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에 좋은 소식이 있었다. 오랫동안 빛 보지 못하고 방치되었던 룡정 로투구진 소기(小箕)마을의 사과배 조상나무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사과배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창호(崔昌浩) 선생의 반신상을 세움과 동시에 그의 고택도 손질되고 사과배 기념비도 수선되며 남은 두 그루의 사과배 조상나무도 보살핌을 받는 등 관변차원에서 문화를 살리는 일들이 이루어졌다. 

허름했던 기념비(2011, 김혁 촬영)

말라가던 조상나무(2011, 김혁 촬영)

콩밭 사이로 쑥대밭이 되었던 고택

방치되었던 조상나무와 기념비

사과배는 연변의 명물이자 명함 중의 하나이다. 두메산골에서 쓸쓸히 잊혀져 가는 듯 했던 사과배 조상나무와 창시자의 이야기는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되고 그 업적을 기리게 되었다. 

최창호 선생 석상 개봉

석상 뒤로 수선된 기념비가 보인다

워낙은 이처럼 기쁜 일이다만, 그 기쁨을 흐리는 점들이 있어 아쉽기도 하다. 새로 선 반신상의 소개문에 틀린 글씨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미 이 글의 제목이 뭔가 잘못된 걸 발견한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길이길이 기려야' 하는게 맞다. 근데 '기리기리 길이'는 일이 있었다. 

반신상의 중국어 소개문

위 사진의 글을 읽는 내가 대신 식은땀이 난다. 150자 미만의 짧은 소개문 중에 오탈자만 여럿이다. 게다가 구두점과 글자 간격도 안맞고, 틀린 문법이 속출한다. 공들여 작성한 글쓴이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자신의 자기소개문이라면 이렇게 적었을까. 연변말로 하자면, 읽어 내려가기가 참 '아짜아짜하다'. 

전형적인 잘못된 데를 예로 들어보자면, 

(1) 咸北道 > 咸北道 [함흥(咸興)과 경성(鏡城)의 첫글자를 딴 이름, 조선팔도의 명칭이 대개 그러한데 간과한 것이 아쉽다]

(2) 镜城 > 镜城 [두 글자 뒤에 버젓이 '鏡'자가 나와있음… 근데 뭐 '郡'자도 틀렸으니..]

(3) 小村 > 小村 [한자 소리도 다르고 뜻도 다른 두 글자] 

(4) 认定为 > 认定为 [문법, 쉼표로 이어오면 주어가 '사과배'여야 함]

(5) 08月12日 > 8月12日 [처음 보는 날짜 서식]

… …

기존의 문장에 기초하여 조금 다듬어서 아래와 같은 수정안을 써봤다. 이렇게 얼룩진 글이 이미 돌 위에 새겨져 만인에게 공개되었다고 생각하니, 연변말로 하면 참으로 '심정이 와자자하다'. 

원문의 줄바꿈에 기초하여 첨삭

소개문 작성자가 유에서 무를 창조한 어려운 작업이라서 그랬다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실은 이미 참조할 문장이 존재하는 상황이었다. 바로 옆의 사과배 기념비에 이미 최창호 선생에 대하여, 그리고 사과배의 유래에 관하여 조선어와 중국어 두 버전이 버젓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1987년 중국어 버전 소개문

1998년 조선어 소개문

저 위에 글만 참조했어도 고유지명을 틀리게 표기하거나 불필요한 문법적 착오를 범하지는 않았을텐데. 글자체만 봐도 그렇다. 이러한 소개문은 가독성이 좋은 명조체(宋体)를 사용하는게 일반이다. 적어도 내용을 강조하기에 적합한 고딕체(gothic) 정도를 썼어야 할 곳으로 생각되는데, 저 비문에 쓰인 화려하고 글자 간격이 들쑥날쑥한 글자체는 그 연유를 잘 모르겠다. 심미관의 차이는 개인에게 있어서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와 같은 공적인 장소에서는 섣불리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냥 단순히 산골 구석의 별 볼일 없는 소개문 하나로 치부했을까. 그럴리가. 이러한 유적지 하나하나가 연변주의 관광자원을 이루고 있고, 이러한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나 텍스트가 얼마나 중요한 지역관광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를 모를리가 없다. 많지 않은 외부자본의 유치 중에서 적지 않는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투자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한류를 따라 한글을 익히는 요즘 중국의 거대한 90후, 00후 유람 인구들에게 어떤 인상으로 남을지를 모를리가 없다. 그게 문화의 소프트파워임을 모를리가 없다. 그럴리가 없다. 


