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윤아…"

서은은 입끝까지 올리치미는 말을 삼켜버렸다. 윤아를 닮은 나치야의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그 섬약하고 애처로운 모습은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가슴이 뭉클해질 지경이었다.칼을 든 누르하치의 손이 조금 떨리는 게 보였다.

"나치야…"

누르하치의 말에 나치야는 눈물에 젖은 시선을 들었다.

"내 아버지입니다…누르하치…당신이 어찌…"

나치야의 떨리는 목소리에 누르하치의 눈길이 날카로와졌다.

"비키십시오."

누르하치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하지만 나치야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다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제 원수입니다. 그러니 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를 죽이겠으면 차라리 먼저 나를 죽이세요."

나치야의 태도도 강경했다. 그 태도에 누르하치의 시선이 흔들렸다. 서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치야…이토록 아름다운 용모와 애절한 눈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움직여버리다니…하느님은 왜 하필 이 여인을 후생의 자신의 친구로 만들었는지…

"나치야, 더 비키지 않으면 찌르겠습니다."
"죽여도 좋습니다. 살아서 내 마음대로 안될 바엔 당신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진 않군요."

서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윤아…너는 이생에서도 네 소신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구나…이생에서 너와 난 대체 어떤 인연이였던 걸까…그리고 너와 누르하치, 이여백은 또 어떤 인연이었을까…

만일 오늘 이 자리에서 니칸외란이 죽게 버려둔다면 나치야도 목숨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복잡하게 휘저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그녀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서은은 머리를 들었다. 누르하치의 칼은 여전히 니칸외란을 향하고 있었지만, 칼을 든 그의 손이 아까보다 더 떨리는 게 보였다. 나치야의 얼굴에는 참담한 기색이 내비쳤고, 다들 눈앞의 팽팽한 대치상태에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나치야의 앞에 한사람이 더 막아나섰고, 그것을 본 이여백이 가벼운 한숨을 흘렸다. 누르하치는 놀라서 뒤로 둬걸음 물러섰다. 나치야의 앞에 막아선 서은은 누르하치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시기를 아는 것이 영웅이라 하였지요."
"임도련님."
"칼을 놓으십시오…누르하치."
"…"
"칼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칼을 적실 피가 억울한 이의 피가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리해야만 합니다. 어서요."

누르하치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또 한번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맥없이 팔을 내렸다. 이성량이 손을 들자 군사들이 욱 모여들었고 누르하치는 순식간에 포승줄에 포박을 당했다. 그리고 군사들에게 떠밀려 장막밖으로 끌려갈 때까지, 누르하치의 눈길은 줄곧 나치야를 깊이 주시했다.

그날 밤, 서은은 장막안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르하치가 포박을 당한 후 이성량은 군사들에게 경계를 잘하라고 분부했고, 이여백과 서은에게는 날이 밝으면 누르하치를 총병부로 먼저 압송해가라고 지시했다. 관군이 고륵성과의 싸움을 다그치고 있다는 소식은 재빨리 군중에 퍼졌고, 군사들은 사기가 충천해서 병장기들을 닦고 갑옷을 고쳐입었다.

하지만 서은은 이성량의 눈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살기 비슷한 눈빛을 떠올리자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고 있었다. 후세에 남겨진 역사에서는 이성량이 누르하치를 놓아준 걸로 되어있지만, 낮의 상황으로 유추해보면 이성량은 누르하치를 죽일 마음을 품고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성량의 살기는 서은이 바라는 결과와도 은근히 들어맞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누르하치가 명조에 대항하기전에 스스로 무너지기를 내심 바라면서도, 막상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낮에 본 나치야와 누르하치의 애틋한 눈빛이 마음이 걸렸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도포를 걸쳐입었다. 달빛이 장막안으로 비쳐들어오고 있었고, 그녀는 그 교교한 빛에 이끌려 장막을 나섰다.

