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2006

내고향 마을 앞으로는 두만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소잔등에 앉아서 두만강변을 누비고 물장구를 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들은 노래는 연변가요《두만강 7백리》이다.

두만강이  7백리나 되는 구나 하는것을 노래를 듣고 알았다.

아마도 연변사람들은 두만강이  7백리되는 것을 노래로 알았을것이다.

그후로 들은 노래가 한국가요 《눈물젖은 두만강》이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옛날에는 두만강이 푸르고 맑은 물이고 배로 사람들이 오고 갔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두만강은 아버지 때에도 흘렀고 아버지의 아버지 때에도 흘렀을 것이다.

그 옛날에는 두만강은 지금보다 물도 맑고 물결도 세차고 유량도 많았을 것이다.

굽이굽이 돌고돌아서 흐르는 두만강,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가 담긴 눈물 젖은 두만강, 수난과 피눈물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할가?

두만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하여 중국에 있는 연변에 화룡시 숭선진,  로과향,  덕화진,  룡정시의 백금향,  삼합향,  개산툰진,  도문시의 월청향과 도문시를 지나 량수진을 경유하며 훈춘시의 밀강향, 영안향,  삼가자만족향,  반석진,  경신진을 거쳐 동해로 흘러가고 있다.

 두만강 건너 조선의 양강도 대홍단군,  함경북도 연사군,  무산군,  회령시,  온성군,  새별군, 은덕군을 지나 선봉군 우암리 동남쪽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상류로부터 석을수,  연면수,  성천수  보을천,  회령천,  오룡천,  아오지천과 해란강,  삼안강,  훈춘강 등의 지류가 곳곳에서 합류된다.

 두만강 지류중 그 길이가 5km이상 되는것은 약 150여개이며 그 가운데 50~100km되는 하천은 6개이다.

상류에서는 서두수라고 불리며 조선의 대홍단군과 무산군의 경계에서 지류인 석을수와 합류한 뒤에는 두만강이라 불린다고 한다.

두만강의 유역 면적은 3만 3,269.5 k㎡(조선1만 743.5 k㎡ 중국 2만 2,526 k㎡)이며 길이는 7백여리가 된다.

상류의 하계는 대체로 수지상 하계망을 이루며 중류의 무산에서 회령까지는 ( 연변의 남평 ) 감입곡류 하천을 이룬다.

온성( 연변의 량수 )을 지나 하류의 평지로 접어들면 하천경사가 완만해져 주운(舟運)이 용이하다. 

온성에서 강 하구 사이에는 유로 변동이 심하고 퇴적작용이 활발하여 곳곳에 하중도와 우각호가 

형성되여 있으며 강하구에는 삼각주가 발달하였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매우 큰 대륙성 기후 지역이다.  

1월 평균 기온 -20℃내외,  8월 평균기온 18~20℃내외,  년평균기온 4~6℃ 내외이다. 

년강수량은 500~700mm 이다.

두만강에는 모샘치와 비슷한 잉어과의 민물고기인 두만모재를 비롯, 산천어, 연어, 송어,

열목어, 황어, 빙어 등 40여종의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다.

두만강 지역에는 벼 농사와 옥수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담배도 재배되는 곳이 있다.

두만강 중, 상류지역은 한대 침엽수림대의 원시림이 풍부한데 대체로 

침엽수가 76%, 활엽수가 24%를 차지한다.

1860년부터 1870년까지의 11년간 조선북부에서는 대 한재와 충재가 연이어 들었다. 

특히 1869년 기사년(己巳年)에 함경도의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흥 등 6진에 덮쳐든 한재는 

유사이래 겪어보지 못했던 대 재난이 였다.

 조선 리조왕조의 부패한 관리배들의 혹독한 통치까지 겹치면서 백성들은 먹을것이 없어 

굶어 죽고 ,  얼어 죽은 사람들이 수두룩 하였다. 

앉아서 굶어 죽기보다는 두만강을 건너 가서 살길을 찾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백성들은 생사를 무릅쓰고 청나라로부터 《봉금령》이 내려진 간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처음에는 야밤에 두만강을 건너와 밭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는 아침이면 돌아가는 

일귀경작 하는 걸로 그쳤다.

후에는 몇일씩 붙박혀 있으면서 농사짓기도 했다. 

