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고 지칠 때, 삶이 막막하게만 느껴질 때…

내게 기대어 잠든 얼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위로를 느낀다.

어둡고 단단한 마음이 스르르 무너져 내릴때 천사처럼 잠든 그 모습에 나는 치유를 받는다.

잠든 고양이가 곁에 있는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한다. 그 곁에 천사가 잠들어있기 때문에….

1.

어느 유명한 드라마에서 사람에게는 네번의 생이 있다고 했다. 첫번째는 씨를 뿌리는 생, 두번째는 뿌린 씨에 물을 주는 생, 세번째는 물 준 씨를 수확하는 생, 네번째는 수확한 것들을 쓰는 생이라고 한다.

하지만, 틀렸다.

사람뿐만이 아닌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생물에게 네단계의 삶이 있다.

보라,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 밤이라는 네단계의 시간을 거친다.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네단계의 계절을 거친다. 사람의 일생도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이렇게 네단계의 시기로 나뉜다.

“그러면 우리 고양이들은요?”

추운 겨울밤, 엄마의 따뜻한 털속에 코를 묻으며 내가 물었다. 내옆에 누운 오빠는 언녕 잠에 골아떨어진지 오래다. 엄마는 까칠까칠한 혀로 내 털을 부드럽게 감아올려 주었다. 일명 그루밍(몸치장, 옷차림, 또는 손질이라는 의미로 동물의 털손질, 몸단장, 차림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라는 우리 고양이들의 몸단장이자 애정표현이었다.

“모든 생물이 태어나기전 자신의 삶을 선택할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대답대신 이런 알쑹달쑹한 말을 남겼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오랜만에 닥친 한파에 거리의 사람들은 어깨를 옹송거렸고, 나와 오빠는 주인집의 허름한 판자 창고 한쪽 구석에서 옴짝달싹 하지 않았다.

그런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엄마는 먹이를 사냥하러 나갔고, 이튿날 싸늘한 주검으로 되어 누군가에게 들려왔다. 오토바이 사고였다.

“추워서 먹이를 제대로 안줬더니…”

주인아줌마의 목소리는 감기때문인지 훌쩍이고 있었고, 바로 그때 한가닥 미약한 울음소리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야웅…”

환청이 아니었다. 마지막이 분명한 그 울음소리에는, 인간세상에 남은 우리를 향해 내보내는 엄마의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었다. 엄마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찬바람에 엉겨붙었고, 나는 지금까지도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절대 인간을 믿어서는 안돼…)

그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엄마의 목소리였다.

나는, 어느 작은 도시의 낡은 주택가에서 태어난 한낱 평범한 집고양이였다.

하지만…그녀는 우리를 천사라고 불렀다.

……

우리가 태어난 인간세상은 지구라고 하는 행성이였다. 지구는 약 46억년의 세월을 흐르면서 수많은 인간과 동물을 잉태하고 생육했으며 우리는 그 수많은 동물중에서 식육목 고양이과의 포유류에 속하는, 인간과 가장 밀접한 사이로 지내고있는 고양이라는 동물이였다.

우리를 제외하고 식육목 개과의 포유류에 속하는 개라고 하는 동물도 인간과 관계가 친밀했는데 바로 내가 태어난 주인집의 옆집에는 종일 컹컹 짖어대는 개 한마리가 있었다. 물론 개들의 아이큐는 전체적으로 낮아서 나는 그런 동물들과 같이 애완동물에 속한다는 것이 가끔 수치스러울 때가 있다.

내가 어떻게 이렇듯 해박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가를 여기서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아는 고양이 아이큐는 최대 80까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80이라면 보통 인간의 최저 지능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큐 30밖에 안되는 바보 고양이들도 있지만 그런 극소수의 경우는 예를 들 필요조차 없을 것 같고.

하지만 지극히 이례적이게 아이큐 120이 넘는 천재 고양이가 태어나는 경우도 있다. 바로 나처럼 말이다. 인간들이 추종하는 인간계의 천재—아인슈타인의 아이큐가 160-180정도라고 했나. 그러고보면 나는 바로 고양이계의 아인슈타인이라고 할수 있다.

후에 썅썅을 만났을 때에도 나는 고양이중에서 최고 지능을 자랑하는 터키시앙고라와 페르시안의 후대인 귀족고양이의 지능을 가뿐히 제끼고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천사라는 칭찬을 들었었다. 그 칭찬을 해준 그녀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시간이 많이 흐른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이 세상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동물사이, 동물과 동물사이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지냈던 시간들…우리는 그런 시간을 같이 지내왔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고양이 인생, 아니 묘생을 통털어 제일 기억에 남는 행복한 추억이었으니까.

……

엄마가 그렇게 간지 일주일뒤야 날이 풀렸다. 눈부신 햇살이 허름한 창고 창문에 부딪치고 있었고 나는 가벼운 재채기를 하면서 기지개를 켰다. 그동안 엄마대신 줄곧 내 옆을 지켜주었던 오빠도 기척소리에 부시시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던 나는 회색 털의 그가 가지고있는 아름다운 눈동자에 순식간에 빠져들고 말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 보석같은 눈동자에도 한가닥 현혹의 빛이 어리고 있었고, 나는 크게 숨을 불어 내쉬면서 그의 눈동자에 어린 내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볍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잘 잤어?”

그는 회색이였지만 나는 노란색과 검정색이 섞인 털을 가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우리는 그나마 같은 얼룩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쌍둥이라고 했을까…

엄마가 살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엄마의 품속에서 뒹굴며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텐데…그리고 엄마도 그런 우리를 보면서 행복한 그루밍을 하고있을텐데…가슴이 저릿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 우리 고양이에겐 아플때 흘리는 눈물만 있을뿐 슬퍼서 흘리는 눈물은 없다.

“날씨 참 좋다.”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그가 입을 열었고 나는 몸을 늘구어 길게 기지개를 켰다.

“화창한 봄날씨야. 올해 봄은 너무 빨라.”

“한가지만 묻자.”

“말해봐.”

“넌, 슬프지 않아?”

그의 말에 나는 가느다란 수염을 살짝 움직였고 그는 귀를 쫑긋 세우고 머리를 갸웃했다.

“내 말이 우스워?”

“그래, 네 생각엔 안우스워?”

“엄마가 없는데 슬프지 않냐 했어. 그게 왜 우스워?”

“고양이들은 슬퍼하면 안되잖아. 하긴 슬픔이 표현도 안되고.”

그는 할말을 잃은듯 했고 나는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다가 또 한번 입가의 수염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그가 잇는 말에 내 수염이 그대로 허공에 빳빳하게 굳어졌다.

“난 슬퍼, 그래서 울고싶어…”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 그리고 그가 오빠라는 것을 잊고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발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는 영롱한 빛을 가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왜 때려?”

“정신차려.”

나는 낮게 말했다. 아니, 거의 으르릉 거렸다.

“엄마가 뭐랬어. 고양이들은 아무리 슬퍼도 절대 눈물을 흘려선 안된다고. 고양이가 울게 되면 그건 허피스 바이러스(고양이감기)에 걸린거라고.”

“알고있어.”

“특히 우리같은 새끼고양이에겐 그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라고. 그러니 절대 울어선 안돼. 알겠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얌전하게 꼬리를 말아 발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머리를 갸웃하고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내가 오빤데 왜 니가 날 교육해?”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창고문이 열렸다. 우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문쪽을 바라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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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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