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중에 밑줄을 긋거나 굵은 글씨 부분은 번역한 이에 의한 것이며 원문에는 없는 표기이다.

글 – 오구라 키조
번 역 –  평    강 

○‘윤동주’ 라는 물음

윤동주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민시인’이다. 그 결백한 도덕감, 몸부림치며 토해내는 듯한 신선한 언어, 음악적이라고 해도 좋을 시어의 울림으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시인이다. 한국에서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영원한 베스트셀러이다. 

일본어로도 여러 종의 번역이 나와 있기에 일본에도 윤동주의 팬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가 쓴 <윤동주>라는 에세이를 꼽을 수 있다. <한글에로의 여행>(초판 1986, 후에 아사히문고)이란 책에서 이바라기는 한국문화의 매력을 수려한 일본어로 풀어냈는데, 이 글은 바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책에서 이바라기는 요절한 시인 윤동주에 대한 오마주를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에세이는 <신편 현대문>(치쿠마書房)이라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사실로 화제가 되었었다. 이웃나라 한국의 시인에 관한 에세이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 때문에 화제가 되는 퍽이나 이상한 이야기지만, 일본이란 나라는 그런 나라다.

나도 윤동주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자신의 글에서도 여러 번 쓴 적이 있고, 또한 그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도 말한 적이 많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커다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한국인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게 될 경우 그 위화감은 더욱 증폭된다.

윤동주는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하고 있던 시기에, 지금의 중국 동북부에서 태어난 조선인이다. 1917년 9월에 간도성(間島省, 현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현 신명동촌(新明東村)에서 태어나서, 1945년 3월에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죽었다. 만 27세였다.

즉 윤동주는 한 번도 한국인이었던 적은 없었다. 대한민국이 탄생한 것은 1948년 8월이므로, 그전에 죽은 윤동주가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얘기다. 윤동주는 한국인이 아니라 ‘조선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윤동주를 한국인이라고 믿음에 추호의 흔들림도 없다. 물론 조선왕조의 일이나 고려시대의 사람일지라도 ‘한국의 일, 한국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윤동주도 한국인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본질에 맞물리지 않는 부분은 잘라내 버린 윤동주 상(像)만을 허용하는 태도로, 윤동주를 본질화하려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2012년 6월, 교토(京都) 우지(宇治)에서 열린 ‘시인 윤동주의 생각을 오늘날로 잇는 모임’(詩人尹東柱の想いを今につなぐつどい)에서, 나는 나의 세미나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국조선족 유학생 3명에게 윤동주 시의 낭독을 부탁했었다. 남학생 1명에 여학생 2명이었다. 중국조선족 학생들에게 낭독을 부탁한 이유는, 그들이 윤동주의 언어와 아주 가까운 친연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족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 동북부의 조선어로서, 윤동주가 썼던 말도 이들과 같았다. 윤동주는 언어적으로 봐도 한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이었던 것이다. 

교토 우지의 윤동주 시비

<서시>의 마지막 행에 나오는 그 유명한 ‘스치운다’ 라는 동사는, 현대의 한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낱말이다. 그 의미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서시>의 일본어 번역 중에는 ‘초역(超譯)’이라 불릴 만치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있다(본서에 수록된 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논문 <제6장> 참조). 그러나 중국조선족 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게 이 낱말은 일상적으로 쓰이는 아주 평범한이라고 한다.

윤동주의 시를 조선족 학생이 낭독하는 데 대해, 주최자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시인윤동주기념비건립위원회 사무국장) 씨도 매우 기뻐하였다. 조금은 수줍은 듯 조심스러운 인상을 주는 조선족 젊은이들의 목소리는 행사장으로 빌린 교회 건물의 천정에 부딪쳐 차분하게 맺히듯 울려 퍼졌다. 그것은 다른 장소, 다른 때에 한국인이 낭독했던, 오페라처럼 챙챙하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또렷한 목소리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소리였다.

