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했던 "82년생 김지영" 이야기는 끝났다.
영화속 "지영이"는 드디어 복직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지영이는 우편함에서 책을 꺼내들고 웃으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지영이의 얼굴은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마냥 반짝이였다.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82년생 지영이" 는 그 이후 행복한 워라밸의 삶을 살아갔다고 엔딩신을 연장해본다.
(* 워라밸: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
평범한 "89년생 김지영" 의 삶은 한창이다.
작년에 집과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보육원이 신청됐다. 자전거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어도 감사할뿐이다. 근데 생각지도 못하게 코로나가 터지고 4월부터 들어가기로 한 보육원은 10월에야 가기 시작했다. 간지 두달만에 다시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져 그만 가게 됐다. 만 3살이면 집 근처 유치원에 갈수 있어서 그냥 올해 4월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4월에 아이는 드디어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코로나는 여전하지만 마냥 언제까지 집콕할수 없기에 다들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분위기였고 우리 역시 그러했다.
한달간은 유치원 적응기간도 있고 나도 7월초 일본어능력시험 준비하는데 매진하자 일자리 알아보는 일은 살짝 시험뒤로 미뤘다.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일년에 두번밖에 없는 시험이기에 빨리 쳐둬야 일자리 찾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생각이 앞섰기때문이다.
지금 아이는 유치원에 완벽 적응했고 일본어는 나를 훨씬 능가했다. 가끔 집에서 아빠가 중간에서 통역하는 광경도 펼쳐진다. 시험은 되는데 말이 안되는 이 언어학습의 패턴은 도대체 언제 깨질려나 싶다. 중학교때 영어 배우다 대학교때 스페인어 배우다 이제는 주부가 되어 일본어 배우다…한결같이 "혀가 굳다". 흐지부지 흐리멍덩하게 넘기는 나의 습관이 별 도전을 못받았을지도 모른다. 졸업해서 무난하게 한국회사에 취직했고 나름 인정 받으며 일해왔고 나름 좋은 대학 나왔다는 자부심도 깊은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것들이 내안의 빈 구석들을 완벽 포장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7월에 들어서서 4년만에 본격적으로 취직활동을 시작했다. "생존형 위기"를 느꼈다. 나는 그렇지 않을거라는 옛날에 들었던 건너건너의 이야기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가족비자로 체류중인 나는 주 28시간이내 근무라는 제한조건이 있다. 정규직 채용이 되어 워킹비자로 바꾸지 않는한 알바밖에 안된다. 그래, 알바라도 빨리 시작해서 말이라도 빨리 터졌으람 하는 생각에 편의점, 빵집, 마트, 파트 타임의 일반 사무직 …되는데로 응모했고 줄줄이 떨어졌다. 서류에서 떨어지고 전화에서 거절당하고 면접후 깜깜무소식이였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들도 꽤 많다.
한번은 편의점 면접을 4명이서 같이 봤다. 여름 방학기간이라 그런지 나 제외 기타 3명은 전부 리츠메칸 (사립대) 재학생이였다. 아줌마 파워? 없다. 일본어 술술 하는 대학생들 중간에 앉아 한시간 넘게 꾹 앉아있었던 자체가 어마어마한 정신력 소모였다. 관건적인 질문에 긴장감이 쫙 풀렸다.
점장: "각자 일할수 있는 요일과 시간대를 말해보세요"
나: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아이가 유치원 가 있는 시간), 주 28시간 이내 가능합니다."
기타 3명: "모든 요일, 모든 시간대, 주 28시간 이내 다 됩니다."
속으로 "점장님, 빨리 면접 끝내주십시오" 했다. 내가 점장이라도 왜 나를 뽑아야 하는지 이유를 댈수 없었다.
"Hello work" 라는 일자리 소개소 같은데 가서 상담도 해보고 일자리도 신청해봤다. 근데 상담원에 따라 내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한번은 사실 주 5일 근무를 요구하는 파트타임 자리라서 28시간이 넘어가고 비자가 해결안되는 상황이라 고용주 측에서는 별로 어려울거 같다고 말했다. 소개소의 상담원이 그래도 한번 이력서 받아보는게 어떠냐고 얘기를 해줘서 서류를 보냈다. 고마울뿐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날은 귀찮아 해야 한다 할까 엄격하다 해야 할가 그런 상담원을 만나 엄청 다운돼서 집에 온적도 있다. 고용주측에 전화 한통이면 되는 일 가지고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는 식으로 계속 추진해주지 않는다. "이건 제가 봤을때 무리입니다. 소개해줄수 없습니다." 는 식으로 아예 거절해버리기도 한다. "최선을 다해 일자리 찾는거를 도와주는것이 당신들의 일이 아닌가? 당신들에게 고용주 대신 일차 서류심사를 맡긴것이 아니지 않는가?" 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집에 와서 그 화를 남편한테 다 쏟아버리고 말았다.
