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봉희 가족, 녀, 1922년생
길림성 안도현 송강진 거주

나의 고향은 강원도 진화이다. 그때 나의 오래비가 징병에 뽑히여 군대에 나갔는데 한번은 훈련을 하다가 교관한테 귀쌈을 얻어맞았다. 훈련에 삐치기도 바빠죽겠는데 거기다 귀쌈까지 얻어맞고나니 오래비는 밸이 나서 군대에서 달아났다. 오래비가 달아난후 경찰서에선 엄마를 데려다가 아들을 데려오라고 때리고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래서 엄마는 낮에는 산에 가 숨어있다가 밤이 돼야 집에 내려와 쉬고 하였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붙잡히면 또 갖은 고생을 다하군 했다.

이렇게 경찰서에 시달리던 엄마는 할수없이 우리 딸 삼형제를 데리고 몽골로 갔다. 몽골에서 살다가 후에는 또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에서 얼마동안 살다가 중국이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3월에 중국에 왔다. 와서 남천선골에서 살았는데 그곳의 지주놈이 어찌나 혹독한지 숱한 고생을 했다.

그때 땔나무가 떨어지면 내가 홀치마를 입고 초신을 신고 나가 쑥대를 꺾어다 때군 했다. 아버지는 줄창 돈벌러 밖에 나가 돌아다녔다.

20세기의 콜레라

후에 우리는 또 여탕이란 곳에 가 새 부탁을 일구고 거기서 농사를 짓자고보니 안되였다. 쌀도 사 먹어야 하는판이였다. 한데 돈이 있어야지. 그래서 나물이랑 뜯어서 대강 먹으면서 살았는데 언젠가 갑자기 70여호되는 부락에 전염병이 돌아 술한 사람이 죽었다. 갑산에서 온 집은 들어올 때 일곱식구였는데 고향에 돌아갈 땐 병으로 다 죽고 한사람이 돌아갔다.

이런 얘기 다하자면 끝이 없지만 눈물이 나 더 못하겠다.

북경대학 김훈 정리

*글의 맞춤법과 표기는 원문 그대로 두었다. (굵은 글씨 만은 옮긴 이)

[연관글]

[자료] 북경대학 김경일 교수 반도문제 칼럼 모음(한겨레, 내일신문)

[조선족이민실록] 그 령감이 생전이므 좋은 얘기 많을겐데

[조선족이민실록] 001. 조봉학 가족(길림 훈춘)

[조선족이민실록] 002. 김정록 가족(길림 돈화)

[조선족이민실록] 003. 한희운 가족(길림 돈화)

[조선족이민실록] 004. 최헌순 가족(길림 화룡)

[조선족이민실록] 005. 엄동성 가족(길림 통화)

[조선족이민실록] 006. 박춘협 등 5인(도문 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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