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겨울, 도문시에는 눈이 무섭게 쏟아졌다.
하늘에서 쉴 새 없이 퍼붓는 눈송이는 마치 전쟁의 흔적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온 세상을 하얗게 집어삼키고 있었다. 뼈를 저미는 칼바람에 대지는 두꺼운 설벽 아래 숨죽인 채 고요히 떨고 있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기차역만큼은 아침 일찍부터 들끓는 열기로 가득했다. 전선에서 무사히 복귀하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는 도문의 매서운 추위조차 잊게 만들었다.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한 군가와 둥둥거리는 북소리, 그리고 요란하게 터지는 폭죽 소리가 한데 엉켜, 꽁꽁 얼어붙은 광장 위로 뜨거운 함성을 토해내고 있었다.
녹색 기차에서 내린 김순복은 유독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여러 번 기워 입어 색이 바랜 낡은 국방색 솜 군복 차림이었으나, 그녀의 왼쪽 가슴에는 전선의 사선을 넘나든 세월을 증명하듯 붉은 리본이 달린 은빛 훈장들이 묵직하게 빛나고 있었고, 가슴 중앙에는 커다란 영예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허리춤에는 무기를 반납하고 남은 빈 권총집이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기차가 멈추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짖고,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찾아 발돋움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저마다 가족의 품에 얼싸안고 통곡하고 있었지만, 그 들끓는 환영 인파 속에서 오직 마중 나온 이 하나 없는 김순복만이 홀로 외딴섬처럼 고요했다.
순복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남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마주했던 하늘은 이런 평온한 빛깔이 아니었다.
1952년 10월, 압록강을 건널 때만 해도 그녀는 연길과 용정 등지에서 자원한 수많은 연변의 딸 중 하나였다. 위생소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순복이는 익숙한 일터를 떠나 의료가방을 메고 전선으로 향했다.
순복이가 겪은 전쟁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먹구름처럼 몰려든 폭격기들이 머리 위를 가로질렀고, 포탄은 쉼 없이 대지를 갈라놓았다.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고 파편이 빗발치듯 쏟아졌으며, 귓가에는 쌩쌩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는 총알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그 속에서 그녀는 핏자국으로 얼룩진 손으로 부상병들의 찢어진 혈관을 찾아 약을 놓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버텨냈다.
기차역 광장을 벗어나 환영 인파를 뒤로하고 순복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역전을 벗어나자 소란스러운 함성은 이내 하얀 설원 속으로 먹먹하게 잦아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 너머로 아스라이 보이는 북한 땅의 산자락은 눈을 이고 조용히 엎드려 있었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는 마치 숨죽여 우는 이의 흐느낌처럼 나직하게 들려왔다.
도문의 겨울 바람은 유난히도 매서워,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북방의 냉기가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졌다. 3년 만에 밟아보는 고향의 흙길은 발밑에서 서적서적 무거운 소리를 냈다.
눈에 반쯤 파묻힌 우물가에는 길어가던 물이 흘러내려 그대로 고드름이 되어 매달려 있었고, 낯익은 이웃집들의 낡은 흙담 벽 위에는 까치들이 추위를 피해 깃을 웅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떠나기 전 그대로인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낯선 기운이 골목길을 감돌았다. 한 걸음씩 집을 향해 가까워질수록 순복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댔다.
죽음의 문턱을 수없이 넘나들면서도 오직 돌아가야 한다며 가슴에 품었던 내 집, 내 남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윽고 눈 덮인 지붕 아래,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낡은 대문이 보였다. 그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전쟁터로 향하기 전, 그녀는 갓 혼례를 올린 수줍은 새댁이었다. 위생소 간호사였던 순복이는 출정 전날 밤, 칠색 색동비단 조각을 모아 밤을 새워 담배쌈지를 손바느질해서 만들었다.
한 땀 한 땀 바늘을 밀어 넣을 때마다 무사 귀환의 염원을 담았고, 쌈지 안쪽 귀퉁이에는 ‘朴永哲(박영철)’이라는 남편의 이름을 한자로 이쁘게 수놓아 넣었다. 그것은 남편의 심장을 지켜줄 그녀의 분신이자 사랑의 징표였다.
박영철은 아내가 내민 담배쌈지를 받아 쥐고 한참을 침묵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꼭… 꼭 가야만 하오?”
순복이는 단호한 눈빛으로 남편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지금 국경 너머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습니다. 연변의 젊은 처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향을 지키겠다고 전선으로 나가고 있는데, 저라고 집안에만 앉아 시대의 부름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믿고 꼭 기다려 주십시오.”
영철은 담배쌈지를 옷 안쪽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깊숙이 넣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꼭 살아 돌아와야 하오. 내가 여기서 동무를 기다리겠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소.”