금방 새로 오픈한 집과 유치원 근처 마트에도 면접보러 갔었다. 마트랑 음식점 같은 경우는 주말이 더 일손이 필요하기에 주말에 일할수 없다면 거의 떨어지는거 같다. 그래서 나름 "전략을 세워" 일요일은 일할수 없지만 다른 요일은 아침 가장 일찍인 시간대인 7시부터 일할수 있다고 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간절하다. 제발 됐으람 하는 마음이다. 거리가 가깝고 하루에 4시간씩 일하는거라 오후 시간대는 자유롭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것이 있기에 알바외에 다른 시간이 주어진다는건 감사하기 그지없다. 맨날 뻥튀기 먹다가 그날은 감동도 있었다. 점장님이 한 반시간 면접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킨 상이 하는 일본어는 알아듣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육아하면서 독학으로 4년만에 이렇게 말하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격려중 최고의 격려였다. 눈물 날 뻔 했다.
솔직히 국내에서 취직활동을 하는것과는 다른 점들도 많고 나에게는 여러가지 부족한 점들도 많다. 일본어가 아마 가장 큰 문제이긴 하겠지만 기본조건의 제한도 없지 않아 있다. 졸업생 채용은 졸업 3년 이내 땡; 커리어 채용은 경력단절 4년 주부에다 여기는 내 경력을 활욜할수 있는 자동차 메이커도 없음 땡; 파트타임 일반 사무직은 보통 최저 주 30시간 이상 땡.
이제 시작이다. 한달동안 여러가지 정서속에 묶여있었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지영이는 심리상담사와 이런 말을 했다. "이 벽을 돌면 출구가 나올거 같은데 다시 벽이고…" 좀 더 피부로 와 닿았다. 일본에 온 걸 후회한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나의 빈 구석들을 들여다보지 않고 포장속에 살았던것은 후회가 된다. 일본어 공부를 좀 더 많이 해둘걸…아마도 여태까지 터치되지 않았던 내면의 부분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중인거 같다. 그래서 온몸의 감각세포들이 거부반응을 보이는것 일지도 모른다. 말로 다할수 없는 수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매일 싸운다. 때론 억울하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고 때론 낙심하기도 하고 때론 초조하기도 하고…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멀쩡한 이력서" 를 보며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내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정서의 파도속에서 직시해야 할 내면은 뭘가? 뒤엎어야 할 가치관은 뭘가? 내가 채워가야할 빈 구석들은 뭘가? 가고 싶은 길은 뭘가? "89년생 지영이"는 결코 나쁘지 않은 과정들을 밟고 있는거 같다.
I will never leave you nor forsake you. Be strong and courageous.
— Joshua 1:5-6
시리즈 링크
<독박육아 울이맘>

“우린 아직 젊기에~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왕금년 노래로 응원을 보냅니다.
왕금년이 새로 나온 트로트 가수 이름인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근무경력 육아경험 포장을 뜯은 느낌…. 들이 어우러진 당신만의 길, 멋집니다… 道行之而成, 지금 당장 할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서 한발작씩 걷습니다, 길이 생깁니다
좋은 일도 생깁니다.
옛날글을 쉽게 다시 볼수 았게끔 만들어 준 시스템 덕분에, 7개월전에 놓친 글을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늘 여기 모든 건 내것같지 않은 괴로움이 베이스로 깔려있었죠. 내용속 문구로 인용을 하자면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 멀쩡한 이력서를 보며 회의감이 드는것도 웬만큼 공감되고요…그래도, 다 아는것 익숙한 것보다 새로운 걸 시도하고 도전하는데 새로운 희열이 있지 않을가 생각하며 응원해요! 이젠 이 글을 쓴지도 7개월 지났으니, 적든 많든 과거보다 성장된 혜당당님 모습도 상상되고요 내일이 있는 한 ,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또 생각처럼 안된다 할지라도 어쩔, 빌어먹을 세상이네 하면서 술한잔 할수 있는 핑게로 힘을 내봐요^^ 글 너무 잘 읽엇습니다
댓글을 글처럼 쓰다니 굿굿임다. 댓글과 대댓글을 쉽게 읽게 해준 시스템 덕분에 댓글을 잘 읽고 이렇게 또다른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아… 그리고 작가명 무언가 당돌하게(?) 업데이트 하였네요. ㅋㅋ 태어난 김에 살다니
대충 사는 척 하면서 내가 제일 열심히 살테니 세상 만만하게 보겠다는 의지가 틀켯군요 ㅋㅋㅋㅋㅋㅋ 대댓글이든 옛날글이든 쉽게 볼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한테 노벨상 주고 싶군요 ㅋㅋㅋㅋ
🏆 부단히 발전하는 우리나무 응원합시다!
잘 댓음 좋겟음다. 진심으로!!!!
오와 일본어로 반시간 면접!!!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 👏 👏 그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