2020년 기념 모임

낭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은, 처음 일본에 유학 왔을 당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이나 사업 관계로 연변을 비롯한 조선족 거주지역에 오게 되면서 조선족들이 쓰는 조선어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언어의 서열화가 생긴 것이다. 서울의 한국어야말로 정통을 잇는 진짜 한국어이고 조선족이 사용하는 ‘사투리’는 한국인들에 의해 바른 말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어 버렸다. 한국에서 온 대학교수는 조선족의 조선어를 멸시하여 너희들의 발음과 문법은 ‘틀린 것이다’ 라고 하며 교정해 주려고 했다. 조선족 측에서도 한류 드라마와 케이팝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자연스레 조선어가 아닌 서울말을 쓰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는 편이 촌스럽지 않고 도시적이고 멋있어 보였다. 혹은 반대로 한국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조선-한국’이 아닌 중국에서 찾으려고 하면서 조선어를 배우려 하지 않는 조선족 젊은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자신은 코리안이지만 중국인인 이상 한국인보다도 서열이 위다, 라는 인식을 가지고 싶었던 것이다.

조선어를 둘러싸고 조선족과 한국인은 이렇듯 복잡한 대립과 다툼이 있다. 이런 사실들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여, 나는 윤동주의 시를 조선족 젊은이들로 하여금 낭독하게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윤동주 자신도, 1938년 간도의 룡정에서 경성(지금의 서울)으로 갔을 때, 그도 그 ‘사투리’가 신경 쓰여서 과묵함으로 일관했던 젊은이였기 때문이다.

○‘정답’에서 ‘틈’으로

가장 널리 읽힌 윤동주의 시 <서시>의 해석에 대해, 나는 <<いのち>は死なない>[’삶’은 죽지 않는다](춘추사, 2012)라는 책에서 쓴 적이 있다. 부족하지만 아래와 같이 번역해 보았다.

死ぬる日まで天をあふぎ
一点の恥づかしさもなきことを、
木の葉に起こる風にも
ぼくはこころわづらった
星をうたふこころで
なべて死にゆくものを愛さなくては。
そしてぼくに与へられた道を
あゆまなくてはならぬ。

こよひも星が風にかすめ吹かれる。

물론 이 시의 제일 핵심적인 부분은 마지막 행에 있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두 갈래의 복선도 중요하다. 하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와했다’ 인데 이는 만물이 속절없이 바뀌고 빛바래고 사그라지는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언어에 담긴 ‘별’은, 영원히 변함없이 빛나는 것, 단단한 것을 가리킨다. 그러한 영원성, 불변성, 부동성(不動性)에 시인 자신을 동일화시킴으로써 모든 ‘죽어갈 수밖에 없는’(mortal) 것들을 ‘사랑해야지’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서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不動) 변하지 않으며 영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마저도, 바람에 나부끼는 잎새와도 같이, 사실은 흔들리면서 바람에 스치우며 사그라져 가는 존재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잎새’, ‘바람’, ‘별’ 등의 시어에 대한 내 나름의 철학적 해석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졸저를 참조하기 바란다만, 강연회나 강의와 같은 자리에서 이와 같은 해석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들은 대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곤 했다. 그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별은 한국인이란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견디고 저항하는 확고한 민족적 혼을, 윤동주는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 의해 짓밟혔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민족의 언어, 마음, 생명을 별이라는 시어에 부쳐서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확실히 그러한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아니, 그러한 해석이야말로 윤동주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즉 위와 같은 한국의 해석이 이 <서시>에 대한 대한민국적인 ‘정답’이라고 위압적인 높은 언성으로 주장될 때, 우리들은 항상 의식적으로 그 ‘정답’에 맞서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윤동주는 단 한 번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의 존재를 그 핵심 중 하나로 하여 건립된 국가가 말하는 ‘정답’과 윤동주의 사이에는, 거리가, 아니 괴리가 있다는 얘기이다. 달리 얘기하면, 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민족이라는 개념에 의거하여 타자에게 ‘정답’을 강요하고, 그 ‘정답’으로부터 이탈한 사고를 ‘부도덕적’인 것으로 치부하면서 배제하려고 하는 레벨과 윤동주는, 차원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본의 치안유지법에 의해 검거되고 결국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은 조선의 젊은 시인의 영혼을 두 번 죽이는 일임이 틀림없다.

