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BaI 글
“김홍신의 대발해”라는 책제목이 어망결에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 발해라. 발해. 그 바다 발해를 그래는가? 궁금한 나머지 필자는 책에 관한 소개를 펼쳐 보았다. 알고보니 이건 나라 발해에 관한 소설이었다.
나라 이름으로써의 발해는 매우 낯설다. 필자한테 익숙한 것은 바다 이름으로써의 발해다. 산동반도와 교동반도의 품에 안긴 듯한 바다의 이름이 발해이고, 그와 이웃한 바다는 황해이다. 이는 중학교 지리시간에 잠을 자지 않았다면 누구나 다 아는 중국 지리 상식이다. 모른다면 뛸데없이 지리시간이 수면시간이 된게짐. 지브롤터처럼 상당히 번지기 어려운 외국지명과 비교하면 발해같은 한자이름은 기억하기 헐했다. 물론 지브롤터는 비슷한 음인 쥐불알털로 쉽게 암기할 수 있다. 이런걸 후에 보니 련상기억법이라더구만. ㅋㅋ 이렇게 발해는 단지 한바다의 이름으로 필자의 머리속에 남게 되었다.
하지만 발해는 한 바다를 가리키는 이름에 그치지 않는다. 발해는 천여년 전에 존재했던 한 나라의 이름이기도 하다. 발해는 698년에 대조영이 나라를 세워서 부터 이백여년의 세월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도 한껏 떨쳐 그 당시의 당나라 사람들도 해동성국이라고 칭찬했다. 자기 외체의 모든 나라를 오랑캐 무리로 보는 과거 중국의 전통을 생각하면 뭐 지금도 이런 생각하는 행바이 없는 애들도 많다만 이는 결코 보통 칭찬이 아니다. 그것도 중국 문화를 가장 꽃피운 당나라 사람들이 말했으니 그 위상이 어떠했는지 가늠이 될 것이다.

전성기의 발해 강역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발해도 자랑스러운 우리민족의 력사라는 것이다. 다 알다싶이 서양사람들은 조선과 한국을 모두 코리아Korea라고 부르는데, 그 까닭은 두말할 것 없이 고려왕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그 뿌리는 더 깊은 곳, 고구려에 있다. 고려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면서 국호를 고려라고 정했다. 하지만 고려는 실질적으로는 고구려보다 신라를 계승한 나라로 보는 것이 리치에 맞다. 오히려 이름이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발해가 진짜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이다. 시간적으로 발해는 고구려가 망한지 삼십여년 밖에 안 되는 시점에서 고구려 별종인 대씨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반면 왕건의 고려는 아직도 이백여년의 세월이 흘러야 등장한다. 지리적으로 보아도 발해는 고구려가 차지했던 지역인 현재 중국 동북삼성의 대부분, 로씨아 연해주 일대, 조선의 평양 근처까지를 모두 차지했지만, 고려는 기본상에서 신라가 차지했던 지역을 차지했을 뿐이다. 물론 고려도 신라의 기초하에 북쪽으로 령토를 넓히기는 했지만, 여전히 조선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 만약 코리아Korea의 뿌리가 되는 고구려가 우리 민족 력사의 일부분이라면, 그 뒤를 이은 발해도 당연히 우리 민족 력사의 일부분인 것이다. 물론 고구려와 발해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다민족 국가였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연변땅에는 발해의 성터, 고분같은 유적들이 아주 많다. 발해의 초창기 수도인 동모산은 현재의 돈화, 중경 현덕부는 현재의 화룡, 동경 룡원부는 현재의 훈춘에 위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훈춘에서는 현재 발해고진(渤海古鎭)이라는 유람지를 한창 조성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오래동안 수도로 삼은 상경룡천부는 연변과 멀지 않은 목단강시 경내에 위치해 있다. 발해의 수도 노릇을 한 세월이 비록 길지는 않지만, 돈화(698~742년), 화룡(742~755년), 훈춘(785~794년)은 모두 발해에서 한때 수도였던 곳이다. 그만큼 현재의 연변지역은 발해의 핵심 지역이었던 것이다. 특히 두만강의 출해구가 위치한 훈춘은 일본으로 향한 중요한 바다길이었다. 천여년전의 발해인들이 배촨을나무배를 타고아직 비행기는 없으니까.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일본까지 진출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다. 물론 지금은 조선과 로씨야가 길목을 차지하여 바다길이 끊겼지만, 두만강을 리용한 바다길을 다시 뚫어보려는 움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특히 올해 5월에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두만강 출해구 문제가 언급되어 세상이 들끓기도 하였다. 또시들해진것같기도하고.
