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한국에 온지 8년이 되여간다. 8년전, 다섯 살되는 아들애의 야들야들한 볼을 손가락을 뻗어 가볍게 문대고, 울컥 가슴속에서 북받치는 뜨거운 것을 누르며 그는 자꾸만 눈물을 훔치는 안해를 외면하고 출국길에 올랐다. 딱히 배운것도 가진것도 없는 그와 같은 사람에게 한국행은 잘살기 위한 유일한 길이였다. 3년, 딱 3년만 벌고 돌아가자. 그 비행기안에서 그는 그렇게 다짐했다. 

그는 한국에 나와 닥치는대로 일했다. 고기집 숯불피우는 일부터 시작해서 노가다판에서도 일해보고 목욕탕 때밀이도 했다. 돈이 벌어졌고, 대출을 끼였지만 그렇게도 안해가 소원하던 아파트를 사게 되었다. 예정했던 3년이 되었을때의 생각이였다. 이제 2년정도만 더 벌어서 종자돈을 만들어 손끝이 여문 안해와 함께 작은 음식업이라도 하면 세식구 살아가는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가 그렇게 희망에 부풀어있던 그즘, 어머니가 풍을 맞았다. 병원치료를 거쳐 목숨은 부지했지만 어머니는 일어나지 못했고, 누군가의 시중이 필요한 처지가 되었다. 그런 어머니를 맡길곳은 요양원밖에 없었다. 안해는 아무 말이 없었다. 특별히 안해가 나빠서가 아니라 남편도 없는 집에서 시엄마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노릇은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해가 아니라 립장을 바꿔 그였다고 해도 어쩔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을것이였다. 그는 안해를 나무라지 않았다. 다만 요양원에 맡기고, 좀 더 한국에 머무르며 돈을 버는 길을 택했을뿐이였다. 

그리고, 지난 봄, 그가 막 이제는 정말로 돌아갈수 있을 것 같다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려던 그때, 큰누나가 시장에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살수는 있는거요?”

그는 수화기 너머 떠듬거리는 매형에게 다만 그렇게 물었었다. 

“잉. 글세. 살기는 살갰지만두 우리사 구차한께 돈이 문제지.”

매형이 더듬더듬 맹인이 물건을 더듬듯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돈은 걱정말고, 내가 돈 보낼테니 누나만 살리오.”

그는 안해와 상의없이 갖고있던 전부의 돈을 큰누나의 치료비로 보냈다. 

큰누나는 사흘만에 깨여났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상반신과 하반신 신경이 모두 마비되였고 혈압이 오락가락해 언제든 다시 출혈이 올 위험이 있다고 했다. 큰누나는 중환자실에 오랜 시간동안 입원했다.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되고 안해는 수화기 너머에서 한동안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 그가 긴 침묵에 숨이 막힐때쯤 안해는 습기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당신, 글세 형제간에 어려울 때 도와야 되는건 맞지만, 죽고 살때는 물론 형제간이 최고라는 것 쯤은 나도 알아요. 알지만, 참. 내가 엄청 나쁜 사람같잖아요. 이렇게 말하니.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전 재산을 내놔야 했어요? 그집도 돈이 어느정도는 있을거 아니예요? 남편이 아무리 모자라기로서니 그래도 남편인데 마누라 구하는건 남편이 하고 동생은 그냥 곁에서 팔짱을 껴서 부축하는 정도로 하면 안되는거였어요? 형님 봐요. 같은 형제간이고, 어찌보면 여동생이 남동생보다 더 애틋할텐데 딱 오천원 보내고 그걸로 끝이잖아요. 형님네 우리보다 세배는 더 잘사는데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은 부자예요? 기어이 당신이 다 떠안아야 되는거였어요? 그럼, 우리는 언제 함께 살고, 언제 영업을 시작한대요? 자리도 알아보고 희망을 잔뜩 품고 있는 나는 어쩌라구요? 빈이, 이제 아버지가 있어야 하는 우리 주성이는 또 어쩌구요? 당신, 생각이 있는거예요? 없는거예요? 아니면. 독한거예요?

안해는 막힌 수문이 열리듯 한꺼번에 그렇게 마구 쏟아붓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가 벙어리처럼 입을 닫았다. 그는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안해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을 때. 한숨을 쉬였고, 울음소리가 가늘어지다가 안해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리자 핸드폰을 움켜쥐고 창가로 다가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하늘은 비가 오려는 듯 그의 마음처럼 잔뜩 흐려있었다. 검은 구름이 잔뜩 껴있었고,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는 짐승이 길을 건너듯 창문너머로 흐린 밤하늘을 기웃거렸다. 

안해가 어찌 알것인가.

밖에 며칠째 눈이 내리던 겨울이였다.