윤동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자유 영역의 문제이다. 누군가가 ‘도덕적 정답’이라는 폭력적인 개념을 휘두르면서 그 밖의 다른 해석이나 사고를 압제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서시>에 대해 물으면, 그들 중 대다수는 ‘민족적 저항을 노래한 시’ 라고 답한다. 애당초 학교의 국어수업에서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다른 해석들은 대부분 배제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는 윤동주라는 시인의 의미를 왜곡시켜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있을까.

윤동주는 ‘○국인’일까. 2012년 6월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 우지에서 열린‘시인 윤동주의 생각을 오늘날로 잇는 모임’의 게스트 토론시간에서 이 질문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은 아니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만주국에서 자라고 식민지조선과 일본에서 공부하며 일본식 이름(平沼東柱)을 가졌었던 조선인이었다. 한마디로 그를 얘기한다면 ‘조선사람’이라 해야지 않을까, 라는 것이 회장에 모인 이들과 게스트들 사이에 이루어진 공통인식이었다. 

1909년 룡정 명동교회(김재홍 수집)

나도 동감이다. 그러나 이 ‘조선’이라고 하는 것은 폐쇄적인 낱말이 아니다. 동아시아라는 시공간에서 어떤 특정된 이데올로기와 국가의 주권 등에 의해 선을 그어 국한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러한 복잡한 관계의 에서 그 존재가 드러나는, 이른바 ‘얼’로서의 조선인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 의미로서의 ‘조선’은 ‘동아시아’와 동의어라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치안유지법과 국가보안법과 북조선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국가에 의한 자유의 억압으로부터 일탈한 균열에서 피어오르는 ‘비재(非在, ‘존재’의 반대말)의 현신’으로서의 ‘조선’이고 ‘동아시아’인 것이다.

○시인이라는 것

위와 같은 사실은 윤동주라는 젊은이가 시인이었다는 것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윤동주는 시인이었다, 라는 사실을 나는 강조하여 두고 싶다. 왜냐하면 윤동주라는 젊은이의 비극은, 실은, 그가 시 쓰기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생명을 빼앗겨 버렸다는 데만 있지 않고, 그가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후세 사람들이 바르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그는 항상 ‘민족적 저항 시인’, ‘비극의 시인’, ‘순수한 서정 시인’ 등과 같은 존재로만 한정되어 불려져 왔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든 그렇게 카테고라이징이 된 형용사가 붙어서 인식된다. 다만 윤동주의 경우에는, 그렇게 ‘한정’되는 방식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것은 요절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용모가 단정하였다는 것에서도 기인한다.

나 자신도 강연과 같은 자리에서 저도 모르게 ‘단정한’이라든가 ‘순수한’이라든가 ‘때묻지 않은’과 같은 진부한 언어로 윤동주를 형용하고 마는,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일을 저지를 때가 있다. 그것은 윤동주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지만, 그런 언어로 그를 묘사하고 싶은 욕망을 거스르는 일 또한 사실 쉽지는 않다. 그만큼 그의 시어는 ‘순수’하며 그의 눈빛은 ‘때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동주 현존 마지막 사진(1943년 여름)

그러나 윤동주는 시인이며, 또한 완성된 시인이었다. 만약 그가 일본의 관헌에 체포되지 않고 해방 후에도 생을 이어갔더라면 얼마나 훌륭한 시인이 되었을까라는 상상은, 윤동주라는 완성된 시인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그러나 너무도 애석하고 안타까운 그의 삶은 그러한 동정을 금하는 일을 너무 어렵게 만들었다. 즉 그는 미완성이었다, 시인으로서 완성을 향해 가는 중에 있었다, 그의 시는 순수하지만 미숙했다, 그런 그의 성숙을 막아버린 일본의 책임은 막중하다, 라는 생각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결과로, 윤동주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의 해석에 있어서는 어딘가 ‘동정’의 레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윤동주를 둘러싼 비극의 다른 측면이다.