달빛에 둘러싸인 영채는 고요했다. 발가는대로 장막밖을 산책하고 있는데, 문득 어디선가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소리 나는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앞에 있는 나치야의 장막 가까이에 다가가자 두 사람의 말소리가 더 또렷이 들려왔다. 그녀는 그중의 한 목소리가 이여백의 목소리라는 것을 가려들을수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막뒤로 몸을 숨겼다.

"지금 나더러 아버님을 배신하라는 말씀이시오?"

이여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를 이어 나치야의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왔다.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도련님이 처음부터 이 혼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해오신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 부탁을 들어주시면…아버님께 말씀드려 혼담의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니칸외란성주께서 오매불망 바라던 혼사였소. 그대의 말 한마디에 성주께서 생각을 고쳐하실 수 있겠소?"

이여백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냉정하게 들려왔다.

"내일 성주님을 따라 도륜성으로 가시오. 그리고…미안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드릴수 없소."
"도련님…지금 이대로 누르하치를 버리시는 겁니까…"

나치야의 눈물젖은 목소리에 이여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치야…그대와 나, 지금까지의 처지가 같았기에 지금껏 아무 말 않고 있었소. 요동의 안정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는 혼사도 절로 정할수 없는 처지라 가여이 여겼거늘."
"…"
"오늘 성주가 도모한 일때문에 애매한 건주좌위도독을 희생시켰고, 지금 그 죄를 명나라와 아버님께서 들쓰게 되었소. 이런 판국에 나더러 아버님 몰래 누르하치를 빼돌리라니."
"…"
"내 아버님과 평소 품은 뜻은 다를지라도, 이 일은 아버님의 뜻을 거스를수 없소. 이 점은 그대도 잘 아실 거라 믿소."
"도련님…"
"그러니 그대들에 대한 내 긍휼의 마음은 이용하지 마시오. 이미 그동안 두 사람의 일을 눈감아 준걸로 족하지 않겠소?"
"어찌…저는…그러니까 저는…누르하치가…아니, 오늘 일은…"

나치야의 말이 바람을 타고 두서없이 들려왔다. 이여백이 다시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더이상은 내게 요구하지 마시오. 혼담을 중단하는 것과 오늘 일은 같이 걸버무리면 안될 일이요."
"도련님…"
"이번 싸움이 끝나면, 아버님께 모든 연유를 여쭙고 이 혼사는 없던 일로 하리다. 그러니 이젠 더 이상 총병부로 따라오지 마시고 이만 도륜성으로 돌아가시오."

이여백의 말에 나치야는 또 다시 흐느꼈다.

"도련님, 이젠 저까지 내치시는 겁니까."
"누굴 버리거나 내치는 것이 아니요. 그대가 좋은 인연을 만나기 바라며 그대 대신 선택해주는 것일뿐. 또한 그대나 누르하치에게도 나쁜 선택은 아니지 않소."
"송구하옵니다…도련님."

나치야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그 뒤를 이었다.

"도련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혼담이 오갔던 사람의 마지막 부탁은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렇듯 구구히 설명했는데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 것이요?"

이여백은 한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아버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것이요. 아버님께서 자연 알아서 판단을 하실 일이니."
"도련님께서도 알고 계신다 하니 저 또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청을 드는 겁니다. 부디…부디 누르하치가 목숨만, 목숨만은 부지하게 해주십시오…"

나치야가 소리내여 흐느끼자 서은은 저도 몰래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이여백이 그녀쪽으로 몸을 돌렸다.

"누구냐."

서은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이여백의 시선이 예리하게 그녀의 얼굴에 꽂혔다. 어쩐지 두사람의 비밀을 엿들은 듯한 기분에 그녀는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이여백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여전히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잠은 안자고 뭐하는 것이냐."
"송구합니다. 형님…"

그녀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일부러 엿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달도 밝고 잠이 오지 않아서…"

나치야는 고개를 돌린 채 가만히 눈물을 훔쳤다. 이여백은 여전히 서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너도 누르하치가 걱정되어서냐."
"아닙니다…저는."

그녀는 나치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물기에 젖은 나치야의 함초롬한 눈빛에 그녀는 다시 가슴이 저렸다. 그녀의 시선에 나치야가 그녀를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혀왔다.