가혹한 운명은 전쟁이 한창 치열하게 불뿜던 1952년 가을, 박영철에게 한 장의 차가운 종이로 찾아왔다. 지원군 정치부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혁명군인희생증명서》였다.
통신이 완전히 끊어지고 난리통이던 전선에서 빚어진 가혹한 오보였으나, 시정부 민정과를 거쳐 정식으로 전달된 사망 통지서 앞에서 영철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내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믿을 수 없어 밤마다 그 담배쌈지를 만지며 울었다. 낡아 헤진 비단 결에는 그의 눈물`과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해졌다.
1953년 7월 마침내 정전협정이 체결되었음에도 부상병 치료와 중국어 통역 등 전후 정리를 맡은 순복의 소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기약 없는 연락 두절은 전사 통보를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굳혀버렸다.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결국 화병으로 몸져누우셨고, 아들의 소매를 붙잡고 대를 이어 다시 집안의 제자리를 찾기를 눈물로 애원하셨다.
결국 어머니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 영철은, 시정부 민정과에서 알선한 소개를 통해 맞선을 보고 1954년 봄 옥란이라는 심성 고운 처녀와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옥란은 병석에 누운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며 가사를 묵묵히 챙겼고, 영철의 무너져 가고 있던 가정에는 다시금 온기가 돌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그렇게 기다리던 갓난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그것도 모른 채, 전선의 모든 수습을 마치고 맨 마지막 열차에 올랐던 순복이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것은 바로 그해 1955년 겨울이었다.
순복이가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마당문 안쪽에서 스륵스륵 대나무 빗자루로 눈 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문을 밀었다. 마당에서 빗질을 하던 영철이 고개를 들더니 들고 있던 빗자루를 눈바닥 위로 툭 떨어뜨렸다.
“순복이? 당신… 정말… 순복이오?”
순복이는 어깨에 멘 낡은 의료가방 끈을 부들부들 떨며 움켜쥐었다. 북받쳐 오르는 오열을 참아내려 입술을 깨물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을 뱉어냈다.
“예, 김순복입니다. 살아 돌아왔습니다. 늦어져서…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바로 그 순간, 방 안에서 어린 영아의 울음소리가 터졌고, 옥란이가 아이를 안은 채 문가로 나왔다. 세 사람 사이에는 얼음보다 차가운 정적이 흘렀다.
순복이는 차마 마당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한 채 굳어버렸고, 영철은 꿈에 그리던 아내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과 아이의 울음소리에 발이 묶인 현실 사이에서 처절하게 흔들렸다.
이 기막힌 사연은 곧 시정부 민정과를 거쳐 현인민법원(县人民法院)으로 인계되어 공식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전쟁과 행정 오보가 낳은 비극이었기에, 법원과 시정부는 엄격한 법리 적용보다는 상처 입은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민사적 조율에 집중했다.
시정부 회의실에 모인 민정과 담당자와 부련회 주임, 그리고 법원 관계자들은 탁자 위에 순복의 전사 오보 정정 서류와 영철의 호구부를 나란히 올려놓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민정과 책임자는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부의 오보로 인해 남편이 적법하게 재혼했으니, 국가가 책임지고 이 얽힌 실타래를 풀어주어야 하오.”
부련회 주임 역시 안타까운 목소리로 의견을 보탰다.
“두 여성 모두 전쟁이 남긴 무고한 피해자입니다. 무작정 지금의 가정을 깨뜨리기보다, 옥란 동지의 장래를 위한 현실적인 구제책이 먼저 마련되어야 합니다.”
조사 결과 영철의 재혼이 전사 오보에 근거한 적법한 절차였음이 확인되자, 시정부와 법원은 인륜과 군혼 보호 정신을 두루 고려한 따뜻한 중재안을 도출해 냈다.
시정부 민정과가 책임지고 옥란이에게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거처와 안정된 공장 일자리를 주선해 주기로 확약하였고, 현인민법원은 이 구제책을 바탕으로 세 사람의 혼인 관계를 원만하고 명예롭게 정리하는 법적 조정을 매듭지었다.
하지만 시정부와 법원의 원만한 결정 앞에서도 현실의 생채기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옥란 역시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은 어머니였기에, 갑작스러운 운명의 개척 앞에서는 막막한 절망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억울하고 슬픈 마음을 누르지 못해 아이를 품에 안고 민정과를 찾아가 호소하기도 했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영철과 밤새도록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세월과 엇갈린 인연을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단 말인가.
마침내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왔을 때, 옥란의 심정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들었던 집을 내어주는 서글픔도 컸지만, 무엇보다 핏덩이 같은 자식을 두고 발걸음을 떼는 것은 어미로서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었다.
