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자는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항아리에서 자신이 직접 집게로 뱀을 건져올렸고 도끼로 뱀대가리를 잘라버렸다. 대가리를 잃고 꿈틀거리는 뱀의 몸뚱이를 집어올려 녀자는 망설임없이 배를 갈랐고 아들애는 숟가락에 물을 떠놓고 기다리다가 녀자가 뱀의 심장을 건져올리기 바쁘게 먹어치웠다. 동네사람들은 녀자가 뱀 대가리를 자를 때면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아들애는 별탈없이 컸다. 심전도상으로도 많이 나아지고있었다. 그렇지만 녀자는 안도할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아들애의 병이 위급해질지 모르고 그러면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쯤, 녀자네 동네에 출국바람이 불어쳤다. 발빠른 사람들이 러시야로 가고 미국으로 가고 한국으로 가고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농사를 짓고 이슬풀을 베여 소를 먹이는 일에만 열중하고있었다. 생각없는 사람같으니라구, 언제라도 애가 상태가 안좋아지면 돈이 얼마나 들지 모르는 일인데 저렇게 태평이니… 녀자는 자신이 외국으로 나가기로 결심을 하고 남편을 구슬렸다. 

현수도 많이 나아지고있고 여태 배운게 농사밖에 없는 사람이 농사를 해야지 가긴 어델 가냐고 남편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녀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구슬려서 안되니 닥달하고 급기야 죽어버린다고 협박을 했다. 그리고 그해 가을, 한해 농사 지은 쌀을 팔아 녀자는 한국로무수속을 넣었다. 그런데 그게 사기일줄이야. 남편은 경험 산셈치고 이제 마음 잡고 살자고 했다. 그러나 녀자는 그렇게는 할수가 없었다. 위장결혼을 결심했다. 남편을 달달 볶아 리혼수속을 하고 소개소를 통해 한국남자를 만났다. 녀자는 고리대로 꾼 돈을 남자한테 내주었고 이내 결혼수속을 시작했다. 우여곡절끝에 비자를 받았고 녀자는 시가지에 월세방을 잡고 아들애와 친정엄마를 이사시키고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겨오는 화창한 봄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인천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와 기다리고있던 한국신랑을 만나는 순간, 녀자는 모든게 완벽하게 일이 되여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완벽하다고 생각했던건 착각이였고 일은 끝나가고있는게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되고 있다는걸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히 하는 일이 없는 남자는 허구헌날 녀자한테 용돈을 달라고 했고 녀자는 옷가지를 가방에 챙겨들고 도망을 쳤다. 

녀자가 일어섰다. 오래 앉아있었으므로 아래다리가 저려난다. 입쌀 두주먹에 현미 한줌을 얹어 밥가마에 앉힌다. 냄비에 물을 끓이다가 계란 두알을 삶고 냄비 하나를 더 꺼내 반쯤 물을 넣고 끓인다. 기름끼 없이 맹물에 잘게 썰은 무를 넣고 끓이다가 거기에 북어를 한줌 넣어 끓이면 로인이 가장 좋아하는 북어국이 된다. 로인의 아침은 매일 계란 한알에 현미밥과 소금간만 맞춘 북어국이다. 어떻게 물리지도 않고 똑같은 음식을 매일같이 먹는건지 신기할만도 한 일이지만 로인은 아침상만은 다른 음식을 일절 못올리게 한다. 계란으로 영양을 보충하고 무를 넣은 북어국이 소화를 돕고 그만큼 좋은 식단이 없다는게 그 리유였다. 그녀도 어쩔수없이 로인의 식성을 따라 먹는건데 먹을만할 때도 있고 정말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을 때도 있다. 북어국이 그리도 맛잇는건가? 매일같이 먹어도 맛있게만 드시니 신기하기도 하지. 녀자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피씩 웃는다.

로인과 녀자를 맺어준 북어국이였다. 로인은 녀자가 그렇게 도망나와 취직한 충청도의 한 식당에 단골로 오던 손님이였다. 주인녀자 혼자 운영하던 밥집에 그녀가 오면서 주인녀자는 식당의 대부분 일을 그녀한테 맡기고 자신은 한발 물러나 느긋함을 즐기고있었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내는 일들을 녀자는 혼자 도맡아해야 했지만 주인녀자가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식당에 테이블도 몇개 안되여 힘겹지만 혼자서 응부할수 있는 정도라 흔쾌히 받아들였다.

"북어국이 참 맛있구만."

