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면서부터 나는 등 떠밀려 “떠도는 고향인, 이름아닌 이방인”이 되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많아야 서너 번 정도 고향에 잠시 들러간다.
고향이란 이름으로 마음속에 자리매김한 곳이지만, 떠나서 돌아올 수 없는 곳,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고향을 떠난 나는 정체성도, 거주공간도, 언어도 경계를 맴돌면서 고민도 있었고 희열도 있었지만, 중심부와 당사자의 입장에서 좀 더 자유로운 위치와 시각으로 고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또한 객관적인 사실이다.
자라나는 아이를 매일 지켜보는 부모는 아이의 뭐가 변했는지를 바로바로 감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가끔 만나는 지인들이 그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때가 허다하다. 이름아닌 이방인이 고향에 대한 인상도 그러하다.
먼저번과 다른 점, 내가 살았을 때보다 변한 점들을 익숙한 낯설음으로 짚어낸다. 그리고 이런 인상들은 엉기성기 널려있고 들쑥날쑥 스쳐지나는 즉시적인 반응과 생각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파편과도 같은 퍼즐조각들인 것이다. 얼핏 봐서는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가운데 숨어있는 미래의 실마리들일 때가 많다.
[조각 하나]
4월 초 버스를 타고 지나갔던 고향 창밖의 논벌에는 농민들이 일부러 놓은 들불이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땅을 할퀴고 있었다. 노랑과 검정의 경계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타들어가는 그 불의 전선이 그처럼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생명의 역동적인 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겨우내 마른 벼밑둥과 들풀이 타들어가며 땅에 거름을 더해주는 춤사위, 벌레들의 유충을 한번 더 걸러내는 자연 섭리의 세례 현장이었다. 이는 아직도 우리 고향의 농토와 농촌과 농업이 살아있다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했다. 매캐하게 호림방화원들의 마음을 졸이는 그 불이 그렇듯 새롭게 다가왔었다.
[조각 둘]
새로 개통된지 오라지 않은 연길서역이다. 고속열차가 도착하여 기차에서 내리니 시야 정면에서 장고춤을 추는 조선족 여인상과 함께 “연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한글 글귀가 조각되어 있었다.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갖다 대고 사진을 찍고 돌아보니 주위에 나처럼 이 풍경에 이끌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외지인들이 수두룩하다. 순간 이게 바로 이른바 “특색”이구나 하고 감이 팍 왔다. 그 어떤 세계적인 건축설계사가 세운 랜드마크보다, 오랜 역사를 뽐내는 명승고적보다, 어느 위인이 남긴 발자취보다도 전혀 뒤지지 않는, 남들이 따라할 수도 없는 고유이 “특색”인 것이다.
연길서역의 모습들
[조각 셋]
설에 오랜만에 만난 맏아매는 동시장에서 된장고추장과 막걸리 장사를 하고있는 상인이다. 고속열차가 통한 뒤로는 장춘에서 오는 도매상들이 늘었다고 얘기한다. 교통이 편해져서 당일치기로 와서 물건을 구입해 갈 수 있으니 그들도 장사하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는 것이다. 장춘-연길의 황복 고속철도편은 아침 5시 넘어서부터 저녁 7시경까지 20번이 넘게 오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시간 30분도 채 못된다. 굉장히 빨라진 대단한 변화다. 연변의 상품과 서비스 시장범위의 반경이 대대적으로 확대된 것이다.
장춘-연길 행 열차표(12306 사이트)
[조각 넷]
북경에서는 사람들이 주말에 자가용을 몰고 북쪽의 창평(昌平), 평곡(平谷)이나 회유(怀柔)로 나들이를 많이 간다. 두 시간 정도를 달리면 산 좋고 물 좋은 곳을 찾아서 여유롭게 여가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로 두 시간 반 정도의 거리면 장춘이나 길림시 지구의 사람들에게 연변은 주말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는 이색 볼거리 먹거리 휴가지로 개발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봄철 북경 평곡에는 “복사꽃 십리길(十里桃花)”이 주말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걸 보면서 얼마 안지나면 주은래 총리가 굽어봤던 용정 만무과원은 사과배꽃의 흰바다가 될텐데 하며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인문화, 브랜드화하여 세련된 모습을 찾아줘야 할 보물들이 참 많은데 말이다.
