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하악…

나는 회오리바람처럼 내 눈앞에 나타난 정체 모를 흰 괴물에 놀라 발톱을 곧추 곤두세우고 뒤로 비실비실 물러섰다.

지하철에서 여자의 따뜻한 품속에서 어렴풋이 잠들 때, 나는 내가 갈 집안 구조를 머리속에 그려보면서 여자가 언급했던 그녀의 집에 있는 고양이에 대해 잠시나마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내 눈앞의 내 몸 크기의 다섯배정도 되는 파란 눈을 가진 흰 괴물이 바로 그 고양이라면…나는 차라리 허기와 추위에 몸을 떨더라도 그 허름한 판자 창고를, 그리고 오빠의 곁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썅썅…니가 심심해하기에 데려온 아이야. 애가 놀라잖아. 뒤로 비켜.”

여자가 가볍게 꾸짖자 눈앞의 흰 괴물은 조금 뒤로 물러섰다. 나는 그 틈을 타 소파밑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

괴물의 정체는 터키시앙고라나 페르시안 후대인 듯한 장모종 고양이였다. 썅썅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 고양이는 두 귀를 똑바로 세우고 호기심이 가득찬 파란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쏘파밑 좁은 공간에 몸을 움츠리고 부들부들 떨고있었다. 썅썅이 쏘파앞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나갈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낯선 고양이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아무리 고양이계의 천재라 하더라도 두려움은 극복할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까지 옴짝달싹 하지 않는 나에게 여자는 소세지쪼각을 손에 들고 여러모로 구슬렸다.

“착하지, 빨리 나와. 배고픈데 밥먹어야지.”

“…”

“이렇게 온종일 숨어있을순 없잖아. 목욕도 하고 잠도 자야지.”

나는 입술을 감쳐물고 숨도 크게 쉬지 않았고 여자는 나를 들여다보다가 방긋 웃으며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참 이쁘다. 여자같아.”

“이쁘다고 다 여자냐?”

“내 생각엔 암컷이 맞어. 내 감은 틀리지 않는 다니까.”

여자는 쏘파에 앉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 싶었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퍼그나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나는 어이없다는 듯 여자를 내다보았고 여자는 여전히 찬란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이쁘다.이름은 머라고 지을까?”

“묘돌이가 어때.”

“그건 남자이름인데?”

“뭐 어때. 어차피 성별도 모르는데.”

“묘돌이…”

나는 억이 막혀 한숨을 내쉬었다. 묘돌이가 뭔가…여자는 대체 어떤 정신나간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까. 썅썅때문에 급히 쏘파밑에 숨어들다보니 제대로 못 본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있냐…”

누군가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고 쏘파에서 누군가 벌떡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좀은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아빠야.”

“어떡하지?”

“인사 드려.어차피 숨기지 못할거 같아.”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호기심이 동해 쏘파 밑에서 고개를 내밀다가 바로 옆에 있는 썅썅을 발견하고 다시 쑥 들어가버렸다.

……

“아버님 안녕하세요.”

“…아빠, 제 남자친구에요.”

“흐음…앉게.”

다시 숨을때 위치를 잘 찾았는지 이제야 소파밖의 풍경이 보였다. 진한 인테리적 분위기가 풍기는 여자의 아버지는 안경을 건 왜소한 얼굴에 미소를 띄운채 여자를 돌아보았다.

“또 한놈 더 데려왔구나? 엄마한테 혼나려고 그러냐?”

“아버지…그게 무슨.”

“고양이 말이다. 저 쏘파밑에 한놈 더 있지 않느냐.”

“아빠도…왜 자꾸 고양이를 머라 그래요? 얼마나 예쁜 아이들인데.”

여자가 투덜거리며 썅썅을 안아올리자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네도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아, 네…싫어하진 않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말이군.”

“아닙니다. 정아가 좋아하는 건 다 좋아합니다.”

“흐음…”

여자의 아버지는 남자의 말을 못믿겠다는 듯 작게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안경너머로 쏘파밑의 나를 보았다.

“거 참 영민하게 생긴 아이로구나.”

“정말, 지금 한창 이름을 짓고 있는데 아빤 어떤 이름이 좋아요?”

여자가 아버지의 팔을 끌어 맞은편 의자에 앉혔고 여자의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니가 생각하는 이름은 뭐냐.”

“저는 따로 생각해둔게 없고 저이가 묘돌이라고 짓자고 하는데 혹시 성별이 여자면 어쩔까 고민중이에요.”

“묘돌이라…”

여자의 아버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문득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투투라고 하면 되겠다. 성별을 모르니까 중성이름이면 되지 않겠냐.”

“투투?”

“옛날 우리말로 갑돌이 쇠돌이라는 돌자는 한자 <乭>자를 쓰는데 후에 사람들은 이 글자를 아예 돌연 <突>자로 썼단다. 묘돌이라면 역시 그 돌이니까 돌연 돌자를 쓰면 어울릴거 같구나. 어느날 갑자기 이 집으로 온 아이니까.”

“투투…뜻이 좋네요. 어느날 갑자기 우리 집으로 온 투투천사.”

“천사?”

남자와 아버지가 이상하다는 듯 여자를 쳐다보았고 여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응…천사…누군가 블로그에 쓴걸 봤는데, 고양이는 천사라고 했어.”

“….”

“곁에 잠든 고양이가 있는 사람은 결코 불행해지지 않는대. 그 곁에 천사가 잠들기 때문에…”

여자의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목소리 뒤에 남자 둘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밤이 깊어서야 여자는 쏘파밑에서 끄덕끄덕 졸고있는 나를 끌어내는데 성공했고 나는 여자의 손에 이끌려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사료를 조금 먹은후 여자가 준비해준 잠자리에 곯아떨어졌다.

잠결에 옆에서 썅썅이 왔다갔다 하는 듯 했지만 이미 긴장이 풀린 나는 더이상 그를 경계할 힘이 없었다. 비몽사몽간에 썅썅이 내 옆에 살며시 다가왔고 그는 내게 이런 첫마디를 걸어왔다.

“안녕…투투.”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이 세상에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는 나와 오빠밖에 없는줄 알았는데…썅썅은 어떻게 내 새 이름을 알았을까. 순식간에 온몸에 식은땀이 쫙 흘러내렸고 썅썅은 웃는듯 마는듯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쌀쌀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이 글을 공유하기:

pandora

판타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판타지입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8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