같은 현상은 일본의 윤동주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난다. 아니, 일본인들 중에서도 주로 가해자로서의 입장을 깊이 자각하는 사람들이 윤동주를 높이 평가하여 온 역사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한국보다도 일본에서의 평가가 ‘동정’이라는 선입견에 의해 침식되어 버렸다고 해도 좋겠다.

사물의 본질을 날카롭게 짚어내는데 능란한 이바라기 노리코마저도, 윤동주를 말할 때에는 붓끝이 풀려 버린다는 사실은 위와 같은 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증거라고 하겠다. 앞서 얘기한 그녀의 <윤동주>라는 글은, 이 시인을 일본의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였다는 의미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고등학교 3학년용의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것은 더욱 큰 사회적 의미를 가졌다. 문장 자체도 차분한 필치로 시인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는바, 역시 이바라기다운 글이라고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글에서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주관을 절제하고 똑바로 상대와 정면승부하는 그녀다운 기개를 조금은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그것은 윤동주를 묘사하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 속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젊음과 순결을 그대로 멈춰버린 듯한 깨끗함’, ‘열어보면 언제나 수선화와 같은 싱그러운 향기가 풍겨온다’, ‘너무나 순결한 미소년’, ‘늠름한 청년’, ‘대학생다운 지적 분위기’, ‘티끌 한 점 없는 젊은 얼굴’, ‘윤동주의 깊은 고독’ ……

위와 같은 표현들을 완성된 시인 윤동주에 대한 충분한 경의를 담은 언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역시도 ‘미완성’, ‘요절’, ‘비극’, ‘동정’과 같은 선입견의 이끌림을 말끔히 떨쳐내어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녀 자신도 시인이므로 ‘순수’하며 ‘순결’하며 ‘지적’이며 ‘깊은 고독’과 같은 진부함 속에서 참된 시가 탄생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윤동주에 대한 오마주를 표함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러한 표현들을 사용하고 마는 것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시의 실패를 뜻한다. 식민지 지배라는 정치적 죄악에 시의 힘이 복속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바라기 노리코와 같은 시인마저도 정치와 도덕으로부터 윤동주의 시를 해방시키지는 못했다.

서시 육필 원고로 알려짐

그러나 아직 우리들은, 바로 눈앞에 윤동주의 시를 마주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는 불멸이다. 다시 말하여, 모든 정치적, 도덕적인 힘을 뛰어넘어, 시의 텍스트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해방 후 대한민국 식의 맞춤법에 따라, 그가 쓴 본래 조선어의 모습과는 다르게 변형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을 복원하는 일은 가능하며, 변형된 후의 한국어로 된 시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윤동주의 시다. 그것은 일본어나 영어로 번역된 그의 시 역시도 그의 것인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윤동주의 시를 앞에 두고, 그 다양한 텍스트들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리고 그 속에 나타나는 균열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 균열의 틈에서 만이 윤동주의 시는 드러나고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뒤로 한 채, 그의 언어를 특정된 정치적, 도덕적 입장에 본질화시켜 흡수하고자 하는 것은, 시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옹호하기 위하여 윤동주의 시와 조선어이라고 하는 언어를 ‘이용’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 글은 徐勝・小倉紀蔵 편『言葉のなかの日韓関係―教育・翻訳通訳・生活』(말 속의 한일관계—교육, 번역통역 그리고 생활), 明石書店, 2014년에 수록된 서론의 중간 부분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원문의 저자는 일본 교토대학 교수 오구라 키조(小倉紀蔵, 동아시아 철학)이다. 글의 제목은 번역한 이가 새로 단 것이며, 소제목은 원문 그대로 번역하였다.

이 글은 교류용으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혹여 저자 원문의 의도에 어긋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번역한 이의 부족으로 인한 것이므로, 그 책임은 저자가 아닌 번역한 이에게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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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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