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24개월, 2살이다. 태여난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말을 쨀쨀 하면서 귀여움도 떨고 뼈있는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온집 식구가 24시간 붙어있는 요즘, 가정의 화목을 위해 오늘 아침에 디저트를 만들어봤다. 어른들은 커피 젤리, 아이는 과일 젤리다. 참고로 커피 젤리는 아이스크림이랑 먹으면 맛이 끝내준다. 집 부근의 어느 카페에서 카피 해온 레시피다.
젤리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미리 계량해놓고 있었는데 아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우유를 물에 섞어버렸다. 따로 계량할려고 옆에 뒀었는데 비례가 맞지 않아 버릴수 밖에 없었다. 나도 화가 났지만 아빠가 한발 앞서 소리를 질러버렸다. 다행이다. 내가 들을뻔 했던 쓴소리를 아빠가 들어버렸다.
아빠: ” 왜 쏟았어? 우유를 왜 물에 쏟았어?”
울이: ” 아빠 왜 소리 질러? 아빠 왜 자꾸 소리쳐?”
순간 우리 둘 모두 당황했다. 소리 지르는건 분명 안 맞다는걸 우리 모두 안다. 그런데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엄마: ” 우유를 물에 섞으면 돼요 안돼요? 기다렸다가 엄마랑 같이 만들자 했지? 울이가 이렇게 우유를 섞어버리면 우리는 우유도 물도 다 버려야 돼요. 비례가 안 맞거든요. 잘못했어요 안했어요?
울이: “응…”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그런데 바로 또 한마디 보탰다.
울이: ” 아빠 왜 소리 질렀어?”
아빠가 소리 지른거에 대해 잘 용납이 안되나보다. 아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둘은 화해했다.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하루하루 아이와의 대화가 즐겁고 놀랍고 신기하고 때론 무한반복에 지치기도 한다. 아빠는 이것을 꼭 적어야 한다면서 “울이 어록”을 적기도 한다.
아이의 말이 늘면서 우리도 현실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되였다. 2년동안 우리는 주로 우리말 즉 조선어로 아이와 소통했다. 아이가 금방 태여났을때는 한사람은 우리말, 한사람은 중국어로 얘기해서 아이가 첨부터 두가지 언어에 충분히 노출되게 하자고 호언장담했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실제로 위에 아빠가 적은 어록을 봐도 알겠지만 아이는 주로 우리말을 한다. 중국어는 간단한 단어만 조금 아는데 발음이 외국인이다. 그리고 일본에 살고 있다보니 비록 집에서는 거의 일본어를 접촉하지 않으나 아이가 “일본어”의 소리 자체에 익숙한건지 일본어 습득이 아주 빠르다. 엄마가 일주일에 한번 일본어 교실을 다니는데 수업을 받는 90분 동안은 교육시설의 보육사가 아이를 돌봐준다. 그런데 아이의 일본어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오늘도 아이한테 가사를 물어가며 일본어 동요를 불러줬다. 이제 어린이집 가기 시작하면 일본어 노출이 훨씬 많아질텐데 모국어 교육에 대한 근심이 찾아오기도 한다. 주변에 좀 큰 중국 아이들을 봐도 중국어가 자리 잡지 못하고 학교를 가면서 점점 일본어에 대체되고 있었다.
프롤로그에서 아이가 다양한 언어를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얘기했었다. 우리아이는 실제로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라고 있고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칠거라 생각한다. 이미 찾아온거 같다. 아이의 “잠자기” 3대 필수품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키라키라(きらきら/반짝반짝) 이불이다. 아이가 직접 이름 지어줬다. 별들이 그려져있는 아주 작은 이불이다. 아이가 태여나기 전 육아용품 장만할때 사둔 이불인데 쭉 덮고 있었다. 이처럼 아이는 가끔 일본어와 우리말을 섞어서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꼭 우리말을 배워줘야 한다 하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꼭 중국어를 배워줘야 한다고 한다. 손녀와의 소통을 벌써 걱정하시는거 같다. 어릴때일수록 언어 습득이 더 쉽고 빠르다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가? 언어 배움에 있어서 뭐가 제일 중요한 것일가? 우리의 욕심이 아이의 성장에 앞서지 않길 바라면서 생각을 끄적여본다.
요즘은 영어의 지위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여러 위챗 그룹이나 모멘트만 봐도 어떻게 하면 영어공부를 잘 시킬가 하는 부모들의 고민과 노력과 조급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또 영어권 나라에 살고 있지 않는 우리로서는 좀 더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어, 영어, 일본어… 과연 가능할가? 괜찮을가? 혼란스럽지 않을가? 그리고 부모인 우리는 좀 더 특수한 신분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 자라온 조선족이다. 우리말도 당연히 배워야 하지 않을가!
