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관행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맘에 드는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다가 촬영금지 안내문을 보고 꺼내들었던 휴대전화기를 다시 집어넣은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작품 훼손을 방지한다는 이유에서, 혹은 작품의 저작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전시장 내의 사진 촬영금지는 일반적인 일이었다. 많은 대형 박물관 미술관들은 관람객의 편의와 미술품 보존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몇해 전까지 사진과 영상 촬영을 제한해왔다. 

그러나 관람객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근래에 들어 제한의 고삐를 풀고 있다. 저작권 관리법의 위배, 카메라 플래시에 인한 작품 훼손, 국가유물의 복제 가능성 등등의 이유로 촬영을 금지했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사진촬영을 허용하는 박물관 미술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방문객의 사진 촬영 허용을 넘어서, 절대적 금기사항이었던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야만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이색적인 전시들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에 뉴욕 맨해튼에 상륙한 캔디토피아(candytopia)의 경우 불세출의 명작이 걸린 것도 아니고 단지 사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진열된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개관한 이래로 지금까지 매일 매진사례다. 캔디토피아의 큐레이터는 “이 전시는 SNS를 염두에 두고 최대한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디자인됐다. SNS에 올려진 사진들은 또 다른 관광객을 부른다.”고 말했다. 비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이 같은 전시가 늘면서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의 수가 10배에서 65배로 늘었다고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은 ‘촬영이 허용된’ 전시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과 시도 때문에 미술관들이 활성화되었고 예술이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가긴 했지만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수록 정작 작품에서 전달받는 감흥이 적어진다는 관점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캔디토피아 박물관, 사탕, 젤리, 쵸콜렛 등으로 제작된 작품들만을 전시하는 일종의 캔디박물관이다. 관람객들은 관람 도중 사탕, 초콜릿을 먹으며 작품들을 즐길 수 있다. SNS를 겨냥하여 기획된  전시이다.

‘사진촬영 마음껏 하세요’

2014년, 오르세 미술관과 프랑스 문화부 사이의 한바탕 논란 이후로 오르세 미술관 내에서의 촬영이 허용되면서 대영박물관, 퐁피두센터, 내셔널갤러리, 루브르박물관 등 유럽 10대 미술관 중에서 현재 9곳이 사진촬영을 허용하게 되었다. 단,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허용이다. 이 중 몇 곳은 촬영이 허용된 공간과 촬영이 금지된 공간이 별개로 존재한다. (촬영이 금지된 작품이나 전시장 앞에는 금지 스티커나 팻말을 붙여놓는다.)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미술관들의 경우도 촬영을 허용하고 있는 추세다. 뉴욕에 있는 미술관들 중에서 메트로폴리탄 박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MOMA), 휘트니 미술관, 모마ps1, 브루클린 미술관 등 대형미술관들은 방문객들의 촬영을 허가한 상태였고 일부 민영갤러리만이 일반인들한테 촬영허가가 안 되어있었다. 

이처럼 해외 미술관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는 조건부 허용 하에서 미술관내 촬영을 허락하지만 서울 내 미술관은 촬영허가에 아직 엄격한 편이다. 사진 촬영이 허가된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대림미술관과 구슬모아당구장, 국립중앙박물관을 꼽을 수 있으며, 서울시립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촬영이 금지되어있다.(국립현대미술관은 인터넷신청이나 방문신청으로 따로 촬영 허가를 받는 방법이 있긴 하다.) 

