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의 하류에 있는 방천으로 부터 경신진을 지나는 두만강을 따라 올라오면 

훈춘강이 두만강에 흘러드는 곳이 있다

두만강에 흘러드는 지류중 50킬로메터 이상되는 하천이 6 있다고 한다

그 지류중 하나가 훈춘강이다

맑고도 푸른 훈춘강이 두만강에 흘러드는 아름다운 자연속에 

연변 훈춘시 반석진이 자리하고 있다.

 두만강과 훈춘강이 합류하는 삼각지역에 자리한 반석진은 133.89평방킬로에 

경작지는 2400헥타르가 된다고 한다

7 행정촌에 인구는 12천명 되고 그중 농업인구는 7342명이 된다고 한다.

사진은 반석진 소재지의 모습이다.

 당시 향진들에는 기본상 포장 도로에 가로등이 줄줄이 서있었다.  반석진도 예외는  아니다.

훈춘시 반석진 정부 청사

국경 연휴 기간이라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단장된 학교의 모습은 정다웠다.

 ( 훈춘시 반석진 중심소학교 라는 우리글 간판이 한결 기분을 상쾌하게 했다

조선족 학생은 얼마나 되는지 ?

 중심가에는 단층집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모두 작으만한 가게들을 차리고 장사를 하고 있다.

전문적인 채소시장은 없고 길옆에 몇명이 앉아서 채소와 과일 난전을 벌려 놓고 있었다.

반석진에는 석탄 자원이 풍부하다.

사진은 지금 건설중에 있는 ( 반석 광업집단 ) 모습

반석에는 작은 규모의 탄광이 많았다

지금은 국가에서 안전에 대한 요구가 높은  규제가 많은 원인으로 많은 

탄광이 도산되여 얼마남지 않았다고 한다

일정한 규모를 갖춘 탄광이 생존하고 작은 규모는 모두 채광을 계속할수 없다고 한다.

사진은 반석진으로 부터 경신진 으로 가는 길옆에 있는 소형탄광들 …

철공소에 다녀오는 한족 나그네

반석진에서  뒤좌석이 없이 달리는 웃으운 몰꼴의  삼륜오토바이 ….

한족들은 쉴새 없이 분주히 뛴다

어느집이나 농용자동차나 뜨락도르는 기본상 갖추어져 있는것 같았다.

농사도 짓고 석탄장사도 하고 , 물고기 잡이도 하고 ….

마을 귀모퉁이에 자리한 조선족 전통 가옥

전통적 조선족 초가에 지금은 한족 주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다리를 눕혀 놓은것 처럼 대수강 세워놓은 대문 짝에 

채소를 판매한다는 글이 분필로 쓰여져 있다.

일전이라도 벌려는 한족들의 금전에 대한 집념이 엿보인다.

반석진 소재지는 예전에는 조선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을이 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은 얼마되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어느 집이 조선족이 경영하는 음식점 인가고 문의하려 해도 조선족이 보이지 않아 손바닥 만한 곳에서 겨우  조선족 아줌마가 경영하는 음식점을 찾았다.

사장이 조선족  일뿐 주방장도 복무원도 모두 한족이다.

사람좋게 웃는 음식점 주인 아줌마는 탄광들이 있어 그럭저럭 장사는 된다고 한다.

그렇게 많던 조선족들이 모두 떠나가고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  하소연을 한다

두만강을 답사 하면서 가슴아픈 일은 조선족 인구의 급감 문제였다

두만강 기슭에 자리한 마을 중에서도 자원이 풍부한 지역일수록 조선족 인구의 감소가 엄중하고  자리를 타지에서 온 한족들이 찾아 와서 농사도 하고 부업도 하면서 채워 가고 있다.

반석진 소재지도 탄광이 많이 생겨나면서 탄광 로동자들이 ( 대부분 한족 )모여 들면서 조선족 인구가 급감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출국 바람까지 불어 치면서 조선족은 미련이 없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고 한다.

딸딸이차를 끌고 가는 조선족 할아버지

마을 골목길에서  조선족 할머니.

혹시 보이는 조선족은 할아버지 할머니들 뿐이다.

