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강향은 훈춘시의 서쪽 방향으로 30킬로 상거한 곳에 자리한 작은향 <鄕> 이다.
훈춘시 서쪽 가장 자리가 밀강향이 위치한 구역이다.
밀강향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의 미산이란 고장과 마주하고 있다.

밀강향은 물산이 풍부한 고장으로서 살기가 좋다.
밀강향 북동쪽 산 골자기를 타고 내려오는 삼안강 <三安江>은 사시장철 물량이 충족하고 맑다.
삼안강은 두만강의 지류중에서 50킬로 이상되는 6개 강중에 하나 이다.
훈춘강과 함께 연변을 스쳐 지나는 두만강 지류중에서 2번째로 큰 강이다.
삼안강은 맑고 오염이 없어 희귀 어종들도 서식하는 강 이다.
삼안강에 놓인 이 다리는 예전에 훈춘으로 통하던 옛 다리 이다.

연변 훈춘시 밀강향은 7개 촌으로 구성된 작은 향< 鄕 >이다.
인구는 2005년도 통계로 2386명이 된다고 한다.
그중 조선족은 89%를 차지하고 한족이 10.3%를 차지하며 만족이 0.7%를 차지한다고 한다.
밀강향의 면적은 404평방킬로가 되며 경작지 면적은 736헥타르가 된다고 한다.
작년에 밀강향의 매인당 평균 소득은 인민페 4100원이 된다고 한다.
밀강향은 조선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작은 향< 鄕 >이다.

훈춘으로 통하는 도–훈 공로가 밀강향 소재지의 중심을 관통하고 있다.

골목길 까지 포장 도로로 꾸며 졌고 가로등도 세워져 있다.

밀강향 옛 영화관이 자리한 골목 길

밀강향 량식창고 …… 계획경제 시대의 흥성함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밀강향 중심 거리를 활보하는 한족 할머니

옛 영화관은 추억으로 밀강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뿐 이다.

소수레를 메우고 있는 농부.
( 벼 싣걱질로 바쁘다 ) 고 한다.

( 올해에는 벼 농사가 잘 되였다 ) 고 한다. 벼 탈곡에 분주한 조선족 농사군들

밀강향 시장. 소고기 장수, 돼지고기 장수, 채소 장수 이렇게 3-4명이 장사군의 전부이다.

밀강향 병원. <두만강 천리 문화행> 활동으로 국가 투자로 지어졌던 문화 활동실이 경비난 등으로 여의치 않아 여러해 쉬다가 병원으로 둔갑하였다.

밀강향 뻐스 정거장의 모습

한 할머니가 사진기 렌즈를 보면서 사람좋게 웃고 있다.

작은 인구에도 상점과 영업집은 적지 않다.
조선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향 < 鄕 >이라 …

시골 마을의 가을 풍경

길 거리에서 어딘가 길을 재촉하는 조선족 여인

마을 길에서 본 시골 풍경

문구 치러 갔다가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환한 얼굴 모습

밀강학교는 아름다운 자연속에 아담하게 자리 하고 있다.
지어진지 몇년되지 않는 3층집 학교이지만 지금 대부분 교실은 비워져 있다.
중, 소학교에 조선족과 한족을 합쳐도 학생이 몇명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유지 될지? ( 물론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된다. )
맹목적으로 앞을 고려치 않고 교육자금을 전망이 없이 규모 이상으로 교사 신축에 퍼붓다 보니
난방도 어렵고 교육자금의 류실도 엄중하다.

길 거리를 걸어가는 여인의 뒤로 보이는 상점에서는 돌도 판매 한다.
온돌이 우리 살림집들의 난방의 주축을 이루다 보니 온돌장이 상품으로 판매된다.
밀강향에는 온돌장이 많이 나오는 고장이기도 하다.

두만강변에 어느 마을에 가나 우리 민족의 숨결이 살아쉬는 한 두채의 옛 기와집들이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밀강향도 례외는 아니다.

주인이 없는 옛 기와집 지붕에는 이끼와 함께 잡초들이 자라고 있다.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구새통만이 어제를 말하면서 멍하니 서있다.

밀강향에도 페가는 있다.
두만강변에 어느 마을에 가나 페가는 황페한 농촌에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문화향 <文化鄕>으로 널리 알려진 밀강에서는 여러가지 문체 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향< 鄕 >운동회가 열리고 있어 골안에서 온 촌들에서는 민가에 주숙을 정하고 합숙하면서 운동회에 참가 한다.

훈춘으로 가는 뻐스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손녀

마을 골목에서 한담을 하는 조선족 아주머니들.
환히 웃는 모습들이 정겨웁고 인상적이다.

하얀 칠을 한 대문 뒤로는 돌 기와집이 보인다.
우리 민족의 삶의 숨결이 들리는 풍경이다.

집 마당에 앉아 있는 조선족 나그네.

밀강향에는 여러해 전부터 두만강과 삼안강 주변에 유람객을 상대한 음식업이 성행했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이 물 좋고 산 좋은 자연을 즐겨 찾아 영업이 흥성했다고 한다.
그뒤로 너도나도 로천 음식점을 차리고 다른 지방에서도 별장식 음식업이 우후죽순마냥 흥기하면서 지금 밀강향에 유람 음식업은 침체상태에 있고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로천 음식점 주방. 여러가지 토종 음식을 주축으로 음식을 경영한다.

산과 물이 많은 밀강향 에서는 소를 많이 키우고 있다.
소 장사군들이 소를 흥정하여 차에 싣고 있다.

밀강향 해방촌에서 본 할머니

빨래터로 향하는 할머니

밀강향 해방촌에서 본 전통적인 조선족 돌기와 집

밀강향 해방촌에서 본 마을 풍경

밀강향 동양촌의 어느 한 민가의 뒤 울안 모습

동신촌은 밀강향에서 유일하게 한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지 마을이다.
한족 촌민들이 새집을 짖는 라고 말뚝을 땅에 박고 있다.

두만강변에 자리한 마을들중 조선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향진중 밀강은 교통이 편리하고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중의 하나이다.
조선족의 전통이 어느정도 잘 지켜지고 있는 밀강향은 퉁소향으로도 손문이 높다.
그러나 조선족 인구의 감소는 어쩔수 없는 현실로 남아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이 언제까지 이 땅에서 자리를 지킬지 우려가 간다.
다시 이 땅에서 민족의 번영이 나타난다는 것은 미지수 이다.
그날은 온다는 기약이 없다.
2006년5월 부터 11월 까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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