갈등과 슬픔이 극에 달한 마지막 순간, 옥란은 결국 자식의 앞날을 위해 모진 마음을 먹고 아이를 영철에게 남겨둔 채, 차마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대문을 나섰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영철은, 무거운 보따리를 대신 들어주며 어두운 골목 끝까지 옥란의 뒤를 묵묵히 배웅하러 나갔다.
마당에는 오직 갓난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만 남았다. 숨넘어갈 듯 우는 아이를 마주한 순복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남편의 핏줄이자 자신을 밀어냈던 여인의 아이였다.
그동안 전선에서 참혹한 죽음들을 목격하며 눈물조차 말라버렸다고 생각했건만, 배고프거나 엄마의 체온이 그리워 방 안 포대기 속에서 자지러지게 울고 있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자,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서러움이 일시에 터져 나왔다.
순복은 영철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방으로 뛰쳐 들어가 포대기 속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살포시 안아 가슴에 묻었다. 순복은 그 무고하고 여린 생명을 품에 안고서 제 몫의 서러움까지 다해 목놓아 아이와 함께 엉엉 울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가혹한 운명의 한가운데서 순복은 아이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오래도록 오열했다.
옥란을 배웅하고 돌아와 마당 마루에 주저앉아 아이를 안고 통곡하는 순복을 본 영철은 심장이 찢겨 나가는 듯했다. 영철은 무너져 내리듯 순복의 무릎 앞에 꿇어앉아, 떨리는 손으로 외투 안쪽 깊숙한 곳을 뒤적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낸 낡고 때 묻은 담배쌈지 하나를 순복의 눈물 젖은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1952년 전사 통지서를 받은 이후 영철이 가슴에 묻고 견뎌온 세월의 흔적만큼 색은 바래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지만, 쌈지 한편에는 순복이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수놓았던 ‘朴永哲’이라는 이름 석 자가 여전히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사 통지를 받고도 이것만은 차마 버릴 수가 없었소. 내 심장 곁에는 늘 당신이 한땀한땀 기워서 만든 이 담배쌈지가 들어있었소. 순복이, 당신이 살아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맙소.”
빛바랜 색동과 자신의 바느질 자국을 마주한 순간, 순복은 비로소 깨달았다. 남편이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려야 했던 그 기가 막힌 세월조차, 사실은 이 쌈지 속에 갇힌 아내를 지우지 못해 몸부림치며 겪어낸 지독한 죄책감의 시간이었음을.
남편의 변함없는 신의와 어쩔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을 마주한 순복은, 그제야 영철의 품에 얼굴을 묻고 참아왔던 통곡을 목놓아 모조리 쏟아냈다.
1952년 출정 이후 쌓인 세 해의 기다림, 옥란의 절망, 남겨진 아이에 대한 서글픔이 그 순간 거대한 눈물과 함께 녹아내렸다. 전쟁과 이별이 만든 잔인한 간극은, 그 담배쌈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서히 좁혀졌다.
순복은 전선의 야전병원에서 피어난 깊은 모성으로 그 무고한 아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모진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고 젖을 물리고 포대기로 감싸 안으며, 아이를 애지중지 제 자식처럼 키워냈다.
그렇게 온 마음으로 정을 쌓아가며 상처가 아물어가던 중, 어느덧 순복의 품에서 자란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였다.
1958년의 어느 날, 낡은 마당 대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옥란의 모습은 예전보다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아무리 독하게 마음을 먹었어도 자식을 제 배 아파 낳은 정만큼은 도저히 끊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마주 앉은 두 여인 사이에는 깊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바로 그때, 방 한편에서 놀던 아이가 마당에 들어선 낯선 여인을 보고 잔뜩 겁을 먹었다. 아이는 웅크려 앉아 있던 순복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는, 이내 순복의 등 뒤로 쏙 숨어들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엄마…"
자신이 피눈물을 흘리며 낳은 친자식이 정작 제 어미는 알아보지도 못하고, 다른 여인의 등 뒤로 숨어 엄마라 부르는 모습을 본 옥란은 그대로 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옥란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눈물을 쏟아냈다. 자식을 직접 품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세월의 대가가 이토록 시리게 다가올 줄 몰랐던 것이다. 옥란은 떨리는 손으로 순복의 두 손을 덥석 쥐었다.
“순복 동무… 천벌을 받아 마땅한 줄 알면서도 이렇게 염치없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자식을 남겨두고 떠난 날부터 단 한 순간도 눈을 감고 편히 잠들지 못했습니다.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았고, 밤마다 아이 눈망울이 밟혀 도저히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옥란은 목이 메어 순복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내 핏덩이를 제 자식처럼 거두어 주어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저를 보고 낯설어 숨는 저 아이를 보니 제 가슴이 갈가리 찢어집니다. 하지만 순복 동무… 이제 내 아이, 내 손으로 키울 수 있게 한 번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내가 키우게 해주십시오.”
