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족" 개념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북경에서 어느 민족대학을 다니면서부터였다.
민족대학은 중국에서 가장 신기한 대학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난생 처음 다양한 소수민족 문화 풍습과 예의 법절을 체험하게 되었다. 민족대학교에 입학한 모든 학생들은 전공을 불문하고 전부 민족이론(약칭)이라는 수업을 필수 과목으로 들어야만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가 연변에서는 주로 조선족과 한족(다른 소수민족도 있겠지만)이라는 이분법적인 문화 공동체에 놓여 있었다면, 민족대학에서는 몽골족, 장족, 묘족, 이족, 위그르족, 다우르족, 요족, 와족, 좡족, 백족, 회족……그 외에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소수민족 친구들과 함께 어우러 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민족대학은 오히려 진정으로 다문화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었던 장소인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연변에서 내가 특히 싫어했던 한족에 대한 무의식적인 차별(모든 조선족 분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또는 근거 없는 우월감(이것도 역시 모든 조선족 분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이다.)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학우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누구나 특별하고 동시에 평등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된다. 따라서 민족대학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은 서로의 문화 풍속에 대해 배려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입학하기 전 까지만 해도 소수민족 학생들끼리 무리 싸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고 들었지만 2009년 부터 그런 싸움은 거이 볼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었던 환경에서 벗어나야 자신과 자신이 속했던 공동체를 더욱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녔던 민족대학 미술학원에는 4년동안 적어도 1~2회 정도 소수민족 지역에 가서 그림 소재를 수집하는 교육과정이 있었다. 또한 다른 미술대학과 달리 민족대학 미대생의 졸업 조건에는 메인 작품으로 소수민족 소재를 다루는 작품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다. 이 당시 내가 유일하게 익숙했던 소수민족이 조선족이 였고, 졸업 작품을 위해 "조선족"을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내가 얼마나 조선족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조선족은 무엇인가?"는 "나는 누구인가?"와 거의 동등한 무게로 내 면전에 내세워졌다. 그리고 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나와 조선족을 거의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장족과 몽골족을 접하면서 나는 동일한 문제가 그들한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여기서 독특한 사례는 한족이다. 한족은 딱히 어떤 민족이라는 신분에 연연하지 않은 듯 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신기했고 부러웠다.
"그렇다면 민족은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은 그것에 얽매이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러지 않아도 될까? 이것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조선족과 같은 공동체는 혹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조선족은 특수한 문화적 믿음을 공유하고 있는 가상의 것이란 말인가?
그때의 충격은 파격적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조선족 문화 환경에서 내가 느꼈던 친근함과 정겨운 기억들을 그리워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족이라는 협소한 인식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자신이 짜증났다.
"나도 한족처럼 민족인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유로워지고 싶어!" "나는 나에게 씌워진 모든 '만들어진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 '불순한' 생각의 싹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피어나기 시작했다. 저격의 대상은 '조선족' 뿐만 아니라 '여자와 남자의 역할 구분', '예술가와 일반인의 경계', '중국화(동양화)와 유화(서양화)의 간극', 나아가 '예술' 자체에 대한 회의까지 이어갔다. 따라서 나의 그림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길과 멀어지고 점차 '형식에 대한 파괴'의 길로 나아갔다.
자화상
네 저는 이렇게 생겼답니다.
자신에게 씌워진 틀을 파괴하자면 자신부터 파괴할 용기가 있어야죠!
장고
요건 세워진 장고인데요, 앞으로 요 장고에 관한 이야기도 해드릴께요. 아래 검은 덩어리들은 땅바닥을 닦는 우리 조선족 여인들을 그린건데…
조선족 여인 꽃을 든 여인도 그린답니다.
남북
엄청 간략하죠? 우리 아빠가 좋아했던 그림인데..제가 좌측이 북조선이고, 우측이 남한인데 위에 조선족이 거꾸로 그 경계에 서 있다고 말했거든요. 백색은 중국이고 ㅎㅎㅎㅎ
남녀
이건 뭐였더라? 뭐 여자가 남자보다 우세인 것 같지만 밑에는 남자가 여자를 안아주고 있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어우 민망해)
적
요건…무형의 적?? 네 그렇답니다.
이상의 그림들은 사이즈가 매우 작습니다.
입학한지 얼마 안돼서 그린 것들이라 다소 유치하지만, 꽤나 웃겨서 올려드렸어요. (돌 던지지 마세요ㅠㅠ)
다음 그림들도 너무 웃겨서 올립니다.
자화상
미운ㄴㅕㄴ(욕하면 안되니까)
여자뇌
두피
이 땐 왜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많이 했는지… 이 그림은 사람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두피를 벗는 모습입니다…
먹는 모습
동생이 입 벌리고 뭔가를 먹는 모습을 그렸는데..그 당시 동생이 이 그림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요 ㅋㅋㅋㅋㅋㅋ
위에 쓴 조선족에 관한 글이 조금 무거운 것 같아서, 그 다음 바로 정상적인 그림들을 보여주면 너무 진지하게 보실까봐 좀 웃긴것들을 올려 뒀습니다.
