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카페에 오면 따뜻한 기운과 의자와 테이블, 종이, 전화, 음료수 그리고 쾌적한 화장실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것이 커피 한 잔 값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본적이 있을 것 같은 이 문구는 작가 노엘 라일리 피치의 저서인  “파리 카페”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이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하게 카페에 있고 싶었다.

카페 또는 커피숍이라고 우리가 일컫는 그곳. 그런데 그 커피숍이라는 것을 경험하기 전에, 그건 나에게 저토록 선명한 개념이 아니었다. ‘커피숍’, 그 영어에서 온 합성어가 있기 전에 나의 사전에는 먼저 ‘다방’이 있었다.

‘다방’이라는 낱말을 입밖으로 낼 때, 또는 누군가가 그 단어를 말할 때, 나는 약간의 민망함과 아련함을 느낀다. 민망함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속에서 다방이 가지는 사회적 부호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종종 그곳은 은밀한 곳 내지 촌스러운 옛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연변에서 태어나 십대를 보낸 나에게 ‘다방’은 또한 아련한 존재다. 고백하건대 성인이 되기 전에 나는 이미 ‘다방 출입’을 했었다. 그 나이엔 친구가 가장 중요한 존재였고 위챗도 없고 두드릴 키보드도 없던 우리에겐 가끔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울 장소가 필요했다. 흔한 ‘수다를 떨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 그건 지금의 나처럼 나이먹은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다. 막 피어오르는 나이에 주름조차 적은 입술로 방긋거리던 그 쓸모없는 말들은 이야기의 꽃이었다고 조금 주관적으로 말해본다. 아무튼 그런 우리의 이야기꽃은 가끔 다방에서 피어났다. 

왜 그렇게 우리에겐 갈 곳이 없었던지. 90년대 중반 여름엔가 冰点屋라는 곳이 반짝 유행하긴 했으나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아무튼 그런 환경에서 나는 연변나이로 ‘막 헤서’ 열일곱에 다방이란 곳에 처음 들어섰다. 그때도 다방은 어른들이 출입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짙었던지라 선뜻 들어서기가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치면서도 어쩔수 없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공간을 먼저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밀폐된 그곳에서 고리타분한 벽지를 배경으로 어떤 아이와 보리차 한잔을 앞에 두고 정말로 네시간 내내 마주앉아 이야기만 하면서 헤어지기 싫어 애써 외면했던 서로의 배고픔을 늦은 오후에야 인정하며 그곳에서 나왔다. 대화의 공간을 소유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보리차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주머니에 돈도 없이 가게주인 눈치를 보며 기죽어 둘러보던 아이쇼핑보다는, 연두색 제형의 쌀함박을 뒤집고 그 위에 빈티지한 천을 씌워 낮게 드리운 등갓밑에 노오란 불빛을 형식적으로 켜둔 서시장 어느 구석 다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할말을 쏟아내고 별로 시답잖은 일에 배를 잡고 웃어대는 일이 더 마음이 편했다. 가끔 우리 목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테이블 어른들이 눈치를 주기도 했으나 담임선생님보다 무서운 어른은 없었으니 네네 듣는척만 했다. 

더 커서 고향을 떠나고 여러 도시를 거치고 커피숍이라는 문명을 접하게 되면서 어릴적 내가 어렴풋하게 바라던 적당한 공간이 바로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스타벅스도 익숙해졌고 발음조차 어렵던 카라멜 마끼아또는 나의 주문 일순위가 되었다. 톨, 그란데, 벤티. 아메리카노. 라테. 프라푸치노. 커피숍에서 할 수 있는 것 또한 대화 외에도 많았다. 토론도 할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당연히 혼자 가도 되는 곳이었다. 

다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 가장 반가운 건 그사이에 생긴 커피숍들이었다. 잘 된 인테리어에 칸막이가 없는 열린 공간, 보리차뿐만이 아닌 다양한 음료의 넓은 선택범위, 대부분 목소리를 낮춰 나누는 대화, 깨끗한 화장실, 괜찮은 음악. 나는 좋으면서도 한편 걱정이 됐다. 이 가게들 잘 버텨줘야 할텐데.

그로부터 십년이 넘게 지났고 현재 연길에는 수백개의 커피숍이 있다고 한다. 그사이 운영을 접은 곳도 있고 새로 생겨난 가게들도 있다. 칩거가 취향인 나는 그렇게 다양하게 커피숍을 경험하진 않았으나,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커피숍에 갈때엔 한 곳에만 가는 편이다. 

그 마음에 드는 곳이라는게 무엇인지 한마디로 개괄이 어려웠는데, 2년 전 연길에서 나는 이 문구를 다시 만났다

 

연길에서 비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열어 작게나마 지역문화를 만들어가시던 분이 개업한 커피숍이었던지라 내심 기대가 컸는데 가보니 기대이상이었다. 우선 일층 입구에 붙어진 위의 문구가 카페주인의 마음가짐을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커피숍 이름은 ‘반반커피’.  2층을 따라 올라간다. 절제된 하얀 바탕의 인테리어에 원목 테이블과 의자들이 공간과 잘 어우러지고 바닥 또한 반들거린다.

아마도 어느 초봄  저녁 일곱시즈음.

오늘 오후, 초여름 오후 세시경.

잘 어울리는 아이템들을 진열하여 전체적으로 통일된 미학이 드러나는 공간이다. 

그리고 방문하는 시간대가 다름에 따라 카페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오른편 안쪽에는 카페겸 양장점을 겸하고 있나보다. 

안쪽에 이런 피팅룸도 있다. 나중에 올때마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투샷을 찍었다.

고백하지만 나는 커피맛을 잘 모른다.  특히 그 전문적으로 들리는 예가체프인가 케냐인가 그런건 더욱 모른다. 물론 이곳 ‘반반커피’에는 누구나 마실만한 커피들이 다양하게 있다.  그리고 맛모르는 내 입에도 여기 커피는 맛있다. 메뉴판을 소개하고 싶으나 도저히 그걸 가서 찍을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전에 찍어둔 사진들을 방출해본다. 

새알을 품은 것 같은 저 아름다운 커피는 이름이 ‘러브레터’이다. 

오늘 오후에 마셨던 이 커피는 핑크솔트 카라멜? 

올봄 유행했던 당근케익,

그리고 계피를 얹은 저 커피도 맛있었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당근케익이 잘 보이게 이 사진은 특별히 크게.

물론 가장 자주 마시는 건 뜨. 아. 

화장실 입구. 이 가게 화장실에선 재즈음악인가 그런게 흐른다. 

이 글을 대부분 작성해놓고 있던 오늘 오전, 아는 언니와의 즉흥 약속이 잡혀 오후에 반반커피에 또 다녀왔다. 다시 가봐도 늘 처음처럼 좋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발전 미식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가다가 외환도로를 만나는 십자거리에서 오른쪽 맞은편인 청수만 아파트단지 남쪽 상가건물2층에 위치해있는‘반반커피’가 바로 그곳이다. 

요 팻말이 보이는 곳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된다. 

카페 소개에 앞서 옛날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아니면 옛날 이야기 하는 척 하면서 카페 소개가 하고 싶었든가. 그냥 나는 둘다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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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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