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종이접기 겸 이런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일명 '동서남북' 게임이라고, ‘안쪽 접히는 부분에 여러가지 직종을 쓰고(좋아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두루 섞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각자 동서남북 자기의 방위를 결정하고 보스도 정한다. 보스가 좌우 엄지와 식지를 각각 네 귀에 각각 끼워넣는다. 주문을 정해 입으로 박자를 맞춰 웨친다. 동시에 네 손가락은 상하 – 좌우 – 상하 – 좌우 이렇게 여닫음을 되풀이하여 마지막에 열린 면에 뭐라고 써있는가를 보는 것. 간단하면서도 유치한, 어린 것들의 '타로점' 같았다고나 할까. 

누구는 '머저리', '똥푸개' 가 나와서 기분 나빠했고 누구는 '과학자', '의사' 라고 시뚝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화가'가 나오면 좋았다. 어려서부터 알락달락한 걸 좋아했고 사촌 여동생의 색동저고리를 그렇게 탐냈었다. 유치원 때 한 동네였던 큰집에 놀러가서는 맏아매(큰어머니)를 "앉으쇼" 하고는 않은 자세를 그리고 "한쪽 팔 받치고 누우쇼" 하고는 나름의 '소묘'를 했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화가가 그렇게 좋아보였던 것이다. 어른들이 화가는 가난뱅이라고 놀려줬더니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래므 먼저 박사 되고 나중에 화가가 되겠음다" 라고 했다고 '순삭'된 기억을 전해들은 '중고기억'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 박사가 제일 대중적인 꿈이었던 그 시절, 나 나름의 타협안이었다고 생각된다. 

근데 말이 씨가 됐나. 지금 이렇게 타국 땅에서 박사가 될려고 공부에 피를 말리고 있고 화가의 꿈은 구중천에 잊은지 오랬다. 또 근데, 그래도 꿈은 있어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있어놓고 보면 만에 하나 이루어질 지도 모른다고. 

그랬다. 화가의 꿈이 박사의 꿈보다 먼저 열매를 맺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림을 다시 배우기라도 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머리속의 아이디어만 말과 글로 표현하고, 그림은 다른 이가 그려준다. 그런 시대를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이랬다.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났다. 

ㄱ. 프로젝트 기획 및 관리 – 미국 – 남 – 코딩과 UI 디자인 – 본업: IT남

ㄴ. 그래픽 디자인 – 중국 – 여 – 디자인과 미술교육 – 본업: 공기관직

ㄷ. 문자기획 – 일본 – 남 – 문헌언어학 – 본업: 아빠(겸 대학원생)

내 그림실력은 소학교 4B 연필로 정육각형 기둥 소묘를 그리던 시절에 영구보존 되어있다. 그런 내가 명문대를 나온 디자이너의 손을 빌려 내 머리속의 이미지를 물리적인 결과물로 그려내고 미국 서해안 햇살을 먹고사는 IT남의 코치로 인터넷 플랫폼에 사용자와 직접 대면시키는 것, 제작과정은 힘들고 자질구레하고 별거 없는 듯해 보여도 이렇게 몇줄로 적어 보니 굉장히 멋진 일이 아닌가. 

시간: 204일 (우여곡절 시행착오… 이하 1만자 생략)

2019년 11월 1일(멤버 다 모임) ~ 2020년 5월 23일(이모티콘 정식 출시)

그리하여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가 태어났다. 그리고 억대의 사용자가 검색할 수 있는 위챗 이모티콘 스토어에 오픈 출시되었다. 

공간이 떨어져있고 시차가 있고 전문분야도 달랐지만, 위의 여러 ''들이 만난 결과  융합의 시대의 협동작업이라는 '함수'가  풀리면서 조선족의 문화를 담은 '호야' 이모티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작지만 이 시대의 흐름 위에서 순기능을 일구어내는 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자각, 그 자각이 새롭고 힘이 된다. 그런 경험이다. 

공대생은 세상을 다 만든다. 하지만 그 세상은 터덕터덕할 때가 많아 문제다. 문과생은 세상을 다 안다. 하지만 세상이 그들을 모른는 경우가 많아 문제다. 아티스트는 세상을 뒤집는다. 하지만 그들 또한 함께 뒤집혀 허우적대기 일쑤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께 모여 살고 어우러져 세상을 가는 것이다. 

인터넷 시대, AI 시대라 불리우는 요즘은 더욱 그렇다. 전공을 뛰어넘고 시공간을 뛰어넘고 젠더와 인종을 뛰어넘으라고 여러 툴들이 많다. 결국은 자신을 뛰어넘기를 원한다. 그래서 공학을 배우고 문학을 배우고 예술을 배운, 지구 세 구석에서 작은 삶을 살고있는 세 청년이 모여서, 작지만 또 결콘 작은 의미만은 아닌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지금도 작은 실천이 계속되고 있다. 아직 진행형이다. 

나는 화가의 꿈을 이뤘는데. 누구는 또 어떤 꿈을 이루게 될까? 

호야-阿里虎-Hoya 이모티콘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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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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