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구경들중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 구경이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문인들의 말싸움 구경이다.

 

평소 이미지를 잘 포장해왔던 문인들의 싸움은 더 가관이다.

 

文如其人이라는 말은 말도 안되는 얘기다. 문장에서는 진정한 저자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다. 문장은 그냥 가면이니까.

그런데 문인들끼리의 싸움은 그 가면을 스스로 벗는 과정이다. 그래서 베일에 싸여 졌던 庐山真面目가 들어나는 과정이 되여 추리소설을 읽는것보다 더 짜릿하다.

 

(싸움을 걸어와도 응수를 안하는 문인도 가끔 있다. 그런 사람은 무서운 사람이다. 절대로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은 상종 안하는 것이 좋다. 무슨 구렁이가 들어있는지 모르니까 가장 위험한 사람이다. 단, 한가지 경우는 예외: 같은 체급이 아니거나 주파수가 틀리는 사람인 경우! 이럴때는 응대를 하는 것이 미련한 짓이다.)

 

글깨나 쓰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관종”들이다. 자신의 내면의 생각을 누군가랑 나누고 싶은 욕구가 엄청 강한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싸움을 걸어오면 피하는 경우가 드물다.

 

진짜 오랜만에 微博에서 9월 한달을 뜨겁게 달군 문인들의 싸움이 있다. 9월달 글깨나 쓰고, 관심 꽤나 받고 있고, 또 문화에 관심을 가진 문예청년과 중년들이라면 다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퍼나르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건이다. 아마 이런 재미는 7,8년만에 다시 보게 된 것갔다.

 

사건의 발단은 중앙음대의 부교수인가…하여튼 그쪽 업계에는 조금 유명하나 문인들사이에는 듣보잡의 교수가 木心을 공격한 것이다. 

몇 년전에 돌아가신 木心선생은 당대문화사에서는 좀 보기드문 독특한 천재형 캐릭터이다. 생전에 미국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의 화인세계에서는 미술과 문학적 분야에서 성망이 꽤나 높았으나 대륙에는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분이였다.

뉴욕에 유학을 떠났던 중국미술계의 거두중 한명이였던 진단청이 목심선생을 만나면서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고 광서사범대학출판사를 통해 목심선생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몇 년채 “木心热“라는 기이한 문화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중국의 문단과 문화현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문예청년들 문예중년들 사이에서는 문예教主의 추종을 받고 있다.

 

목심선생은 아주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고 또 동서양의 문화를 관통하고 있는 분이다. 미술과 철학 문학 그리고 음악에 조예가 깊으시고 그것을 자신의 독특한 지적내함으로 녹여내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수 있게 그리고 또 새로운 미학적 감수능력을 일깨워 준다. 

중국의 문화는 동서양의 문화를 관통했던 민국시대의 大师级别의 천재 문인들에 의해 민국문화라는 일종의 동양문화의 서양식 방법론의 해석으로 엄청난 고봉을 이루었다. 그런데 역사적 원인으로 인해서 대륙의 문화는 전통문화와의 단절, 민국문화와의 단절, 쏘련 이외의 서양문화의 단절을 가진 오랜세월을 거쳐왔다. 국내의 문인들은 그런 단절의 틈새를 뚫고 나오는 외계와는 단절된 문화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심선생에게서 유일하게 전통문화에서 민국문화로 그리고 현대에 이르는 끊기지 않는 맥을 발견할수 있고 물과 기름과 같이 섞일수 없는 서양문화와 동양문화의 모종의 융합도 발견할수 있다.

 

그리고 목심선생은 천재적 재능을 지니고 있어 그의 전공인 미술이외에도 문학과 철학 그리고 음악에도 그만의 독특한 시각과 이해를 갖고 있다.

 

이런부분들이 대중이나 젊은 층들의 열광을 받게 하지만 소위 정통 학자들, 전문가들에게는 굉장히 불괘하게 다가 갔던 것 같다.

 

종합적인 문화소양을 두루 갖춘 大师级别의 학자들 이외의 대부분 전문가들은 대중에게 환영을 받지 못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잘 소화해내서 대중에게 알기 쉽게 그러나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때문이다. 맨날 무슨 외계어 같은 소리만을 해오니까. 

그러다 보니까 목심선생같은 분들에 대한 시기질투가 만만치가 않다. 

