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그러나 읽으면 그게 아닐게 뻔한 책

소비와 허비를 넘어 제대로 한 번 읽어 볼 차비.


<파친코>가 화제다. 책도 드라마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곳에서. 왜 화제일까. 일단 홍보전략이나 매체 전파 상 여러가지 딱지들이 붙기 좋은, 바꾸어 말하면 여기저기를 자극하기 좋은 작품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건 반대로 잘못 읽히기 쉽다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일단 이름부터가 '모순'투성이다. ’파친코’는 일본어인데 'Pachinko'라는 생소한 알파벳으로 떡하니 내세워져 있고. 작가는 Min Jin Lee(민진 리)라는, 딱 봐도 아시아계 이름인데, 한국판 번역에서는 '이민진'이란 이름으로 '금의환향'했다(한 건지 당한 건지). 이런걸 찬美롭고 日사불란한데다가 요즘 핫하다는 미나리 보톡스까지 맞았다고 해야 하나. 선입견 한가득 들고 펼치기 딱 좋은, 그래서 책 안 읽어도 읽은 것 같은, 드라마 안 봐도 본 것 같은 그런 작품이다. 

그래서인가, 물론 그래서겠지. 한글로 된 동영상 콘텐츠들은 '국뽕'과 '반일'의 그림자 밑에서 <파친코>를 소비하고 있고, 좀 더 배운 척을 하는 이들은 소수자와 페미니즘과 성경 사상을 파헤치는 모양새를 보이고. 이 글을 끄적이는 나 역시도, 단일국가적 사고에서는 조금 자유로울 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주자와 소수자와 차별이라는 안경을 끼고 <파친코>를 접근하게 된다.

정작 작가 본인은 한국계 미국인, 남편은 일본계 미국인. 원작은 남편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파견되는데 따라가 몇 해를 사는 동안의 경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씌여진 영어 소설이다. 도대체 누구의 눈으로 본 누구의 이야기를 누가 읽고 있는 건지, 여기에 벌써 몇 쿠션이 들어가는지 모르는, 그래서 더더욱 단순하지 않은 소설이다. 어떤 하나의 딱지, 한 마디의 말로 규정짓고 나서 작품을 읽고 논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폭력적이고 거만하며 이미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면 이런…

각종 기사와 동영상들의 짤막한 소개들을 보면, 이건 또 일제 통치 하에서 조선인들이 얼마나 고생했고 일본은 얼마나 악독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차별의 뿌리는 얼마나 가증스러운 건지, 그런 증오와 충동이 넘치는 소설이 아닐지, 그렇게 읽히고 정보들이 뿌려지고 감정들이 휘날릴 것 같은, 그런 뻔한 유형의 이야기는 아닐지 우려되는 것. 그게 바로, 중국에 이주했던 조선사람의 후손으로 남아서 중국 공민이란 신분으로 한국을 접하고 일본을 접해야 하는 한 조선족으로서 <파친코>를 마주하게 되는 기분이다. 동시에 미국에 사는 코리안이 쓰긴 했다만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야기이니, 조선족으로서는 뭔가 한국 국민이 한국 국민에 대해 쓴 이야기보다는 훨씬 더 감정이입이 선행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짚어 보자. 소설이 아닌 드라마 <파친코>. 분명 원작 소설을 각색한 드라마이긴 하다만, 드라마 역시 각본이 필요한, 소설을 재가공한 새로운 작품인 것을 자꾸 잊고 있는 듯하다. 이 드라마의 각본은 드라마 작가 Soo Hugh(수 휴)에 의한 것이고, 드라마 감독은 kogonada(코고나다)와 Justin Chon(저스틴 전)이다. 이들 모두 미국 공민이다. 한국식으로 얘기하면 미국인이다. 이들은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이주 1세거나 미국에서 태어난 2세 이상의 한국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어떤 한국식으로는 '한국인'이라고 호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 저자인 Min Jin Lee(민진 리)를 포함하여 이들의 정체성은 #한국인 이라는 단순한 딱지(label) 하나에 갇히지는 않을 것이다. 훨씬 더 다양하며 역동적이며 모순적이기까지 한 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드라마 감독 kogonada의 예명이 일본 씨나리오 작가 野田高梧(노다 코고)에 대한 오마주인 것처럼)

