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긋 지긋' 하면서도 질리지 않는 조선족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ㅎㅎㅎ

   제 2편에서 알려드린 바와 같이 제가 다니고 있었던 대학교의 특수성으로 인해 졸업 작품에서 필수적으로 소수민족을 다루는 작품을 메인 작품으로 출품해야만 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던 내내 저는 중국에서 조선족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와 그러한 우리의 처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1 학년 하반기에 저는 어느 교수님으로부터 연구 지원비를 받아 소수민족지역 비물질문화유산에  관한 자료 수집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동안 저는 홀로 연구자료를 수집하러 연변으로 갔습니다. 제가 당시 과제물로 제출했던 연구과제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장고' 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관한 내용이였습니다.

   저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연변에서 유일하게 조선족 악기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작 할 줄 아시는 장인(김기봉 선생님)의 공장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해당 장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장인은 이미 세계 곳곳의 취재진들로 부터 수 많은 인터뷰를 받아 왔지만 그의 업적에 비해 여전히 홍보가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金季凤,朝鲜族。延吉市民族乐器研究所工程师,朝鲜族乐器厂厂长,其父亲金瑢璇是朝鲜族民族乐器事业的第一代传承人之一。
김기봉 선생님께서 장고 조립법을 시연하는 중입니다.

    인터뷰 하면서 김기봉 선생님의 답변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내용을 발췌하였습니다. 

(인터뷰 발췌) 您觉得要做好朝鲜族乐器的传承,需要我们在哪些方面做出努力?
  在日本侵占东三省的时候,不让朝鲜族用朝鲜乐器,甚至拿着斧头就砸,直到改革开放前都是这样。长鼓等等的乐器已经损毁、消失得差不多了,很不好找。因为这样,我在做文化修复工作的时候真的下了很大的功夫,在民间走了三个月,挨家挨户的去访问,看看有没有会制作、会演奏、保留乐器的人。这儿的长鼓也是我用破的长鼓去研究、去问老前辈们或者问曾当过妓生(朝鲜艺妓)的老太太们,听他们口述制作的方法和用法。解放之后,国家每年都派我去各处学习,把朝鲜族文化给找回来,这里的民族乐器就是这样发展起来的。
  国家给这个条件,这是很好的,但重要的是要有再去继承人呐,现在制作朝鲜族锣的那位继承人,已经不在了,这里就在没有继承人了。奚琴也是,没有老师,没有教材,朝鲜族艺术学校是应该有这样的科目的,但是到现在也没有。筒啸,自家有筒啸的老人们吹法各异,想怎么吹就怎么吹,到底什么样的声音才是筒啸真正好的声音,这些人们都不知道。民族文化就是这样的,虽然从乐器本身探究它的起源很困难,但是听它所产生的音色、节奏,就可以辨别好坏了。 
                         

出自:《长鼓在延边地区的传播概况》 独立调研报告(节选)  采访者:金真   

   장인께서는 한편으로 자신이 연변에서 장고, 가야금과 같은 악기를 만드는 전통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 전통을 이어나아갈 수 있는 후계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이 때가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데 아직도 장인께서 무사하신지 궁금하네요.

   장인을 취재하고 나서 제 마음은 너무나도 무거웠습니다. 

   그 후 또 한분의 장고 전문가를 뵙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장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던 참에 언뜻 초등학교 다니던 동생이 예전에 자기 친구 아버지가 연길에서 장고를 다루는 제1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동생 친구에게 부탁하여 그 친구의 아버님과 연락이 닿게 되어 전문가의 일터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장고 전문가는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장고를 시연해주셨고 전문가 역시 조선족 전통 악기에 대한 애정이 깊으셨지만 장고를 다루는 기법을 꾸준히 이어받을 제자가 없어서 자신의 아들에게라도 물려주고자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경수(陈京洙),朝鲜族。延吉市朝鲜族艺术团 国家一级演奏员。
(인터뷰 발췌) 在您看来,传承朝鲜族乐器的过程中都面临着那些问题您希望国家和人民以何种方式来帮助我们传播民族乐器?
     
       朝鲜族乐器一般演奏的都是长短,没有音乐的时候只凭长短就能演奏的,这一点非常重要,也是区别于其他乐器的最主要的特点。现在在此领域做出深入研究的人很少。虽然也有非物质遗产这些项目,但是终没有落到实处。朝鲜族民族乐器光靠朝鲜族本民族的力量是难以在这千千世界立足并传播发扬的。只有得到政府的更多支持,我们才得以顺利的发展。                             

出自:《长鼓在延边地区的传播概况》 独立调研报告(节选)  采访者:金真

    저는 이 당시 제가 조선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한치 의심도 없었지만 조선족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왜" 우리는 한편으로 문화 계승을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위급한 문화 유실 현상에 대해 이토록 무심했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는지 답답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현상을 교수님께 보고서의 형식으로 제출하는 방식일 뿐이고, 해당 수업을 맡았던 교수님께서 이 연구서를 어떻게 사용할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여렸을 때 조선족 친구들과 함께 장고 춤을 배웠으며 잘 추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장고라는 악기가 저에게 가져다 주는 친근함만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친근한 장고와 그 속에 담겨진 문화가 중국 땅에서 박물관 화석과 같이 점차 잊혀져가는 문화유산으로 취급되는 상홍이 저에겐 너무나 마음 아픈 일이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 삶 속에 붙어 있는 일부를 유물로, 살아 있는 문화를 죽어 버린 역사로 만들어버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중국 무늬 위에 놓여진 화석으로 된 장고

