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맥락

앞으로도 나는 아마 음식에 있어서는 맛보다는 체험을 남기면서 살아갈듯하다.


이 글은 맛집 시리즈가 아닙니다. 몇년전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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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에 즐겨보던 한국예능프로그램인 “알쓸신잡“이 많이 밀려있었다. 밀린 일이 예능뿐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컴퓨터를 켜고 프로그램을 검색해 재생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전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그곳의 음식과 함께 잡학박사들이 술한병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예능이다. 그날은 김영하작가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온 영화감독들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려다가 장소가 불발이 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비싼 음식점에 연이어 대접을 받은 유럽감독들. 허나 그들은 예술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보다 날것의 경험이 필요할터였다. 그래서 데려간 곳이 중국집 즉 배달음식을 파는 짜장면집이었다.

프랑스감독이 바로 이곳이라고 하더란다. 한국영화에서 자주 나오는곳. 소주병을 본 이탈리아감독도 이게 바로 그 신비로운 녹색병이라고. 마시면 비밀을 이야기하는 초록병. 그쯤하여 김영하작가가 인상적인 한마디를 하였다. 

“사실 음식은 맥락이거든요.” 

그 한마디가 나의 마음에 남았다. 

김영하작가가 말한 음식의 “맥락(context)“이란것은 사회, 역사와 예술 등 문화를 관통하는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렇다. 북경에 가면 오리구이를 먹고 제주도에 가면 감귤을 먹는다. 중국에서 기차여행에서는 해바라기씨와 맥주가 빠질수가 없으며  한국인은 기차를 타면 삶은 계란에 사이다가정석이다. 사람들은 시애틀에 가면 스타벅스 1호점을 찾으며, 뉴욕에 가면 티파니매장 앞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유명한 티파니사에서는 결국 블루박스라는 브런치카페를 열었다. 

그 유명한 티파니블루. 여기 꼭 음식맛을 찾아 오는건 아니라는 점. 


넓은 의미에서 이상의 것들이 맥락이라면, 우리 모두는 “나“라는 개인과 “나“를 둘러싼 사람들 안에서 형성된 맥락이 있다. 나에게도 음식은 맥락이다. 

맛에 예민한 이들에게는, 우리엄마 말로 하면 “먹을줄 아는” 사람들에겐, 음식은 미식의 의미를 지니겠지만, 맛에 둔감하고 “먹을줄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음식은 많은 경우에는 그것을 먹을 때의 에피소드와 장소이고, 나눈 이야기고 배경음악이며, 함께 먹는 사람이다.

20대초반에 좋아하던 “4월이야기”라는 일본영화가 있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이 만든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다. 주인공 우즈키는 짝사랑하던 선배를 쫓아 홋카이도에서 도쿄에 와서 대학을 다니면서 자취생활을 시작한 여학생이다. 어느날 자신의 자취방에서 카레를 만든 우즈키는, 이웃에 사는 여자한테 와서 먹으라고 권하고, 눈빛에 경계를 한가득 담은 이웃여자는 그것을 사양한다. 

한참후, 거절한게 미안했던지 이웃여자가 문을 두드리고, 조금먹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카레를 달라고 말하고, 그녀는 우즈키의 테이블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맛있게 카레를 먹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과하지 않은 친절과, 신뢰와, 교제의 따뜻함을 느꼈다. 그리고 주인공의 소박한 자취방이 그 순간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했다. 

그뒤로 나는 혼자 카레를 먹을때면 여건이 된다면 늘  4월이야기의 이 장면을 찾아본다.

유학할 때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식당은 작지 않은 그 나라에서 음식맛으로 순위가 1위인가  2위인가 된다고 하였다. 그 이름에 걸맞게 확실히 학생식당의 밥은 근사했다. 매일 세가지 코스가 선택가능하고 채식하는 사람들을 위한 샐러드바가 따로 있었고 음료수도 오렌지주스부터 커피까지 대여섯가지는 되었다. 처음에는 매일 학생식당에 가는 시간이 신나고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살아온 습관이 있는지라 그런 음식들이 아무리 맛있어 봤자, 따끈한 쌀밥과 김치에 적응된 나의 위는 어느새 흔하디 흔한 밥에 김치를 최고의 식사로 생각하게 되었다.  