1. 나는 어떤 언어 환경에서 자라왔는가?
나는 남편과 달리 조선족이 집중된 연변자치주가 아닌 길림성의 어느 한 진에서 태여났다. 내가 살고 있는 진은 조선족 촌들이 몇개 있었지만 한족들이 집거하는 곳이다. 그래서 촌 안에서는 우리말을 사용하지만 촌을 벗어나면 중국어에 많이 노출되였다. 그래서 그런지 내 기억속에는 아주 어릴때부터 그냥 우리말과 중국어를 섞어서 했다. 소학교 4학년때쯤 여러 향진 농촌학교들이 없어지고 모두 한개 현 (지금은 시)으로 합병되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현의 소학교에 가게 되였고 그때로부터 기나긴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거의 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고 우리 모두 아주 자연스레 우리말과 중국어을 섞어했다. 우리가 전학갔을 때 거기 친구들은 중국어를 더 많이 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우리말 쓰기 운동”까지 벌였던 적이 있다. 즉 학교에서 중국어를 사용하면 반 점수를 깍게 된다는 규칙이다. 하지만 크게 효과를 본것 같지는 않다.
중학교 진입후 일부 과목의 선생님이 아예 한족이다. 초중때는 영어선생님이 쭉 한족이였고 고중에 가서는 영어, 수학 선생님이 쭉 한족이였다. 거기다 모든 참고 서적이 다 중국어로 되여있어서 사실 선생님들이 강의할 때도 중국어를 많이 썼다. 특히 수학은 우리말로 하면 잘 못알아들을 정도였다. 그때 다니던 학교가 학생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고중때는 한족반을 꾸리기도 했었다. 그래서 문과, 리과로 나뉘면서 리과반은 조선족, 한족 학생이 한반에서 같이 수업을 봤다. 어문수업만 한족학생들이 다른반에 가서 수업을 보고 기타과목은 모두 한반에서 수업을 봤기에 어문외 기타 모든 수업은 당연히 중국어로 진행할수 밖에 없었다. 문과반은 아마 학생수가 한반으로 합병하기에는 무리였는지 조선족반, 한족반으로 나뉘였다.
아직도 대학입시 첫날 수학을 치던 그날이 생생하다. 조선족 산재지역의 특수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한테 우리말/중국어 대조 시험지를 같이 나눠줬다. 그런데 뒤에 큰 문제 하나에서 등차수열/등비수열 번역이 잘못되였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중국어 시험지에 익숙되였고 우리말 시험지는 누구도 안보다. 하지만 우리말 시험지에 번역이 잘못된고로 우리에게 시험시간이 15분 추가되였다. 그냥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였다. 비록 안타깝게도 난 그 떡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분명 또 덕을 본 친구들도 꽤 많았을것이다. 그 해 난 지망한 학교에 붙지 못했고 한 해 더 굽어서(재수해서) 이듬해 북경으로 왔다.
우리말, 중국어, 응시영어에 이어 내가 선택한 전공은 스페인어였다. 졸업한후 나는 한국회사에 취직해서 다시 한국어 위주로 업무를 진행했고 그리고 2020년 만 31살의 나는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와 씨름하고 있다. 지금 자유로이 말할수 있는 언어가 몇개냐구요? 아쉽게도 우리말과 중국어 밖에 없다. 아마 몇년 뒤 일본어는 마스터할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여기에 살고 있으니까, 나에겐 필수이니까…
나는 초중때부터 배운 영어든, 대학 와서 배운 스페인어든 배우는 과정도 힘들었고 지금도 잘 구사하지 못한다. 배우는 과정에서 나의 동기나 방법이나 노력이나 다 원인으로 꼽을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나의 일상에서 필수가 아니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배운것마저 다 선생님께로 되돌려줬다.
나의 성장과정을 돌이켜보며 언어교육에 대해 든 생각은 하나였다.
바로 삶속에서의 꾸준한 언어노출과 일상의 필요성이다.
2. 우리 아이 말말말, 어떻게 배워줄것인가?
남편한테 물어봤다.
” 왜 꼭 아이한테 우리 모국어를 배워줘야 된다고 생각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이 민족 정체성 얘기, 언어우세 등등 이런 답변을 열거할줄 알았다. 참고로 남편은 민족, 언어 이런 부분에 대해 엄청 예민하고 또 흥미로워 한다. 근데 답변은 의외였다. 아주 1차적이였지만 나한테는 정답이였다.