그 당시 저는 처음으로 민족 문화의 소실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고, 민족 문화 유실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함을 몸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갓 20살이 되었던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외침(2012)

    그렇게 학교에 돌아와서 제가 그렸던 그림은 바로 <외침> 입니다. 이 그림은 수묵화 재료로 그려졌으며 높이는 2m에 달하고 너비는 1.2m입니다. 저는 岩彩,沙石를 胶矾에 섞어 안료와 함께 그림에 칠하여 그림 속에 무게감을 실어주었습니다. 그림은 세워진 장고를 추상적으로 표현해낸 것이고, 검정색으로 칠한 상단 장고통에는 마치 고통을 외치는 듯 한 입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단 장고통에는 피줄기가 흘러 내리듯이 상처의 흔적을 표현하였습니다. 장고 끈은 이미 파괴되어 좌측 한 줄기만 북면에 간신히 걸려 있습니다. 저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무기력함을 피투성이 된 장고의 호소를 통해 표현해내고자 했습니다.    

장고

   그 후 저는 이러한 사색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조선족 문화가 없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근거하여 우리를 조선족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인가? 

   한복, 장고와 같은 전통 문화를 계승하지 않는 조선족은 과연 조선족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조선말과 조선족 혈통 만으로 조선족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혈통이라는 것이 몇 천년, 몇 만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과연 우리를 조선인에 한정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우리의 뿌리가 조선족 또는 한민족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수해야만 하고 그것의 근거는 어디에 있으며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늘날 조선말을 잃어버리는 조선족도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 다른 나라의 사람과 결혼하는 조선족도 점점 많아지는데, 그렇다면 조선족 또한 '장고' 처럼 결국엔 사라질 수 있는 '정체성 유산'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면 조선족과 나를 동일시 했던 나의 기억과 믿음들은 모두 허상이란 말인가?!

몸을 구부리고 인사를 하는 조선족

   저는 더이상 저의 민족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소위 "조선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의 학부(본과) 졸업작품에서 <코리안 드레스>가 완성 되었습니다.

코리안 드레스 1 코리안 드레스2

   무대와 무대 위의 붉은 막은 조선족 무용수들에게 아주 익숙한 공간 구성입니다.

   <코리안 드레스1>에는 조신하고 단아하며 우아한 조선족 여성의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치마를 들어 올리고 무례한 자태를 드러내는 여인은 얼굴조차 일그러져 있습니다.
   <코리안 드레스 2> 을 보면 무대가 비스듬이 세워지고, 무대 위에는 한복을 걸친 마네킹이 불안한 자세로 우스광스러운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문화재로 변모해가는 조선족의 처지가 바로 이렇게 보였 던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대학교 시절의 저는 꽤나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했던 교수님께서는 저를 보고 자신의 시야를 어느 민족에 같혀 놓이 말라고 충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 당시 민족의 정체성을 뛰어 넘어서 세계를 바라 볼 수 있는 내공이 부족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저를 한(하나의) 민족에 가두어 두지 않으려고 온갓 힘을 써왔습니다. 

    역설적인 것은 제가 그렸던 수 많은 그림들은 조선족 정체성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제 자신은 이 주제로부터 쉽사리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20대 초반의 저는 제 나이 답지 않게 자신의 민족에 관해서 사색하고 더불어 자신의 나라에 관한 염려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 정체성에 대한 의문들을 다루었다면, 다음 편 부터는 제가 한국에서 유학하면서 경험했던 일들과 조선족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들을 그림과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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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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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예전에 마네킹 그림을 모멘트 사진에서 봤을때는 아 그냥 신기한 그림이네, 정도로 이해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작품속에 내재한 의미를 알것 같기도합니다. 마네킹 시리즈로 그림 많이 더 그렸으면 좋겠어요. 하핫~~^^!!!그리고 한국에서의 작품들도 많이 기대됩니다.

  2. 좋은 글과 그림 잘 읽고 보았습니다. “외침” 작품이 인상 깊었고… 작품들 모두에 들어있는 “한”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피 컬러인 빨강과 다크한 톤들이 어우러져서 만든 “한”) 이런 작품에 극단적인 댓글을 달기가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하나 달라고 하면 (“왜” 우리는 한편으로 문화 계승을 외치면서 한편으로 이렇게 위급한 문화 유실 현상에 대해 이토록 무심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는지 답답했습니다.)에 대한 극단적인 답변 댓글: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기때문입니다. 지킨다고 누군가가 크게 알아봐 주는것도 아니고, 가끔씩 음력설야회나 이런 이벤트가 있어야지만 아! 우리의것이 뭐가 있었더라 하면서 누군가에 이용당하기에 급급하고. 그래도 이런식으로도 수입이 팍팍 생겼으면 좋겠는데 1년가봐야 몇몇차례밖에 없을것이고. 결론은 우리의 문화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서 수익을 낼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지키려고 하고, 애를 쓰지 않아도 지켜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1. 와~! “한”으로 미술작품 분석을 하셨네요! 전 미처 생각도 못했어요~! 사실 많은 문화유산들이 이렇게 점점 소실 되었죠.. 실제로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다 자본이 지원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인데 억지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오래 못갈게 뻔하고, 수익도 중요하지만 문화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관심이 좋은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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