북경 평곡의 복사꽃 십리길
용정 만무과원 사과배꽃
용정 사과배꽃
이러한 봄불, 고속열차, 사과배꽃과 같은 고향인상들은 하나하나의 파편들이다.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과도 같아서 전체 그림이 무엇인지 잘 알리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예전 같으면 내 머리속에 잠시 나타났다가 아무런 빛도 보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잡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모바일 인터넷과 SNS 시대가 아닌가. 서민과 군중의 목소리와 눈길과 손짓이 엄청난 힘을 내고있는 시대가 아닌가. 한두 가지 인상은 아무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고향인”들과 “이방인”들이 한입 두입 모은 빅데이터는 그 가치가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빅데이터(大数据, Big Data)의 특징은 IBM에서 제기한 “5V”이론으로 귀납할수 있는데 이는Volume(용량), Variety(다양성), Velocity(속도), Veracity(정확성), Value(가치)를 뜻한다. 쉬운 말로 빠른놈 많은놈 이상한놈들이 전부 한 마을에 모이고 보니 재미있는 재간들로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더란 얘기다. 이 “놈들”이 바로 데이터고 이 “마을”이 바로 인터넷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을 통하여 전례없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나 자신의 의식주와 언행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인터넷에 “제공”하고 있다. 이로써 빅데이터 이론이 성립될 수 있게 된다. 빅데이터는 많은 양의 정보를 전제로 그 전체를 상대로 하여 모든 정보를 훑어보는 기술이다.
빅데이터 이전에 우리는 샘플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즉 100에서 10을 임의로 뽑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전체에 대해 분석하고 서술하였다. 이 경우는 확률로써 가치가 판단되어 확률이 높을수록 유리하게 되며 소수의견은 홀시되어 최종 서술에 반영되지 않거나 반영되더라도 과대 혹은 과소평가 되는 폐단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빅데이터 시대는 다르다. 100이면 100 모두 신속하게 훑어보고 전체를 전체 그래로 서술할 수 있게 된 것으로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 것이다. 오차 범위가 크게 줄며 극소수라도 가치가 있는 정보들이 빛을 볼 수 있게 된다. 최종 서술 자체가 굉장히 다채로워지는 것이다.
옛날 같으면 어느 이름없는 지렁이 꿈틀거림 같은, 글쓴이의 이런 넉두리가 누구에게 전해지기나 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여러 네티즌들과 공유되고 있지 않는가? 이것 또한 빅데이터 시대의 작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고향에 대한 생각들도 이런 맥락에서 보자는 것이다. 베이스캠프인 고향이 많이 비어가고 사람들도 유실되고 있지만, 오히려 밖에서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이방인”들이 고향에 대한 퍼즐조각들을 빅데이터로 모은다면 안에서 이불 덮어쓰고 아이디어 짜내기보다 훨씬 쉬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토론을 붙여보고 싶다.
많은 “이방인”들을 거느린 고향으로서의 특수한 위치는 거기에 걸맞는 대안과 소통 또한 요구되고 있지 않을까. 빅데이터 수집 및 그를 통한 아이디어 도출과 정책 창출에까지의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길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 또한 퍼즐의 중요한 한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떠올리면서.
원고: 2017.05.20
재고: 2019.04.21
“쉬운 말로 빠른놈 많은놈 이상한놈들이 전부 한 마을에 모이고 보니 재미있는 재간들로 의미있는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더란 얘기다” – 쉬운 문장으로 알아듣기 쉽게 빅데이터를 잘 해석하셨네요. 사실 잊고 살아도 되고, 돌아갈 필요도 없고, 이방인이면 이방인대로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살면 되는데, 이렇게 살아도 잘 살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생각나고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곳이 고향임다. 뭐 크게 해준것도 없는데, 어린시절의 기억들과, 타향에서 보고 배우고 느낀것들로 나의 고향도 이렇게 되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들로. 생활 습관이 바뀌고 우리 조선족들의 분포도 흩어져 있지만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 같슴다. 글에서처럼 우리들의 데이터가 하나 둘씩 기록되고, 또 꺼내보면서 사람들에게 이용되다 보면 나중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갈수 있고 연변이라는 고향도 정체성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믿슴다.
고향은 성장내면에 깔린 정서라서 지운대서 지워지는게 아닌것 같습니다. 그냥 마음속 푸근한 흙이고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