참 멋지게 나이 든 신사라고 생각되는 로인이였다. 말수가 적었고 행동거지가 점잖은 로인은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매일같이 가게로 왔다. 로인은 하루에 한번은 꼭 왔고 올 때마다 북어국에 반찬 몇가지와 공기밥이 딸려나오는 세트 2번을 먹었다. 오는 차수가 늘고 녀자와 로인사이에 인사가 오가고 한두마디 대화가 오가게 된 즈음, 궁금해진 녀자가 왜 매일마다 와서 북어국을 드시냐고 물었다. 

"북어국을 좋아하니까. 어릴때 엄마가 만들어줬던 맛을 잊지 못하는데 여기가 그 맛이랑 젤루 비슷하거든. 근데 이렇게 만들어줄 사람이 내 곁에 없으니까. 그래서 오는거지머? 허허."

"그러는 자네는 왜 여기에 이러고있는가? 남편이나 자식은 어쩌구?"

로인이 녀자의 말에 반문하며 무구하게 웃었다. 그녀도 멋적게 따라웃었다.

로인은 녀자의 어머니와 비슷한 년배였다. 오랜 지병을 앓다가 마누라가 돌아가고 딸 셋에 아들 하나를 대학공부까지는 아니지만 앞가림할 정도의 공부는 시켰고 성가까지 마쳤다고 했다. 녀자는 로인한테 슬며시 경외심까지 들었다. 난 자식 하나를 키우는것도 이렇게 힘든데 마누라도 없이 애 넷을 키웠다고, 그것도 다 공부시켜 성가까지 마치다니, 이건 아무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닌거야. 녀자는 앓고있는 아들애와 그 아들애를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해서 여기까지 올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약간 격앙돼서 얘기했다. 말하다보니 그동안의 설음이 북받쳐 눈확에 그들먹하니 눈물이 고였다. 로인은 자네 대단한 엄마구만, 하고 혀를 찼다. 이제 볕들 날이 있을겨. 로인이 녀자를 위로했다. 그날, 녀자는 로인이 뭔가 특별하고 멋져보였고 대화를 마치고나자 두사람 사이의 거리는 훌쩍 가까워졌다. 

그리고 얼마후, 녀자와 로인사이에 특별한 거래가 오가게 되였다. 녀자가 로인한테 매일아침 곁에서 북어국을 해주는 대신, 로인은 녀자가 이 땅에서 아들이 공부하고 병치료하는데 필요한 돈을 벌수 있을 때까지 자유롭게 있을수 있는 영주권을 만들수 있게 해주는거였다. 녀자가 먼저 제안한 거래였다.

"나 지금은 원룸에 있는데 거긴 너무 좁아서… 그리구 세도 비싸."

구두로 거래가 오간 그날, 로인이 북어국을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가며 말을 꺼냈다. 

"둘이 살 집이 필요할텐데 내가 당장 손에 쥔 돈이 많지 않아서… 안그래도 원룸이 비싸서 이사를 할가고 집을 알아보던 참이야, 혹시 자네 집이 좀 허름해도 괜찮겠는가? 터밭도 있고 둘이 살기엔 넉넉한 집이 하나 있긴 한데 오래동안 비여뒀던 집이라 손댈데가 많을테야. 집주인하고 아는 사이라 월 10만원정도만 주면 될듯싶은데. 그런데 자네 다시 한번 생각해봐. 후회하지 않겠어? 우리끼리야 거래라지만 남들은 비딱하게 볼게 뻔한 일인디. 후회가 들면 지금이라도…"

로인이 말끝을 흐렸다.

"아니, 절대로요. 남 눈치같은거 안보고 산지 오래요. 저 잘할게요."

녀자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땅에서 전 안전하게 돈을 벌 명분이 필요해요.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수 있어요. 녀자는 속으로 웨치고있었다. 

"그래, 나야 고맙지머."

로인이 목젖이 다 보이게 웃었다. 

그렇게 녀자는 이 집에 오게 되였다. 녀자가 처음 이 집에 오던 날은 하늘이 높게 들린 두해전 여름이였다. 자질구레한 가재도구들을 사넣은 비닐봉투 두개를 들고 로인네의 오토바이에 앉았다. 마을 맨 끝자락에 있는 교회당건물을 빙 에돌자 공터가 나왔다. 로인이 오토바이를 공터에 세우고 아무 말 없이 잔풀들이 삐죽삐죽 돋아있는 돌계단을 올랐다. 녀자는 비닐구럭을 나눠들지 않는 로인을 야속해하지 않았다. 바지런히 로인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헉. 헉. 숨이 턱에 닿도록 오르고나서야 집은 모습을 드러냈다. 