"낮의 일은 미처 인사 드리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네?"

전과는 확연히 다른 나치야의 태도에 서은은 멍해졌다. 나치야는 그녀를 향해 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제 아비를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낮에는 경황이 없었으나 임도련님의 은덕은 제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잊지 않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이런 인사를 받겠습니까."

그녀는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나치야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살짝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나치야의 예쁜 미소가 윤아의 얼굴과 겹쳐져서 그녀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잠시 뭔가 생각하다가 이여백에게 시선을 주었다.

"형님…외람되지만 감히 한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가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혼담을 파기하는 것도 모자라 어찌 나치야아가씨를 도륜성으로 보내는 것입니까. 이건 나치야아가씨의 남은 생이 불행해지라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형님께서는 그러시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그녀의 당돌한 말에 이여백은 물론, 나치야까지도 어정쩡한 표정이었다. 이여백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안아. 네가 왜…"
"나치야, 한번 말씀해보세요."

그녀는 머리를 돌려 나치야를 응시했다.

"정녕 이대로 도륜성으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도륜성만이 당신의 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서 또 다시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움직일 겁니까?"
"저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나치야는 머리를 들고 쓸쓸하게 웃어보였다.

"이것이 제 명인데 어떡하오리까. 도륜성 말고 저를 용납할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제 운명입니다."
"…"
"저는 도련님 분부대로 내일 아침 아버지를 따라 도륜성으로 가겠습니다."
"왜 그렇게 쉽게 운명과 타협을 하십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화가 잔뜩 실려있었다. 나치야의 말은 윤아가, 정확히 일년전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마음에 없는 남자와 맞선을 봐야 한다면서 윤아가 하던 말과 신통히도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그때 윤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곱씹고 있었다.

"조윤아,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쉽게 운명과 타협을 해?"

나치야는 그때의 윤아처럼 아무 말없이 눈물만 보였다. 그런 나치야를 마주한 서은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누르하치를 구하고싶지 않으십니까? 그리하려면 강해져야 합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나약하게 사실 생각이십니까."

나치야의 눈에서 드디어 크다란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그녀는 이윽토록 서은의 얼굴을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타협을 하지 않으면 어찌하겠습니까. 여자의 운명 다 이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녀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아무리 400여년전의 명나라라 한들, 운명이나 한탄하며 체념하는 나치야의 태도는 그녀로 하여금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녀는 가만히 주먹을 말아쥐었다.

어쩌면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는 염라대왕에 대한 반발심이였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나치야와 이여백의 대화를 엿듣기전부터, 정확히 낮에 나치야가 누르하치를 막을 때부터 그녀는 누르하치와 나치야의 마음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왜? 왜 서로 연모하는 연인이 이런 파국을 맞이해야 하는 걸까. 그녀의 상식과 기준에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여백은 그런 그녀의 침묵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왔다.

"어디 아픈 것이냐? 얼굴색이 좋지 않구나."
"연일 고단하였더니 피곤해서 그런 듯 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나치야를 일별한 후 이여백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장막으로 돌아와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하나의 거창한 계획이 그녀의 머리속에서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군중의 모든 군사들이 잠든 시간을 기다렸다.

자정이 넘기를 기다려 그녀는 가만히 장막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누르하치가 감금되어있는 장막으로 향했다.

다행이 경비가 그리 삼엄하지 않아서 장막을 지키고 서있던 군졸은 둘뿐이었다. 뒤쪽에서 급습해서 순식간에 둘을 쓰러뜨린후 그녀는 급히 장막 안으로 돌진했다. 누르하치는 포박을 당한 채 장막 한쪽 구석에 앉아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어정쩡해서 일어섰다.

"임도련님…"
"누르하치, 긴히 물어볼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네?"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누르하치는 의혹에 찬 얼굴이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당신은 나치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느닷없는 질문에 누르하치는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발을 구르며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대답해주십시오."
"…"
"당신은 죽음을 앞둔 사람입니다. 무덤속까지 그 비밀을 안고 가시렵니까? 대답하십시오. 누르하치, 당신은 나치야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치야아가씨한테…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누르하치는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곧바로 그의 눈에서 불찌가 튕기고 있었다.

