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의 안팎
1. 공간은 세계나 영역이며 어떤 물질이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자리다. 공간은 틈이자 비어 있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집, 공부하는 학교, 밥을 먹는 식당은 모두 공간이다. 그것은 장소로서의 공간이며 거기에 실재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보드리야르에게 있어 세계는 일루전이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세계, 그것을 그는 시뮬라크르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실재하는 공간을 벗어난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 공간은 회화공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화폭 속의 공간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일루전의 공간이다. 2차원 평면 속의 모든 공간은 곧 착시며 환영이다. 현실만큼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 ‘장소’는 실재의 공간이 아니라 표상으로서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은 ‘보다’보다는 ‘보이다’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것은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실재의 사물이 아닌 ‘사물처럼 보이는’ 그림이다. 결국 그림은 감각의 표상이며 기호다. 시뮬라시옹의 거대한 음모로 해석해보자면, ‘모든 조작적 기술은 잠재적 현실까지 포함한 감각과 기호로서 나타나는 일루전일 뿐이다.’ 더 나아가 회화적 공간을 떠난 또 다른 공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것을 텍스트적 공간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2. 제주에 도착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작은 선착장이 나오고 멀지 않은 곳에 매표소가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우도 성인 4000원’이라고 적혀 있다. 당신은 소의 형상을 닮았다는 그 섬이 천혜의 자연이며 환상적 풍경을 가지고 있다고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래서 곧장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배를 탄다. 작은 배는 통통거리며 바다를 가르며 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섬에 도착한 당신은 천천히 섬의 외곽을 따라 걷는다. 그러다 마주 오는 한 사람과 마주친다. 그 사람도 당신처럼 자연을 느끼기 위해 홀로 섬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당신과 그 사람은 잠시 눈이 마주친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피하고 엇갈려 걸어간다. 해가 질 무렵 당신은 다시 뭍으로 가는 배를 탄다. 배 난간에 기대어 바스러지는 물 알갱이를 본다. 노을을 반사하는 물빛이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다. 턱을 괴고 그 풍경을 감상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가온다. 바로 그 사람이다… … ;; ;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공간을 표상한다. 기표로서의 장소를 표상하는 것이다. 수많은 기표들이 글 곳곳에 숨어있다. 유채꽃, 선착장, 매표소, 배, 노을……. 이러한 기표를 통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글 속 우도’는 실재인가 일루전인가? 글은 상상을 불어넣는 한편 경험했던 실재를 변주하고 변형한다. 상상을 돕기 위해 경험했던 현실의 기표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실재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리얼리즘문학도 결국은 현실의 변형이며 일루전이다. 문학의 공간에서도 ‘-이다’가 아닌 ‘-이라 쓴 것이다’가 어울린다. 결국 텍스트 역시 감각의 표상이며 하나의 기호인 셈이다.
3. 실재하는 공간이나 사물에 ‘선(线)’이 있는가? 우리는 ‘선’으로 공간이나 사물의 윤곽을 그린다. 사람을 그려보자. 우리는 ‘선’으로 얼굴과 몸의 윤곽을 딴다. 그러나 현실 속 인체는 선이 아니라 면이다. 우리가 그린 ‘선’은 인체의 면과 배경의 면이 부딪치면서 만들어내는 가상의 경계이다. 그렇다면 풍경에는 선이 있는가? 없다. 경물들 사이의 배경충돌을 선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여기에서 선은 관념이다. 소묘에서 ‘선’은 중요한 조형 요소다. 대상의 형태는 선으로 만들어진다. 그렇게 선은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공간과 공간을 구분 짓는다. 여기서 우리는 대상을 그렸다고 말하고 사람들은 대상을 보았다고 말하지만, 그려진 대상의 테두리 밖 공간은 그렸다거나 보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부만을 본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일루전 공간이라 부르지만 여기서 의구심이 생긴다. 현실 역시 안팎을 구분 짓는 경계에 의해 일루전 공간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선’ 자체가 이미 환영이자 착시일 수도 있다. 회화처럼 말이다.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장 보드리야르를 떠올려 보아도 좋다.

오 “세계는 일루전이다.” 좋군요. 저 그림을 보니 두 뱀이 서로 먹는 그림이 떠오르는군요.
그 ‘선’ 자체가 이미 환영이자 착시일 수도 있다는 말이 몽환적이고 낭만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