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1

(1) 

그림

2014년 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 미친듯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다 연말 쯤 그림에 대한 거부 반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왠지 모르게 미술 용품만 봐도 피하고 싶고, 붓과 안료들이 눈앞에 있어도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애착했던 그림이였는데,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시기에 나는 내가 그림을 꼭 그려야 한다는  행위에 대한 의미를 항상 고뇌 했었던 것 같다. 이런 고민을 진행하는 와중에 내가 그림에 대한 순수한 애착 마저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 하였고, 그때부터 그 애착이 더이상 순수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렇게 되어 버린 나 자신 조차도 거부해 왔던것 같았다.

나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애착을 거의 결벽증적으로 지켜내려고 했던 것 같다, 나로 부터. 그림을 더이상 순수하게 대하지 못하는 이상 나는 스스로 그림을 그릴 정당한 자격과 동기 마저도 부여 받지 못하고 있었다. 몇번을 거쳐 그림을 다시 그릴려고 시도 해봤지만, 그 결과는 허무하고 창백했다.

이 같은 자아 합리화도 이제 와서야 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몇년간 나는 그림이 아닌 여타 형식의 작업들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정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한테는 그림이 제일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나는 언제쯤 나 자신한테 그림을 다시 수락할 수가 있을까? 그 수락이 나한테 요구하는 내공은 참으로 까다로운 듯 싶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다시는 순수함으로 되돌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 했던 예전과 달리,  여전히 순수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나 자신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0.08.16 

(2)

두려움에 대한 반성

미술 이론을 공부하는 동안 나는 각종 사상과 이론으로 인해  자신만의 '창의성'를 잃어 버릴 것만 같아서 내내 경계하고 갈등하며 의기소침 할 때도 많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는 나를 위협하는 모든 외적인 힘과 규제들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모든 두려움이 생겨나는 원천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이 모든 걱정거리들이 외부의 침입 또는 위협에서 온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나 자신이 외적인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고, 그 어떤 유혹과 압박에도 휘말리지 않으며 굳굳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그릇 또는 내공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되니, 반야심경에서 "依波罗般若密多故,心无挂碍,无挂碍故,无有恐怖,远离颠倒梦想,究竟涅槃。(마음에서 생겨난 과념 또는 걸림돌을 해소시키고나면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고 뒤바뀐 생각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면 그 끝은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을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며칠전의 몸살은 상징적으로 작용하여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었다. 

그 덕에 두려움까지 연소되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창의력'을 소진하는 것은 이론의 영향 아니라 심적인 미숙함이다.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은 외부의 규제가 아니라 마음의 규제였던 것이다.

2020.10.15

(3)

 예术!

最近在想艺术是什么的问题。예술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실패라고 해도 이상하고, 예술이 궁극적으로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상하다. 为了弄懂艺术到底是什么,我画画,我策划,我尝试自己十分不擅长的行为表演,或者是钻入掌握艺术文本权威的纯学术领域,甚至是介入到影响艺术运转机制的收藏系统。

하지만 여전히 ‘예술’을 어떻게 보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 曾经口口声声批判艺术市场的权力机制,또한 모든 사물, 그리고 사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제 또는 난제들을 제시하고자 급급했지만,  这反而又成了一种具有自律性质的圈地运动。

那么艺术真的是这样的吗?예술은 항상 너무 예술스럽게 평범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예술을 둘러싸는 것은 ‘거리감’ 그 자체다.  那么我们该如何看待艺术?그것보다 예술이 우리를 어떻게 보는지를 묻는게 더 나을 듯 싶다.  也许艺术在朝我们笑,아니,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우리를 보며 비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是人创造了艺术的概念,그것에 영혼을 부여해주고,  使它成为一种万能又万不能的有无实体。

사람은 왜 예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을까? 왜일까? 예술의 성격도 수 차례 변경되어 그것이 다른 개념으로 대체될 수도 있을 법한데 왜 至今仍在沿用‘艺术’这个概念? '예술'이라는 만능-만불능의 개념이 이런 점에서 확실이 쓸모가 있는 듯하다. 或者说它真的有某种超越性。

그 초월적 영역이 아니라면, 인간은 어떻게 그것이 예술이고, 그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참 예술이라는 단어 만으로도 이 많을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也因此我常年变着法离开它又不自觉总被它涵盖.