이러한 일을 벌이고 책임지는 유관 부문은 연변주 정부 선전부나 문광려국(文广旅局)일텐데, 나는 그런 뜨르르한 곳이나 그 계통 내의 여러 사업체들에 소개문 하나 작성할 인재나 이런 유형의 사업을 진행하는 매뉴얼 하나 없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뭐 옥의티 몇몇 갖고 호들갑을 떠는가 하는 목소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이게 과연 옥의티 수준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진짜 아침드라마에 나오는 옥의티 대사나 소품이었으면 좋겠다. 흘려보내면 그만이니까. 기껏해야 다시보기로 몇번 더 나오면 그만이니까. 근데 가석하게도 이건 기념용 반신상이다. 돌에 새긴 금석문이다. 일년이 가서 십년이 가고 또 가도 보는 이마다 비문 앞에서 혀를 찰 것이다. 소름끼친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작성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라도 다시 새겨 다시 세워야 할 일이다. 

번외①:

<사과배에 관하여 꼭 알아야 할 오해 한 가지>

사과배는 '배나무' 가지를 '돌배나무'에 접목시킨 품종이다.

사과나무 가지를 돌배나무에 접목시킨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오해는 아마도,

  1, 접지한 배나무 가지가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유래한 점(북청 사과는 유명하다).

  2. 열매의 생김새가 발그스름하여 사과랑 비슷한 점.

이상과 같은 이유로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져 널리 퍼진 설일 것으로 추측해 본다. 

번외②:

<연변주 공공장소의 텍스트 규범화>

지금까지 연변의 여러 간판이나 표지판 속의 조선어나 중국어 번역으로 인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무수한 해프닝들이 계속하여 온라인 상에서 '회자'되어 왔다. 정부만 원한다면 글쓴이를 비롯한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교정을 대신 봐주고픈 용의가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근본없는' 한낱 개인이 원해서 될 일은 아니고, 정부의 선전부나 문광려국에 관련 위원회를 구성할 필요성은 모두가 충분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한 위원회에서 모든걸 직접 할 일은 못되고 믿을만한 제3자 플랫폼에 외주를 주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될 것이다. 

글쓴이의 어리석은 생각일지 모르나, 연변대학 조문학부 같은 데서 교수와 학생들로 관련 센터를 하나 구성하면 가장 빨리 풀리지 않을까 싶다. 학교는 정부지원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학생들은 편집경험을 늘리고 해당 부서는 부담없이 문제해결을 볼 수 있는 '윈-윈-윈'의 모델이 아닐까. 

교수나 학생들로 정규적인 편성이 어려우면 학생동아리나 사회단체로 구성하되 전문가들이 감사단만 맡아도 될 일이다. 온라인으로 전 사회로 오픈하여 출판계, 학계와 문학도들의 잉여지식을 널리 흡수하여 누리꾼 편집자들을 모으는게 더 민첩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편집 > 재심 > 승인 > 공개' 로 이어지는 프로세스 매뉴얼 하나만 잘 만들면 가능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련 글

사과배 그리고 최창호 – 박마토

중국조선족의 애환 담긴 명물 ‘사과배’ – 김혁

(※김혁 작가가 '崔昌', '崔斗凡' 라고 적은 것은 87년 비문과는 다른데, 따로 고증한 결과인지는 미확인. 이 글에서는 87년 비문의 내용에 근거하여 적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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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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