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ㅣ연희동 박사

‘단군신화’에 대해서 다들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비록 그것이 ‘신화’라는 이름을 가질지라도, 후세사람들이 자기 력사의 원시조에 대하여 우러르는 마음에서 력사 사실을 가미하여 ‘신화’를 지어냈다는 것으로 리해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시조에 대한 신화를 지어내는 것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한 세기 전의 력사적 환경에서 이것을 신화로만 보거나, 축소 해석해온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문헌, 고고학, 민속학, 어학 등 측면에서 그것이 력사적 실존이라는 것으로 증명되여오고 있다.  

여기서 ‘단군신화’의 내용을 잠간 소개하기로 한다.

“위서(魏書)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였다.
또 고기(古記)에서 환웅이 세상에 뜻을 둔 것을 그의 아버지 환인이 알아 그에게 허락하여, 환웅이 삼위태백 신단수에 내려왔다 ……
당시 범 한마리와 곰 한마리가 동굴에서 사람되기를 빌었는데, 곰이 마늘(한자로는 蒜, 蒜을 마늘 곧 大蒜이 아닌, 쪽파 즉 小蒜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과 쑥을 먹고 해빛을 보지 않고서 결국 사람으로 되였다.
사람으로 변한 곰은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 단군왕검을 낳았는데 …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이름을 조선이라 칭하였다. 그후 도읍을 다시 궁홀산(弓忽山)이라고도 하는 백악산 아사달에 옮기였다고 … 하였다.”

단군신화를 기록한 현존하는 문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이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현존하는 조선력사서의 쌍벽으로 전해져왔다.  

이중 ≪삼국유사≫ 를 말하자면, 중 일연(一然)이 1270년 쯤에 다 쓴 것이다. 독일 뮌헨대학 고고학을 전공하여 1934년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김재원(金載元, 1909~1990)은, ≪삼국유사≫가 고서를 인용한 점을 미루어 단군신화와 관련된 내용도 다른 고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그 내용에 ‘위서’(魏書), ‘고기’(古記) 같은 말이 있는데서 이러한 추측이 가능케 하였다.

<삼국유사> 단군신화 관련 부분

하지만 의심되는 점은 실제로 ≪위서≫에는 단군신화와 관련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은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위서≫가

1) 후날에 많이 개작하게 되여 본래의 면모가 많이 사라졌고
2) 중국의 삼국시기에 위나라가 있고 탁발씨(拓跋氏)의 위나라도 있거니와, ≪위서≫도 이에 따라 여러 종류 있다

고 하였다.  

그러면 ≪위서≫와 함께 나온 ≪고기≫는 어떤 책인가? 김재원은 ≪삼국유사≫ 안의 ‘고구려편’에 ‘단군기’(壇君記)라는 말이 나오는데, ‘단군신화’에서 말한 ‘고기’가 바로 이 ≪단군기≫라는 책인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삼국유사≫뿐 아니라, 리승휴(李承休)가 1287년에 써낸 ≪제왕운기≫(帝王韻紀)에도 단군 관련 내용이 확인된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時有一熊一虎 … 願化爲人’의 이야기 대신, 그 10 년 뒤의 ≪제왕운기≫에서는 ‘令孫女飮藥成人身’의 내용으로 기록되였다. ≪제왕운기≫의 이러한 내용은 다시 조선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옮겨졌다.  

김재원의 ≪檀君神話의 新硏究≫(정음사, 1947)에서는 ≪제왕운기≫의 내용보다 ≪삼국유사≫의 내용이 더욱 원래 내용에 충실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여러가지 설과 함께 이야기 속에 여러가지 이름이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단군왕검’에 대한 뜻풀이도 여러가지가 있다. 뜻밖에도 뜻풀이를 알아내기 위한 과정에서 오히려 그때 당시 어떠한 고유한 글자가 사용되지 않았을가 하는 내용을 접하게 되였다.  

글자 사용의 력사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김인호의 ≪조선인민의 글자생활사≫(사회과학출판사, 2005)에서는 경상남도 울산 천진리와 대곡리 일대(아래 지도 표시된 곳)에 그림글자로 판단되는 암석 그림이 있다고 하였다.

구글 지도

출처: 김인호(2005)

입으로 전해진 말의 제한성, 곧 말하고 나면 바로 사라진다는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글자가 생기게 되였다. 처음에 글자는 모두 그림처럼 되여있어서 한폭의 그림이 바로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가 된다.  

만약 그것이 더 발전하게 되면 모양본딴글자(상형문자)로 된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량하리(아래 지도 표시된 곳)에 위 그림글자보다 더 진전된 글자 형태인 모양본딴글자가 확인되였다고 한다.

구글 지도

출처: 김인호(2005)

모양본딴글자가 다시 일정한 과정을 거치면 곧 단군 당시에 쓰이였던 신지글자의 시초적 형태로 된다. 조선왕조 중기의 책인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는 신지가 사냥을 갔다가 사슴이 뛰여서 모래불에 남기는 발자국을 보고 글자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글자의 시초로 되였다는 전설이 기록되여있기도 하다.  

신지글자로 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완성 과정을 거쳤다고 보고있다. 

