 가상함다. 사랑해주기쇼.
진정한 이해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죠.. 누군들 어느 사람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하려는 노력이 사랑이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