반석진 어디에 가나 줄줄이 보이는 애들은 한족 애들이다.

한족 나그네와 당나귀 그뒤로 보이는 황금빛 벼밭 올해도  대풍이라고 말한다.

경신진 백석촌을 지나 두만강 기슭을 따라 올라 오다 보면 반석진 하구(河口)라는 

몇호 안되는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는 몇호 안되는 조선족들이 모여 살았다.

정이 넘치게 깔금하게 지어진 집 , 마당에는 콩무지가 가득 쌓여져 있고 

집안에서는 어린애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농사가 잘되였는지  초가집 마당에도 콩무지가 높직이 쌓아져 있다.

하구는 몇호가 되지 않는 마을이지만 모두 아담하게 집을 짓고 여유가 있이 살아 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두만강이 유유히 흘러 경치도 일품이고 소일로 물고기도 많이 잡는다고 한다.


하구촌 위로 올라가면서 두만강에 비낀 조선에 산 ,

중국측으로는 가시 철조망이 치여져 있다.

가시 철조망 넘어 두만강변에서 말들이 한가롭게 가을 햇빛을 만끽하면서 풀을 뜯고 있다.

 두만강과 훈춘강이 만나는 합수목 , 

왼쪽에서 흘러오는 강이 두만강이다.

동으로 부터 흘어오는 훈춘강 ,

두만강을 만나는 합수목에서 맑고 푸른 훈춘강은 부드럽게 두만강에 안긴다.

 

훈춘강에 조용히 쉬고 있는 쪽배들

국경 연휴라 훈춘 시내에서 심심풀이로 물고기 잡으러 훈춘강 하구로  사람들 ….

반석진 맹령촌의 토종 담배는 훈춘지역은 물론 연변에서도 이름이 있다

예전에는 조선족들이 담배 농사의 주축이 였지만 지금은 혹시 

토종 담배를 재배하는 집이 있어도 모두 한족들이다.

반석진  신농촌 마을에서 젊은 각시가 귀여운 애를 안고 정답게 웃고 있다

조선족이다 !  

반가운 모습이다

어찌 반갑지 않을 수가 있을가 

두만강 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들을 모두 다녀 오면서 애를 안고 있는 

조선족 젊은 여자를 두명 밖에 보지 못했다

천리 두만강을 답사하면서 말이다.

반석진은 7 행정촌으로 이루졌다고 한다.

반석진 소재지는 이미 조선족들을 찾아 보기 쉽지 않은 지경  이르렀었다

그러나 작은 촌에서는 조선족들이 어제의 모습을 얼마간 지키고 살아가고 있었다.

반석진 소재지 북쪽에 자리한 신농촌에는 조선족 애들도 보였다

집마당에서 땅치치기를 놀고 있는 개구쟁이들…..

반석진 신농촌에 있는 조선족 민가

 가을이지만 나무 판자 울타리에서는 호박꽃이 피여나고 있다.

 

반석에 있는 장령자 통상구길림성에서 유일하게 로씨야와 통하는 륙로 통상구라고 한다

로씨야에 뽀씨예트항과는 42킬로 거리이고 짜르비노항과는 71킬로 거리이며 

울라지보스또크(해삼위)와는 170킬로가 되는 거리라고 한다.

훈춘시에서는 15킬로의 거리가 되는 장령자 통상구 .  

로씨야 항구를 빌려서 한국에 동춘호가 속초로 오가고 있다고 한다.

길림성에서 로씨야와 한국으로 통하는 관문이자 무역의 중추역할을 하는 통상구이다.

그러나 흑룡강의  로씨야 통상구들의 몇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원 왕래와 무역량이라고 한다.

마우재 (로씨야운전수들이 몰고 들어온 로씨야의 대형 트럭들

장령자 통상구의 마주편은 로씨야의 크라스끼노 통상구

동북아 지역의 통상의 관문이자 또한 마음에 장벽이기도 하다.

국계라는 것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푸르른 하늘에 새들 처럼 인간들도 국계가 없이 마음대로 다닐수 있는 날이 있을가

언제면 동북아에도 유럽공동체와도 같은 공동체가 이루어 질수 있을까?

                                                      200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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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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