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은 임인(壬寅)년. 寅인즉 범, 곧 호랑이 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는 그런 지혜를 속담에 담는 전통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호랑이는 범이다. 범을 호랑이라고도 한다. 다 우리말인데 왜 두 가지 이름이 있을까? '범'은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초기부터 꾸준히 자료들에 얼굴을 내미는 낱말이라 그 역사가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호랑이'이라는 말 역시 수많은 속담에 등장하는 걸 보면 역사가 짧은 것 같지는 않다.
일단 '호랑이'란 낱말은 한자어 '虎狼'에 우리말 어미인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다. 딱딱한 한자 만이 아니라 고유어 어미가 붙어있다는 것은, 일상의 삶 속에 상당히 녹아든 말임을 보여준다. 평소에 '호랑이'가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을 거라고 생각도 안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 될 것이다.
범 虎자와 이리 狼자의 조합은 중국측 문헌에도 일찌감치 등장하여 사나운 짐승이나 사람까지를 이르는 표현으로 지금까지 쓰이기 때문에 중국 경전과 사서들을 익히 읽어온 우리 선인들이 가져다 썼다고 한들 이상할 것이 없다. '승냥이'와 '원숭이'와 '고양이'도 비슷한 스타일의 말들이다.
그러나 사실, 호랑이의 가죽을 빌어서 오늘 얘기해 보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호'에 관한 이야기다. 혹여 '호'언長談이 될지 모르겠다.
한글로는 다같은 글자를 쓰지만 전라남도 방언에서는 '호랑이'라 쓰고 '호주머니'의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호랑이'는 '虎狼이'가 아닌 '胡囊이'이기 때문이다('호낭'이 '호랑'으로 되는 것은 'ㄴ-ㄹ'가 서로 드나드는 현상). 문자 그대로 오랑캐 주머니다. 호주머니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포켓'은, 胡인들이 입는 옷에 달린 주머니 스타일이다. (연변말에서는 '호주머니'를 '거르망'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를 해서 기회가 될 때 써보려 한다.)
<우리말샘> 뜻풀이
중국의 시각에서의 胡는 북방의 유목민들, 더 넓게는 자신처럼 교화되지 않은 중국 주변의 야만인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었다. '교양있다'고 자처하는 漢인들은 언행도 점잖게 느릿느릿 하다보니 (돈 있는 자들은) 많은 천을 들여 소매와 폭이 넓은 옷을 입었다. 그러다 보니 휴대품은 품 속에 품거나 소매 속에 넣거나 주머니를 따로 만들어 차는 것이 일반이었다.
도라에몽 만능 호주머니
그와 반대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胡인들에게 긴 소매와 넓은 폼은 활동하기에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였음이 틀림없다. 하여 그들은 바지를 입고 소매가 좁은 스타일을 선호하였고 주머니는 넣고 꺼내기에 편하도록 손이 바로 닿고 빨리 드나들 수 있는 식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천년 전의 힙합 VS 스키니 패션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오랑캐 胡라고 얕잡아 이르는 말이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중국은 주변의 호인들로부터 엄청 많은 문물들을 수입했다. 이는 역사기록이 있어서부터 여러 시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황제 가문에 유목민의 피가 섞였고, 개방적인 대제국을 열었던 당나라 때에는 주변 민족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문물들이 쏟아져 들어와 성황을 이루었고, 같은 시기 동아시아 해상무역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던 신라에도 유럽과 아랍의 문물까지 흘러들어 왔다.
이태백의 <소년행(少年行)>이란 시에는 다음과 같이 '호희(胡姬)'란 표현도 등장한다.
五陵年少金市東
銀鞍白馬度春風
落花踏盡遊何處
笑入胡姫酒肆中
예나 지금이나 클럽에는 금발에 파란 눈을 지닌 여성들이 매력적이었나 보다.
말 그대로 胡인이 황제 자리에 오른 원나라 때에는 고려가 오랜 항쟁 끝에 부마국으로 굴복하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인 물류망을 이룬 몽골제국의 인프라 덕분에 동서교류는 더더욱 번성. 원나라 수도 대도에는 고려풍이 유행하기도 하고 고려 개경에도 몽골 스타일이 유행하는 등의 현상이 있었다. 천년 전에도 강남 스타일의 붐은 있었던 듯하다.