‘신지글자’라는 말을 지금말로 높은 사람의 글자, 큰 사람의 글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문헌과 유물을 통하여 신지글자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 단서를 찾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수집한 신지글자의 수는 모두 80여개 정도이다. 

≪녕변지≫(寧邊志)에서는 신지글자의 모양에 대하여 몇가지 보여주었다. 

출처: 김인호(2005)

이러한 글자는 고려때까지 쓰이여왔다는 설이 있는데 학자들은 신지글자의 수나 모양으로 보아 소리를 적는 글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발견된 글자수가 적다고 하여 그 글자가 소리글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점, 신지문자가 존재하였다면 훈민정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이러한 글자가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소리를 적기에 편한 글자였다면 왜 굳이 후날에 가서 쓰기 불편한 한자를 택하게 됐는지 등과 같은 문제들은 남는다.  

한자가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쯤 전해왔는데, 한아비들은 한자 그대로 글을 쓰기도 하고 이와 동시에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서 우리 말을 적는 방식을 고안해냈다. 앞의 것은 그냥 옛 중국에 쓰인 한문과 마찬가지이지만 뒤의 것은 리두(吏讀)식표기라고 한다.  

리두식표기는 적는 방식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누인다.  

한가지는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우리 말을 적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함경도지역의 ‘개마고원’의 ‘개마’(蓋馬)와 ‘압록강’의 ‘압록’(鴨綠)이라는 말이 곧 이러한 방식으로 적은 것이다.  

‘개마고원’의 ‘개마’가 ‘검다’의 ‘검’과 관련된다. ‘개마’라는 말을 쓰기 전의 조선말에는 아직 받침이 없었다. 지금의 ‘검다’라는 말이 당시에는 ‘거머’라고 말했는데, ‘蓋馬’라는 한자가 곧 당시 조선말의 ‘거머’라는 소리를 표기한 것이다.

그리고 ‘압록강’(鴨綠江)의 ‘압록’(鴨綠)은 실제로 중국어가 아닌 옛 조선말의 소리를 리두식표기로 적은 것이다. 옛 조선말에 ‘크다’를 뜻하는 ‘아리’라는 말이 있다. ‘鴨綠’이라는 한자는 곧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조선말의 ‘아리’를 표기하는 것이였다. 따라서 ‘압록강’은 지금말로 말하자면 ‘큰 강’이라는 뜻이다.  

다른 한가지는, 한자의 뜻을 빌려서 우리 말을 적는 방식이다. ‘판문점’(板門店) ‘판문’(板門)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오래전까지 자기의 고장을 ‘판문’ 대신 ‘널문’이라고 불렀다. ‘판문’의 ‘판’이 천자문에서 ‘널빤지 판’자로 되여있다. 말하자면 ‘板’은 ‘널’을 표기하기 위하여 한자의 뜻을 빌린 것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사이트

또 다른 한가지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배합하여서 적는 방식인데, ‘단군왕검’ 중 ‘왕검’(王儉)의 표기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왕검’을 해석하기를, 그것이 ‘임금’의 옛말인 ‘니미거머’를 표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설에 의하면, ‘王儉’의 ‘王’자는 ‘니미거머’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먼저 한자를 가져다가 그 뜻을 보여준 것이고 그 다음에 ‘니미거머’의 말소리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위하여서 다시 추가로 ‘儉’이라는 한자의 소리를 빌려서 ‘거머’의 말소리를 제시해준 것이다. 즉 ‘王儉’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임금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王’자 부분과 임금이라는 조선말의 소리를 추가로 제시하기 위한 ‘儉’자 부분으로 되여있다.  

어떤 사람은 한자 ‘王儉’이 한자 ‘儉’에서 온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즉 원래 ‘儉’이 있었는데 ‘王’자와 ‘’자의 글자체가 비슷하다고 하여서 ‘’이 ‘王’으로 와전되였다고 본 것이다.  

‘왕검’은 ‘임금’이라는 뜻이거니와, ‘단군’(檀君)에 대해서 최남선이나 김재원은 그것을 ‘하늘’을 뜻하는 ‘텡구리’로 해석하고 있다.  

‘텡구리’는 터키어나 몽골어에서 하늘을 뜻한다. 특히 몽골어에서는 ‘텡구리’가 ‘巫’를 뜻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이것은 우리 말의 전라도 방언에서 ‘무당’을 뜻하는 ‘당골’의 기원이기도 하다. 민간신앙에서 가장 높은 신을 뜻하는 ‘대감’이라는 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듯 하다. 샤머니즘을 중요시하는 단군 당시의 최고 통치자는 곧 무당으로서, 군주와 무속인이 일체(一體)를 이루는데, 이러한 견해를 종합하면 ‘단군왕검’은 대체로 무속과 관련된 ‘하늘임금’으로 리해된다. 

‘단군왕검’의 관련된 해석은 이외에도 참으로 다양하다. 물론 이중에서 학문적으로 론증한 내용도 있지만 그럴사한 주장도 있다.  

여기까지는 글쓴이가 여러모로 노트로 적은 것을 다시 정리하여 여러 분과 나눈 ‘단군 이야기와 옛 글자’이다.

※ 이 글의 맞춤법은 저자의 원 표기를 그대로 남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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