“우리가 아이랑 가장 깊게 소통할수 있는 언어니까.”
그렇다. 아이는 모든것이 처음이지만 우리는 이미 뇌속에 박힌 모국어 외에는 다 외국어이다. 그 어느 외국어도 모국어만큼 나 자신을 표현할수 없다. 즉 엄마, 아빠의 모국어 만큼 아이와 깊게 삶을 나눌수 있는 언어는 없다.
언어 가르침에 대해 고민하면서 요즘 집어든 책속의 내용이 생각난다.
부모들이 언어의 환상속에 스스로 갇혀 아이를 외국어뿐만 아니라 모국어에서까지 멀어지게 한다. 부모들은 언어의 문화적 측면은 무시하고 무조건 많이 가르치려고만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무리한 시도는 성공을 거둔다 해도 부모자식간의 자연스런 관계를 해칠수 있다.
모험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봐야 할것이 있다. 낯선 언어로 대화함으로써 아이와 충분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하면 가족관계에 균열이 생길수도 있다는것이다. 아이와 언어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는것보다 중요한 것은 모국어로 애정을 공유하는것이다.
언어교육에 관한 말인듯 하지만 사실 육아의 각 방면에 모두 적용이 되는 말인듯 하다. 육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은 부모의 열정도, 욕심도, 계획도 아닌 같은 시공간속에서 아이와의 나눔이고 소통이다. 같이 손잡고 가는 동반자이다.
점점 머리속이 정리가 되는거 같다. 최소한 언어 가르침에 있어서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바로 엄마, 아빠의 모국어이다. 엄마, 아빠가 어릴때부터 배워온 우리말과 중국어를 배워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에 사는 우리로써 아마 많은 노력이 필요할거다. 현지 사람들고 함께하는 시간이 늘게 되면 아무래도 아이와 현지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아질수 밖에 없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현지의 주류언어가 가정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서 아이는 가족언어에 거부감을 보일수 도 있다. 그러다가 부모들까지 현지 언어로 대화하기 시작하면 가족언어는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더 지금부터 모국어를 굳건히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다중언어환경에서 혼란을 겪지 않고 선물처럼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영어에 대한 우려가 없는것도 아니고 스페인어를 배워주고 싶은 욕심이 없는것도 아니지만 언어의 1차적 기능은 소통이다. 부모와 아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것이 소통이 아니겠는가! 모국어를 통해 아이의 메타언어적 능력과 문화적 소양을 길러주면 이후 다른 언어를 익힐때에도 분명 큰 자산이 될것이다.
(* 메타언어: 어떤 언어를 기술하거나 분석하는 데 쓰는 말. [高階言語])
끝말: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성”의 삶을 선택했다. “다름”을 문제가 아닌 “가능성”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면 삶은 좀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가!
주저리주저리 생각들을 늘여 놓았는데 여러 선배맘들, 전문가들의 조언들을 기대하면서 글을 올려본다.
* 아이의 올 4월 어린이집 신청이 통과되였다.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고 아이가 어린이집 생활을 잘 적응하며 우리가 실전에서 무너지지 않길 기도한다.
Many are the plans in a man’s heart, but it is the LORD’s purpose that prevails.
PROVERBS 19:21
시리즈 링크
<독박육아 울이맘>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너무 공감합니다
공감해줘서 너무 감사합니다~ 혹시 어디서 살고 계시나요? 쉽지 않지만 다같이 힘내요^^
ㅋ 왜 소리질러? 이런 말을 24개월에?! 울이 천잰가바!
요즘 말문이 트였어요~ 오늘 아침에 눈뜨자 마자 ” 엄마 왜 성질 해…ㅠㅠ” 너무 안잔다고 연속 며칠 자기전에 내 성질 컨트롤 못하고 내버리고 맘 ㅠㅠㅠ 엄마 아빠 반성해야 되요 ㅠㅠㅠ
ㅋㅋㅋ 아침까지 기억하고 따지는게(?)너무 귀엽다😍 우리도 저녁에 등 다 끄고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면 힘들 날은 从前有座山을 몇번 반복하는지 모른다는 ㅋㅋ 😂 그래서 요즘은 그냥 같이 자버림 ㅋㅋ 아침에 새벽에 눈 떠지면 일어나고. 쉴수 있음 시간 아껴가면서 쉬어:) 가끔은 그냥 몸도 마음도 지쳐서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