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동안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따뜻한 온돌목에 몸을 지지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설원을 찾아 눈꽃을 휘날리는 것도 인생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길 만한 일이다. 그에 못지 않게 어떠한 의미를 찾아 역사의 자취를 남기는 것 또한 쉽지는 않지만 해볼 만할 것이다.

32년 전, 겨울의 맵짠 한파가 막을수 없었던 것은 시대의 한파를 이겨내고 중국 대지에서 다시금 태동하던 사상의 봄이요 젊음의 피들이었다. 그 중에 조선족 대학생들도 있었고, 그 겨울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는 방학 시간을 헌납하여 두 발로 동북 땅의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그들은 자신을 '북경조선족청년학회'라 이름하였다.

그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을 학술적인 저작으로 만들"려 했었던 최초의 생각은 실제 발로 뛰고 귀로 듣는 과정에서 크게 달라진다. 살아있는 생생한 진실한 목소리와 가슴의 울림을 전달하기에 '학술'이란 껍데기가 너무나도 빈약함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누구라도 그 점에 대해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한다.

이야기를 듣고 테이프로 녹음하고 필로 정리하는 중에 그들은 역사라는 대하의 두터운 빙판 밑의 암류를 확인하면서, "우리의 몸에서 흐르는 혈맥"을 느낀다. 하여 그들은 "구술을 통하여 아무런 허구도 수식가공도 없이 <원형> 그대로 보여줄수 있는 옛말로 펼쳐보"이는 방법을 택하기에 이른다. 되도록 구술자의 말투 그대로, 팔도 사투리 그대로 전달하려고 애썼다. 그것 자체가 역사의 흔적이고 증언이기도 했던 것이다.

옛 이민들의 필적(책머리의 사진 자료)

이 책이 더 널리, 더 오랫동안 이어져 읽히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허나 지금 시점에 다시 읽어보는 것, 다시 읽히는 것 또한 새로운 해석과 생명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고 예감한다. '민족'이라는 거대담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도 진실된 이야기가 가지는 힘은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은 정도라고나 할까. 그리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당신과 내가 밟는 바로 이 땅 위에서 살았다는 팩트를 상기해보는 데까지만이면 좋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이야기를 모으고 옮기고 엮던 대학생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호명해 본다. 그들 중에는 그 뒤로도 계속하여 활약을 이어간 이들이 많으며, 더러는 코로나 기간에 우리 곁을 떠난 이들도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강백룡(목단강)
김광현(북경 중앙민족번역국)
김명일(북경대학)
김문일(연길 연변일보사)
김성옥(목단강시 조선족도서관)
김영학(흑룡강성 녕안현 강남향)
김응준['김응준 정리'로만 되어있음. 시인 故 김응준으로 추정]
김장혁(연길 연변인민방송국)
김학철(북경 중앙민족학원)
김   훈(북경대학)
단   경(북경 중앙민족번역국, 故 북경대학 교수 김경일로 추정)
리광수(북경 중앙민족학원)
리동희(북경대학)
리룡남(북경 중앙민족학원)
림금산(심양 료녕신문사)
문운룡(심양 료녕신문사)
박경련(북경 중앙민족번역국)
박종단(북경 중앙민족학원)
서종식(북경 중앙민족학원)
오희성(심양 료녕신문사)
전정환(심양 료녕민족출판사)
정경호(북경 중앙민족학원)
차영애(북경대학)
황태호(북경 중앙민족학원)

북경대학 김경일 교수가 이 책의 기획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여겨진다. 책의 부록에는 아래와 같은 일부 글들을 실어 전체 맥락의 이해를 도왔다.

시간이 꽤 흘러 글쓴이가 이 책을 엮은 이와 사석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책의 <후기>에서도 언급하다시피, 가슴이 뜨거워지면서도 "가는 곳마다에서 '좀 늦었습니다. 그 령감이 생전이면 좋은 얘기가 많을건데.' "라는 말을 들어서 송구한 마음이었다고. 그리고 "속편을 가급적으로 계속 이어갈 타산"이었던 출판계획도 이 한 권에서 그치고 말았다. 