지식인들은 대부분 생각보다 많이 쪼잔하다. 심지어 악독하기까지 하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의 대학살들은 소수의 알량한 지식인들이 자신의 생각이 맞다느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일어났었다. 프랑스대혁명의 로베스피에르가 그랬고 히틀러가 그랫고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의 폴 포트드가 그랬고 상앙이 그랬고 왕망이 그랬으며 홍수전이 그랬다…그리고…뭐… 지식인들을 臭老九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여튼 목심선생에 대한 논란이 학계에는 늘 있어왔다. 그런 논란쯤은 아주 당연한 거고 합리적인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싸움의 발단은 중앙음대의 郭文景이 목심을 좀 많이 예의없는 글로, 격이 많이 떨어지는 시정잡배식의 글로 공격을 해왓다는 것이다. 그것도 팩트에 대한 평론이 아닌 인신공격이였다. 목심선생이 많이 선배이고 이미 고인이고 또 개인적인 원한도 없고 사회적인 악을 끼친 일도 없는데 말이다. 그것도 목심선생을 평생의 은사로 모시는 진단청과 일면식이 있는 사이인데 말이다.

 

중국문예계에서 말발이 가장 세고 논리가 날카롭기로 둘째가라면 아쉬울 검객과 같은 전단청이 잠자코 있을 리가 없었다. 진단청은 말싸움에서는 사실 郭文景정도는 껌도 안되는 실력자이다.

 

두사람이 주고 받은 내용 원문 내용이다.

 

2020年8月20日,著名作曲家郭文景著文对木心提出批评,原文如下:

怼文一篇

 

木心说:我是一个人身上存在了三个人,一个是音乐家,一个是作家,还有一个是画家,后来画家和作家合谋把这个音乐家谋杀了。

 

狼子村(编者按:即郭文景)说:我是一个人身上存在了五个人,他们是天文学家、哲学家、画家、诗人和作曲家,后来作曲家把其他四个人全杀了。

 

(这种不交税,无成本,无法证伪的牛逼我们每个人都可以吹,乐见大家一起来吹。)

 

木心说:东方与西方最大的分异现在音乐上:东方的音乐越听人越小,世界越小。西方的音乐越听人越大,世界越大。

 

狼子村说:纯属放屁!川江号子、信天游、草原的长调、藏区的牧歌、古琴、笛子、唢呐… …我越听天越宽、地越远,最后听见人在天地苍穹间。

 

木心说:我去德国考察空气中的音乐成分,结果德国没有空气,只有音乐。

 

狼子村说:我去佛罗伦萨考察空气中的艺术成分,夜晚散步时,遇到达芬奇、米开朗琪罗和拉斐尔的幽灵,这三位拉着我的手说:可把你盼来了!

 

(跟上面第一条一样,欢迎大家一起来吹。)

 

木心说:勃拉姆斯的脸,是沉思的脸,发脾气的脸。在音乐中沉思,脾气发得大极了。

 

狼子村说:得,我都不敢说我听过勃拉姆斯了。

 

木心说:谈贝多芬、谈肖邦,最大的难事是要年轻人承认浅薄。

 

狼子村说:热爱贝多芬和肖邦的年轻人可能会说,凭什么!?我也要说:不就一贝多芬一肖邦吗?你大爷的!凭什么要年轻人承认浅薄?要想显得自己高深也不带这么踩年轻人吧?

 

木心说:贝多芬是德国乐圣,博大精深,沉郁慷慨。莫扎特是俄耳浦斯的快乐、和平、祥和的一面,肖邦是忧伤、自爱、怀想的一面。

 

狼子村说:省省吧,这些陈词滥调谁人不知,哪个不晓?但!是!我必须指出,这滥调,是对三位作曲家最浅薄的解读。

 

有不少文字介绍说,木心在狱中时,曾在白纸上画钢琴键盘,无声弹奏莫扎特和巴赫。对此传说我有两个疑问。我见过木心留下的所谓音乐作品手稿的照片,是十几页不成调的简谱,这说明木心不认识五线谱,那么他弹的应该是简谱版的莫扎特和巴赫了。我的第一个疑问是:

 

哪儿有简谱版的莫扎特和巴赫卖?

 

如果这世上从未有过简谱版的莫扎特和巴赫,那说明什么呢?

 

我读过吴法宪、邱会作、李作鹏等人的回忆录,他们在回忆录中详细记录了他们在秦城监狱的生活。这些人曾是政治局委员,从他们的回忆看,在狱中他们是无权自己选择和创造娱乐方式的。因此,对画钢琴弹,我的第二个疑问是:

 

木心蹲的是那所监狱?

