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교환학기를 마치고 중국에 돌아 왔을 때 나는 세계 속 시간의 쪼개짐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림과 그 속에 담겨져야 할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해온 나는 한국에 잠시 공부하러 가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유의 공백기를 체험하게 된었다. 변화된 환경은 기억의 단절을 초래하고 내가 그토록 회의했던 나의 정체성을 비워낸다. 

   나는 이 시기 내가 겪었던 곤혹들을 교환학기 이론수업의 기말 과제물로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교수님께서도 좋은 점수를 주셨다. 연변에 돌아와 나의 이 글은 몇 차례 수정을 거쳐서 조선족 정기 간행물 <예술세계> 에 출간하게 되었다. 

   글의 수정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첫째, 내가 한국에서 작성한 과제물은 한국 국어 기준으로 작성한 것이다. 하지만 연변의 간행물에 투고하려면 연변의 조선어 기준을 따라야 한다. 정체성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이와 같은 차이와 경계를 체험하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둘째로, 내가 작성한 내용을 최대한 보류한 채 조선족 간행물의 정서에 맞게 어휘와 문장의 관용어를 수정해주신 김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 글은 서신의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그 당시 나의 언어 능력으로는 김선생님께서 작성해주신 답신 속 내용을 충분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답신 속에 내포한 내용들은 한 편의 집약적인 인문학 강좌와 다름 없을 정도로 박학(博学)하고 묵직했다. 나 혼자 간직하기가 아까워서 여기에 올려두게 되었다.

    그 후 내가 본격적으로 한국으로 유학하게 된 계기에 관해서는 다른 글에서도 몇 번 언급 했던 바가 있다. 2016년 나는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다시 한국으로 유학가게 된다. 하지만 한국 가기 직전에 나는 동생과 함께 북조선 여행을 가게될 기회가 생겼다. 

 북한을 처음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감회가 새로웠다.

북한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되는 곳들도 있다.

해설원은 친절하시고 나랑 동생을 가장 예뻐했다. (왜냐하면 우리만 해설원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해설원께서는 말했다: "이제 곧 통일하면 더 나아질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자연은 언제나 좋다.

우리는 대동강 맥주 축전까지 참여했다.

그리고 축전에 참가한 우리의 모습은 외신 기자의 카메라에 찍혔다. 한국 기자들은 직접 북한에 올 수 없다. 그런데 KBS1 <남북의 창>프로그램에 덩그러니 우리의 모습이 나온걸 보니 아마도 한국 측에서 다른 나라 기자들이 촬영한 동영상을 구매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북한 끝, 한국 시작————————–

같은 8월, 나는 여행을 끝마치고 곧바로 한국으로 유학하러 왔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우리 교수님으로 부터 미술 프로젝트 의뢰를 받게 되었다. 알고 보니 교환생 때에 조소과(雕塑系) 수업을 해주신 교수님께서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교수님께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추천했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 한국에 가게 되면 작업을 잠시 접고 이론 공부에만 몰두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또 작업을 해야 하다니 한편으로는 난감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심 기뻤다. 

10월 전에 작업을 출품해야 해서 두 달 안팍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야 했다.  하지만 나에겐 그림을 그릴 공간도, 충분한 시간도 없었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그림이라는 형식은 그 당시 나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이 아니였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퍼포먼스의 형식이 나의 표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퍼포먼스(performance)란 자주 연출, 연극, 연기로 변역되지만, 여기서 퍼포먼스 아트란 인간의 신체와 그 표현들을 도구로 삼는 예술형식을 뜻한다. 

나는 대학원에 입학 하자마자 시위대를 보게 된다.  이 시기 '정유라 사건' 때문에 학교에 말썽이 많았던 참이다.(이 사건 때문에 우리 학교 총장은 사퇴하고,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졌다.) 모든 상황은 내가 입학 한 후 3개월 내에 연달아 일어났다. 너무 충격적이였다.

나는 짧은 시간 내에 연변, 북경, 평양, 서울을 오가며 문화의 격차에서 오는 정신적 충돌을 체감하였다. 이 때 국가와 민족이라는 범위는 오히려 너무 협소해진다. 

이 보다 더 본질 적인 것, 즉 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이 그토록 분노를 일으키고, 무엇이 우리를 분할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이 우리를 여태껏 이어주고, 우리는 무엇으로 부터 애증을 낳고 있는지. 

그렇게 나의 작업 <주인>이 완성된다. 

장소: 대학교 운동장 (현장)

마지막으로 작업에 대한 소개글과 동영상 링크를 첨부하고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다.

현장판 소개글

극장판 <주인>
https://youtu.be/DVMYY3gknY8

장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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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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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명글과 함께 영상속의 퍼포먼스 보았습니다. “ 무엇이 그토록 분노를 일으키고, 무엇이 우리를 분할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이 우리를 여태껏 이어주고, 우리는 무엇으로 부터 애증을 낳고 있는지.” 때로는 명확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와닿고, 가끔은 알듯말듯 하고 또 사람마다 속성이 달라서 부동한 마인드일수 있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무얼 말하는지 알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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