재래식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집은 마당에 풀이 무릎을 넘게 자라있었다. 로인이 녹쓴 자물통을 따고 덜컹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꿉꿉하고 눅눅한 냄새가 밀려나왔다. 거실하나에 방 하나, 찬장에 녹이 쓴 주방, 주방옆에 딸린 문 없는 세면실, 허름했으나 집은 널찍했다. 

로인이 마당에서 작대기를 찾아 헝겊을 매달았다. 로인이 고개를 쳐들고 천장의 거미줄을 치우는 동안, 녀자는 마당의 풀을 뽑았고, 로인이 뜰에 앉아 두통을 호소하며 담배를 태우는 동안 녀자는 싱크대에 물을 채워놓고 가방안에서 낡은 세수수건 두개를 꺼내 적셔 방안 구석구석을 여러번 닦았다. 걸레질을 하고 가재도구들을 꺼내놓자 사람냄새가 풍겼다. 로인이 후둘거리며 전기선을 점검했다.

그날 오후, 녀자는 식당에 있던 자신의 옷가지들을 가져오고 로인은 자신이 덮고자던 이불과 텔레비며 옷가지 등 물건들을 한차례 트럭을 내여 싣고 왔다. 살림을 합쳐놓고 녀자는 담배냄새와 꿉꿉한 홀아비냄새가 풍기는 로인네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로인네의 물건은 그녀보다 가지수가 좀 더 많을뿐이지 쓸만한건 별로 없었다. 랭기가 올라오지 않게 돗자리를 깔아놓고 로인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데 곰팡이냄새가 진동했다. 언제 빨았는지 모를 일이였다. 녀자는 요긴한 이부자리만 남기고 마당가의 수도물을 틀어 다라에 채우고 이부자리를 넣고 밟았다. 로인은 티비에 유선을 련결해놓고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저녁하늘이 붉게 물들고있었다. 

그렇게 녀자와 로인의 동거가 시작되였다. 얼마간의 돈을 주고 위장결혼했던 남자와 리혼을 하고 뒤이어 서류절차를 밟아 녀자는 로인과 합법적인 부부가 되였다. 출입국사무소에서는 뭔가 심상치 않다는듯 머리를 가로 저으면서도 모든 서류가 합법적인지라 도장은 찍어주었다. 

로인의 자식들은 탐탁치 않아했다. 로인과 자식들사이에 전화로 고성이 오갔다. 녀자는 혹여 로인이 자식들의 반대에 물러설가봐 마음을 졸였다. 지네들이 나랑 같이 사는것두 아니구 내 남은 여생 내 맘대루 할거여. 내 옆에서 밥 챙겨주는 사람이 최고지. 로인이 단호한 말로 녀자의 불안한 마음을 잠재웠다. 녀자는 로인한테 잘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낮동안 고된 식당일에 지쳐 돌아와 다시 로인의 저녁을 차리고 빨래를 했다. 일이 힘에 부치지 않을리 없었지만 녀자는 불평이 없었다.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반찬가지수를 하나라도 늘이고 싶었고 로인한테 최대한 잘해드리고싶었다. 자식들을 제치고 녀자편에 기운 로인의 마음을 향한 고마움이였다. 

로인은 거동에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 때가 태반이라 저녁은 차리지 않아도 되는 때가 많았다. 간혹 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로인네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다보니 반찬 한가지만 해서 내놓으면 되는터였다. 녀자는 그렇게 살면 될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바뀌고 한번 두번 비자 연장을 하고 그러다보면 그녀의 영주권도 나오고 아들애도 커갈것이고, 그렇게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모든게 때가 되면 이루어질줄 알았다. 그 아름다운 봄과 여름사이, 풍요로움만 넘칠것 같은 가을과 겨울사이에 숨어있는 벼락과 폭우, 회오리바람을 녀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녀자는 힘이 부쳤다. 고된 식당일에 녀자는 지쳐가고 있었고 집에 와서도 충분히 쉬지 못하는지라 눈에 띄게 야위여갔다. 로인도 점점 거동이 불편해졌고 날씨가 추워지자 자리보존하고 누워서 물까지 떠다주기를 바랐다. 로인네가 타고다니던 오토바이는 교회당뒤에서 먼지를 폭싹 뒤집어쓴채 벌겋게 녹이 쓸어가고있었다. 점점 로인은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오는 그녀를 불만스러워했다. 자네 그러다가 몸이 다 절단나, 처음에 녀자를 걱정하는투로 시작된 로인네 잔소리는 급기야 나도 일찍일찍 들어와 밥 같이 먹는 집사람이 그립다는 푸념으로 이어졌다. 

