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잠시 내복을 팔던 친구를 위해 쓴 광고의 앞부분입니다. 나름 软文을 쓴다고 써봤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내복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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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에 음력설은 특별한 날이었다.
그믐날부터 가마솥에 물을 한가득 붓고 불을 때면 팔팔 끓어오른 물을 커다란 다라에 찬물과 섞어서 집안 식구들이 차례로 목욕을 했다. 가마솥 뚜껑을 열어서 솥 한쪽에 걸쳐놓으면 솥뚜껑 안쪽에서 흘러내린 물이 가마솥 옆의 납작한 냄비가마에 떨어지면서 치이익 내는 소리를 나는 참 좋아했다.
바가지로 물을 퍼서 다라에 붓는 소리, 가마솥 밑굽에 남은 물을 퍼낼때 바가지로 부득부득 긁는 소리, 물을 나르느라 나무 마루를 오가는 덜컹거리는 걸음소리, 데일까봐 저쪽으로 가라며 아이들은 가까이에 오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의 그 큰소리도 싫지 않았다. 이 모든 소리가 내게는 설이 오는 소리였다.
설날 아침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났다. 지금 기억하기론, 전날 뜨거운 물에 때목욕을 해서 그랬던지 아마 아이들은 세수도 생략했던 것 같다. 열살이 넘은 아이들은 이젠 거울을 볼줄 알고, 거울속에 비친 자기 모습에서 머리 모양의 비대칭 정도는 쉽게 봐냈던지, 자고 일어나서 붕 뜬 머리쪽에 찬물을 묻혀서 빗으로 정리하긴 했다.
설날 아침엔 의례 새 옷을 입었다. 사실 옷도 아니고, 고작 내복에 양말이 새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나프탈린 냄새였지만, 그때는 새 내복에서 나는 냄새를 참 좋아했었다. 그렇다면 우리 어머니는 새 내복을 씻지 않고 나에게 주셨던 것인가? 어른이 된 지금에야 이런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별탈없이 건강했으니 안씻은들 어떠리. 그 덕에 “새 내복 냄새”라는 좋은 기억이 나에게 남았다. 아무튼, 어른들은 모르겠는데, 동생도 새 내복 나도 새 내복을 입었다.세살 터울인 동생은 설날 빼곤 늘 나의 옷을 물려입었으니, 아마 설날의 새 내복은 동생한텐 더 날개옷처럼 느껴졌을것이다.
80년대의 내복은 거의 두꺼웠다. 색상은 주로 살색이 많았던 것 같고 패턴은 거의 동물이나 꽃 그림이 옷 전체에 무작위인듯 보이나 규칙적으로 찍혀있었던게 대부분인 것 같다. 요즘 내복처럼 온갖 색상이 가득하고 또한 아이 내복도 세련되게 곤색이나 검정 또는 차콜 등 어두운 색이 있었던 반면에, 그때의 내복은 무조건 살색이었던것 같다. 물론 30년 넘은 나의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
어릴때는 그렇게 새 내복을 좋아하더니, 십대가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새 내복은 커녕 아예 내복 자체를 거부했다. 그것 한벌 더 입는다고 살쪄보이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때는 그랬다. 맨살에 바지를 입어야만 내가 21세기의 대학생 같고, 고뇌하는 청춘인것 같았다. 기분이 좋은 날엔 기분이 좋으므로 내복을 안입고 마음이 더 가볍고 싶었고, 기분이 울적한 날엔 일부러 스스로를 더 춥게 굴어서 자학을 하기도 했다. 30대가 된 지금은, 눈이 내리기만 하면 알아서 찾아 입는다. 그러고보니 오늘이 립동(立冬)이다
나이가 2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주변에 조카나 친구 아이들을 보다보니, 아이들이 내복을 입었을 때가 가장 사랑스럽고 아이답고 예뻐보였다. 내복차림으로 자고 있는 모습, 아침에 일어나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와 엄마한테 안긴 모습, 내복입고 밥먹는 모습,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모습… 전부 다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어릴적 내복입은 모습도 어른들 눈에는 이렇게 사랑스러웠겠구나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2017.11 本文首发于个人公众号】
软文을 참 자연스럽게 잘 쓰신거 같슴다. 혹시 나중에라도 软文을 쓸 일이 있으면 찾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무튼 친구는 내복장사 한철 하고 “걷어치웠”습니다. LOL
어릴때 설날을 그렇게 기다렸던 이유중 새 내복은 단연 제일 중요한 사건이였던 같아요. 그리고, 절대 싰지 않고 비닐봉지 뜯은 순간 바로 입어줘야 제맛이죠. 그리고 친구분 써준 软文이라니 저도 친한 언니가 애기옷가게 했는데 한두번 써줬던 기억이 나네요, 재밋게 잘 읽었고, 기저지 빵빵 아기들 내복 사진 넘 귀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