 

木心还说他在狱中写了66页十余万字的《狱中手稿》。中将、空军司令、政治局委员吴法宪回忆说,每日写交代材料,给了多少张纸是有数的,写完上交,纸张数要对得上才行,绝无可能偷偷存下纸来写别的东西。因此,我不知木心蹲的是哪家监狱,是以什么身份蹲的监狱。我高度怀疑他蹲的是外国监狱。

 

最后,重要申明:我其实怼的不是木心这个人,而是一种文风和宣传方式。特此说明。

 

……成都快活了两天,今日回京,仍无心作曲,故而写篇怼文消遣。

 

 

 

9月1日陈丹青对郭文景8月20日一文作出第一次回应:

 

文景弟如晤:

 

久不见,今友人转发弟怒怼木心文,甚惊艳。弟于木心音乐观持异见,狠好,直说便是,然辞气如是之污秽,面目如是之难看,实令我吓煞。昔年得识弟,欢谈之下,果然中音七八届才子也。今贵为教授,作曲精英,音坛前辈,国际名角,而竟不惜自已上网破相,悍然骂街,弟不觉得又亏又土吗?呜呼,赞人也好,骂人也罢,说出的都是自己啊。今大文既出,本不必作复,然念及两面之缘,骤尔看低吾弟,亦属无礼,遂收回雅量,回应如上,也算陪弟破一回相吧。

 

丹青2020年9月1日

 

9月7日,郭文景对陈丹青的信作出回应:

 

丹青吾兄:

 

1.对兄我是敬佩的,所著的书,见到的都买来拜读了,二十四年前在纽约的交往也都是美好的回忆。

2. 我给高为杰先生的回复:不是怼木心,是怼一种文风和宣传手段,我想那些东西木心自己也不会赞成。木心那些能演出的音乐作品我听了,其实就是高平的作品。高平温和儒雅,成人之美,是个君子,不似我,是个土匪。

3.我厌恶宣传中的做假。木心本不在我关注的范围内,偶然看见狱中弹琴和写书的说法,感到难以置信,故质疑之,但也乐见澄清证实。

4.兄不喜愚弟文风很正常,但认为“污秽”“骂街”,我甚为愕然。自认为随手的朋友圈聊天调侃耳,并无怒气(没什么可怒的)。

5.刚开学,甚忙乱,先到此吧。

 

祝秋安!

文景

 

 

 

9月8日,陈丹青再次作出回应:

 

文景弟,谢谢回复。看来你颇委屈。

 

你怼木心、反感“宣传手段”、深疑木心手稿,均无妨。使我惊吓者,是“纯属放屁!”、“去你大爷”之类,一付打上门来的凶相。现在你说你“并无怒气”,“随手调侃”,那可更其轻佻了。

 

老木心生前受尽屈辱,今已成灰。你若要怼他一下子,腔调稍微好看些。想想吧,你我都是六十好几的老狼羔子,装成艺术家混世,浪得虚名,遇事遇人,不可轻易破相露底,这点小道理,谅必不会完全不懂吧。

 

我亦无非草寇出身,粗口不断,上次回应你,偏要出以斯文,这点苦心,弟也不明白吗?

 

话题岔开:瞿小松君,我的老朋友,你的老同班,为此有过两度表态,见于友人发来的截图:一是呼痛快,竖姆指,挺文景怼(或曰调侃)木心。一是见我回应,即曰:“丹青刻薄,有失风度。”继而大谈对异见须得“能容”、“能忍”,于是见“胸怀”云云……

 

哎哟!早听说小松多年修佛,原来修到这般虚伪的境界,跌我眼鏡,开我眼界——今索性转而刻薄于小松,再失一回风度,看他能否容、能否忍,胸怀究竟如何。

 

好了,文景弟,眼下你、我、小松,均已破相,至此转为喜剧,给看客们添些笑料吧。

 

即颂大安。

丹青2020年9月8日

 

사실 문장력에서 두사람 같은 체급의 싸움꾼이 아님이 금방 들어난다. 진단청이 응수해준건 참 面子 준 셈이다.

 

이렇게 일단락 되는 줄알았다. 이정도면 재밌는 싸움이 아니다. 

나두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반전을 일으킨건 유명한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인 姜文이였다. 

芙蓉镇에서 보여준 연기력과 阳光灿烂的日子에서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국내 최상급이다. 그리고 사람 좋다고 평판이 자자했던 사람이였는데 이번싸움에 끼여들면서 밑천을 그만 보여주고 말았다.

姜文은 두사람과 다 친분이 있었다. 진단청과는 뉴욕 유학시절에, 곽문경과는 阳光灿烂的日子에서 감독과 작곡가의 관계로. 그래서 두사람 싸움을 중재해서 나섰다. 