"혹여 낮의 일로 해서…니칸외란이나 총병님께서 나치야를 처벌하려는 겁니까."
"그런건 아닙니다. 나치야는 무사합니다."

그녀는 그런 누르하치를 응시하면서 낮게 말했다.

"저 역시 당신들을 도우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왔은즉, 적이 아니라는건 당신도 분명히 아실 겁니다."
"네, 알고있습니다. 낮에도 임도련님이 아니었다면…"

누르하치는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다시 그를 다그쳤다.

"그러니 실말을 해주십시오. 당신은 나치야를…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당신을 구해주려는 사람 앞이라면, 당신 마음을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치야는…제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누르하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단순히 그 한마디를 말했을뿐인데, 그의 얼굴에 스치는 한가닥 부드러운 기색에, 서은은 그의 마음을 확신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면…한가지 약조를 해주실수 있습니까."
"약조를요?"
"나치야를 데리고 떠나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녀의 말에 누르하치는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의혹이 가득차 있었다.

"어찌 임도련님이…"
"지금 당신을 풀어줄 테니 당장 나치야를 데리고 떠나십시오."
"…"
"그리고 당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 건주 좌위를 계승하고 힘을 길러 건주여진을 통일한 후, 요동지역을 평정하여 요동의 백성들이 편안히 살게 해주십시오."

누르하치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그런 누르하치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즉 이 길로 기병을 하고 부족을 통합하여, 백성들의 안정을 도모하는 요동의 제후가 되어달라는 말입니다."

누르하치는 몸을 흠칫했다. 그런 누르하치의 형형한 시선을 마주한 채 그녀는 천천히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단 한가지…내가 당신한테 약조 받을 것은, 앞으로 영원히 총병님에 대한 원한, 명나라에 대한 원한을 거두어주는 것입니다."

……

달빛이 장막에 머물러 잠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가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 서은은 어스름한 달빛을 빌어 누르하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르하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그녀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약조…해주시겠습니까. 그 원한을 버리신다구요."
"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고개를 든 누르하치의 눈빛이 문득 날카로와졌다.

"제가 어떻게 하든 임도련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 아닙니까. 왜 저한테 이런 약조를 요구하시는 겁니까."
"그건…"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자신의 얼굴에 머물고 있는 누르하치의 시선을 감지하자 그녀는 더이상 대답을 머뭇거릴수 없었다. 그녀는 머리속으로 차분히 생각을 더듬었다.

"나치야…때문입니다."
"네?"

누르하치는 의혹어린 눈빛을 던져왔다. 그녀는 머리를 돌려 얼핏 장막밖을 바라보았다.

"아까 낮에 보시다시피, 나치야는 자신의 목숨으로 당신을 구하려 했던 사람입니다."
"…"
"하지만 당신은 당신의 개인 원한을 위해 이런 나치야의 마음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
"이번 일로 나치야는 혼사를 파기하고 내일이면 도륜성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도륜성 성주가 어떤 사람인지 당신도 잘 알 거라 생각합니다."
"…"
"니칸외란은 그 딸을 밑천으로 요동을 수복하는 자신의 야심에 남김없이 이용을 할 것이며, 나치야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평생 아버지에게 좌우지당하는 순종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
"진정 나치야가 그리 되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까."

그녀의 시선이 다시 누르하치를 향했다. 애써 냉정을 가장했지만 누르하치의 눈빛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만일 제가…"

드디어 그녀의 시선을 마주한 누르하치는 깊은 고민끝에 가까스로 생각을 정리한 듯 보였다.

"이 약조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제가 아는 당신은 정을 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정녕 이대로 한낱 무부의 죽음을 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긍정에 차넘치는 어조가 누르하치의 낯빛을 한번 더 변하게 했다.

"무부의 죽음…"
"그외에도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누르하치는 고개를 쳐들었다.