그즈음부터 로인은 밤에도 텔레비를 못끄게 했다. 녀자를 더듬으며 숨을 몰아쉬다가 멋적게 나가떨어지던걸 멈춘 뒤부터였다. 토라져서 일부러 맛있는 먹거리를 외면하는 아이처럼 로인은 녀자를 등지고 누워 늦게까지 텔레비를 보다가 그대로 잠들곤 했다. 잠든걸 확인하고 텔레비를 껐더니 바로 깨서는 그냥 둬 하고 맥없이 내뱉었다. 밤마다 마을꼭대기 판자집에서는 묘한 싱강이질이 계속되고있었다. 텔레비죤이 소리없이 왱왱 빈 화면이라도 돌아가야 로인은 다시 안도하고 잠을 청했다. 녀자는 텔레비죤 불빛때문에 깊은 잠을 청할수 없었다. 

로인네는 급기야 감기를 시작으로 병치레를 시작했다. 로인네의 주머니가 궁색해진것도 함께였다. 자신앞으로 매달 나오는 몇십만원의 연금과 자식들이 십만원씩 내서 보내는 생활비를 합쳐 집세와 전기세를 내고 생활에 필요한 용돈을 쓰면 대충 살아갈수 있는터였는데 그즈음 아들과 막내딸한테서 생활비가 끊겼고 병원에 자주 다니다보니 금새 궁색하게 된것이였다. 처음에 로인은 자네 돈은 쓰지 말게, 하고 말했었다. 고마웠지만 녀자는 공짜로 얹혀살수가 없어 반찬거리를 사거나 세제를 사고 가스가 떨어지거나 할 때면 주머니를 들추곤 했다. 이제 로인은 넌지시 녀자의 주머니를 넘보고있었다. 녀자는 조금씩 흔들렸고 하루에도 몇번씩 흔들리려는 자신의 마음을 눅잦히고 꾸짖었다. 죄를 짓고 주님앞에 회개하는 신도처럼 녀자는 로인과의 동거를 처음 결심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다시 굳게 다짐했다. 흔들리지 말자. 잘해드리자. 처음 먹었던 마음 변치 말아야지. 녀자는 퇴근길에 무우를 사고 북어를 샀다. 의식을 치르듯 매일아침 북어국을 끓였고 웃는 얼굴로 로인한테 밥상을 올렸다. 로인은 끙끙 앓다가도 녀자가 밥상을 올리면 어떻게든 일어나 숟가락을 들었다.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게지. 반찬값이 많이 들어봐야 얼마나 들가. 내가 덜 먹고 좀 더 아끼면 되는거지. 녀자는 속으로 위안을 했다. 하지만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 그 겨울의 추위는 두사람을 막연하게 했다. 이 큰 집에 기름보이라로 난방을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안봐도 뻔했다. 두사람은 토의끝에 주방과 세면실 거실은 빼고 안방만 보이라를 틀고 잠간잠간 샤워하는 동안만 온수를 틀기로 했는데 그렇게 아낀다고 했지만 이십만원 주고 한통 넣은 기름은 한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급기야 녀자는 전기장판을 사들였고 로인은 전기난로를 사왔다. 자기전까지 잠간 전기난로에 손을 녹이고 잠잘 때는 전기난로를 껐다. 전기장판을 고온으로 해놓고 두사람은 전에없이 바싹 붙어 누워 이불을 머리까지 올리쓰고 잠을 청했다. 머리를 내놓고 자면 코가 시렸고 손을 내놓으면 손이, 발이 나가면 발이 시려 자다가 몇번씩 일어나서 이불을 여미고 다시 자군 했다. 그나마 젊은 그녀는 이 악물며 버텼지만 로인은 끝내 고뿔에 걸렸다. 녀자는 로인을 극진히 간호했다. 감기약을 사다가 대접하고 밤을 새다싶이 하며 물수건을 적셔 이마에 올리고 묽게 좁쌀죽을 쑤어서 대접했다. 

"고마우이. 내가 정말 뭔 복이 떨어져서 자네같은 사람을 만난건지 모르갔어. 고마우이."

며칠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로인네가 넌지시 녀자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녀자는 말없이 금방 끓인 보리차를 건넸다. 

"내가 이번에 자네 덕에 살았어. 이제 열이 떨어지고 정신이 맑아지네그려."

후룩후룩 로인이 보리차를 걸탐스럽게 들이켠다. 녀자가 희미하게 웃는다.

"아니, 이 랭골에서 아버지가 겨울을 난거유? 세상에." 