이 이야기들을 한국에서도 출판하려고 시도했었는데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비롯한 여러 원인으로 결국 한국에서는 출판을 꺼려했다고 한다. 대신 그 뒤 엮은 이가 일본에 방문 가있는 동안에 인연이 닿아 일본어 번역(『聞き書き中国朝鮮族生活誌』中国朝鮮族青年学会編、舘野皙・武村みやこ・中西晴代・蜂須賀光彦訳、社会評論社、1998)이 먼저 출판되는 작은 아이러니도 있었다. 일본어 번역은 이야기의 느낌을 살리기 위하여 미리 조선팔도와 일본 여러 지역의 대응표를 정하여 일본 방언으로 번역하는 치밀함도 보였다고 한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어떨까. 분단과 이념에 찢긴 남쪽 고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에 귀 기울일 자가 있을까. 

일문판 <聞き書き中国朝鮮族生活誌>

그 겨울 청년들의 마음을 돌이켜 보면서, 그들이 직접 쓴 <후기>를 옮긴다. 표기법과 표현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 시절의 색이 그대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이며, 또 그 정도를 걸러 들을 수 있는 독자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말을 줄이고 아래에 원문을 싣는다. 

평강

후  기

1989년 음력설기간에 우리 북경조선족청년학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북경대학, 중앙민족학원의 30여명의 대학생, 연구생들이 짧은 겨울방학기간을 리용하여 일체 사사로운 일을 제쳐놓고 이 책의 수집, 정리 사업에 나섰다. 우리는 설을 객지에서 보내면서 북국의 눈보라를 무릅쓰고 도시와 농촌을 다니며 백발이 성성한 로인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자기의 풋돈을 써가며 취재길에 올랐다. 한많은 우리 겨레의 력사앞에서 너무도 깊은 감명을 받았기에 겨레를 위하여 무거운 력사적사명을 지녀야 할 자각을 스스로 깊이 느끼에 되였다. 이민들이 들려주는 눈물깊은 진실한 력사를 듣고 취재수첩에서 펜을 뗐을 때 우리는 하나의 중심과목을 마친것만 같았다. 

최초에 우리는 이 책을 학술적인 저작으로 만들어볼가 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러나 수집, 정리 가운데서 그 어떤 리론저술로만은 우리 겨레의 그 험난한 이민사를 생생하고 가슴에 와닿게 보여줄수 없음을 깊이 느꼈다. 이민1세, 백발이 성성한 70~80세 로인들의 고난에 절고, 설음에 절고, 망향에 전 그 이야기들에서 그 어떤 통계수자나, 정사, 야사적인 고증으로써는 도저히 대체할수 없는것들을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험난했던 그들의 지난날을 그들의 직접적인 구술을 통하여 아무런 허구도 수식가공도 없이 <원형> 그대로 보여줄수 있는 옛말로 펼쳐보는 이 <중국조선족이민실록>을 선택한것이다. 이렇게 큰 제목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다는 자책감에 머리숙여 독자들의 량해를 빈다. 

우리는 수집, 정리 과정에 강한 사명감을 느꼈다. 

많은 이민1세들이 이미 이 세상을 떠난탓에 풍부하고 귀중한 제1자료들을 이제 다시는 더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에서 <좀 늦었습니다. 그 령감이 생전이면 좋은 얘기가 많을건데.> 하고 석연해하는 말들을 들었다. 게다가 지금 생존해계시는 로인들도 대부분 70~80고령이여서 지난 력사를 한몸에 지닌 <등불>들이 이제 가물가물 꺼져가고있었다. 

망각은 곧 배반을 의미하는것이다. 일제 철제하의 36년의 암흑한 사회력사환경속에서 나라를 잃고 생존의 땅마저 앗기고 기아와 가난에 허덕이며 모지름을 써온 우리의 이민1세들이 조상의 뼈를 묻은 고향을 서럽게 떠나 앞길이 막연한 타관땅에서 애달픈 방랑의 길을 걸어온 력사가 결코 력사의 흐름속에 영영 매몰되여서는 안될것이다. 깨어난 쪽박에 괴나리보짐을 진채 지루한 고난의 고개길의 톺아온 한많은 우리 중국조선족의 이민사는 실로 <아리랑>의 크라이막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부모처자를 리별하고 정든 땅을 멀리 떠나 북간도의 차거운 눈보라속을 헤매면서 매맞고 굶주리며 곁방살이에 떨던 그 년대는 실로 기나긴 겨울의 대하였다. 그 수십년 얼어붙은 얼음을 끄고 그 암류를 본 우리는 우리의 몸에서 흐르는 혈맥을 느꼈다. 