동생
요때 동생 눈이 팅팅 부어서 참 귀여웠는데, 동생을 엄청 많이 그렸었어요..왜냐하면 이 친구가 그 때 어려서 언니 말을 잘 들었거든요…
동생
아 그리고 제가 艺考보기전 고등학교 3학년 상반기? 에 북경에서 그렸던 그림을 보여드릴께요.
아니 제가 이걸 보여주지 않으면 제가 대학에 어떻게 붙었는지 의심할까봐 ㅎㅎㅎㅎ
모델들이 참으로 다양하게 생겼죠?
위에 소묘에서 좌측 아래에 인물과 같은 사람입니다.
요건 위에 그린 분 옆에 있는 분 (소묘 우측 아래)
근데 제가 북경에 처음 갔을 때 인물 모델(진짜 사람)은 처음 그려봤거든요?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그렸던 건 아니고…
그 때 첫 날 그렸던 모델을 맨 마지막에 올려둘께요. (충분히 웃고 가세요.)

입시미술은 시험 기교+ 죽어라 연습 +약간의 天赋로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미술을 좋아하시는 친구들은 충분한 노력만 하신다면 다… 저 처럼 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올려드리겠습니다. 다음엔 조금 진지하게 그린 그림들을 올려 드릴께요. 첫 소개는 이렇게 엉뚱하게 마무리 하네요. 그럼 다음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글도 잘 읽고, 그림도 잘 봤습니다~ 중앙민족대학교 출신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文传院新闻系 졸업했습니다. 저 역시 민족이론과 정책이란 수업은 민족대학교에서만 필수과목으로 한다는 사실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용정에서 조선어문으로 대학입시를 치르고 민족대학 입학 후 “고대한어”를 아예 배워본 적 없는 상태로(중국어를 잘한다고 어느 정도 자부하고 있었던 그 당시 신입생이던 나한테) 수업에 들어가 “괴리감”을 정통으로 맞았던 상황도 다시 떠오르네요. ㅎㅎㅎ 이미 지나간 세월이 15년인데 그때의 충격이 저한테는 여간 컸나 봅니다.
마침 로그인해 댓글 확인하던 차에 갓 업데이트해주신 따끈한 글과 그림까지 보고 나니 기분이 참 좋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조선어문으로 입시를 봤으면 대학 초기에 정말 힘드셨을것 같아요! 저는 한족학교를 다녀서 중국어에 대한 괴리감을 일찌감지 체험해서 괜찮았는데 오히려 조선어문을 체계적으로 배운적이 없어서 한국에서 처음 공부 했을 때 조선말과 한국말 모두에서 괴리감을 느꼈어요. 그나저나 여기서 校友를 뵙게 되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요즘 뉴스 보니 한국의 확진자가 연속 여러날 1200명 이상을 넘기고 있던데요, 방역에 조심 또 조심 하세요~ 다음에 공유해주실 그림을 기대합니다 ^^~
관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집콕하고 있습니다^^
저 첫번째 자화상이 너무 심통방통하게 본이이랑 닮았다고하면 괜찮겠죠.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칭찬입니다. 하핫!!
그리고.입시때 그린 그림 자료도 갖고 있다니 대박입니다. 리스펙!!!!!!
이만한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리스펙 단어를 볼 때마다 갑자기 기생충 영화가 떠오르네요(아무말 대잔치ㅎㅎ)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자기반성 시리즈: 조선족 편]에 관한 글들이 우리나무의 “시리즈”로 선정되었습니다. 상세정보는 메뉴에 있는 “시리즈”를 클릭하고 확인하길 바랍니다. 계속하여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다짜고짜로 한번도 혼자서 외출한적없던 아이를 홀로북경에 자리잡게하고 미술공부시켰던 일이 아직 선하다. 용케도 군말없이 혼자서 무서움을 감당하며 열심히 미술공부하던 너를 생각하면 감슴이 저려오고 미안한마음이 한구석채운다. 그래도 어려운 공부를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자기의 노력으로 부모의 방조없이해낸 장한딸이라서 뿌뜻하구나. 사랑한다 내딸
아야 엄마한테 들켰네 ㅋㅋㅋ 나도 사랑해 엄마~!
글도 그림도 너무 좋습니다. 엎드려 장판닦는 여자 인상적입니다.
댓글 이제야 보게되었어요ㅠㅠ 어머니와 외갓집 마다매들이 집에서 계속 뭔가 닦고 있었던 기억이 인상 깊었나봐요. 뭔가 그 당시 조선족 여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런 모습이였어요..
생각해보니 예전에 특히 불때는 구들이 많아서 그을음(?)이 올라와서 닦아야 한다고 어른들이 그러셨던것 같아요.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