촬영이 금지된 이유

기존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관람객들의 촬영을 금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진 촬영이 작품 감상을 방해한다는 이유다. 다음의 사진과 같이 유명한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관광객 무리가 미술관을 가면 비일비재하다. 이것은 전시 동선을 정체시키는 요소다. 또한 사진촬영 시 발생하는 소음 역시 관람의 분위기를 방해한다. 이러한 점들이 작품을 즐기러 온 사람들의 여유 있는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에 앞에 모인 관람객들

둘째, 앞서 언급했듯 저작권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유물의 경우, 사진촬영은 복제모조품을 만들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하게 되며 특정한 작품의 이미지가 복사 배포되어 무단으로 상업적 목적에 이용 될 경우, 저작재산권의 분쟁을 불러온다. 저작재산권은 작가에게 인정되는 재산으로써 작가가 살아있는 기간은 물론, 작가가 사망한 이듬해로부터 50번째 되는 해의 연말까지 유지된다. 저작권자가 본인 작품에 대해서 사진촬영을 원하지 않는 경우, 허가 없이 촬영했을 때, 법적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창작 의도를 왜곡시킬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는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 앞에서 ‘기원의 거울’이라는 제목의 성기 노출행위로 2014년 세계미술계를 발칵 뒤집었던 드보라 드로베르티스라는 여성 예술가 외에도 누드 작품에 대해 선정적인 의도로 사용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존재해왔다.

한 여성예술가가 쿠르베의 작품 ‘세상의 기원’ 앞에서 성기 노출 행위로 전 세계를 시끄럽게 했다.

넷째, 사진촬영으로 인해 작품이 손상될 수 있는 점이 플래시를 금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플래시 빛은 그림을 손상시킬 수 있다. 카메라 스트로보의 섬광 시간은 1/30 – 1/3000초로 아주 찰나이며, 빛의 강도가 강렬하다. 이런 갑작스러운 강한 빛에서 일어나는 화학반응이 유화작품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기존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것이 암묵적인 관례였다.

박물관의 이유 있는 변신, 두 가지

현대인은 기념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특히나 요즘은 SNS가 발달한 만큼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셀카찍기는 필수다. 관광지, 전시장, 식당 어떤 곳이든 자랑할 만한 것은 일단 카메라에 담는다. 그래서 전시장의 포토존엔 항상 사람들이 몰려있고, 유명 여행지의 ‘사진 찍기 좋은 장소’는 언제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많은 이들이 했으니 나도 해야 한다’라는 뒤처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내가 이런 곳을 가봤다’ 라는 보여주기 식의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사진 촬영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지만, 과거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가 바로 사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기념사진 촬영은 결국 사라져 버릴 것들에 대한 구제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1) 포토존: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 배경 대상과 인물이 조화롭게 나오는 지점을 찾는다. 포토존(Photo Zone, 拍照区)은 단순한 촬영장소가 아니라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를 말한다.  예전에는 포토존이 유명 관광지나 명소에 어울리는 용어였으나 요즘은 미술관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포토존, 인증샷’… 전시후기를 읽다 보면 꼭 하나씩은 들어가 있는 단어다.

촬영이 금지된 전시회라면 전시장 입구나 출구 쪽에 ‘이 전시를 보러왔다고 인증’할만한 포토존이 따로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SNS에 올려 ‘하트♥’, ‘좋아요’, ‘赞’과 같은 공감을 받고 나면 미술관 방문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예술작품에 대한 경험과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고 만족을 느끼는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과 함께 셀카를 찍고 SNS에서 공유하는 것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예술 감상 행위가 되었다. 디지털시대 이전에는 ‘난 이걸 봤어’가 메시지였지만 오늘날에는 ‘난 그 곳에 갔고, 그것을 봤고, 셀카를 찍었어’가 메시지로 된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전시를 보러 간 김에 사진을 찍는다.’라기보다 사진을 남기려고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사진이 전시홍보에 도움이 되고 그것이 곧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니 최근에는 전시뿐만 아니라 음식점, 호텔에서도 사진 촬영을 권장한다. 아예 포토존을 목표로 잡고 장사하는 곳도 많아졌다. 

촬영이 불가한 전시의 경우, 입구에 포토존이 마련되어있다. 이 포토존은 팝업형태의 포토존이다. 보다 입체적인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다.

