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두만강은 청청 하늘색이 비끼여 마치도 푸른 하늘로 흘러 가는 것 같

하류 지역에서 두만강은 훈춘으로 가는 입구에서 영안진의 앞을 지나서 유유히 동남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영안진 하면 떠오르는 것이 화력발전 공장이다

연변에서 으뜸가는 화력발전 공장으로서  지역 경제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연변에서 규모상 첫손에 꼽히는 화력발전 공장은 전력생산과 함께 훈춘시의 난방 문제도 해결한다.

화력발전 공장의 집중열공급으로 훈춘은 대기오염이 적고 친환경적인 난방으로 주민들에게 많은 편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연변 훈춘시 영안진은 훈춘시 서쪽에 5킬로 상거한 곳에 있다

영안진 서남쪽으로는 두만강이 흐르고 있으며 조선과 30킬로의 국경선을 이루고 있다.

남쪽은 삼가자 만족향마천자향양포만족향과 이웃하고 있다

북쪽은 왕청현과 린접해 있고 서쪽은 밀강향과 잇닷아 있다.

영안진으로 부터 넓은 훈춘벌이 펼쳐져 있으며 훈춘시로 통하는 입구나 다름없다.

영안진의 면적은 658평방킬로가 되며 중심구역은 2.6평방킬로가 된다.

25개의 행정촌에 150개의 자연툰으로 이루졌으며 9개의 주민위원회로 구성되였다

11703호에 인구가 43천명이 되는 두만강 유역에서 가장  향진중의 하나다.

인구 비례로 보면 도시호구가 25천명되고 농업인구가 18천명 된다.

그중 조선족 인구는 32.3% 차지하고 한족은 60.4% 차지하며 만족은 7%,기타 민족은 0.3% 차지한다.

몇년전에 훈춘시내 구역에 있는 춘성향과 여러촌들이 영안진에 귀속되면서 오늘에 인구를 이루고 있다

영안진 구역에는 훈춘 대당화력발전공장과 훈춘 탄광이 자리하고 있다.

훈춘시 영안진 정부 청사

영안진 중심가에 있는 영업집들

영안진 채소 시장

추석이 가까워 오니 월병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영안진에서 본 넝마주이 장사군

화력발전공장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영안진에는 조선족이 인구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에는 길거리에서 조선족을 보기가 힘들다

자원이 풍부하고 공장들이 들어서면 한족 인구가 급증하고 조선족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게 연변의 현실이다

경운기 뒤에 앉아서 어디론가 일하러 가는 애숭이 티가나는 한족애들

영안 광구 지역의 모습

길거리는 흥성흥성 하다

우리 조선족이 보이지 않을 다름이지…………

영안진 대황구 계곡

맑고 푸른 물이 조약돌을 부드럽게 어루쓸면서 흘러가고 있다.

 강도 흘러서 두만강의 품에 안긴다.

영안진 대황구는 혁명전통 역사가 깊은 고장이라고 한다

항일 투사들이 운집하여 훈춘현위를 창립한 고장 대황구이다.

훈춘현위 탄생지 기념비.  애국주의 교양활동이 시작되면서 기념비가 세워졌다.

중공 훈춘현위 창건의 시말을 적은 기념비

193010월에 훈춘현위는 대황구에서 설립되였다고 한다.

당시 영안진 대황구촌에 있는 훈춘당사 전람관의 외경

당사 전람관 마당에 있는 대황구 항일유격대 근거지 기념비

대황구 항일유격대 기념비 뒤면에 있는 대황구 쏘베트정부 활동에 대한 설명

영안진 대황구에 있는 훈춘당사 전람관에는 항일시기의 유물들이 전시되여 있다.

항일 유격대들이 사용하던 유물들

만주화페와 중화민국의 화페도 전시되여 있었다.

13 용사들의 기념비가 있는 열사릉원으로 가는 길에는 맑은 계곡을 지나는 줄다리도 있었다.

훈춘시 애국주의 교양 기지로 선정된 13 렬사 기념비

항일전사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렬사릉원이다.