애지중지 키워온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슬픔에 순복의 가슴도 베이듯 아파왔지만, 자식을 향한 어미의 피 끓는 심정과 그 끊을 수 없는 낳은 정의 무게를, 전선에서 수많은 생사를 지켜보았던 순복이 어찌 모를까.
순복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옥란의 떨리는 손을 마주 잡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옥란 동무, 무슨 마음으로 지난 세월을 견뎠 을지 내 다 압니다. 이 아이는 동무의 아이가 맞습니다. 그동안 정성껏 보살폈으니 아무 걱정 말고 데려가 가슴에 품어주세요.”
순복은 세 해 동안 정성스레 입히고 먹여 키운 아이를 옥란의 품에 고스란히 안겨주었고, 아이는 그렇게 친어미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떠난 뒤 집안에는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지만, 그것은 상처 입은 이들이 비로소 각자의 제자리를 찾아간 고요함이었다.
생활은 끈질기게 다시 뿌리를 내렸다. 순복이는 도문시 위생소로 복귀하여 전선의 포화 속에서 익힌 숙련된 의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그녀는 군 생활을 하며 익힌 능숙한 중국어 실력으로, 위생소를 찾아오는 환자들의 고통까지 세밀하게 살피고 다독였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애를 먹던 이들에게 순복이의 유창한 중국어는 그 자체로 따뜻한 처방전이 되었고, 순복이는 마침내 위생소 소장으로 발탁되어 지역 주민들의 아픔을 돌보는 버팀목이 되었다.
박영철 역시 묵묵히 철길로 나가 가장의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정부 민정과를 통해 옥란이가 먼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재가하여 평온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그 소식은 오랫동안 두 사람의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바윗덩이를 거두어가는 듯했다.
순복이와 영철은 그제야 서로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미안함과 고단함이 그 소식 하나에 하얗게 바래져 갔고,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걸림돌 없는 고요한 위로가 찾아왔다.
강물처럼 시간이 흐르는 사이, 집안에는 네 명의 아들과 막내딸이 차례로 태어났다. 아이들이 성장해 듬직한 청년이 되고, 그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속에서 전쟁의 참혹했던 기억은 조금씩 희미한 옛날이야기처럼 물러났다.
백발이 성성해진 순복이와 영철은 해 저무는 마루에 나란히 앉아 가끔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주름진 영철의 손에는 낡고 해진 담배쌈지가 들려 있었고, 순복은 그 쌈지를 만지는 남편의 뭉툭한 손마디를 가만히 덮어 잡았다.
남들에게 크게 드러내지 않고, 서로의 몸에 남은 보이지 않는 흉터를 다독이며 살아낸 기나긴 세월이었다.
모진 눈바람을 견디고 돌아와 비로소 서로의 안식처가 된 것처럼, 화려한 훈장보다 더 값진 평범한 일상을 지켜낸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생을 다해 일구어낸 가장 위대하고도 고요한 ‘귀환’이었다.
이 이야기는 항미원조 당시 간호병으로 참전했던 한 여성의 진실한 사연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최종수정일 : 2026-05-25

소설인지 르포인지 꽤 몰입되네오~
그런데 참 박영철이도 급했는가 봐요~사별한지 1년만에 결혼이라니… 3년후에 했더람 모든게 원만했을텐데…
오랜만이군요 … 감사합니다. 아내 전사 소식을 듣고 매일 울고 있는 영철이를 지켜보던 노모는 결국 몸져누웠고, 아들의 소매를 붙잡고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눈물로 애원했고, 형제들의 간곡한 뜻을 받아들여 소개팅으로 다시 만나서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답니다. 짧지만 속도전 ;;;
그러니까 애도의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던게 가장 문제였죠. 지난번에 읽고 생각했어요. 아이를 조직에서 책임지고 아이엄마에게 새 기회를 주고 지원군여성에게 가정을 돌려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조직이라는 대의에서는 이 방법이 과오에 대해 가장 수습하기 맞는 명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애틋한 정도 원래 부부가 더 있었을테고. 아이는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생명을 얻었으니 그것 또한 나쁜 일이 아닌것 같아요. 인간은 실수해도 생명이 태어난건 잘된 일입니다.
아마 그때 그상황에서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였겠나 … 추측 해 봅니다. 꼼꼼이 읽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네 그렇죠. 지금보다는 그때분들이 그래도 더 진지했을 것입니다.
소설 시도, 좋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