"당신은, 죽음을 겁내지 않은 일시의 무부로 후세에 남지 않을 것이며…한 여자의 진정을 저버리고 가문의 뜻도 펴지 못한, 그로 인해 요동지역 여러 민족을 도탄에 밀어넣은 만고의 죄인으로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고의 죄인…"

누르하치는 그녀의 얼굴을 깊이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 약간의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어찌 그리…확신하십니까."
"글쎄요."

그녀는 빙긋 미소를 지은후 다시 누르하치를 보았다.

"우선 지금 이대로 죽음을 택한다면,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는 불효의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요동을 수복하지 않는다면 요동의 백성들을 도탄속에서 허덕이게 하는 불의의 죄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
"불효와 불의를 다 범한 일개 죄인을 어찌 영웅이라 하겠습니까. 그러니 제가 아는 당신은, 그런 헛된 죽음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누르하치는 그녀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마치 그녀의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듯한 강렬한 눈빛이였다.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들어 담담히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약조…하시겠습니까."

누르하치의 눈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그런 석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드디어 큰 결심이라도 내린 듯 그가 그녀에게 머리를 끄덕였다.

"약조 하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에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아름다운 미소를 눈안에 단단히 담은 후, 누르하치는 몸을 한번 떨쳐 포승줄을 풀어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행동에 금세 미소가 굳어져버린 그녀의 얼굴을 한번 더 깊게 주시했다.

"나치야의 장막을 알려주십시오."

두 사람이 장막을 나와서 앞쪽 영채로 향할 때, 문득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한 그림자가 둘의 앞을 막아나섰다. 그녀는 흠칫 놀라 뒤로 둬발자국 물러섰다. 달빛아래 한 표연한 그림자가 그들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 훤칠한 모습에 그녀는 가슴이 덜컥해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형님…"

이여백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쩌면 그의 인내심을 자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이 어떻게 되었든 나치야는 이여백과 혼담이 오가는 사이였다. 나치야가 마음에 두고있는 사내를, 그동안 깊이 신뢰했던 그녀가 나서서 이렇게 빼돌리다니…이여백의 입장에서는 화를 내어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그가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잘들 하는구나."

그녀의 뒤에 서있던 누르하치가 앞으로 나서서 이여백에게 무릎을 꿇었다.

"도련님, 임도련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임도련님을 겁박하여…"
"감싸줄 것 없다. 아까부터 그 뒤를 따랐느니."

이번에는 누르하치도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더욱 민망하여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후 누르하치가 체념섞인 어조로 말했다.

"지금 장막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다."

그의 어조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그 한마디에 둘 다 머리를 들었다. 그는 그런 두사람을 한참 주시하다가 손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영채를 벗어나려면 저쪽으로 가거라."
"도련님…"
"번을 보는 군사는 손을 써두었으니 어서 가거라."
"소인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누르하치의 목소리가 바람에 떨렸다. 그녀의 가슴에도 한순간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이여백은 그녀쪽을 바라보면서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그런 그들에게 깊숙히 머리를 숙여보인후 어둠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밤바람이 싸늘하게 옷깃을 파고 들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숨막힐 듯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어디 말해보거라."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밤바람보다 더 싸늘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녀의 눈에는 이슬 같은 것이 차올랐다. 그녀는 그것을 들킬가봐 더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려면 이러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시선을 아래로 향한채 묵묵히 땅만 내려다보았다. 한동안 긴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그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의형제를 맺던 그날 우리가 한 맹세가 기억 나느냐."
"네…"

그녀는 낮게 대답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네게 설명할 기회를 주마. 하지만 만일 더이상 날 기만한다면 이대로 서로 갈길을 달리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녀는 머리를 들었다. 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표연히 휘날렸다. 그것을 보는 그녀는 문득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의 눈에 스치는 한가닥 불신이 그녀를 슬프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눈밖으로 나오려는 물기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전…형님을 난감하게 하려고 이리 일을 벌인 것은 아닙니다…"

그녀의 무기력한 중얼거림은 그의 다소 생경한 눈빛을 마주하자 그만 입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송구합니다."
"무엇이 송구한가."