또 한 가지. 드라마 <파친코>는 애플TV에서 전세계 유저/관객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콘텐츠다. 그니까 미국 공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 기업이 투자하고 미국 현지에서 촬영되었으며 미국발 플랫폼에서 잠재적 소비자들을 상정하여 만든 작품이라는 것이다. 소설도 그렇고 드라마도 그렇지만, 특히 드라마는 한국 국적 배우들을 주연으로 발탁하다 보니, 뭔가 아직도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로 오해하는 분들이 꽤 계신 것 같아서 덧붙여 본다. 

어찌야 됐든, 한국/조선사람과 관계되는 소설이고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나, 한국 국민의 시각과 기획이 아닌 제3자에 의해 제3의 시각으로 씌여지고 촬영된 이야기다. 그리고 한국 국민을 주요 타겟으로 상정하였다는 보장 역시 없다. 그러다 보니 뭔가 어색하거나 낯설거나 불편한 지점들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드러날 것 역시 뻔하다. 한국 국민 뿐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조선족으로서, 모어를 잃고 중국어로 창작한 조선족 관련 소설을 읽거나, 한국인이 중국이나 조선족에 대해 묘사한 소설이나 티비프로를 봤을 때 드는 그런 감정도 비슷할 것이다. 또한 실제로 <파친코> 소설 내용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는 오늘날의 재일코리안(자이니치)들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할 것이다. (당연히, 틀린 정보가 나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고, 같은 정보가 낯설게 다가오는 경험을 말한다)

이러한 '빗나감', 그리고 빗나감을 넘어선 '낯설음', 지어는 '충격'. 그러한 체험들이 소설 <파친코>와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니 심플하게 자기가 받아 들이기 싫은 부분은 말끔하게 제거한, 클릭수나 광고수익을 벌어 들이기 위해 자극적으로 입맛에 맞춰진 '거세된' 콘텐츠들은 잠시 제쳐놔두고, 오롯이 자기 자신 만을 위한 소중한 열독의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미국에서 나온 코리안에 관한 이야기. 한국 국민도 조선족도 자이니치도 모두 '타자화 당하기'가 가능한 그런 유니크한 체험이 가능한 이야기. 처음에는 안 읽어도 읽은 것 같고, 그래서 또 하나의 진절머리가 나는 작품으로 오해할 뻔한 이야기. 그러나 이제는 실제로 읽어 보면 그게 아닐게 뻔한 그런 이야기, <파친코>. 소설부터 한 번 읽어 봐야겠다. 

심한 선입견으로 봤던 <파친코>, 그리고 재일코리안(자이니치)들에 대한 인상은 아직도 아래 사진과 같이 야키니쿠(불고기)와 파친코 가게로 대변 ‘당하기’ 일쑤다. 소설을 읽고 나면 어떤 사진으로 바뀌어 올릴지 조금 기대되지 않는가. 

마침 거리에서 만난 광경, 왼쪽이 파친코집, 오른쪽이 불고기집.

한글 번역은 판권 문제로 품절되고 8월에야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판매된다고 해서 기다릴 수 밖에 없고, 일본에 살면서 일본어 번역을 읽는 것 또한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일본어역은 그 내용 때문인지 소설이 히트를 치고 나서도 번역되기까지 한참이 걸려 2017년에야 출판될 수 있었다. 소설이 전공서적보다 싸다지만 유학생에게 일본 책값이 만만치는 않구만(중국의 10배 정도)… 글쓰기를 응원해 줄 분들로부터는 그 응원을 받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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