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보다 글쓰기, 글쓰기보다 기록
타너

기술이 발달하고 조선족들의 거주 속성이 큰 변화를 가져오니 교류의 마당도 그 형태가 많은 변화를 가져왔죠.
조선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으니 온라인을 통하여 활발하게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현상이 지나치게 요란할 정도로 진행 중에 있지요. 특히 글깨나 쓴다는, 그리고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른바 ‘글쟁이’들이 그러하지요.
아무튼 이래저래 세상은 많이 변했고 우리들의 삶도 이것저것 여러 모로 큰 변화를 가져왔죠. 그리고 그 변화의 삶은 멈출 새가 없이 역동적으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면서 또 다른 삶을 만들어 내겠죠.
통신수단의 발달로 말미암아 너도 나도 손가락만 ‘까딱’하고 놀리면 ‘작가(발신탑)’가 되어 한 통의 문자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가장 기본적인 ‘문자’의 나열, 즉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은 끼리끼리 소통하고 교감하고 심지어 소비까지 되는 판국이죠. 때문에 여러 모로 글쓰기에서 깊이나 무게, 혹은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죠.
사적인 대화에서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는데, 공개적인 발표를 염두에 두고 쓰는 글이라면 작성자가 반드시 깊이 인지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문학이나 글쓰기의 정도(正道、正度、定道)란 무엇인가 명확한 개념을 정립할 수는 없어도 기본적인 것은 갖추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죠. 자신이 뱉은 말이나 자신의 손을 떠나갈 글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책임지는 태도 등과 같은 것이겠지요.
창작은 개인의 행위지만 발표 등 활동은 근근이 ‘나’ 개인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기존의 틀에 얽매여서 지지부진하는 것도 취할 바가 못된다고 봅니다. 다양한 것이 허용되는 것이야말로 더욱 왕성한 생명력이니까요.
‘작가’들은 형형색색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창작물을 선보일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죠. 현재 문학이나 글쓰기를 주제로 다루는 계정이 여럿 있지요. '시선' 계정도 그 중의 하나라 생각합니다.
널리 흩어져 있으니 온라인을 통한 글쓰기 마당이나 무대가 형성되는 것은 자못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끼리끼리의 ‘놀음’이겠지요. ‘놀음’의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도 꽤나 기대하고 있답니다.
‘정직한 문학의 길’과 같은 거창한 행보를 위한 초보적인 글쓰기 연습은 꼭 필요하지요. 일단 글쓰기를 위한 열띤 분위기가 형성된 후, 여러 형식으로 문학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높은 자각을 갖출 필요성을 차차 공감하면서 정제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점진적인 구조가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하루 아침에 모두가 ‘정예군’ 요구에 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문학보다는 글쓰기를 적극 유도할 수 있는 시대적인 유행을 만들어 내야겠죠. 양질 전환의 법칙 같은 것을 말이에요. 이러한 글쓰기 분위기는 또 다시 그 이후 세대들에게도 이어지는 양성순환 구조가 형성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모여서 무엇 하는 게냐?”하는 식의 눈총도 당연히 받겠죠. ‘신천지’를 만들려는 것 아닌가? 혹은 기존의 것에 도발하는 것 아니냐? 등등의 오해 같은 걸 말이죠. 그러나 변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글쟁이들의 변화된 글쓰기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과 경주하는 우리네 인생과 역사, 어차피 앞으로의 조선족문학은 청년들의 손에 의해 씌어진다는 것은 당연지사이니까요.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그것이 한창 진행 중에 있는 현실이라면 반드시 역사로 기록될 것이란 말이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서로와 소통하는 가장 기초적인 준비 동작인 셈이죠.
새로움을 추구하는 문학예술 분야에서 도발이 틀린 것도 아니죠. 오히려 찌든 권위의식 같은 것에 경멸하는 시선이 많죠. 날마다 변하는데, 요즘 세상은 진리를 지탱해 줄 권위의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전통적인 가치나 규범 같은 것들이 무의미화되어가는 시대가 아닌가요?
대체적으로 조선족은 젊은 층일수록 독신자녀들의 수가 전 시기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지요. 가정에서 ‘핵사랑’을 독점하고 자라난 분들이 많다는 말이 되겠죠. 그리고 해내외에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는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의 삶은 이른바 ‘체제내’나 ‘철밥통’이 아닌, 그 밖에서 영위되는 경우가 퍼그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어요.
서로 개성이 뚜렷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중요시하는 것이 요즘 젊은이들의 특징이라고 하죠. 이렇게 서로 다른 분들의 사색을 글로 쓰고 읽고 공유하면서 교류할 수 있는 ‘보금자리’는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의 공통된 바람이라고 봅니다.
아마 '시선' 계정도 유사한 취지로 운영될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온라인매체는 공식 지면에서 용납할 수 없거나 불가능한 여러 가지 일들도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죠. 그러니 ‘따로 논다’는 인식이 아닌 ‘따로 또 같이’ 손잡고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겠죠. 각주구검(刻舟求剑)하는 어리석은 ‘꼰대’가 되지 말고 느슨하게 다양하고 다른 목소리가 허용되는 ‘신천지’를 '시선'에서 만들어 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인가 새로워져야만 하겠죠. 새롭기 위해 새로운 것이 아닌, 계절이 바뀌었으니 옷을 바꾸어 입자는 얘기죠.
특히나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획기적인 변화는 더욱 시급한 것이죠. 이래저래 걱정과 시름 섞인 낡은 ‘시선’과 늙은 ‘목소리’는 언제나를 막론하고 늘 있어왔죠. 비록 상식이 통하는 것이 상리이겠지만, 상식의 관성에만 의해 굴러가는 세월이 꼭 합리적이거나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라 생각해요. 기존의 것들이 재해석되고 재구성되고 또 재탄생하는 마당에, 상식대로만 살기엔 세상은 너무 따분할 것 같기도 하구요.
아버지는 “넌 애비처럼 살지 말라.”고 했어요. 글쓰기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죠. 그리고 우리의 ‘시선’도.
조선족 글쓰기, 언제까지 한글로 진행될지… 걱정들이 참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죠.
걱정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말과 글을 비롯해 다양한 형식으로 ‘나’와 ‘너’를, 그리고 ‘우리’를 기록하는 사람이 보다 많아져야 우리들의 ‘유서’가 더욱 육덕스럽지 않을까요?
문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글 쓰는 글쟁이들이 많아지고, 또 글로 오늘을 기록하는 기록자들이 많아진다면 참으로 좋을 것 같아요. 때문에 “문학보다 글쓰기, 글쓰기보다 기록”이라 말하고 싶어요. 그러니 일치된 하나의 목소리나 시선보다 각양각색 개개인의 입체적인 삶의 기록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겠죠. 금자탑의 주춧돌을 쌓는 일이라 말해도 무방하겠죠.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우리들의 공동된 약속인 부호(말과 글)가 암호로 남을 걱정은 별로 없다는 거죠. 그래도 민족을 혈통적인 공동체가 아닌 문화적인 공동체로 본다고 할 때, 조선족 모어 창작이 멈추어 버리면 우주에서는 하나의 문화가 영영 사라지게 되는 가슴아픈 일이죠.
우리의 자유롭고 다양한 ‘시선’으로 ‘오늘’을 분명하게 기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애벌레가 나비 되어 훨훨 날아가는 과정, 거창한 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우선 먼저 하찮은 것부터 시작하는 발걸음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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