바다길을 가로 막은 철교
어쨌든고향이 훈춘인 필자는 이런 고향의 력사가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최뉴비꺼리 늘어났짐. 게다가 필자는 동경룡원부의 성터자리로 추측되는 팔련성촌에서 몇해동안 터전농사까지 짓고 있다. 발해의 력사가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우리민족의 력사하면 많은분들도 나만 무식할수는 없으니까. ㅋㅋ 필차처럼 조선이나 고려, 더 멀리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떠올리지만, 발해는 잘 모를 것이다. 한때 해동성국이라 일컬어졌던 과거의 위상에 비하면 발해의 존재감은 말이 안될 정도로 투명하다. 아무래도 발해가 이루어 놓은 것들이 모두 야률아보기(耶律阿保機)의 거란(료나라)에 의해 쑥밭이 되었고, 또 공식적으로 발해를 계승한 나라가 없어서 발해의 력사는 국가차원의 체계적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발해에 대한 사료는 워낙 적다. 게다가 발해력사에 대한 연구는 국제적인 정치문제가 될 수 있기에 그 연구 또한 매우 민감하고 제한적이다. 과거와 현실이 이렇다 보니 우리가 발해를 잘 모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당연한 일이다. 나를 비롯해서 여러분이 무식해서 그런게 아니꾸마. ㅎㅎ
우리 민족력사에서 마땅히 묵직한 한몫을 차지해야 할 발해가 이토록 알려지지 않은 것은 참으로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중국에서 현재 중국 령토 내에 존재했던 고구려, 발해와 같은 나라들을 모두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는 소위 동북공정(동북변강 력사와 현상 계렬 연구)을 추진하기까지 했다. 이 모든 것은 김홍신 작가의 신경을 단단히 자극했다. 한때 국회의원까지 지냈던 김홍신 작가는 발해를 제대로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발해와 관련된 사료는 물론, 발해의 주요 유적지까지 몸소 다녀 가면서 김홍신 작가는 발해에 관한 력사소설을 구상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10권 분량의 “김홍신의대발해(2007년)”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좀 오래된 책임.

김홍신 작가
력사소설인만큼 소설은 사료의 기록들을 뼈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 작가의 허구가 살점이 되어, 고구려가 당나라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무렵부터 발해가 료나라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250여년 간의 력사를 살아 숨쉬는 이야기로 그리고 있다. 당나라는 많은 고구려 유민들을 영주(지금 료녕 조양시)로 강제 이주 시켰는 데, 그중에 발해 시조 대조영도 있었다. 발해는 하늘에서 떨어진 나라가 아니라, 천문령에서 무측천 세월의 당군을 무찌르고 세워진 것이다. 발해는 한 귀떼기(귀퉁이)에서 쭈꾸리고 살살 게(기어) 있은 것이 아니라, 수륙으로 당나라의 등주성과 마도산을 공격하기 까지 하는 위세를 보였다. 이때는 아직 성당으로 일컬어지는 당현종 리륭기의 시대였다. 아직 양귀비의 품에 안겨서 당나라를 말아먹기 전임. 그리고 일본과 활발하게 외교활동과 무역활동을 벌이고, 당나라의 사주를 받고 덤비는 신라도 코피를 제대로 터지워 놓았다. 필자한테 이러한 사실들은 다 새롭고 흥미로웠다.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발해 력사의 전반적인 흐름과 주요 사건들을 알리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삽화를 조선족 출신인 주훈 화백이 그렸다는 점도 흥미로운 사실이다.