우리가 흑룡강성 녕안현 강남향 신안촌의 83세에 나는 김은순할머니를 찾아갔을 때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찾아간 뜻을 말씀드렸더니 혈육 하나 없이 고독한 여생을 지켜가는 안로인은 우리의 손을 꼭 잡고 목이 메여 눈물부터 앞세우는것이였다. 지금도 설음에 젖은 김은순할머니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 중국에 배불리 먹으러 왔어유, 와서 곁방살이루 열아홉번 이사를 다녔어유. 집에 없어서 석마간이라도 줬으면 꾸미구 살겠다고 했어유. 어디 가나 며칠 살면 나가라 하지. 까막까치두 둥지가 있지만 사람이 왜 들집이 없냐?!… 

물론 흘러간 과거의 고통만을 외운다면 결코 강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 민족적인 수난사인 경우는 결코 단순히 지난 력사로 그치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정시하고 래일을 꿋꿋이 살아가는 하나의 동력으로 될것이다. 

조선팔도 사투리가 섞인 이민1세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끈질긴 싱싱한 생명력을 감지하였다. 우리 민족은 갈대와도 같이 살아왔다. 비바람에 꺾어질듯 몸부림을 치면서 끝내는 꺾이지 않았다. 자기의 말, 자기의 정, 자기의 얼, 자기의 문화를 지켜왔다. 그토록 험난한 역경속에서도 삶의 의욕과 래일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생존의식과 강한 삶의 뿌리는 실로 위대한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민1세의 지난날과 우리의 오늘을 비하면서 우리는 사회주의 중국의 우월성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보다 사회생활환경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들보다 풍의족식하고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많은것들을 잃어가고있다. 우리는 많이 <오염>되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들이 흘러간 이 이민의 력사대하를 영영 그저 흘려보내지 말기 바란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렇게 옛말로 펼쳐보는 이민사를 엮게 된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흘러간 력사대하의 한갈래의 작은 지류에 불과한것이며 지어 그가운데의 한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허나 우리는 이것만으로 족하다. 이것이 만약 일제의 총칼아래 쓰러진 소녀, 강속에 영영 빠져버린 고독한 사내, 굶주림과 고역에 시들어 세상뜬 로인들의 싸늘한 원혼에 한줄기의 따뜻한 위안이 되고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에 한가닥 기억이 되고 <상학종>이 된다면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족하다. 

뒤늦게 착수를 한데다 시간이 촉박한데서 우리의 이 이민실록의 내용이 시간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너무도 제한되여있으며 기타 결함과 오류도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하기에 우리는 속편을 가급적으로 계속 이어갈 타산이다. 속편에 가서 가능한 정도로, 최선을 다해 보다 체계적으로 보다 완정한 내용을 담으려 한다. 우리는 긴박감을 느끼고있다. 이제 시간을 더 늦춘다면 우리의 3세, 4세에 도저히 미봉할수 없는 보다 큰 죄를 짓게 될것이다. 

끝으로 영광스러운 이 책의 수집정리사업을 위탁해주시고 편집출판사업에 심혈을 아끼지 않으신 연변인민출판사 여러 선생님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북경조선족청년학회
1990년 5월 

[연관글]

[자료] 북경대학 김경일 교수 반도문제 칼럼 모음(한겨레, 내일신문)

[조선과 만주 사이] 83년간 익은 시: 해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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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공회대학에서 박사논문 준비중인 나이먹은 학생입니다. 북간도 이야기로 박사논문을 준비중입니다. 관련하여 연길과 훈춘을 몇 번 다녀왔습니다. 올 해와 내년 준비해서 논문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소개해 주신 책도 구해서 읽어보았는데 귀중한 자료들이 매우 많아 논문 작성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혹시 여건이 되신다면 담소하며 중국 동포의 역사를 귀동냥 하고 싶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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