그는 고개를 돌려 누르하치가 사라진 쪽을 묵묵히 주시했다. 그의 눈빛에 언뜻 스쳐지나는 상처 같은 것에 그녀는 흠칫했다. 별빛처럼 빠른 순간이었지만, 그것을 발견하자 그녀는 그만 변명할 생각을 버리고 말았다.

"송구합니다…형님, 제가…그만 형님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
"저는 다만, 총병님께서 누르하치를 죽이려는 것을 막고싶었을 뿐입니다."

그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님이…"
"네, 하지만 누르하치를 죽여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한결 차분해진 어조로 말했다.

"형님도 아시겠지만, 지금의 요동은 여러 부락 세력으로 사분 오열 되어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세력이 제일 큰 여진족은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야인여진은 미개한 족속이라 크게 염려할바가 못되오나 해서여진은 부근 부락들과 손잡고 세력을 넓히고있으니 앞으로 총병님의 제일 큰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
"미천한 아우의 소견으로는, 앞으로 해서여진을 견제할 힘은 건주여진밖에 없습니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한참이나 그녀를 보았다.

"계속 말하거라."
"그리고 이 건주여진은…오직 누르하치만이 통솔할수 있습니다."

그가 그녀를 주시했다. 그리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명하라고 했더니 정말 일장설화를…"

그녀는 그의 중얼거림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누르하치의 아버지 타쿠시는 건주여진을 통솔한 건주좌위도독입니다. 지금 타쿠시가 죽고 건주우위의 세력을 대표하는 아타이가 무너지게 되면 건주여진 추장의 후선인이 비게 됩니다. 요동 건주여진 추장은 정2품 관직으로서 금상폐하께서도 중시하는 자리입니다."
"…"
"만일 앞으로 누르하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앉는다면 건주여진은 물론 전체 요동이 큰 혼란을 겪게 되며, 요동이 혼란스럽다면 폐하께서는 기필코 요동의 총병님께 그 죄를 물으실 것입니다."
"…"
"하지만 지금 총병님께서 누르하치를 포박한 이상 저대로 버려둔다면 실직으로 몰리게 되며, 누르하치를 놓아주는 것 역시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길이 될 것입니다. 만일 총병님께서 어릴때부터 길러온 누르하치를 죽이신다면 천하 사람들에게 신의가 없다는 말을 들을 것이며, 누르하치를 죽이지 않고 놓아준다면 건주좌위를 위해 도륜성에 후환을 심어주는 것으로 이 역시 요동 여러 부족 추장들의 입을 막지 못합니다."
"…"
"하여 총병님은 지금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그녀의 긴 말이 끝나자 그는 시선을 들어 그녀를 응시했다.

"다 끝났느냐.”

그의 검은 눈동자가 달빛아래 한결 더 깊게 보였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동정세에 대한 네 분석은 아주 정확하다. 다만,"

그는 말을 멈추고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누르하치를 놓아준 것은 어찌 설명할 것인가."
"제 생각은 이러합니다. 오늘밤이 지나 총병님께선 출전을 앞두고 건주좌위의 세력이 영채에 뛰어들어서 누르하치를 구해갔다고 상소를 올리시면, 이는 요동 여러 추장들의 입을 막을수 있을뿐만아니라 총병님의 실책을 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
"저 또한 이 죄를 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날이 밝는대로 저는 포박을 당하고 총병님께 죄를 청하겠습니다."

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왠지 아까부터 살짝 노기가 어린 그의 눈빛을 보며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제가 누르하치를 놓아준 이유는, 누르하치가 나치야를 데리고 건주좌위로 가서 힘을 기른 후,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동안은 요동을 견제하고 다스리는 총병님의 한팔이 되어드릴수 있다는 것을 믿기때문입니다."
"…"
"누르하치는, 나치야를 데려가는 조건으로, 총병님과 명나라에 더이상 원한을 품지 않겠다고 제게 약조를 하였습니다."
"…"
"그리고 저는…누르하치가 제게 한 약조를 믿고 싶습니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그가 마침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누구냐, 넌."