자기는 微博계정이 없어서 易中天의 계정을 빌어서. 그런데 말이 화해시키는 거지 완전 拉偏架였다. 계다가 그새 책좀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었는지 수준떨어지는 문장에 운도 안맞는 7언절구까지 써서 글을 올렸다. 개똥 같은 글을 실어준 易中天도 자기 밑천을 보여준셈이 된거다.

 

《七绝》

陈木可观不可雕,勤能补陋难补骚。

東施代有东施效,秋泯夏虫子莫号。

 

제목은 칠절인데 어떻게 읽어도 格律가 맞지 않다. 언제부터 28글짜로 줄을 맞춰 쓰면 칠언절구가 되었던가… 그것도 진단청과 목심선생에게 굉장히 무례한 打油诗라고 말하기도 처참한 28자이다. 姜文 참… 속에 뭔가 들어있는 감독인줄 알았는데…ㅋㅋㅋ 그냥 戏子。

 

진단청은 응대도 하지 않았다. 같은 레벨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모든 상황을 28자로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해 버린건 무명의 민간의 고수였다.

 

姜汤自信能去寒, 却笑陈皮不止痰。

木叶清香君未觉, 只缘身在烂泥田。

 

누군가 지나가다가 평론에 칠언 절구를 남겼는데 문자의 사용능력이나 문학적 경지, 풍자의 예리함과 논리구조가 姜文이 쓴 것에 비하면 그냥 중문과 박사생과 소학생 수준차이인 것 같다.

 

일단 딱 28자로 모든 상황을 확실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우열을 깔끔하게 갈라주고 싸움에 참여한 인물들의 특성도 확실하게 설명하였다.

마지막구절로  姜文을 완전히 진흙속을 밟아 묻어 버렸다. 

운율도 흠잡을데가 없고 对仗도 工整하다.

 

여기서 “姜汤”은 姜文을 지칭하고,“陈皮”는 “陈丹青”을 가리키며,“木叶”은 “木心”을 말한다. 모두 식물이고 또 생강차와 진피는 중약재로 쓰인다. 

강문이 한기를 없애려 하면서 진피가 담을 깨끗게 못한다고 주제넘게 비웃는데 나뭇잎의 청고함과 그 향긋함을 느끼지 못함은 넌 그냥 진흙탕속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한다. 

생강은 원래 진흙속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목심선생의 인격이나 작품은 清香이라는 두글짜가 너무나 찰떡 같은 표현이다. 고매롭고 깨끗하고 순전함이 목심의 특성이니까. 

그리고 강문이 이런 주제 넘는 미련한 짓을 한 것은 그의 교제권의 진흙탕같은 혼탁함과 더러움때문임이라는 회심의 일격을 가한다. 7글자로 강문을 완전히 진흙속에 보내버린 거다.

 

이 시를 읽고 아…역시 고수는 민간에 이곳저곳 숨겨져 있구나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심선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0대나 30대정도일 것 같은데 이런 泥田斗狗의 상황을 28자로 완벽하게 정리할 수 있는 고수가 얼마나 될가?  

 

문인들의 말싸움 구경은 이렇게 재밌는 것이다.

 

무명의 검객이 나타나서 중국 음악계와 미술계 영화계의 최고의 거두들을 단칼에 제압해버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은 어떤 탁월한 문학작품 줄거리보다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천룡팔부”에서 소림사 扫地僧의 등장같은….ㅎㅎㅎ

 

나만 말싸움 구경이 재미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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愚石

연변사투리로 표현하면 그냥 미련한 돌대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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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목심의 文学回忆录는 참 아름다우면서도 재미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중국의 근대 문인이면서 조금만 서방지식을 갖춘다면 아마도 다 목심 같은 스타일일텐데, 아쉽게도 그 전통은 이미 마르크스와 70년대를 통과하면서 대가 끊겼다고 봅니다. 그 이후를 살고있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런 ‘전통적’인 것이 낮설면서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구요. 그런 의미에서 阿城의 글들도 결은 다르지만 맥락은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八十年代回忆录에서는 그런 얘기를 많이 했구요, 참고로 ’80년대’는 히말라야 라디오에 오디오북 있으니 관심 있으면 들어보기를 권합니다.

    1. 阿城은 아주 탁월한 이야기꾼이죠…ㅎㅎㅎ 목심의 “文学回忆录“는 문학적 전문성은 부족한 책이지만 미술전공자의 특수한 미적 감수성으로 문학을 바라보기때문에 전문성을 갖춘 딱딱한 문학사책들보다는 더 재밌는 것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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