이렇듯 시기도 지역도 다양하니 같은 胡를 써도 국적은 다양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말에는 그 흔적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외래어적인 이질감은 싹 사라진 채로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 증거는 이러한 말들이 '호(胡)'라는 한자음 그대로를 남기고 있으면서도 그와 결합하는 낱말들이 고유어인 점에서 보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胡가 들어가도 '호복(胡服)'이라고 모두 한자음으로 읽는 말은 이미 지금의 언어생활 속에서 사라졌지만, '胡주머니'는 전혀 이질감 없는 우리말로 아직도 쓰이고 있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이밖에도 어떤 말들이 있을까?
'호박'은 '胡瓜'다. '호과'라 읽지 않는 점에 주의하시라. 지금은 박이라 하면 제일 먼저 호박을 떠올리지만 옛날에 재래종의 박은 따로 있었나 보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온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 알이 크기가 박(瓠) 만큼 하다고 하여 성을 박(朴)씨라 하였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瓠는 '표주박 호' 즉 흔히들 조롱박이라 일컫는 박이니 재래종은 조롱박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조롱박은 크기가 별로 큰 느낌이 없으니 이 설화는 호박이 반도에 들어온 후에 MSG로 가미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호떡'은 '胡餠'이다. 이 단어가 어찌나 우리말스러웠던지, 글쓴이는 어릴 적에 말만 듣고 막연하게 호떡이 호박이 들어간 떡인 줄 알았었다. 달게 팥소를 두고 지름에 지글지글 노랗게 구운 떡인 걸 후에야 알았다. 이건 어머니가 구워주던 '패끼고물 찹쌀기름떡'이 아닌가. 고온의 기름에 튀기는 요리는 지금으로서는 KFC 할아버지 전매특허처럼 비춰질 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에도한국인들은 자주 '신발도 기름에 튀기면 맛있다'는 말로 중국요리를 이미지화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아직도 튀김요리를 '가라아게(唐揚げ)'라 부른다. 唐이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중국에서 유래한 요리임을 내세운 말이다.
호떡 이미지
이밖에 호밀도 '胡麥'이고 호두도 '胡桃'로서 다들 비슷한 맥락이다.
이른바 표준어에서 만이 아니라 방언에서도 '호'의 자취는 발견된다. 그 중 연변말에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호랑이가 있다. 바로 '호국시' 즉 '胡麵'이다.
'국시'에 대해서는 '국수'의 다른 방언형으로 간단히 설명된다. 물론 '국수' 자체가 고유어인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한자어 '면'에 대응하는 고유어 격으로 쓰이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다. 그러면 '호국시'라 불리는 이 오랑캐 국수는 무엇인가. 북의 <조선어대사전>에서는 '호국수', '호국시' 모두가 표제어로 올라와 있지 않았다. 함경도 방언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지만 말이다. 다만 개인적인 삶에서 체득한 바로는, 한국에서 말하는 '당면'이 바로 '호국시'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그 뜻풀이를 봐도 일치하다. 즉 '감자나 고구마 따위에 들어 있는 녹말(전분)을 가려 가루로 내어 그것으로 만든 마른국수'가 바로 호국시인 것이다. 녹말가루로 만든 음식 답게 식감이 쫀득하고 탄력있으며, 불려서 무쳐도 되고 끓여도 되고 쪄도 되고, 음식에 윤기를 더해주고 양념을 잘 머금어 맛이 일품이라 할 수 있는 음식이다. 호국시는 중국 전역의 요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면발의 굵고 가늘기와 납작하고 동그랗기가 제각기다.
난징의 명물 '鸭血粉丝汤'
중국 예능계에서는 '팬'을 뜻하는 영어 'fan', 'fans'를 소리 그대로 수입하여 번역하면서 '粉', '粉丝'라는 단어가 탄생되어 흔하게 쓰이고 있는데, '粉丝'(펀쓰)가 바로 면발이 실처럼 가는 '호국시' 종류다. 이 말로부터 파생되어 예능계 뿐만이 아니라 SNS의 팔러우를 비롯한 다양한 의미의 용어로도 쓰인다. ''涨粉'(팔러우가 늘다), '互粉'(맞팔하다), '骨粉'(뼛속까지 팬, 골수팬)과 같은 말들이 나왔으며, 파워계정과 왕훙과 라방(라이브 방송) 판매와 같은 새로운 형식의 비지니스들이 생기면서 '粉丝经济(팬덤 경제학)'와 같은 개념이 유행하기도 했다.