감기가 낫고나서 며칠뒤 이른 아침이였다. 북어국이 맛있게 끓고 있을 때쯤, 바람소리와 함께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막내딸이였다. 녀자는 막 밥상에 수저를 놓고있었고 로인은 부시럭부시럭 잠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한개비 태우던 참이였다. 

녀자는 잘못을 저지르다가 현장을 들킨 사람처럼 속이 덜컹 내려앉았다. 안그래도 처음부터 두사람의 동거를 제일 심하게 반대했던 막내딸이 아닌가. 큰딸과 둘째딸은 처음에 뭐라 하다가 시간이 지나자 방관하고있었다. 명절때도 안오고 있고 아들은 이렇게라도 밥 끓여주는 사람이라도 있다는게 그나마 한시름 덜었다는 눈치였다. 문제는 막내딸이였다. 녀자와 동거를 시작한걸 알았을 때도 남보기 창피해서 못산다고 로인네와 전화로 대판 싸웠었고 그후에도 녀자가 없는 시간에 찾아와 싸우고 간적도 있었다. 로인의 이마살이 찌푸려진다.

"괘안타. 전기장판이 있어갖구 뜨뜻한데 뭘 그랴. 그나저나 넌 신랑 아침밥도 안챙겨주냐? 이 아침에 웬일루 갑자기 왔다냐? 반갑지두 않쿠먼."

녀자는 돌아서서 딱히 할것도 없으면서 걸레를 들고 서성거렸다. 드르렁 딸이 미닫이문을 녀자의 등뒤에서 소리가 나게 닫는다. 

"아빠, 아빠가 그러니까 안되는거야. 식당 다니면서 돈두 잘 벌텐데 보일라 확 켜서 아버지 뜨끈하게 해줘야지. 누구덕에 이렇게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사는건줄 모르는겨. 중국사람들 불법체류자 알지? 왜 비자 없는 사람들이랑 결혼으로 왔다가 집나가서 돈버는 녀자들이랑 말이야. 맨날 잡아가는거 텔레비에 나오잖아. 아빠도 봤지? 아빠덕분에 그런 걱정 않고 편히 있고 돈 잘 버는건데 고맙다구두 안하지? 원래 잘해주면 잘해주는걸 모르는겨."

딸이 쫑알댄다.

"시덥잖은 소리 그만하고, 그런 소리 할거면 가. 너 왜 온거냐?"

"아니 그게 아빠."

소리가 너무 낮아 그 다음 말은 들리지가 않는다.

"응? 아빠. 진짜 이번 한번이야. 응? 내가 아빠한테 이런 부탁 한적 있어?"

걸레를 들고 주방바닥을 닦는데 그런 소리가 들린다.

"안된다니까. 그래."

안에서 로인네의 음성이 높아지고있었다.

"아빠, 나중에."

"그런 소리 꺼내지도 마."

"됐어. 아빠. 이럴줄 알았어. 늘그막사랑에 기둥뿌리 뽑힌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였어. 이제 딸이 죽게 돼도 아빤 상관없지? 흥."

미닫이문이 드르렁 소리나게 열리더니 잔뜩 볼이 부은 딸이 나온다. 들고 있는 핸드빽은 녀자가 봐도 저가의 인조가죽이다. 문소리에 엉겁결에 돌아선 녀자와 딸의 두눈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딸은 녀자를 향해 눈을 흘기며 돌아서더니 출입문을 탕 소리나게 닫고 나간다.

"저런 저런. 쯧, 쯧, 저거 막내라고 버릇없이 키웠더니. 아이고 저런."

녀자는 아무 말 없이 조반을 차려 로인앞에 내놓았다.

"엉덩짝만한 땅이 하나 있어. 애들 엄마 살았을 때 사놓은 땅이. 내가 진짜 애들 키우멘서 그렇게 힘들어도 안팔고 냄긴 땅인디 그걸 내놓으라네. 허이구. 벼룩이 간을 빼가지. 그거이 팔아도 돈으로 얼마 하지도 않을거구 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내 죽구나서 즈이 오빠가 장례비용이이라도 보태게 할라고 여태 안건드린건데 그걸 달라니 어이가 없구먼. 하긴 즈이 신랑이 사업인가 뭔가 하다가 많이 말아먹은 모양인데 당장 천만원을 못구하면 살던 집 보증금이라도 빼야 한댜. 그럼 애들하고 세식구가 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어쩔겨. 허이구 내가 그렇게 말리는데 기어이 그넘한테 시집을 가더니. 저년 저 팔자 어쩔겨."

로인이 한숨을 내쉰다.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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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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