청나라 관청의 령이 엄하면 돌아오고 뜸해지면 또 들어가는 방법으로 두만강 연안 

순라선에서 좀 멀직이 떨어진 산골짜기에 숨어 곡식을 심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봄에 월강하여 깊숙이 들어와서는 농사를 짓고는 가을이면 

타작한 곡식을 등에 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목을 잘리는 엄벌도 무릅쓰고 월강하여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늘면서 아주 집을 짓고 

살림을 차리는 사람들이 점차 생기기 시작했다.

 미개척지 나무뿌리를 뽑고 돌을 주어내면서 간난 신고 끝에 피와 땀으로 

두만강변에 옥답을 일구어 냈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 연변 조선족들의 뿌리인것이다.

한편 길림장군 명안과 오대징은 간도지방에서 이미 다수를 차지한 조선사람을 출국시킬수도 

없고 개간한 토지를 황무지로 만들수도 없다면서 집조를 발급할것을 주장했다.

 결국 청나라 조정에서는 로씨야의 침략등 국내외 복잡한 정세속에서 조선 이주민을 리용하여 

간도를 개간하기로 하고 1885년 봉금령을 페지하고 정식으로 두만강 이북 7백리, 

너비 40~50리에 이르는 지역을 이주민들의 개간지역으로 정하고 개간을 허용했다.

 그후 이른바 《한일합병》이 이루워 지면서 두만강을 건너 간도에 이주하는 

조선인들이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중국침략의 교두보를 만들기 위하여 만선개척회사를 세우고 우리민족을 협박하여 

이민부락과 개척단 부락을 수없이 만들어 집단통치를 실시하였다. 

대략적인 통계에 따르면 1937년부터 1939년까지 집단적 혹은 분산적으로 동부지역에 이주한 

조선 이주민은 2만360호, 8만 3900명으로 해마다 평균 2만7,103명씩 이주 시켰다고 한다.

살길을 찾아 두만강을 건너온 우리 조상들은 피땀으로 간도땅을 일구어 

벼농사를 시작했고 삶의 터전을 닦았다.

청정부 관리들의 수탈과 일제의 통치에도 굴함없이 조선족 군체를 

이루면서 비장한 이주민의 역사의 장을 엮어 냈다.

일제가 투항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이후에도 온갖 정치적여파에 시달리면서 

개혁개방을 맞이 했다.

 1990년 제4차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국조선족 인구는 192만597명으로 집계됐다. 

조선족 대부분은(90%이상) 호적상 동북3성에 분포되여 있고 그 중에서도 

두만강 유역에 자리한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우리 나라 조선족의 가장 큰 집거구이다.

1990년 전주 조선족인구는 82만1,479인으로서 전주 인구의 39.50%차지,

 전국 조선족 총 인구의 42.77%를 차지한다.

 전주 8현시의 조선족 인구 분포를 보면 룡정시 18만3,994명,  연길시 17만7,547명,  

화룡시 13만6,894명,  훈춘시 9만 2,100명,  왕청현 8만5,049명,  도문시 6만9,166명,

 안도현 2만4,745명이 살고 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에서의 지역간의 이동이 자유스러워 지면서부터 

조선족들의 새로운 이동이 시작되였다.

남방이나 대도시쪽 으로 살길을 찾아 장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후 중한 수교이후 조선족 사회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출국바람에 정든 고향을 떠나 한국, 일본, 로씨야 등 세계 각국으로 금의환양의 꿈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취직을 목적으로 젊은 층들이 남방과 연해지역에 대거 진출하였다.

출생률은 적고 떠나는 조선족은 많다보니 두만강변에 자리잡은 조선족마을의 인구는 급격히 즐어들고 있다.

외국 나들이에서 얼마간의 자금을 잡으면 도시로 이주하다 보니 농촌은 황페해지고 

조선족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감소되고 있다. 

지금 현재  농촌에는 조선족이 얼마 남아 있지 않는 현실이 되였다.

연변의 현황을 보면 조선족 인구가 연길에 많이 집중되고 기타 현시에 얼마간 남아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두만강변에 있는  조선족들의 삶의 터전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

지난 2006년 가을 , 두만강변에 삶의 터전을 잡은 우리 계례들의 숨결을 따라 두만강을 답사하면서 찍은 다큐사진들을 이달 부터 ( 우리나무 ) 홈페이지에  올려 많은 조선족들의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 고향에 대한 향수乡愁를 달래기 바란다.

                                                                                                   사진 :  2006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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