그와 두 누나는 구들목에서 각기 엿을 담은 사발을 다리사이에 끼고 있었다. 며칠전, 그의 엄마는 겨울동안, 입이 심심한 애들의 군것질거리로 엿싹을 고아 옥수수가루로 엿을 달였고, 더러는 굳혀 깨먹을수 있게 판대기엿을 해서 밖에서 얼리고 꽃밥통으로 하나는 물엿을 만들었다. 달달한 물엿을 숟가락으로 떠서 감아올려 먹는 그 맛은 별미였다. 노상 그러하듯, 귀한 아들인 그한테는 파란 줄이 간 커다란 사기사발에 반도 넘게, 두 누나는 자그마한 공기에 하나씩 엄마는 퍼주었다. 

분명히 차별이지만 그의 집에서 이는 당연한것이였다. 

남존녀비사상이 투철했던 그의 집에서 그는 정말로 귀하디 귀한 삼대독자였다. 딸들이 태여 났을때는 곰방대를 두드리며 돌아앉았다는 그의 할아버지가 그가 태여났을 때, 시누런 황둥개 한 마리를 잡아 온 동네를 다 불러 잔치를 했다니, 그의 가문에서 그의 존재에 대한 가치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엄마와 아버지는 한치도 그에 대한 대접을 어설프게 하지 않았다. 밥을 먹어도 그는 아버지와 겸상으로 상을 받았고, 그의 어머니와 두 누나는 땅바닥에서 밥소래에 담은 밥을 같이 퍼먹고 남은 반찬을 먹었다. 그건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할만한 당연한 풍경이였다. 맛있는 것은 먼저 그에게 차려졌고, 혹여 친척들의 결혼에 집에서 례단으로 받아오는 천조차도 그의 엄마는 가장 먼저 그를 데리고 동네에서 하나뿐인 학교 한족선생 부인이 하는 복장집에 가서 옷을 지어 입혔다. 그와 누나가 싸우면 이유야 어떻든 혼나는건 항상 누나쪽이였다. 언젠가는 작은 누나가 집이 빈틈을 타 그를 확 바닥에 밀쳐놓고 주먹으로 쥐여박아 코피가 터진적 있다. 그 일로 작은 누나는 엄마한테 비자루 손잡이가 터지도록 맞았다. 

배려가 오래가면 당연한게 되는건가. 

그는 이 모든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남자니까, 아들이니까 당연히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햇다. 엄마 아버지의 눈먼 사랑은 그를 자사자리하고 안하무인의 소년으로 만들어갔다.

그는 그날도 확연히 자기몫보다 적은 누나들 몫의 엿을 확인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엿을 한숟가락 떠서 길게 드리우는 엿가락을 숟가락으로 친친 감아 입에 넣었다. 

그때였다.

“니네 엄마 있냐?”

아래동네 사는 중국인 황씨가 문을 열고 들어선 것은, 황씨는 친척들이 놀러와서 추렴하려고 닭을 사러 왔다고 했다. 

“여기 앉아 쪼매 기다릴게 응. 아따 근데 야. 니는 아도 쪼고만게 무슨 엿을 누나들보다 더 마이 먹는다냐? 이집에서 아들이 한나라고 너무 곱게 키우는게 아인가 모르겠다야.”

굳이 중국인이라 밝히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정도로 조선말을 잘하는 황씨는 혀까지 끌끌 차며 그와 누나들을 보았다.

“아가야, 엿 좀 먹어보자.”

황씨가 넙쭉 그를 향해 입을 내밀었다. 

“안돼요.”

그는 엿사발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누군가와 나누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좀 잡수세요.”

큰누나가 자신의 엿공기를 가리키며 황씨에게 권했다.

“아니, 난 딱 니 동생걸 먹어야겠다. 이 집 귀한 아들래미 주는 엿을 먹어사 쓰겠다. 니는 뭐 니 먹을 것도 모자라는구나머. 니 동생은 저걸 혼자 다 못먹을 것 같으니 내가 한숟가락 얻어먹자꾸나.”

황씨는 엉뎅이를 옮겨앉으며 얼굴을 내밀어 바싹 그의 코앞으로 다가앉았다. 

“아저씨 한숟가락만 주자.”

그때였다. 큰누나가 찬장서랍에서 깨긋한 숟가락 하나를 꺼내들고 그의 앞에 다가왔다. 얼핏 쳐다본 누나의 눈빛은 단호했다.

“안돼.”

그는 엿사발을 꼭 끌어쥔채 단칼에 거부했다.

“언니, 내비둬, 그눔 자식이 엄마 아부지가 아들이 하나라고 오냐오냐해서 누구하고 나눠먹을줄도 모르는 놈인걸 몰라? 괜히 또 빌빌거리고 울면 우리만 엄마한테 혼날건데 그냥 내비둬. 아저씨. 우리 얘. 원래 이래요. 얘건 아무도 못얻어먹어요. 아저씨가 얘를 몰라서 그래요.”

둘째누나가 황씨아저씨를 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바로 그 찰나, 큰 누나가 한손에 단단히 거머쥔 숟가락으로 그의 엿사발의 엿을 향해 푹 찔렀다. 순간적이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들고 있던 엿사발을 추켜들고 누나의 머리를 내리쳤다.

순간, 검붉은 피가 누나의 머리에서 분수처럼 솟구쳤다. 피가 누나의 얼굴에 붉은 꽃잎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글쓴이 하몽.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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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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