 알 수도, 모른다고 떠나갈 수도 없는 이 요물 같은 예술! 艺术啊!!

2021.01.27

(4)

물고기자리가 책임을 논하다

물고기자리가 책임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물고기자리만큼 책임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별자리는 없을 것이다. 보통 책임을 연상케 하는 별자리들은 대개 염소자리나 황소자리, 전갈자리나 처녀자리로 볼 수 있다.

물고기자리에게 ‘현실’을 요구하는 것은 아마도 염소자리에게 ‘낭만’을 요구하는 것만큼 힘든 일일 것이다. 별자리로 사람을 단정짓는 것은 매우 독단적이고 무모한 행위지만 그 가정들을 별자리 해설과 연관 해보는 일은 꽤나 흥미롭다.

이를테면,

황소자리 이미지와 꽤나 부합하는 임마누엘 칸트, 마르크스 또는 전갈자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피카소가 그러하다.

피카소가 그린
<아비뇽 처녀들>

하지만 별자리의 특성과 전혀 상관없는 반대의 사례들도 있다. 가장 멋진 동화 세상을 만들어낸 미야자키 하야오, 예술적 사유를 절묘한 문자 형식으로 풀어낸 들뢰즈, 의외로 이들은 다름아닌 덤덤한 이미지를 주는 염소자리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물고기자리와 게자리가 아무리 궁합이 맞다고 하더라도 물고기자리인 나는 게자리를 접할때 여전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게자리의 민감수치는 물고기자리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민감하고 충만한 감수성 덕분에 클림트, 마르크 샤갈, 모딜리아니와 같은 사랑 꾼 이미지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클림트의 작품  
<키스>
마르크 샤갈의 작품
<생일>
모딜리아니의 작품
<잔느 에뷔테른느>

한동안 발터 벤야민을 사자자리로 착각해왔다. 벤야민이 게자리라는 사실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지만 그의 글을 보면서 한편으로 수긍되기도 했다. 민감한 감수성의 극한치를 달하지 않고서 그토록 빈틈없은 밸런스를 이루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올라퍼 엘리아슨과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은 종종 함께 전시되기도 하지만 그들의 차이는 현저하다. 동일한 ‘반영적’ 매체를 사용하더라도 물병자리인 엘리아슨이 만들어낸 환영은 지적 우주에 가깝고 물고기자리인 아니쉬 카푸어가 보여준 세계는 영적 우주에 가깝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태양의 중심 탐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
<하늘 거울>

아 참, 별자리를 다루려고 쓴 글은 아니었는데..

이 글을 쓰게된 계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미지를 갖는 어느 물고기자리가 갑자기 책임의 의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시점에서 시작되었다.

물고기자리는 책임의 의의를 찾아가는 과정이 매우 낯설다고 느꼈지만, 처음으로 ‘책임’ 속에 무거움이 아닌 뿌듯함이 공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여태까지 사랑과 책임이 동반한다는 사실을 엄청 불편하게 받아드리곤 했었다. 하지만 이들을 분리하는 사고방식은 형이상학적 이분법 만큼이나 극단적이고 고집스러운 주관에 가득 찬 것이었다. 따라서 진정한 자기 사랑은 책임을 던지고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 창작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미술의 순수함을 순수하지 못한 나로부터 지키니 위해 제쳐두었다는 핑계는 실제로 화가의 삶에 잇따르는 대가와 책임을 도피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작가로서의 자격 또한 제쳐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엄청난 사실을 이제야 진정으로 받아드리게 되었다니…

자신의 초라한 민낯을 보게 될 때 종종 당혹스럽지만 동시에 묘하게 흡족스러워진다.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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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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