2) SNS:

초기에 SNS는 지인간의 소식을 공유하는데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세상을 바라보는’ 필수적인 플랫폼으로도 진화되었다. 특히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인터넷에 쉽게 접속할 수 있는 wifi환경이 조성되면서, 사진과 동영상 등이 즉석에서 공유가 되면서 그 확장성은 더욱더 커졌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2005년부터 일찍이 SNS(주로 유튜브)를 이용한 마케팅을 해왔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2007년부터 SNS를 운영해왔다. SNS의 활용이 이 두 미술관에 해당되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미술관들이 SNS를 이용하여 선전과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관들은 왜 SNS에 이다지도 신경을 쓸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그것을 공유할수록 방문객들이 배로 늘기 때문이다. 유명 미술관의 유명전시에는 사람들이 알아서 몰리다 보니 중소미술관일수록 운영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SNS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마다 방문욕구를 자극하도록 만들어져있으니 호기심에라도 끌릴 수밖에 없다. SNS에 올라가는 인증샷이 제일 효과적인 입소문이자 마케팅이자 효자 홍보방법인데 미술관에서 이런 노다지를 가만둘 리가 있겠는가.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

나가면서

미술관들이 하나둘 씩 촬영을 허용하면서부터 이제 전시회는 다양한 별세계가 되었다. 본인 또한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해 전시를 찾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예상은 하고 갔던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사진만’ 찍기 위한 전시장을 보고 실망한 적이 있었다. 전시장이라는 이름보다 포토존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과 함께 너무 속 빈 강정이었다.  

전시장을 방문하면 관람객들은 도슨트의 얘기를 들으면서, 작품 하나하나 관심을 보이며 사진을 촬영해가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오로지 SNS홍보, 자기자랑질만을 위한 셀카 사진만 찍고 쏙 빠져나가는 자들도 꽤 많다. 내용은 보려는 생각 없이 사진만 찍고 나가버리는 그들의 모습이 별로 보기가 안 좋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박물관들 역시 고민 중이다. 사진촬영을 허락함으로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모을 것인지, 아니면 박물관 본연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촬영을 금지할 것인지를 두고 저울질이 한창이다. 

“미술관, 박물관은 단순한 공공장소가 아니라 고요한 명상, 생각, 연구를 위한 곳이다. 작품 앞에서 셔터만 누르고 돌아서는 행위는 관람객이 작품과 마주했을 때 사진찍는 것 외에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일정 부부 공감하며, 박물관 미술관 여러가지 변화와 더불어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 또한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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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먹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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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모나리자 사진만 찍고 온 기억이….ㅋㅋㅋㅋ 사람들이 모여서 핸폰 들고 저러고 있어서 찬찬히(?) 볼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아먹님 글은 일상적인 현상도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네요~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2. 사진만 찍고 돌아서는 방문객으로 인한 박물관의 고민은 이해됩니다. 그래도 플래시 안쓰면 사진 찍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전시에 전문 포토존 설치는 정말 좋은 아이디어인거 같습니다. 캔디토피아 부분에서 생각났는데 일본에는 세계명작을 5000점 이상 복제해서 만든 박물관이 있는데 젊은이들 사이에 SNS시대와 맞물려 인기가 있더군요. 오즈카국제미술관 – https://o-museum.or.jp/publics/index/

    1. 여기야말로 복제품이 원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곳 같군요 ㅎㅎ 오즈카제국미술관은 작품 아우라가 덜 느껴질 것 도 같슴다. 그래도 있는게 없는 것 보다 나은 것 같슴다. 어차피 책으로 보는 작품도 복제인데 더 크고 정밀하고 현장감있게 볼 수 있으면 좋죠. 미술애호가로서 미술관 박물관에서 플래시 없이 좀 찍에 놔뒀으면 합니다. 뭔가 사진은 저와 작품의 만남의 기억(느낌)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둘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서요~

  3. 언급하신거처럼 요즘은 뭐든 IT의 산물에 연결되어야 하고, 그게 트렌드니까…. 더 많은 사람을 끌려면 딱히 뾰족한 수가 없는거 같슴다. 아…. 스마트폰도, 사진기도 없었던 예~엣날로 돌아가서 생활해 보고 싶습니다. 손편지랑 적고, 아날로그 시계로 시간이랑 체크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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