1933818 대황구에  훈춘현의 항일 유격대원 박진흥 등은 변절자의 밀고로 일본 수비대와 무장자위단에 포위되였다

포위망을 뚥는 전투에서 중대장 박진흥  13명의 항일 유격대원들이 장렬히 희생되였다고 한다.

항일 렬사들의 묘비에 있는 비석을 보니 대부분 조선족 항일투사 들이다

항일투쟁에서 우리 민족은 생명의 위험도 무릅쓰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하여 피와 땀을 흘렸다.

연변은 산마다 진달래 , 마을마다 렬사비 >라는 말이 가슴에 닫는다

민족의 독립투쟁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영혼들이 고이 잠들시기를 기원한다.

대황구를 뒤로 하고 영안진으로 향하는 길옆에는 리화촌이 자리하고 있다.

리화촌으로 들어가는 마을 밖에는 석회 가마가 있었다.

처음 보는 석회가공 공장인지라 신기했.

석회 가루를 날리면서 뜨락또르로 석회가루를 모으는 장면

뜨락또르는 석회가루를 뒤집어 써서 온통 흰색이다.

일군들의 머리도 옷도 석회가루 범벅이다.

우리 조선족 집들을 하얏게 단장하는 석회가 이렇게 어렵게 생산되는줄 처음 알았다

물론 일군들은 모두 안쪽에서  한족들이다.

로천에서 석회돌이 석탄불에 타드는 장면

굽어진 석회석은 분쇄기로 가공되여 석회로 거듭난다.

영안진 리화촌의  합작사 벽에는 < 농업은 대채를 따라배우자  구호가 어제의 흘러간 역사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영안진 8.2촌으로부터 훈춘으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몇백년 역사를 간직한 거목들이 역사의 증인처럼 지금도 위용을 잃지 않고 떳떳이 서있다.

연변에서 수령으로 으뜸가는 마을 지기 느릅나무라고 할수 있다.

무슨 사연이 있어 방토를 하는라고 거목에 붉은 천쪼각들을 둘렀는지? 

말못할 깊은 애환들이 고목이 된 느릅나무에 붉게 물들어 있는 것 같다. 

영안진 8.2촌에서 따슷한 가을 햇볕 아래서  ,  

길옆의 흐르는 개울 물에서 손주를 엎고 빨래를 하는 주민의 모습

영안진 사완자촌 앞으로 흐르는 두만강에 놓인 다리

일제 시대의  역사를 말하는 현장이다.

소들은 한가롭게 두만강변에서 풀을 뜯고 있으며 두만강 넘어 조선측에는 일제시대의 유물인 또치카가 지금도 멍하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일제시대의 미완성 작으로 다리 기둥만이 두만강에  세월을 보내고 있다.

영안진 사완자로 부터 조선으로 이어진 다리도 비운의 두만강 다리중의 하나 이다.

두만강의 끝자락으로 부터 올라오면서 4번째 다리인  다리는 일제가 쏘련홍군에 밀려서 도망을 가면서 폭파해 버려 지금은 역사의 현장으로 사람들에게 일제시대를 성토하고 있다.

끊어진 다리옆에는 조선측의 양수기가 윙윙소리를 내면서 물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가을에 어디에 물을 쓰는지 ?

사완자 두만강 다리 입구에 있는 또치카.

다리를 사수하던 일제의 또치카가 세기를 뛰여넘어 어제의 역사 보여주고 있다.

황산촌앞 두만강 건너 조선쪽에는 전설이 깃든 형제 바위가 있다

두만강은 가물이 심한  가을이라 개울 물 처럼 보인다.

두만강은 지금도 눈물과 한을 안고 흐르고  있다.

우리 민족의 한이 언제면 두만강에 모두 씻겨서 사라질지 , 아직도 미지수다

얼마나  세월이 흘러야 할지 누구도 모른다.

두만강은 구비구비 산을 에돌아 쉬지 않고 동으로 흐르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두만강은 흐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언제면 두만강이 우리 민족의 한이 맺인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지 

그날은 있으려만…….

         

  20067월초부터 – 104일까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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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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