……

난 누구일까…난 대체 누구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장막에 돌아온 서은의 머리속에는 오직 이 한마디만이 맴돌고 있었다. 누르하치가 갇혀있던 장막쪽에서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여백이 다급하게 그쪽으로 가지만 않았다면 그녀는 그의 추궁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횃불들이 움직이고 영채안팍이 시끄러워지자 그가 다급히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장막으로 돌아가거라."

그녀는 장막안에서 안절부절 못하다가 장막을 나서서 영채 뒤쪽을 바라보았다. 누르하치가 나치야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갔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이여백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그녀는 더 불안했다.

이여백이 그리 물었을 때에는 이미 자신이 그의 의심을 자아냈다는 말이 된다. 누르하치를 구하는데 급급해 지나치게 요동 정세에 대해 아는 척을 한 것 같아 그녀는 후회했다.

영채 뒤쪽의 소란이 잠잠해지고 한식경이 지나서야 장막밖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보려다가, 때마침 장막안으로 들어서는 이여백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형님…"
"아직도 취침하지 않은 것이냐."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섞이지 않은 담담한 어조였다. 하지만 그녀는 가슴이 옥죄어들었다.

"네."

간신히 혀아래 소리로 대답하후 그녀는 머리를 들었다. 그의 차분한 얼굴을 봐선 누르하치는 안전하게 빠져나간 듯 했고 장막밖의 소동도 어느정도 정리가 된 듯 싶었다.

"형님께 죄를 청하겠습니다. 어찌 처치하실 것인지 제게 합당한 벌을 내려주십시오."

그녀가 머리를 숙이고 말하자 이여백은 자리에 앉았다.

"아버님께 고했다."
"네…"

그녀는 체념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하오면, 날이 밝는대로 군중을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이 장막에서 근신하고 싸움이 끝날 때까지 벌을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까."

그가 잔잔히 눈초리를 휘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그런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고개를 숙였다.

"분부만 내려주시지요. 그 어떤 벌이든 따르겠습니다."
"그래…벌이라…"

그의 목소리가 어쩐지 홀가분하게 들려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의 단정한 얼굴과 반듯한 표정에서 아무것도 보아내지 못하고 그녀는 재차 물었다.

"떠나라…하시더이까."
"아니, 장막에 근신해 있으라 하였다."
"네에…"

그녀는 시선을 내렸다. 바로 그때 그가 피씩 웃었다.

"그리고 싸움이 끝나면 총병부로 함께 가게 될 것이다."
"네?"
"왜? 어떤 벌이라도 받겠다 하지 않았는가."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그의 말의 의미를 깨닫고 그녀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설마…누르하치는 제가 놓아준 거라 말씀 안하셨습니까."
"무슨 소리냐. 누르하치는, 내가 놓아준 것이다."

그의 흔들림 없는 단호한 말에 그녀는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그의 생각을 당췌 알수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형님께서…그 죄를 쓰십니까?"
"죄를 쓰다니. 너 설마 내 공로를 이대로 가로챌 셈이냐."

그가 의연한 표정으로 접선의 선추를 만지작거렸다. 그의 그런 여유로운 행동이 차분함을 넘어서 우아하게까지 보였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말을 버벅거렸다.

"그거야…그렇지만…그래도 형님이…"
"이 일이 아버님께 알려지면 넌 여기에 있을수 없다."
"…압니다."

이성량의 성정으로 자신의 계획을 망친 사람을 가만둘리 없다는 건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대답에 그가 한숨을 쉬었다.

"널 이렇게 빨리 잃기는 싫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형님."

그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였다. 얼핏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검은 눈동자안에 오롯이 그녀의 모습이 담겼다.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설명은 따로이 있는 것을…”

그의 눈빛에 뭔가 실낱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네? 그게 무슨…”
”아니다. 되었다.”

그가 가볍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 실낱같은 그것이 기대인지, 체념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그의 눈빛은 금세 깔끔하게 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놓치지 않았던 그녀는 잠깐, 아주 잠깐 멍해졌다.

이 글을 공유하기:

pandora

판타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판타지입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6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