주훈 화백의 삽화
하지만 작가는 소설에서 자신의 민족주의적인 생각을 너무 힘주어 내비치는가 하면, 또 없어도 될 듯 싶은 군더더기를 너무 많이 포함시켰다. 소설속에는 당나라 력사에 한 획을 남긴 왕모중(당현종 측근), 고선지(당나라 명장), 리정기(당나라 후기 번진) 같은 실존 인물은 물론, 허구한 고구려 유민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고구려에 대한 애착이 넘쳐나고 발해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고구려 후손인 리정기가 중원의 일부(산동지역)를 차지하고, 그의 아들 리납이 제나라까지 일떠세웠으니 이 얼마나 장한가? 고구려의 피는 역시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중에서도 이미 거짓으로 판정된 환단고기나 가림토 문자를 발해에서 이룬 업적으로 꾸민 것은 필자 생각엔 무리수인 것 같다. 그리고 뭐 악인으로 연출되는 나그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녀자를 밝히는 데, 또 그중에서도 고구려나 발해 녀인이 세상에서 가장 곱다면서 꼬집어 말한다. 심지어 안사지란(安史之亂)의 주인공 안록산은 발해 녀인의 미인계에 푹 빠져서 반란도 일으키고 황제로도 등극하는 아주 헤재비꼭두각시가 되어서 활개친다. 려포를 환장하게 한 초선(貂蟬)이 울구 가짐. 그리고 아주 사실적으로 그린 남자 녀자(때론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한권에 한번 정도로 나오기도 하고, 옥문이 어찌구 옥근이 어찌구 하는게 순진한 필자는 무슨 소리하는가 했잼도. 글쎄 뭐 이런 부분을 재밌게는 봤다만, ㅋㅋ, 딱딱한 설교투의 문장이나, 금강산 려행 감수를 적은 장황한 편지를 쫙 늘여 놓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부분들 때문에 “김홍신의대발해”는하드 순수하지 못한 사랑 이야기 자주 나왔글래 망정이지, 아님 내 끌쎄 북조선 력사소설 보는가 했스꾸마. 민족적인 관념에 너무 치우쳐졌고, 짜임새도 조금 엉성한 것이 필자로써는 조금 아쉬웠다.
공동체니 뭐니 하면서 식민지 세월을 방불할 정도로 민족문화가 많이 위축되고, 얼마 가지 않아서 소멸하지 않겠냐는 걱정까지 해야 하는 시국이다. 이런 암담한 현실 속에서 읽게 된 “김홍신의대발해”는 필자의 마음을 진작하는 조그만한 위로가 되어준 것 같다. 아니면 중반부 부터 다소 지루하기 시작한 “김홍신의 대발해”를 완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가 소설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 “웅혼한 발해의 기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친다.

발해가 남긴 기록이 적어서 그렇지 동북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던 같슴다. 일본 최고의 고전인 源氏物語에서 高麗에서 온 사람이 주인공의 얼굴을 보고 예언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말하는 고려인이 사실 발해에서 온 사람이었음다. 고려는 긴 시간 동안 대명사처럼 썼던 호칭이라서. 일본과 발해 사이의 해로 무역이 활발했읍지.
흥미로운 사실이꾸마~ㅋㅋ~언제 유적지를 한번 제대로 찾아봐야 겠스꾸마~
한국에서는 이 시기를 그래서 남북국으로 봐야 된다는 설도 상당히 주류적인 관점인 걸로 암다. 옛날에는 그냥 통일신라라고만 보다가. 근데 이른바 남북국 설두 중국과 일본에 남북국 시기가 있는 것처럼 기존 틀을 갖다 맞춘 느낌도 있짐. 국가 간 역사문제가 현실 정치에 반영된 측면도 있고.
조선족 화백이 그린 그림두 사기남다에
깨알“배촨”으로 훈춘인의 근본을.
그걸 또 알아 보셨슴도?ㅋㅋㅋ
발해에 대한 讲座 干啊?
아슴채케서리, 크게 아는게 없스꾸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