지금 중국의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한류 아이돌들 역시 '오랑캐 국수'(粉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보면 오랑캐 팬덤이 웬말이냐 할 지도 모르지만 자본주의 논리가 선행하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팬'과 '팬덤'이란 말도, 근대적인 예능스타 배출 시스템도, 팬덤문화를 만든 것도 모두 서양이니 오랑캐란 말도 별 틀린 말도 아니다.
생각해 보면 '胡'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다. 즉 중국인이 보기에 오랑캐이고 외부문물이면 胡를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말은 중국을 통하여 2차수입하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물론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면서 청나라마저 호인 즉 오랑캐라 힐난했던 조선시대라면 충분히 그런 '중화'와 '중국'의 심장을 지녔을 법도 하다.
진짜로 반도가 중심이 되어 외부문물을 일컬을 때 붙이는 말도 있었다. 바로 위에서 잠깐 나왔던 '당면(唐麵)'의 '당(唐)'이다. 대신 오랑캐 비슷하게 얕보는 심리는 일도 없이, 선진문물이라고 높이 치켜세우는 접두사다. 찬란했던 당나라 문화를 수입하면서 '당'을 붙인 것이다. 이를 반도를 거쳐 수입한 일본 역시 '唐'을 붙였지만 한자음이 아닌 ''가라(から)'로 읽었다. 이 '가라’는 한자로 '韓'으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가야(伽倻, 駕洛, 加羅의 한자표기)를 통해 2차수입한 방증이다.
'당(唐)'은 현대의 우리말에 '당나귀'와 같은 낱말을 남겨두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면, '당(唐)'의 시대를 썩 지난 후인 근대에 들어서서는 외부문물은 '양(洋)'으로 불리우기에 이른다. 양키 오랑캐들이 도래한 것이다. 오랑캐라 부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양인들을 따라 배우지 않으면 안되었다. 양말(洋靺), 양복(洋服), 양식(洋食), '양궁(洋弓)', '양배추(洋白菜)', '양버들(洋楊)', '양옥(洋屋)', '양장(洋裝)', '양주(洋酒)', '양파(洋蔥)'이 그 질풍노도의 흔적들이다.
호랑이에서 운을 떼서 어쩌다 보니 양의 이야기까지 이르렀다. 너무 멀리 오지 않았나 싶다. 매서운 마감추위보다 2년 넘어도 끝이 잘 안보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더 호되다. 따뜻한 '호국시' 요리 한 접시와 함께 몸도 마음도 녹여지는 새해 벽두가 되길 바래본다.
끝으로 호랑이 해 다운 이야기를 매듭을 지으련다. 조선족 청년들이 팀을 이루어 만든 위챗 이모티콘이 스토어에 출시되어 있다. 우리와 가까운 토템인 호랑이 '호야(Hoya)'와 곰 '고미(Gomi)' 캐릭터로 이미 3세트 나왔고, 바로 따끈따끈하게 선보인 사과배 캐릭터 '피리(Pilly)'도 있다. 아래 큐알코드(꾹 누르심)로 만나 보시고 맘에 들면 다운과 성원을 보내주시길.
호야
고미
고미 & 호야 얼굴형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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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면서: 말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어렵잖게 얘기가 오고갈 수 있는 화제로 되기 쉽다. 연변말이 연변사람에게 역시 그럴 것이다. 연변말을 파서 헤쳐보고픈 뜻을 “고고학”이라는 짧은 단어로 쓰긴 했다만, 어딘가 거창하고 딱딱하고 고리타분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GoGo學”이라는 표기로 가벼움을 더해보려고 했다. 가며가며 배워보자 라는 뜻도 살짝 곁들여졌을지도.
[연변말GoGo學] (2) 코로나 때문에 ‘매재기 캐고있는’ 우리

‘호랑탄재’도 궁금해집니당.^^
호랑탄재 < 호랑탄자 < 虎狼毯子로서 범가죽 무늬로 짠 담요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호랑나비도 같구요.
범 虎에서 턱 밑 살 胡를 거쳐 큰 바다 洋까지 멀리 가긴 갔슴다. ㅎㅎ
풀 썰이 모자라서 하하하하
잘 읽었습니다.
거르마이 풀이도 궁금해 집니다 ㅎㅎ
거르망은 아직 실마리를 못찾았습니다, 공부할게요 ㅎㅎ 도라쓰는 거의 완성돼 가는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