한달도 안되어 한인마트에 가서 10키로짜리 쌀을 사다놓고, 김치도 사다놓았다. 갓 지은 밥에 김치와 못생긴 계란후라이를 하나 얹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적당히 놓고, 비벼서 김으로 말아먹으면, 그 순간은 세상에 나와 이 족보없는 비빔밥만 있는것 같았다. 

밥먹을 때 드라마 보는건 혼자 살면서 생긴 습관인가 보다. 혼자 먹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같은 방법으로 밥을 비벼먹는 장면이 나오는, 이제는 다 외워버린 드라마를 켜고 밥먹는 동안은 그 부분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무슨 의식과도 같았다. 

보온이 안되는 전기밥솥인지라 한꺼번에 밥을 많이 지어서 남은 밥은 식힌 후 1인용씩 담아서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냉장고에 밥이 있는 그런날 저녁에는, 자면서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또 비빔밥을 해먹을 생각에 행복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혼자 있을때 가끔 그렇게 밥을 비벼먹으면서 20대의 그날들을 떠올려 본다. 

식당밥도 싫고, 집에서 해먹을 시간도 없을 때에는, 동네의 베트남 쌀국수집을 찾았더랬다. 메뉴판가득 읽기 어려운 발음으로 되어있는 음식들속에서 내가 늘 먹던 음식을 번호를 보고 찾아낸후, 그래도 음식의 이름으로 주문하고 싶어서 애써 읽어보면, 가게 주인은 너는 베트남사람이 아니잖아 라는듯한 말투로 fifteen하면서 번호를 읽어 주문을 확인했다. 그 가게에는 대부분 혼자 갔다. 그래서 지금도 “베트남쌀국수“하면, 혼자서 조용히 먹는 음식으로 느껴진다.


며칠전 대학친구가 택배를 보내면서 루이보스차를 함께 보내왔다. 말인즉 자기는 그 차의 향을 맡으면, 대학에서 우리를 가르치셨던 상냥하고 멋진 할머니 교수님이 생각난다는 것이었다. 

도착한 택배를 뜯고, 티백을 넣고 뜨거운 물을 끓여 머그잔에 따랐다. 어쩔수 없이 상투적인 표현을 써야겠다: 익숙한 차향은 빠르게 나를 십몇년전으로 데려다주었다. 냄새는 저장할 수 없는건데, 꼭 그런것만도 아닌것 같다. 진하고 여성스러운 그 향은 온전히 할머니 교수님을 떠올리게 하였다. 

그 외에도 음식과 관련된 기억들이 여럿 있다. 김밥에는 엄마의 젊은 날과 어린 날의 나와 동생이 있으며, 처음으로 오므라이스를 함께 먹은 아이를 기억하고, 돌솥비빔밥은 25년된 오랜 단짝친구와의 음식이고, 특별한 칠리소스를 뿌린 소세지를 딱딱한 바게트로 감싼 핫도그는 꼭 남편과 둘이 4대6으로 나눠먹어야 제맛일것 같다. 

뚜렷한 이런 기억 외에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소학교 대문앞의 불량식품, 간장물에 말아먹던 밥, 햄이 들어있던 도시락, 모두가 나를 키운 음식들이다. 

예능을 보다가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내가 기억력이 좋은건지 과거지향적인것인지 잘 모르겠다. 또한 기억은 조작된다고 하였는데,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내가 기억을 미화한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 나는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거나 온전히 내 자신과 함께 있었고, 그 음식들은 나를 위로하였고, 기억해야 할 것 천지인 나의 머리속에 별스럽지도 아닌 음식들이 지금까지 좋은 기억으로 영역표시를 한채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아마 음식에 있어서는 맛보다는 체험을 남기면서 살아갈듯하다. 

그래서 나에게도 “음식은 맥락이다”.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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