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서 10킬로 정도 상거한  삼가자만족향 고성촌 (古城村 ) 에 가면 오랜 세월의 풍파에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옛 성터 하나가 있다.

관광지도 아니고 남쪽에 ( 길림성문물보호단위비우성 ) 이라는 표지 하나가 있을 뿐이다.

옛 성터는 사방을 성으로 쌓아 올린 언덕이 현재도 완연하게 모습을 나타 내고 있다.

옛 성터 동남쪽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빨래를 하는 여인들도 보이고  동쪽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고 북쪽은 옥수수밭과 논밭이 나란히 있었다.

성 안에는 촬영 당시 초가집 몇호가 있고 남북으로 새로 닦은 콩크리트 길이 성을 남과북으로 관통하고 있었다.

옛날 비우성 안에서 살던 사람들의 후예들은 지금은 성밖 서쪽에 새로 고성촌이라는 마을을 만들고 살아 가고 있었다.

비우성의  ‘비우’는  만주족 말로 ‘옛[古]’의 의미라고 한다. 성의 서북쪽으로 1㎞되는 곳에 두만강이 북쪽을 돌아 남쪽을 향해 흐르고, 동남으로 약 2.5㎞에는 훈춘하가 있다. 동북쪽으로 10㎞ 되는 곳에 훈춘시가 위치하고 북쪽으로 5㎞를 가면 발해 동경성지인 팔련성이 있다. 비우성은 1981년 지린성 성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근대의 기록인 「훈춘고성고(琿春古城考)」에 따르면, 비우성은 훈춘현 치소와 30리 떨어져 있고, 사방 너비가 각 180장, 성벽 높이는 3척 정도이며, 밖에는 너비 2장 5척, 깊이 3~4척의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면에는 문이 하나씩 있으며 남문 밖에는 옹성이 있고, 성벽 위에는 토루 19개가 줄지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각루터와 치를 포함한 수인데, 「간도성고적조사보고(間島省古迹調査報告)」보다 하나가 더 많다.

「간도성고적조사보고」에서는 문이 4곳이며, 그중 남서문에 옹성이 있다고 나온다. 각루터는 4곳, 치는 14곳이며, 성밖으로 해자가 있고, 남쪽 성벽은 온특혁부성과 맞닿아 서로 이어져 있었다. 현재 비우성의 모습과 대체로 일치한다.

비우성의 평면은 비대칭 사다리꼴이며, 방향은 남쪽에서 서쪽으로 40도 기울어져 있다. 비우성의 둘레는 2,023m이고, 동벽은 520m, 서벽은 521m, 남벽은 460m, 북벽은 522m이다. 성벽의 높이는 3.6m, 밑 너비는 9m, 정상의 너비는 1~1.5m이다. 각 성벽의 중앙에는 문지가 있고, 남쪽 성벽과 서쪽 성벽의 문지에는 옹성이 남아 있다. 북문에도 옹성이 있었으나 현재는 확인되지 않는다. 남문지에는 성문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성벽의 네 모퉁이에는 각루가, 각 성벽 면에는 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성벽 동북 모서리와 북쪽, 서쪽벽 밖으로는 해자의 흔적이 보인다.

성안은 오래전부터 경작지와 촌락이 형성되어 대부분 파괴되었다. 성안 중앙부분은 지세가 비교적 높은데, 중요한 건축구역으로 보인다. 성안과 성벽 위에서는 아직도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수습된다. 성내에서 발견되는 줄무늬 판와와 연꽃무늬 와당 등은 발해 유물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인다. 성안과 성밖에서는 금대인 숭경() 2년 3월에 제작된 “구당공사위자호지인()”, 동하국 천태() 연호의 “부통소인()”, “행군만호지인()”과 대동() 연호의 “상서예부지인()” 등 9개의 동으로 만든 인장이 출토되었다.

비우성의 축조시기에 대해서 「간도성고적조사보고」는 비우성에서 나온 기와편의 종류와 성벽의 구축 특징을 통해 원래 고구려의 옛 성터를 요대 이후에 고쳐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길림성지』 등에서는 금대의 토축성으로 보고, 비우성의 위치가 『금사()』에 전하는 오고론부()의 위치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또한 원대에는 해관만호부()가 있었던 곳으로 본다. 이후 명대에는 야인 여진 와이객부()가 거주하였고, 이들이 서쪽으로 옮겨 간 이후 폐치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금은 대체로 비우성이 발해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비우성의 남쪽 벽은 온특혁부성의 북벽을 허물거나 북쪽 부분을 막아 쌓아 만든 것이다. 온특혁부성의 동서벽이 비우성의 남쪽 모서리와 맞물리는 것으로 보아, 비우성의 남벽은 원래 온특혁부성의 북벽 기초 위에 보강 수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비우성은 온특혁부성보다 축조시기가 늦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비우성은 온특혁부성과 마찬가지로 발해시기의 유물이 많이 나오고 있어, 발해시기에 처음 축조되어 요금대에 개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 2012년6월2일              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비우성 [斐優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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