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지만, 손톱만 한 녀석과 눈이 마주칠 때면 온몸이 순간적으로 얼어붙는다. 에프킬라로 바퀴를 처치하고 나는 바퀴의 변사체를 보면서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인간은 무엇 때문에 바퀴를 이토록 혐오할까. 대단한 전염병을 몸에 지닌 것도 아니고, 사람을 물어뜯거나 공격하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쥐처럼 집안의 먹거리를 축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기척만 감지하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그에 비해 인간의 체구는 바퀴의 수백 배(나의 몸집이라면 수천 배)고, 에프킬라 같은 첨단 무기까지 수시로 동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혐오란 왜 발생할까? 어쩜 인간과 바퀴벌레의 이런 ‘힘’의 불균형 때문일지도 모른다.

싫증(싫어하는 것)과 혐오는 다르다. 싫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예시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어떤 사람을 싫어한다면 그 사람이 어떻게 밉상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혐오에는 합당한 이유가 딱히 없는 경우가 더 많다. 뭔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아도 밟아버리는 게 혐오다. 밟고 올라탄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자기에 비했을 때 취약한 자, 즉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에게 행해진다. 참고로 혐오란 게 어디까지나 강자의 특권이고, 늘 더 큰 특권을 욕망하는 인간의 특성상 강자를 상대로 한 혐오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송이 관련 댓글들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분석해보면 대개 이런 표현들이 자주 등장한다.(나는 요즘 할 일이 지지리도 없나 보다) “탈북자 주제에”, “한국에 조선족이 얼만 줄 알고 덤비니”, “공안에 전부 다 신고해버리자”. 사회적 신분에 대한 멸시, 수적으로 우세하다는 힘의 과시, 그리고 공안이라는 또 다른 강자에 대한 의존. 솔직히 내 똥 굵다, 는 얘기로 밖에는 안 들린다.

혐오 가해자에게는 보통 두 가지 특징이 존재한다. 하나는 피해망상증에 찌들어 있다. 다른 누군가로부터 받은 차별과 멸시를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앙갚음하여 자신의 힘을 뿜뿜한다. 두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강자에게는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2017년의 <청년경찰>과 <범죄도시> 사태를 다시 소환해보자. 1000만 명 넘게 시청했다는 점에서 한송이의 말 한마디와는 당최 비교가 안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오늘 같지 않았다. 물론 조선족 사회에서 공동대책위가 만들어지고 대응에 나섰지만, 굉장히 신사적이었다.(나도 대책위에서 활동했기에 사정을 좀 안다) 학자들이 모여 토론회 가지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변호인단을 꾸려 법원에 소송을 건 것뿐이다. 뭐 영화제작사에 찾아가서 깽판 친다거나, 배급사에 전화로 항의한다거나, 김주환 감독한테 협박성 문자 보내고 집 주소 유포한다거나 하는 미개한 행동은 전혀 없었다. 솔직히 팝콘 먹으면서 매출 올려준 사람이 더 많았던 거 같다.

한송이 사건이 시작되고, 나는 이런저런 문자들을 받았다. 그중 어떤 분이 그러더라. “조선족은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무시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등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혐오를 맘껏 내지르는 작금의 모습으로 힘까지 가져버린다? 그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세상에 강자가 있다면 상대적 약자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약자들 앞에서 어쩜 우리는 너무 당연시하게 우리의 힘을 과시하려 들 것이다.

약물에 기절한 바퀴벌레를 휴지로 감싸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혐오는 바퀴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 혐오는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나는 앞으로 바퀴와 평화롭게 공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막 좋아한다는 게 아니다. 그냥 적당히 싫어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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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 Ner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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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해져야 된다”.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이러한 문제의 해법은 아닌것 같습니다. 40년대에 비하면 지금의 한국은 엄청 강해진 거지만, 그렇다고 망국과 독립운동으로 인해 세계에 널려져 생긴 이른바 ‘동포’문제와 노동인구의 변화로 맞이한 이주민 노동자 문제를 잘 마주하고 있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힘이 세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번 사건은 정서가 엉뚱한 분출구를 찾은 과열상황이었다는 생각입니다.

  2. “ 혐오는 바퀴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다. 혐오는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오히려 사람의 기척만 감지하면 혼비백산하여 도망친다.”

    – 위에 잇는 글중의 두구절을 읽고서. 그러면 역으로 도망침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바퀴의 잘못이다. 도망침은 타자의 문제가 아니라 바퀴 자신의 문제일수도 있겠네요. 새로 태여난 바퀴가 자신이 바퀴라는 인식때문에 사람들과 부딪혀 보기도전에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는……

    글을 잘 읽었고 많은 부분에서 공감을 햇슴다. 우리민족이 서로서로 도우면서 약자도 강자한테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함께 발전해 나가는 그런 사회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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