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영화평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셨던 얘기다.

신화가 말하려는 시대보다

신화를 말하는 시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영화를 볼 때 영화 속의 사건 발생 시간보다 이 영화가 상영된 시간이, 영화 평론에 있어서는 더 큰 의미를 가짐을 가르치던 말이었다. 중국영화 <건국대업>을 예로 들면 이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영화 속의 1940년대말이라는 시간보다 영화가 상영된 2009년이란 시간이 더 많은 의미와 정보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같은 시각은 "내"가 사는 현시대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분석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요즘 '지지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광고를 보았다. 

보시다시피 혼인소개 사이트 광고다. 물론 이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할 것이 없다. 배우자를 찾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있어온 자연스런 일이고, 이러한 오작교 서비스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줄곧 필요로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눈길을 끈 것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다. 연봉은 물론이고 "차종"과 "주택"이 정보사항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바로 그것. 차종은 BMW이고 본인소유이며 어느 도시에 집이 있고 몇 채요 하는 문자들, 참 재미가 있다. 그래서 광고에 붙어있는 웹주소를 찾아 서핑을 해보았다. 줄줄이 늘어선 등록회원 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대략 이러한 구조로 되어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면, 이러한 "신화 속의 시대" 즉 혼인소개 내용보다도 이러한 "신화가 나타난 시대" 즉 이러한 사이트가 현 시점에서 출현했다는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집"과 "차"가 공식적인 혼인조건으로 등장한 현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이는 이전의 수많은 혼인소개 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점이다.

이 사이트가 얼마나 창의적이냐 하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가 이러한 정보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러한 정보가 결혼을 성공시킴에 있어서 거의 필수적일 만큼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반증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사이트는 그 흐름에 올라탔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최근 들어 중국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화두 중의 하나가 바로 "穷养富养"이다. 뭔 얘긴고 하면, '아들은 가난하게 키우고 딸은 부유하게 키워야 한다' 는 뜻이다. 이는 옛부터 있어온 속담으로서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하지만 왜 최근에 와서 다수 사람들의 입에 거론되며 다시 이슈화 되고 있는 것인가? 

*바이뚜에서 이 키워드를 검색하면 2백만 건이 넘는 검색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화가 말하는 시대"보다 "신화를 말하는 시대"가 더 중요하다. "穷养富养"은 예전부터 있어온 얘기지만 최근 여론이 이 얘기에 공감을 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이유를 들여다 보면 대체로 이러한 뉴앙스를 띠고있다. 요즘같은 경쟁사회에서 남자로서 성공하려면 고난과 좌절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야 하므로 어릴 때부터 열악한 환경을 경험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비슷한 이유지만 세상의 유혹이 하도 많고 성공한 척 꾸미고 다니는 남자들이 많아서, 여자로서는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어릴적부터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배움으로써 소위 '진짜'를 가려낼 수 있는 안광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어느 가난뱅이나 허풍쟁이가 고급 레스토랑에 한 번 데려가거나 고가의 선물 하나 주는 것에 혹하고 넘어가 버릴 수도 있다는 거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응시교육, 소질교육, 인성교육, 방목형, 사랑교육 등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빈부로 대변되는 "물질교육"인가?

——- 까마귀 분계선 (까~욱 까~욱)——-

이상의 두 가지 사례와 비슷한 신화들이 현시대에서 서술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 우리는 그로부터 무엇을 엿볼수 있을까? 

나로서는, 이것들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점수를 더 많이 주고있냐를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 판단들이 한두 개의 영역이 아닌 다양하고도 넓은 범위에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결혼의 가치를 집과 차를 우선으로 판단하는 것, 자녀 양육의 초점을 물질적인 등급을 분별하는데 둔다는 것과 같은 것은, 우리 사회에서 물질적인 기준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으며 다른 가치들은 상대적으로 폄하되어 무시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있다는 얘기가 된다. 

본능을 엄청하게 인정한다. 즉 듣기 좋게 얘기하면 "원초적"인 것을 점점 더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듣기 싫게 얘기하면 "일차원적"인 것을 열렬하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한 시대에는 그 시대에 걸맞는 "신화"를 써내려 가야지, 굳이 시대를 거스를 필요가 있는까? 물 가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면 제일 편한게 아닌가? 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글쎄다. 집과 차를 남자한테 사내라고 해서 얻은 여자, 집과 차를 마련해서 결국 결혼에 골인한 남자, 그들은 흘러가는 대로 살아서 과연 그 과정에 아무런 고민 없이 편하게 지냈을까?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과연 취하여 마땅한 삶의 방식일까?

신화 배후의 숨은 의미를 몰랐다면 몰라도, 이미 알아버린 이상은 그대로 넘어가기는 어렵다. 넘어가더라도 마음이 불편하다. 문제는 비판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을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문제 해결까지는 오래 걸릴지도 모르고 내가 사는 동안은 그 변화를 경험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화의 의미를 알아버린 지금이 사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알아버린 이상 모른 척은 할 수 있어도 모를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선택을 해야 하니까. 

1. 모른 척하고 그냥 바람 부는 대로 산다.

2. 시대의 변덕에 영향 받지 않는 가치에 따라 산다.

3. 혼자만 그리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도 목소리를 전한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 

살만한 세상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답게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원고: 2017.07.25
재고: 201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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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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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제는 이런 현상이(차 있고, 집 있고) 이제는 거쳐가야만 하는 하나의 절차로 되어 있다는거지요. 그리고 또 “남들이 다 그렇게 하는데 왜 나는/우리는 그렇게 못하지?”, “나도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나는 어디가 못나서 저렇게 못하지?”… 하는 비교 심리도. 예전에 유명한 “我还是坐在宝马里哭吧“라는 말도 있지 않슴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답이 없는,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하면서 생기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봄다. 옛날사람들은 소나, 밭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있지 않았을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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