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의 글에 댓글을 달까 말까, 사흘을 망설였다.
정확히는 사흘 동안 그 글을 열다 닫기를 반복했다. 전공 분야에 대한 열정과 절제된 문장들. 읽을수록 그가 맞다는 확신이 커졌고, 확신이 커질수록 손가락이 멈췄다. 뭐라고 쓰지.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세요? 따리에서 커피 배웠던 사람인데요.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강호에서 다시 만난 사람에게 굳이 옛날 이야기부터 꺼낼 필요는 없다.
결국 댓글 대신 좋아요 하나만 눌렀다. 하트 하나가 화면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도 언젠가 알아볼 것이다. 아니면 영영 모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이미 같은 기차 안에 있으니까.
벤이 적어준 번호는 아직 가방 안주머니에 접힌 채 남아 있다. 꺼낼까 싶다가도, 그냥 두기로 한다. 서울 그랜드하얏트 로비에서 나눴던 그 짧은 대화가 새삼 떠오른다. 그의 얼굴에 어려 있던 수심. “루이스는 우리가 같이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걸 원치 않았구요.” 그 말의 무게가 아직도 가끔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루이스가 우리나무에 글을 올리고 있다면, 괜찮은 것이다. 우리나무에 글을 올린다는 건 아직 살아서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뜻이니까.
“사이에출판”의 첫 책은 연변말 동화다.
교정지가 오늘 도착했다. 택배 상자를 뜯는데 손이 살짝 떨렸다. 활자로 찍힌 연변말을 보는 순간, 묘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꾹 참고 한 장을 펼쳤다. 그때 막내가 달려와 옆에 끼어 앉더니, 읽어달라고 한다. 한 줄 읽어주었더니 꺄르르 굴러다닌다. 그 웃음 소리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단번에 설명해 주었다. 언어학 전공도 아닌 내가 이 책을 내도 되나 한참을 고민했었는데, 그 고민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 웃음을 들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됐다.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서 교정지를 집어 들었다.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작게 웃는다. “잘 됐네.” 말이 짧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두 마디에 담긴 게 뭔지 나는 안다.
나는 왜 쓰는가.
나는 왜 만드는가.
얼굴에 가는 주름이 늘고 수필집 두 권을 내고도 여전히 이 두 질문의 답을 다 찾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미 답은 거기 있었던 것 같다. 막내의 웃음소리 속에, 남편의 짧은 두 마디 속에, 그리고 연변말로 된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울컥했던 그 감각 속에.
사이의 언어, 사이의 이름들을 이 세상에 남기는 것.
그게 나의 일이다.
노트북을 열었다. 새 문서. 제목을 입력했다.
《빈집들, 아니 새 집을》
커서가 깜빡인다. 이번엔 오래 깜빡이게 두지 않았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TODO 리스트 따위는 없다. 버킷리스트의 빈 칸들도 오늘은 채우지 않는다. 그냥 쓰면 된다.
드립포트를 꺼냈다. 가운데서 시작해 바깥으로 한 번 원을 그리고, 다시 안으로 돌아온다. 물이 차오르며 커피가 봉긋하게 부풀어 오른다. 고소하고 약간 쌉쌀한 향이 방 안에 천천히 퍼진다.
루이스가 그랬다. 물줄기가 흔들리면 맛도 흔들린다고.
나는 물줄기를 가늘게 조절하며 천천히 부었다. 흔들리지 않게.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지금은 다 좋아 보여요.
아니,
지금도 다 좋아 보여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